Sword Master Alone RAW novel - Chapter (1110)
#외전 79. 모든 것의 시작, 모든 것의 끝(2)
* * *
평행세계.
실존하지 않기에.
모든 가능성을 내포한.
마주 보는 거울처럼 끝없이 펼쳐진 세계.
그 속에서는 과거와 미래라는 시간의 흐름조차 상대적인 개념에 지나지 않으니.
과거 시르는 본래 회귀란 시간을 되돌리기보다는, 평행세계로의 이동에 가까운 것일지 모른다고 추측하기도 했다.
애초에 과거에 돌아가서 미래를 바꾸는 시점에서부터, 그것은 또 다른 가능성을 가진 평행세계를 만드는 행위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리고 리몬은 그것이 꽤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잔다르크의 영혼은 평행세계를 넘어가며 까마득한 시간의 흐름을 뛰어넘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그는 진작 예측했어야 했다.
잔다르크나 시르처럼 평행세계로 넘어간 이가 있다면, 반대로 평행세계 너머에서 영향을 미친 이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자신과는 다른 운명을 선택한 평행세계에서 리몬 아스펠더일 가능성도 말이다.
“너는 성좌가 된 나로군.”
[정확히 말하자면, 성좌로 전락한 너라는 쪽에 가깝겠지.]“전락……. 인가.”
자신의 세계가 지닌 모든 가능성을 집어삼키며 초월자로 거듭나고, 그것을 위대한 일이라 여겼던 성좌들이 들었다면 모욕적으로 여길 말.
하지만 스스로가 성좌임에도 그것을 하찮게 여기는 그 태도를.
리몬은 쉽게 이해했다.
그가 어째서 성좌가 된 것인지.
그 이유를 쉽게 깨달았으니까.
“그렇군. 내가 세븐 아크스를 손에 넣지 못했을 경우 도달했을 수도 있는 결말이 너인가.”
―별의 힘.
리몬이 성좌들을 베어 낼 때마다 흡수해 왔던, 한 세계의 모든 가능성을 빨아들여 만들어진 힘.
그것은 실로 강대한 힘이었지만, 본질적으로 따진다면 오히려 저주에 가까운 것이었다.
애초에 다른 모든 선주종족을 파멸시키고, 세상의 미래마저 삼켜 힘으로 빚어내는 과정 자체가 흑마법의 의식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처음 리몬이 미약한 별의 힘조차 제대로 다루기는커녕, 제대로 흡수하지 못했던 것도 그래서였고.
다행히 리몬은 기연을 얻었다.
세븐 아크스(Seven Arcs).
요정여왕이 일곱 용의 도움을 받아, 철저하게 별을 봉인하기 위해 인류의 역사가 시작했을 때부터 만들어 낸 대성결계 나인 월드.
그것이 성좌들과 충돌하고 깨져 나가며 우연히 만들어지게 된, 별의 힘을 담은 일곱 개의 보물.
그중 심흑의 바이올린을.
또 플라톤의 조각칼을.
그리고 강마도룡검을.
무엇보다, 일곱 공주를.
차례차례 손에 넣고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 힘을 빌림으로써 리몬은 별의 저주를 극복하고 지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얻지 못했다면?
혹 한두 개만을 얻고, 봉인조차 풀지 못했다면?
리몬이 도달했을 수도 있는 결말이, 바로 지금 눈앞에 있는 또 다른 그.
모든 별을 베어 내고 그 막대한 별의 저주에 삼켜짐으로써, 강제로 오롯한 성좌가 되어 버린 외팔의 리몬이었다.
[검의 끝에 도달하지 못한 네가 도달했을 수도 있는 결말이기도 하지.]“그럴 수도 있었겠지.”
그래서였다.
그 지적에 리몬이 순순히 수긍한 것은.
그가 모았던 과반수의 세븐 아크스조차 무한에 가까운 별의 힘을 감당하기에는 부족했으니.
오러 블레이드로 별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한들.
세상의 파멸을 막기 위해 먼저 멸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스스로 살아남고자 하는 별의 힘에 의해 강제로 성좌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무겁게 가라앉은 눈으로 외팔의 자신을 보던 끝에.
