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01)
제 111화
35화. 콜론의 비극(1)
생각지도 못한 발견이었다.
‘마력의 샘. 거울이라니…… 설마 해적단 무투 대회 따위에서 얻은 지도가 그걸 가리킨다고 누가 생각이나 할 수 있겠어.’
진이 회귀하기 전, 한 용감한 기자에 의해 세상에 알려진 고대 아티팩트.
당시 기자는 거울의 모습과 원주민들의 고발을 낱낱이, 세세하게 전파해 온 세상에 지플의 만행을 알렸다.
당연히 평소 정의와 평화의 사도를 자처하는 지플의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밖에 없었으나.
기자 하나가 그 거대 가문을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
지플의 패악에 분노를 토하던 사람들은 지플의 여론전에 말려들어 서서히 사라져 갔고.
콜론 원주민들의 한 맺힌 울분은 두 번 다시 세상에 전파되는 일이 없었으며.
만행을 고발한 기자는 이후 소식이 완전히 끊겨 버렸다. 사람들이 그 용감한 기자를 뇌리에서 잊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콜론의 원주민들은 다시금 투명 인간처럼 세상을 살아갔고 말이다.
‘……그럼 이 지도는 원주민들이 만든 것이겠군. 아마 뮬타의 룬처럼 그 가치가 알려지지 않아 세상을 떠돌고 있던 것이고.’
어쩌면 원주민들은 지플에 탄압당하는 자신들을, 이 지도를 보고 찾아온 모험가들이 알아봐 주길 기대했는지도 몰랐다.
콜론은 어차피 한 번은 찾아가려고 했던 곳이었다.
지플보다 먼저 거울을 찾아 놈들이 양산 마법사를 육성하지 못하도록 견제할 필요도 있었고, 무엇보다 콜론에서 자행된 금지 마법 실험에 대해 조사할 필요도 있었다.
진으로선 때마침 더없이 좋은 명분이 생긴 셈.
‘나는 그 기자처럼 불행한 원주민들을 구하자는 정의감은 없으나…… 적어도, 내가 지플에 피해를 입힌다면 그들에게도 나쁜 일은 아닐 테지.’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꼬마, 표정이 왜 그래? 설마 라트리가 그린 물건이 뭔지 알고 있는 거냐?”
동료들은 진이 콜론 유적지의 비극과, 거울에 대해 알고 있는 걸 모른다는 것이다.
‘회귀자라는 게 이럴 땐 가끔 불편하단 말이야.’
그래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바로 이럴 때를 대비해 티칸에 자리를 잡은 것이니까.
“아니, 몰라. 다만 뭔가 느낌이 좋지 않군…… 카시미르 경, 아무래도 이 지도에 대해 조사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딸아이가 봤다는 과거가 신경 쓰이기도 하고, 뭔가…… 이 지도가 아무 이유 없이 진 공자의 손에 들어왔을 것 같지 않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맞아요, 진 공자. 일단 이 고어를 알고 있는 사람부터 수소문해야겠습니다. 그래야 뭐라도 단서를 찾을 수 있을 테니.”
“카시미르 경, 이건 제 직감인데. 칠색조가 공개적인 조사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만한 원념이 서린 물건이니, 어쩌면 아직 라트리 님이 본 비극은 진행형일지도 모르니까요.”
“그것도 그렇군요. 흐음, 그나저나 토착민을 학살한 마법사들이라…… 지플이 엮여 있는 일은 아니면 좋겠군요.”
* * *
칠색조는 그날부로 곧장 지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지만, 2주간 딱히 성과를 얻을 수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현재 콜론의 원주민들은 루테로 마법 연방인 ‘페일론 왕국’의 소속인 데다, 수백 년 전 지플에게 발견된 이후 대부분 학살당해 극소수만 남은 상태.
그 얼마 남지 않은 원주민들조차 모두 콜론에 사실상 감금되어 있으니, 토착 고어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건 칠색조라 할지라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실마리는 진조차 예상치 못한, 아주 가까운 곳에서 발견되었다.
1796년 2월 17일.
진은 그날 오전 훈련을 쉬고 유리아, 라트리와 함께 알리사가 근무하는 티칸 중앙 수비대를 찾았다.
“진 오빠. 엄마가 이걸 받으면 좋아하겠지?”
