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002)
제 1111화
246화. 미트라 대사막 쟁탈전(13)
‘엘로나 경…….’
진은 성수관에 타락한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켈리악을 만나 성수관을 쓴 후 지금껏 수많은 사람을 죽였고, 그건 설령 그녀가 다시 옛 정신을 찾게 되더라도 없던 일이 될 수 없다.
“……계약은 거부하지.”
슈리가 마살룬에게 캭캭 위협적인 소리를 내고는 적옥으로 들어갔다. 마살룬은 의외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이해가 안 되는군…… 하지만 강요할 수는 없음이니, 마살룬은 그대를 존중하겠다. 대신 언제든 마음이 바뀐다면 다시 마살룬을 찾도록. 마살룬은 그럼 다시 적명족들을 괴롭히러 가겠다.]마살룬이 포화 너머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진은 한동안 가만히 서서 엘로나가 가까워지기를 기다렸다.
폭음이 조금씩 잦아들고 있었다.
엘로나가 특유의 광대한 기운을 전혀 숨기지 않은 채 다가오고 있으니, 적명족도 일단 상황을 지켜볼 요량이었다.
그렇게 전장은 서서히 고요해져 갔다.
이윽고 적뇌 파장과 짙은 모래 폭풍 너머로 엘로나의 인영이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 진은 그녀의 발소리마저 들을 수 있었다.
저벅, 저벅, 저벅.
이제는 지플의 백발이 아닌, 태양처럼 불타오르는 금빛 머리칼은 전장의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빛났다. 머리 위에 떠 있는 성수관에선 금속이 마찰하는 듯한 작은 소음이 일고 있었다.
“오랜만이군요, 엘로나 경.”
진이 엘로나와 눈을 맞췄다.
특유의 한없이 맑고 깨끗한 눈동자는 보이지 않았다. 엘로나의 눈은 마치 단백석처럼 복잡하게 빛나는 결정들이 가득 박힌 것 같았다.
“진 룬칸델.”
열 발자국쯤 떨어진 채, 엘로나가 걸음을 멈췄다.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진은 변해버린 그녀의 모습과 그가 알던 옛 모습을 떠올렸고, 엘로나는 그를 보자마자 알 수 없는 감정이 치솟는 걸 느꼈다.
하지만 크게 동요할 정도의 감정은 아니었다.
“대사막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라프라로사와 인세를 잇는 통로를 파괴하러 왔다.”
“여전히 솔직하시군요.”
“숨길 필요가 없는 일이니까.”
“그렇다면 나도 솔직하게 말하죠. 나는 그 성수관이라는 물건 때문에 변한 당신을 보면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엘로나는 대답하지 않고 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돌아보면, 내게 당신은 처음부터 복잡한 존재였습니다. 제가 본격적으로 당신이라는 존재를 알게 된 건 우리 가문의 초대 가주, 테마르 룬칸델의 무덤들을 찾으면서였죠. 어떤 기록에서는 당신을 괴물…… 학살자로 묘사하고, 또 어떤 기록에서는 당신이 지난날을 후회하는 듯 보이더군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결국 당신이 비궁의 오랜 봉인을 깨고 세상 바깥으로 나왔을 때, 나의 친구는 지금 당신처럼 본인의 의지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실수와 계략으로 인해 타락한 상태였습니다. 베라딘 지플 말입니다. 그리고 경은, 엇나간 그 녀석을 많이 아껴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말에 엘로나는 다시 한번 지옥에서 들은 베라딘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잊지 말라고 소리치던 그 목소리를.
그녀는 아직 이야기의 탑에 그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못했다.
“천 년 전에도, 그리고 그때까지도. 우리의 관계는 분명 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지토와 싸울 때, 직접 본 엘로나 경은 그 어떤 기록이나 정보와도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빛이 필요한 사람처럼 보였다고 해야 할까요.”
“……빛?”
“이를테면 쫓아갈 수 있는. 원치 않는 지독한 일들로부터 최대한 멀어질 수 있는 이정표 같은. 그건 아마 경이 베라딘을 아끼고 사랑한 이유이기도 하겠죠.”
피식, 엘로나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때의 나는 참 우스운 존재였군. 원치 않는 지독한 일들? 정말 원치 않았다면 그 일을 하지 않으면 되었을 것이다. 빛이나 이정표 같은 추상적인 것들에 기댈 게 아니라.”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도 하죠. 누구에게나 삶이 버거울 때가 있는 법이니까요.”
“그렇다면 스스로 죽음을 택할 수도 있었을 테지.”
“그게 불가능한 경우도 있습니다. 당장 이 속에 있는 적옥묘 역시, 저주를 받아 그럴 수 없는 몸이군요.”
진이 적옥을 꺼내 보여주며 말했다.
“내게는 그런 저주가 없다.”
“마법이나 권능이 아니라, 어떤 숙명 또한 저주라고 할 수 있겠죠. 그 성수관이라는 물건이 문제인 겁니까? 기억보다 많이 편협해지셨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 성수관은 합리와 이성과는 거리가 아주 먼 물건이다. 오로지 최초로 인식한 존재의 명령을 듣게 설계되어 있으니.”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끔찍한 관을 계속 쓰고 있는 겁니까?”
“벗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군.”
“사람이라면 당연히…….”
“난 사람이 아니다, 진 룬칸델. 겉모습이 이렇다고 하여 나를 인간으로 분류하는 모양이지. 그러니 내게 인간의 기준을 들이밀어도 소용이 없다. 너희와 나는, 의식 자체가 다르다.”
“에? 사람이 아니라고?”
“인간…… 아니야?”
가만히 듣고 있던 벨리즈와 린파가 말했다.
엘로나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자신이 대사막에 온 목적을 다시 상기했다.