리몬은 나직이 물었다.
“그래서, 이런 짓을 한 이유는 뭐지?”
[이유가 필요한가?]“필요하지.”
딱 자르는 말과 함께.
더욱 깊어진 백금에 가까운 황금빛 눈동자는, 샛별에 가까운 금빛 눈동자를 똑바로 직시한다.
“아무리 다른 세계이고 성좌가 되었어도, 너 또한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이상 이런 짓을 하지는 않을 테니까.”
모든 별의 저주를 먹어 치우고 유일무이한 성좌로 거듭난 그의 힘은 그야말로 초월적. 진정으로 전지전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기에.
리몬은 확신할 수 있었다.
아무 이유도 없이 자신에게 기억과, 별의 힘을 나눠 줬을 리 없다고.
그리고 외팔의 성좌는 굳이 리몬의 확신을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나직이 입을 열었을 뿐.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라면 어떤가?]“뭘 말이지?”
[―또 다른 가능성을.]자세히 캐묻는 대신.
침묵하며 기다리는 리몬에게.
외팔의 성좌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네게 있어 별과의 전쟁은, 평생 겪은 그 어떤 싸움보다 치열하고도 힘겨운 것이었겠지.]“…….”
[하지만 곧 알게 될 것이다. 성좌와의 싸움은, 시작일 뿐이었다는 것을.]튜토리얼(Tutorial).
본 게임이 시작하기 전.
플레이어에게 게임을 하는 방법을 알려 주기 위해 존재하는, 그야말로 걸음마나 다름없는 스테이지.
그런 의미에서 그 강대한 성좌와의 싸움조차 결국은 튜토리얼의 일부일 뿐, 진정한 전쟁은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노라고.
성좌가 한 이야기를 듣고 리몬은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종말, 말인가.”
[그렇다.]성좌들이 경계하며.
그토록 막고자 했던 것.
모든 세상의 진정한 끝에 대해 말하며, 외팔의 리몬은 차갑게 말을 이었다.
[종말의 힘은 네 상상 이상으로 강대하다. 그 말단조차 되지 못하는 찌꺼기들조차, 별들에게 몇 번이나 멸망의 위기를 겪게 했을 만큼.]그래.
성좌들이라고 처음부터 다른 세상의 모든 가능성을 먹어 치우며 침략을 반복했던 것은 아니다.
아득한 세월 동안 싸우고, 맞서고, 저항하길 거듭하고도 도저히 승리할 방법을 찾지 못해, 그렇게라도 살아남기를 택한 것이지.
[그리고 네가 아무리 강하고, 앞으로 강해진다 한들 종말과의 싸움을 끝낼 수는 없을 것이다.]“꽤 확신하는군.”
[나 역시, 그러했으니까.]“…….”
운명의 장난일까.
모든 별을 베고 저주를 흡수한 결과.
그는 하나의 별자리로 뭉쳐 있었음에도 제각각 존재하던 모든 성좌를 합친 것보다 강대한 힘을 얻게 되었다.
성좌들이 영겁에 걸쳐.
수많은 세상을 멸망시키며.
이루고자 했던 최종적인 목표.
그 진정한 완성형에, 정작 그들을 파멸시킨 리몬이 도달하고 만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완성된 힘은 강대하여, 무한한 종말의 세력 중에서도 그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들은 드물었다.
하지만 그러고도 불구하고.
그는 몇 번이나 위기에 몰렸다.
수많은 세상을 희생시켜 얻은 그 강대한 별의 힘조차 끝이 없는 모든 종말을.
특히 그중 정점에 위치한, 종말들조차 두려워하며 경외하는 존재들을 감당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고작해야 도망치고 살아남을 수 있었을 뿐.
[긴, 세월이었다.]“…….”
[내가 더는 도망칠 필요가 없어지게 된 것은.]그것은 기적일까.
아니면, 필연일까.
초월자조차 아득하게 느껴질.