“물론, 아마 널 번쩍 들고 와하하 웃으실걸.”
유리아가 엄마에게 자신이 그린 가족 그림을 선물해 주자며 진에게 같이 가 달라고 한 것이다.
“어서 오십시오, 티칸 중앙 수비대입…… 아, 유리아. 안녕?”
“안녕하세요! 엄마는요?”
“우리 딸! 엄마 여기 있지! 아, 두 분도 같이 오셨군. 오, 이건 뭐야?”
“선물!”
배시시 웃으며 그림을 내미는 유리아.
그걸 보자마자 알리사의 만면에 함박웃음이 피는 건 당연지사였다.
“세상에, 우리 딸내미 그림도 이렇게 잘 그리고…… 어디 보자, 이건 카시미르고. 여긴 진 오빠, 엔야 언니도 그렸네?”
길리와 무라칸, 퀴칸텔, 라트리까지 자그마한 도화지에 빼곡히 채워진 모습. 그림을 다 본 알리사가 유리아를 번쩍 안아 들었다.
“크하하, 크면 화가 해야겠어. 자, 오빠들이랑 잠깐만 기다려. 엄마 서류 몇 장만 해치우면 되니까 오빠들이랑 같이 점심 먹으러 가자. 유리아 좋아하는 해물탕 먹을까?”
“오옷, 해물탕. 좋아요!”
알리사가 기뻐하는 모습과 해물탕이라는 단어에 몹시 기분이 좋아졌는지, 유리아는 혼자 ‘해물탕, 해물탕’ 요상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진과 라트리는 유리아가 귀여워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사각, 사각…….
곳곳에서 분주히 펜대가 움직이고 있었다. 수비대원들이 서류를 처리하는 것과, 범죄를 저지르고 끌려온 이들이 반성문을 쓰는 게 합쳐진 소리였다.
반성문.
알리사가 수비대장으로 부임한 이후, 원래부터 그리 높지 않았던 티칸의 범죄율은 그야말로 바닥을 찍고 있었다.
가끔 끌려오는 이들도 대부분 공영 화단에서 꽃을 꺾거나, 술에 취해 하찮은 주사를 부린 정도라 반성문을 쓰고 훈방 조치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도시가 그리 크지 않다지만, 이 정도로 관리가 되다니. 알리사 님이 확실히 대단하긴 해. 휴페스터 연합국은 룬칸델이 직접 관리하는데도 흉악 범죄가 꽤 자주 일어나는데.’
진이 내심 감탄하며 주위를 둘러보는 사이, 라트리도 흥미로운 듯 범법자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인간이란 참 신비로운 동물이란 말이죠. 법을 어기면 처벌받는다는 걸 알면서도, 왜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거죠?”
“글쎄요, 용들은 안 그러나요?”
“음…… 아뇨, 생각해 보니 용들도 어리석긴 한 것 같아요. 하하, 바보 같은 이야기였네. 아, 제가 용들이 어리석다고 말한 건 무라칸 님께는 비밀로 해 주셔야 합니다.”
“라트리 님은 무라칸을 많이 신경 쓰는 것 같군요. 걔가 혹시 괴롭혔습니까?”
“그건 아니에요. 제가 부모님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이야기가 뭐였는지 아세요? 밖에 나가거든 흑룡을 조심해라. 그중에서도 무라칸, 미샤 남매는 특히 조심해라…….”
라트리는 흑룡만 너무 조심하다가 풍룡 뷰렛타의 꼬임에 넘어간 게 분명했다.
“그리고 제 또래 용들 사이에서 무라칸 님은 완전 전설적인 존재에요.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가 섞여 있긴 하지만…… 엇?”
설명을 이어 가던 라트리가 돌연 말을 멈추고 어딘가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저쪽에 앉아 수비대원에게 조사를 받고 있는 누군가의 뒤통수였다. 진도 자연스레 그쪽으로 시선이 옮겨졌는데, 남자는 어눌한 목소리로 자기 자신을 변호하고 있는 듯 보였다.
“어제에…… 술…… 많이…… 했슴다. 죄송…… 함다.”
“너 인마, 말투가 그게 뭐야. 어? 전혀 반성하는 태도가 아니잖아. 술 취했으면 곱게 들어가서 잘 것이지, 왜 야밤에 노래를 불러서 자는 사람들 다 깨우고 앉았어?”
