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 Master Healer RAW novel - Chapter 283
283
소드마스터 힐러님 283화
87장 황제를 죽여라(3)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리블하인 대공.”
집무실 구석의 어둠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는 성혈 기사단장 켈트헤임이었다. 그는 짧은 한숨을 내뱉으며 창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리블하인은 창가에 기대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켈트헤임 대공.”
리블하인의 목소리에서 희미한 살기가 묻어 나오자 켈트헤임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우리도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뱀파이어도 실수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나이아스 암살 때 증거를 실수로 남겼을 수도 있습니다. 슈타인 대공의 마족 소환 계획이 유출되었을 때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누구나 실수는 하는 겁니다.”
“죄송합니다. 리블하인 대공…….”
“하지만 가능하면 이런 중요한 일에서는 실수를 하면 안 되는 겁니다. 켈트헤임 대공.”
켈트헤임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입술에서 새어 나온 피가 창백한 피부를 타고 흘러내렸다.
“반란군은 제가 반드시 제압하겠습니다.”
“슈타인 대공은 어디에 있습니까?”
“제2군단과 제11군단, 그리고 제12군단을 이끌고 엘프 파벌의 군대를 상대하고 있습니다.”
“오크 파벌의 군대는 어디에 있습니까?”
“죄송합니다. 제 직속 부관이 이끄는 제3군단과 제10군단이 패주하는 바람에 수도까지 향하는 길이 열렸습니다. 라켈 공작이 제4군단과 제5군단을 지휘하여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리블하인은 창밖을 향하던 시선을 거두며 술잔을 비웠다.
“용족령과 다크엘프령의 군대는?”
“다크엘프령에서 군대가 출발했지만 언제 도착할지 알 수 없습니다. 용족령이 배반의 깃발을 들고 다크엘프령의 지원군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용족들은 마족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비밀로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엘프 대표에 의해 모든 것이 까발려졌으니, 그들이 반기를 드는 것은 당연했다.
사실상 현재 뱀파이어령은 엘프령, 드워프령, 오크령, 오우거령, 트롤령, 용족령을 단독으로 상대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뱀파이어령의 군대가 연합 내에서 가장 강력하고 대규모 상륙 작전에서 병력을 빼돌렸다고는 하지만 종족 연합의 전체를 상대한다면 밀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버틴 것만 해도 대단했다.
“상황이 좋지 않군요.”
리블하인이 말했다. 표정은 평온했지만 마음속은 휘몰아치는 폭풍에 동요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켈트헤임은 그것을 느낄 수 있었고 죄책감에 고개를 숙였다. 이 상황이 초래된 것에 대해 그의 책임이 없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족 소환 계획은 계속 진행할 수 없겠군요.”
“슈타인 대공도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마족의 군대는 강력하다. 그들을 부를 수만 있으면 엘프 파벌과 오크 파벌의 군대를 전멸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아쉽게도 이번 전쟁은 우리의 패배인 것 같습니다.”
“큭…….”
“슬퍼하지 마십시오. 종족 연합이라고 해도 뱀파이어를 몰살하지는 않을 겁니다. 비록 오늘은 우리가 패배했지만.”
술잔이 다시 채워졌다. 리블하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인정하기 싫지만, 이번 내전에서는 뱀파이어령이 패배한 것이다.
밀려 들어오는 엘프 파벌과 오크 파벌의 군대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우리의 후손들이 언젠가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해 줄 겁니다.”
리블하인은 굳게 믿었다.
* * *
수도는 크고 넓다. 수도 방위군 10만과 필리어스 지방에 집결한 20만 제국군을 모두 수용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전선 지휘는 전사한 제국군 사령관 렌칼 후작을 대신하여 특무군 사령관 아레스 백작이 맡게 되었다.
그는 바보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연합군과의 전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파악하고 있었다.
수도 방위군과 제국군은 수도 안에서 수성을 준비했고 성벽 위에는 황명을 받아 무장한 민병대가 자리 잡았다.
-연합군이 도시에 대한 포격을 지양하고 있다는 걸 알아챈 모양입니다. 민병까지 무장시키다니…… 아마 이건 황명일 겁니다.