“쓸데없는 대화에 이만하면 아주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 같군. 너희가 통로를 빠져나왔다는 명왕족들인가.”
“잠깐, 잠깐! 싸우기 전에 우리 궁금증은 좀 풀어주라. 엘로나 지플, 사람이 아니면 넌 뭔데?”
“맞아…… 뭐지?”
“신이라고 할 거냐? 그건 아니잖아? 넌 그 관을 쓰기 전까지 자유 의지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며? 지금도 그 두 요소가 전혀 없지는 않은 것 같은데.”
엘로나는 잠시 대답할 말을 골랐다.
그러나 고를 수가 없었다. 어떤 종으로도 자신을 분류할 수 없었다. 더는 나무가 아니니 나무라고 할 수도 없고, 애초에 사람이 아니었으니 사람이라 할 수도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생체병기겠군…….’
엘로나는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않고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3초가 지나기도 전에 전장 전체가 진동하며 마력이 들끓기 시작했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태산처럼 거대한 입방체들이 벌써 수십 개나 떠오르고 있었다.
그 압력만으로도 일행은 보호막을 둘러야 할 정도였다. 한참 떨어진 적명족 공중요새와 함대도 전부 적뇌로 보호막을 형성하고 있었다.
‘지옥에서 이미 느끼긴 했지만, 확실히 이전보다도 훨씬 더 강해졌군…….’
성수관을 쓰기 이전에도 이미 엘로나는 창성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엘로나는 마치 마성을 극복한 시론처럼 그 이상의 무위를 가졌음이 분명했다. 타락 이전처럼 봉인의 여파에 더해, 성수관과 완벽하게 동조되지 못해 생긴 오류까지 있는데도 말이다.
“뭐야, 대답을 못 하네!”
“정 대답을 듣고 싶다면 그냥 생체병기라고 인식해라.”
“하! 좋아, 뭐 생체병기라고 해도 말이야. 나는 내 대검을 형제처럼 아끼거든…… 여기 린파 형제도 그렇고.”
“뭐?”
“생체가 아닌, 그냥 병기조차 누군가에겐 가족이 될 수 있다, 이 말이지. 하물며 넌 생체병기니까, 당연히 더 그렇겠지?”
“무슨 헛소리를…….”
“우리 진 형제의 벗, 베라딘 지플. 여기 오기 전에 그 녀석이 우리더러 그러더군. 너는 소중한 가족이니까, 너무 고통스럽게 대하지는 말아 달라고. 지금 보니 그런 부탁은 우리가 베라딘한테 네 가족더러 살살 좀 하라고 전해달라 해야 할 판이었지만. 아, 그때 같이 말한 그 베티라는 녀석도 원래는 생체병기라고 했었지? 린파 형제.”
“맞아…… 그랬어.”
“그렇다면 다른 게 뭐 중요하냐? 엘로나 지플. 넌 그냥 언젠가 진 형제와 우리에게 구출을 당하는 거다. 그때까진 마음대로 살아. 그간 저지른 죗값은 어차피 결국 치러야 할 테지만, 그때도 베라딘이란 녀석은 너를 놓지 않겠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어…… 베라딘. 한 번 형제는, 형제…… 가족은, 가족…… 친구는, 친구.”
스아아악-!
엘로나의 등 뒤로 떠오른 입방체들에서 마력으로 형성된 창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진과 벨리즈, 린파는 사방으로 검을 휘둘러 떨어지는 창들을 쳐냈다.
“내가 너흴 모두 죽인 다음에도 과연 베라딘 지플이 나를 계속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군.”
그 대목에서 진은 엘로나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는 느낌을 받았다.
‘만약 방금까지의 대화에서 무엇이든 자극을 받았다면, 그건 엘로나 경에게 적용된 세뇌가 완벽하지 않다는 뜻이다.’
입방체에서 쏟아지는 창들은 충분히 강력하나 예상보다는 위력이 약했다. 애초에 엘로나는 진 일행과 본격적으로 전투를 할 생각이 없었다.
그녀의 목적은 라프라로사 통로 파괴, 그걸 위해서는 오히려 최대한 진 일행을 무시하는 게 답이었다.
엘로나는 순식간에 마력을 타고 일행을 지나쳐 저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면서도 입방체들은 계속 그 자리에 남아 세 사람을 공격하고 있으니, 일행이 엘로나와 똑같은 속도로 쫓아갈 수는 없었다.
적명족들은 곧바로 이쪽의 분위기를 읽어내고 진과 투왕들 위주로 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엘로나는 더 편하게 세 사람과 거리를 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진도 엘로나를 멈출 생각이 없다.
“세상엔 힘으로 결코 부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엘로나 경. 라프라로사가 그렇고, 당신이 지금 잊어버린 본연의 모습도 그렇습니다.”
창성의 기운이 담긴 낮은 목소리가 포화를 뚫고 엘로나의 귓가에 닿고 있었다. 엘로나는 그 목소리를 듣고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이성과 내면이 둘 다 복잡해지고 있었다. 이성은 진이 라프라로사의 통로를 지키러 오지 않아서 혼란스러웠고, 내면에선 그 말을 다시 듣고 싶은 마음과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함께 치솟았다.
그러나 엘로나는 다시 돌아서 진 일행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묵묵히 라프라로사의 통로를 향해 마력을 퍼붓기 시작했을 뿐.
진 일행은 엘로나가 남겨놓은 입방체를 벗어나 대사막의 중심부 바깥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적들에게 라프라로사를 애써 지킬 필요가 없다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어떻게든 막으려고 하면 적들은 더 많은 병력을 보낼 테니까.
“……돌아가자, 형제들. 이제 해방 장치를 안으로 던져줄 수 있을 때까지, 뒷일은 반 형제와 다른 형제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