“슬퍼서…… 그랬슴다. 아, 죄송함다.”
“그리고 이게 벌써 몇 번째야! 너 자꾸 이러면 술집에서 안 받아 준다니까? 내가 그래도 너 쫓아내지는 말라고 맨날 동네 주인장들한테 얼마나 사정하는지는 아냐?”
“고맙슴다. 어, 담배 하나 같이 하심까?”
“하! 망할, 너 때문에 제명에 못 죽는다, 내가. 알았다, 담배 하나 같이 태우고, 앞으로 얌전히 마시는 거다? 제발.”
“알겠슴다. 저 그런데 담배 없슴다.”
“이게 진짜.”
수비대에 자주 들락대는, 평범한 술꾼인 듯 보였다. 큰 사고는 치지 않고, 매번 오다 보니 수비대원들과도 적당히 친분을 쌓고 있는.
그리고 피부가 무척 붉은, 홍인종이었다.
‘홍인? 홍인 치고도 유난히 붉은 편이긴 하네.’
티칸 자유 도시는 이름에 걸맞게 여러 인종이 섞여 있기에 그다지 특이할 건 없다.
하지만, 그를 보고 있는 라트리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진 공자…… 저 사람, 내가 유리아와 공명해서 본 토착민들하고 거의 비슷하게 생겼어요.”
“어, 그래요?”
“네, 게다가 저 어눌한 말투…… 본래 대륙 공용어 사용자가 아니라는 뜻이죠.”
한 번 알아봐서 나쁠 건 없었다.
“지도 한번 보여 줘 보죠. 해물탕 먹으러 같이 가서.”
남자와 수비대원이 담배를 피우러 나갈 때, 진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 남자는 익숙하게 담배를 하나 얻어 피웠고, 수비대원은 정감 어린 욕설을 몇 마디 내뱉다 다시 일자리로 돌아가는 모습.
“이봐요.”
“소년, 누구심까?”
“해장이나 같이 하러 갑시다. 나도 어제 술을 많이 마셨거든요.”
“오, 좋슴다. 그런데 나 돈 없슴다.”
“내가 사죠.”
* * *
삐질, 삐질.
해물탕집에 같이 앉아 사정없이 눈치를 살펴보는 이 홍인의 이름은 아로판 투판 메이판.
줄여서 판.
‘소년…… 왜 수비대장 있다고 말 안 했슴까? 수비대장 무섭슴다.’
정작 알리사는 판에게 눈치를 주고 있지 않았다. 진과 라트리에게 대충 사정을 들은 것이다.
“많이 먹어라, 판. 착한 녀석이 그만 좀 잡혀 오고.”
“이 아저씨 나도 자주 봤어. 엄마 보러 갈 때마다 맨날 있어.”
“맨날은…… 아님다.”
모락모락…….
먹음직스러운 해물탕이 나오자 유리아와 판의 눈동자가 동시에 빛났다.
“잘 먹겠슴다!”
방금까지 눈치를 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미친 듯이 해물탕을 떠 먹는 판. 아무래도 평소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듯 보였다.
한 시간 가량의 불꽃같은 식사가 끝난 후.
“저…… 소년.”
“왜요?”
“나 이것 좀 더 싸 가도 되겠슴까? 동생이 배고픔다.”
“넉넉하게 싸 가도 돼요. 그 전에 잠시…… 아, 마침 왔네. 여기야.”
진이 막 씩씩대며 해물탕집으로 들어선 한 남자에게 손을 흔들었다.
‘지도를 가져오라’는 전보를 받고 달려온 무라칸이었다.
“하다 하다…… 이젠 이런 것까지 시키냐! 나 무라칸이야, 무라칸! 이런 건 미물 시켜도 되잖아!”
“카시미르 경은 매일 격무에 시달리지, 길리도 하는 일 엄청 많지, 엔야는 공부해야 하지, 노는 건 너 하나뿐이야. 이거라도 해야지.”
“퀴칸텔은!?”
“그분은 빼.”
라트리가 그런 진을 보며 동경의 눈빛을 보냈고, 진은 무라칸에게서 받은 지도를 꺼내 조심스레 판에게 보여 주었다.
“판. 이거…… 혹시 뭔지 알겠습니까?”
그리고 판은 지도를 보자마자.
“……이, 이거 어, 어디서 났슴까?”
급격히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