리슈발트가 말했다. 성준은 보초탑에서 마정석 기술이 들어간 쌍안경으로 수도 외성벽을 살피고 있었다.
“민병대를 방패로 세우는 건 예상했어.”
-해결 방안도 있으십니까?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성문을 돌파한다.”
-가능하겠습니까? 수도의 성문을 여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리슈발트. 나도 기사 여단의 최고 기사 출신이었어. 수도의 방어 체계 정도는 알고 있다고.”
성준의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넘쳤다.
-오전에 루토 경이 말한 내부의 조력자를 믿는 겁니까?
아침에 루토와 만나서 짧은 티타임을 가졌었다. 그때 루토는 수도에 강력한 조력자가 있다는 사실을 넌지시 밝혔다.
“30분 후에 페이드 후작, 그리고 루토 경이랑 만나기로 했어. 그때 확실해지겠지.”
-성문을 지키고 있는 병력이 많습니다. 내부 조력자의 무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빠르게 성문을 열고 병력이 접근할 때까지 수비하려면 최소 검성급 2명이 있어야 합니다. 전시 상황이 되면 13기사회의 검성들이 성문을 지킨다는 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성문은 중요한 곳이다. 그래서 전시가 되면 수도의 외성문 4곳은 13기사회 소속 검성의 수호를 받게 된다.
“왕국 연합과의 전선 때문에 수도에 남아있는 검성의 수가 많지는 않을 거다.”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나마 왕국 연합과의 전선으로 이동하지 않은 검성들은 대부분 성준과 에리나에게 당했거나 남부 방면군을 지원하여 해방군과 싸우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중립을 지키는 검성들이었다.
-확실히…… 그렇겠군요.
“슬슬 시간이 됐네. 가야겠다.”
성준은 보초탑을 떠나 개인 막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페이드 후작과 루토가 성준의 막사까지 오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막사에 도착하니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는 두 명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반갑네. 연합군 사령관.”
페이드 후작이 먼저 인사를 건네 왔다.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강성준으로 직접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동부 방면군 사령관님이라고 들었습니다. 루토 경에게서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가? 루토 경이 좋은 이야기만 해줬다면 좋겠군.”
“모두 칭찬 일색이었습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성준과 두 사람이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서론은 접어두고 본론부터 말하겠네. 수도 안에는 황실 친위대장과 최고 기사를 포함해 7명의 검성이 있다네. 그들 중 4명은 수도 방어 계획에 따라 4개의 성문 수호를 시작했다네.”
페이드의 말에 성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왜 그러는가?”
“생각보다 수도 안에 있는 검성의 수가 많아서요.”
“걱정하지 말게. 1명은 우리 조력자니까.”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검성이 조력자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게 되면 수도 안의 황제파 검성의 수는 6명으로 줄어든다.
연합군과 해방군의 검성 전력은 조력자와 동부 방면군의 검성을 포함하여 4명이 된다.
조금 불리하지만, 키메라 기사들이 합류하면 어느 정도 밀어붙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상황이 불리해지면 동조율 초월이라는 극단적인 방법도 있었다.
“혹시 조력자분이 성문을…….”
“13기사회 소속이 아니라서 성문의 수호를 맡지 못했다네. 하지만 쪽문 정도라면 열어줄 수 있을 것이야.”
수도에는 작은 쪽문이 몇 개 있었다. 이곳도 엄중한 관리를 받기는 하지만 검성급의 조력자라면 능히 열어줄 수 있을 것이다.
“쪽문을 통해 강성준 경과 에리나 경이 침투해주었으면 좋겠군. 그리고 남문을 제압하여 개방하면 해방군 기마대가 침투할 것이네.”
“연합군의 기동 병력도 지원하겠습니다.”
성준이 말했다. 연합군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대규모 시가전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결행은 언제입니까?”
“빠를수록 좋지 않겠는가?”
“이미 군은 준비되어 있습니다. 에리나 경께 전달하는 대로 실행하도록 하죠.”