성좌들이 탄생하면서 멸망할 때까지의 모든 시간을 합친 것보다 길고 긴 세월 동안, 헤아릴 수 없는 싸움을 거듭하며.
그는 기어코 종말에서도 정점의 반열에 들게 되었으니.
이제는 오히려 종말의 세력이 그를 피해 다니며, 심지어 기도하고 제물을 바칠 정도였다.
[하지만, 단지 그뿐이다.]“…….”
[‘전능하고 무지한 라스트 원’은 아직도 대부분 나보다도 강대하고, ‘거룩한 아홉 종족’은 나를 경계할지언정 두려워하지는 않지.]문제는 그가 혼자라는 것.
기적적으로 라스트 원 하나를 이기더라도, 모든 라스트 원을 다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며.
라스트 원조차 위협할 수 있는 종말병기를 수두룩하게 가진 거룩한 아홉 종족은, 정말 위협이 되면 연합해서라도 그를 토벌하려 들 것이다.
그들을 모두 상대할 만큼 힘을 기르려면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아니, 과연 그게 가능할지.
그 답을 알기에.
그는 말했다.
[결국, 나는 종말을 이길 수는 있어도 이 싸움을 끝낼 수는 없다.]“…….”
[그리고 그것은 너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니, 오히려 나보다 더한 고난과 역경이 강제되겠지.]“내게는 지켜야 할 게 있으니까?”
[그렇다.]홀로 싸우고 살아남기만 했던 자신과 달리, 리몬에게는 지켜야 할 인류가 있다.
그리고 종말의 세력은 그렇게 빤히 드러난 약점을 놔두지 않을 것이니, 리몬이 아무리 강해도 인류를 지켜내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니, 네게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어떤 방법 말이지?”
[하나는 나와 계약하는 것.]“…….”
[또 하나는…….]그는 이미 성좌.
그것도 이전에 존재하던 별자리들과 달리, 유일무이하게 완성된 진정한 별의 화신이니.
성좌들이 맺던 사기 계약 따위가 아니라 제대로 된 계약을 맺어 그의 사도가 된다면, 충분히 세상을 지킬 수 있을 거라고 말하면서도.
외팔의 성좌는, 굳이 리몬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어차피 거절할 걸 안다는 듯.
곧장 다음 방법을 밝혔을 뿐.
[나와 생사결을 벌여, 승자가 패자의 모든 것을 갖는 것.]“……그게 너의 목적이었군.”
그리고 그제야.
리몬은 이해했다.
그가 말했던, 또 다른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었다는 게 무엇을 말하는지.
“나를 통해 잃어버린 검의를 다시 얻는 게.”
[오러 블레이드라면, 저 종말마저 끝낼 가능성이 있으니까.]“…….”
[어쩔 텐가, ‘나’여?]종말을 모두 없애고 끝없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 삼라만상을 베는 절대적인 멸망, 오러 블레이드가 필요한 외팔의 성좌.
종말의 세력으로부터 인류를 지키기 위해서는 오러 블레이드 외에도, 무한에 가까운 별의 힘이 필요한 리몬.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상대에게 있는 이상, 이것은 정당한 거래.
계약을 맺고 협력하든.
아니면 사투를 벌이든.
결국, 승자는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고.
그가 한 제안을 듣고, 리몬은 별로 길지 않은 침묵 끝에 대답했다.
“―둘 다 사양하지.”
[그런가.]“그래.”
그리고 뜻밖에도.
외팔의 성좌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어쩌면……. 아니, 오히려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담담히 받아들이며 확인했을 뿐.
[이 뒤에 너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상상도 못 할 만큼 아득하고, 힘겨우며, 절망적인 싸움이다.]모든 종말의 세력은 별의 은닉이 사라지며 갑자기 나타난, 그야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리몬의 세상을 결코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특히 ‘강대한 종족’이 이미 먼 옛날 사라졌던 백금황가의 후예가 남아 있음을 안다면?
또 긴 세월 정체돼 있던 ‘신비한 종족’이 두 종류나 되는 새로운 종족의 가능성을 발견한다면?
리몬과 그의 세상은 금방 거룩한 아홉 종족, 나아가서는 라스트 원과의 끝없는 아전투구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네가 그 싸움에서 세상을 안전하게 지킬 힘을 얻기까지는, 영겁이라고 부를 만큼 아득한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어쩌면 자신만큼.
아니, 자신 이상으로 오랫동안.
싸우고, 싸우고, 싸우기를 거듭하며.
[그리고 아무리 강해지더라도, 그 싸움에 끝은 없다.]설령 모든 종말과 대적할 만큼 강해지더라도, 그 뒤에는 오히려 너무 강해졌기에 종말의 세력은 계속 그를 쓰러트릴 기회를 노릴 테고.
그는 영원토록 그들을 경계하고, 싸우며, 세상을 지켜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 길을 가겠나.]자신의 손을 잡고.
혹은 자신에게 이겨서.
그의 힘을 얻는다면 더 쉽고 빠르게 모든 것을 해결할 수도 있을 텐데.
그럼에도 다만 묵묵히 한 걸음씩, 죽을 때까지 그 끝나지 않는 길을 걸어가겠냐고 묻는 그에게.
리몬은 담담히 대답했다.
“물론.”
[…….]“원래 인생이란 그런 법이니까.”
칼끝에 목숨을 거는 칼잡이만이 아니다.
태어나자마자 필사적으로 어미의 젖을 빠는 갓난아기도, 연인과 맺어지려고 노력하는 청년도,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뼈 빠지게 일하는 부모도, 병들어 골골거리면서도 살아가는 노인도.
살아 있는 이상.
힘든 일은 늘 있으니.
삶이란 곧 고통이자 투쟁.
그 사실을 알면서도 결국 꿋꿋이 걸어가고, 달려가다, 때로는 넘어지고, 후회하면서도.
결국, 자신의 발로 다시 일어나 행복을 찾는 것이 인생이라고 말하며.
리몬은 빙그레 웃었다.
“무엇보다, 난 오늘 할 일이 있거든.”
오늘은 영겁에 이를 그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행복해야 할 날이니.
쓸데없는 짓을 벌일 마음은 없노라고, 태연하게 말하는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던 끝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잘해 보도록.]“말이라도 고맙군.”
굳이 설득하거나 붙잡지도, 더 무언가를 묻지도 않고.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고.
리몬도 곧장 몸을 돌렸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비록 다른 세계에서, 다른 삶을 살았을지언정, 그들은 자신이었으니까.
그렇게…….
지켜야 할 세상마저 잃어버린 끝에,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해 살아가게 된 파괴신을 두고.
아직 지켜야 할 것이,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이 있기에 영원토록 싸우기로 한 수호신은 걸음을 내디뎠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
일 년이나 걸려서.
이날을 준비해 온.
사랑하는 신부들의 곁으로 돌아가,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기 위해서.
* * *
“으음, 오빠가 아직 자는데?”
“아무리 피곤해도 그렇지, 이런 날까지 참으로 태평하기도 하구나.”
“그게 리의 매력입니다.”
“아무래도 식 준비로 피곤하셨을 테니까요. 좀 더 주무시게 둘까요?”
“아직 시간이 있으니 괜찮을 거 같습니다.”
“그보다 꽃이나 잊지 마시오. 우리가 직접 키운 것을 지금 와서 잃어버리기라도 했다가는 평생 후회할 테니.”
“여덟 개 모두 확인했으니 걱정 말도록.”
“으, 하여튼 그 언니들도 대단하다니까요. 어떻게 그렇게 시치미를 뚝 떼고 아무 일도 없었던 척을 할 수 있었는지…….”
“……그걸 기어코 알아낸 따님도 대단한 거 같은데요.”
[야, 식전주 좀 먼저 마시고 있으면 안 되냐?]“후후, 식후 파티에서 마음껏 즐기실 수 있으니 조금만 참으세요.”
“상공께서 깨어나실 때까지 곁은 소첩이 지키고 있을 테니, 모두 쉬고 계시옵소서.”
“졸림, 나도 스승 수컷이랑 잠.”
“앗, 새치기 금지!!!”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