“그러면 오늘 밤인가?”
“아마도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계획이 완성되었다. 페이드 후작과 루토는 해방군으로 돌아갔다. 해가 지고 어둠이 하늘을 뒤덮자 성준은 에리나, 그리고 키메라 기사 둘과 함께 은밀하게 남문 근처의 쪽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요?”
에리나가 물었다. 성준은 시계를 확인했다.
“30분 남았습니다. 조금만 기다려보죠.”
“네, 알겠어요.”
에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키메라 기사인 소이드와 토벤이 주변을 경계하는 동안 침묵 속에서 30분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쪽문이 열리면서 검은 후드를 깊게 눌러쓴 남자가 걸어 나왔다.
“들어오시죠.”
후드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성준은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마력 파장이 너무나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리펄스 자작이군요. 제 예상이 틀리지 않다면 알론스 백작도 조력에 가담했을 겁니다.
리펄스는 알론스의 충직한 호위였다. 그가 독단적으로 움직였을 리는 없었다.
그의 주군인 알론스가 지시를 내렸을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성준은 에리나와 시선을 교환했다. 그녀도 눈앞에 있는 남자가 리펄스라는 걸 알아챈 모양이었다. 두 사람과 키메리 기사 둘은 리펄스를 따라 수도로 진입했다.
‘수도는 오랜만이네.’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것을 주체할 수 없었다. 오랜만에 수도를 방문해서 기쁘다는 게 아니었다.
황제를 죽이는 게 가까워졌다는 사실에 기뻐서 춤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제 곧 남문입니다. 주변에 무장 병력 2천이 주둔 중입니다. 전투가 시작되면 그들이 움직일 겁니다.”
리펄스가 말했다. 그는 계속 수도에 있었기 때문에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증원을 차단해줄 수 있겠습니까?”
성준이 말했다. 그러자 리펄스는 후드를 슬쩍 벗어 넘기며 입을 열었다.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최대한 저지해보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에리나 경. 저희도 이동하죠.”
리펄스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대답했다. 성준은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 뒤, 에리나와 함께 남문으로 향했다. 소이드와 토벤이 마지막으로 뒤따랐다.
“저기 검성이 보이는군요.”
로우켈이 죽고 새로 뽑힌 검성인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13기사회의 휘장을 갑옷에 달고 있었고 허리에는 두 개의 검이 걸려 있었다.
“제가 소드 레인을 사용해서 주변을 제압하면서 검성을 견제하겠습니다.”
“저도 원호하겠습니다.”
동조율 92%가 되면서 소드 레인의 사용이 가능해진 성준이었다. 그는 에리나의 말에 답하며 검을 뽑아 들었다.
“소드 레인!”
“소드 레인.”
동시에 응용 검술이 완성되었다. 하늘에서 오러 블레이드가 비처럼 쏟아졌다.
“크아아악!”
“으아아악!”
남문을 지키고 있던 기사들이 힘없이 쓰러졌다.
“역시 검성인가?”
검성은 멀쩡했다. 갑작스러운 기습이었지만 그는 자신을 노리는 오러 블레이드를 모두 방어했다.
“소이드, 그리고 토벤.”
“하명하십시오.”
“경청하고 있습니다.”
키메라 기사 둘도 검을 뽑은 상태였다. 그들에게 맡길 임무는 정해져 있었다.
“잡졸들을 처리해라.”
“이행하겠습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키메라 기사들이 움직였다.
“갈까요?”
“기쁜 마음으로 함께할게요. 강성준 경.”
두 사람의 검에 선명한 오러 블레이드가 깃들었다.
“와라! 배신자들이여! 황제 폐하의 이름으로 너희를 처단하겠다!”
13기사회의 검성이 검을 휘두르며 외쳤다. 그를 향해 성준은 싸늘한 시선을 던졌다.
“배신자는 내가 아니야.”
고속 이동술을 펼치자 검성은 검을 들어 올려 방어 자세를 취했으나, 한발 늦었다.
“커헉!”
검성이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일격에 피를 보고 말았다.
“너 같은 배신자한테는 1분도 아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