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022)
제 1111화
247화. 라프라로사 해방 전쟁(11)
[흥, 바로 지금처럼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냐, 로키아.] [어떤 면에선 지금도 그렇다고 할 수 있겠네. 지금부터 이 무지막지한 전쟁병기를 상대로, 라프라로사를 지켜야 할 테니. 그런데 말이야, 후손아.]후손, 그 단어가 나오기 무섭게 진은 일검을 내질렀다. 시퍼런 섬광이 공중요새들 사이에 펼쳐진 검붉은 보호막을 찢고 안으로 들어섰다.
스가악-!
로키아의 얼굴이 나타나던 거대한 창이 찢겼다.
“감히 날 후손이라 부르지 말라고 하였다. 귀가 어두운 모양이지. 아니면, 영체로 나타났다 하여 죽지 않으리라 확신하는가?”
진은 그 자리에서도 로키아가 본체가 아닌 분신이라는 사실을 알아보았다. 로키아가 계속 끊으려고 하는 투신합일은 지금 오히려 더 단단히 결속되고 있었다.
[……오, 예전의 나였다면. 방금 일격은 꽤 섬찟했겠어.]“그렇다면 예전의 네가 더 좋은 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번의 기회를 주지. 돌아가라. 오늘은, 나를 만나고도 네가 무사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다.”
한층 깊고 웅혼한 기운이 묻어나는 목소리, 로키아는 함선 너머로 전해지는 그 진동에 일순 전율을 일으켰다.
어쩌면 무라칸의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 가장 먼저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말에 마음을 졸여본 지가 너무 오래되었구나. 공포를 느끼기에 나는 너무 닳아버렸어. 후후, 그래. 후손이라 부르는 건 그만두도록 하지. 어차피 이제는 지금의 검가에 미련을 두지 않기로 하였으니.]“지금의 검가, 라. 우린 네가 아공간을 형성해 일종의 세계를 만들었다는 정보를 확인했다. 룬칸델에 미련이 없다고 말은 하지만, 내 쓰레기 같은 혈육들은 거기서 네 소꿉놀이에 동참하고 있지 않나? 조슈아와 뮤, 앤 말이다.”
진은 느끼고 있었다.
로키아는 분명 아쉬워하는 중이었다. 그녀가 자신만의 세계를 가꾸기 위해 데려온 룬칸델의 아이들은, 그런 초라한 낙오자들뿐이었다.
“가문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모두 나와 함께하고 있다, 로키아. 왜 그중 무엇 하나도 네가 가져갈 수 없었는지, 생각해본 적 있나?”
[후후, 무엇이지?]“너는 견디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때는 네가 가문을 위해 희생한 시기도 있었을 테지만, 그뿐이야. 결국 넌 함께 견디고 싸우고 투쟁하는 대신 배신을 택했다. 그런데도 마치 창조주라도 된 척 세상을 다시 만들어서라도 룬칸델을 가지려 할 뿐이지. 추한 집착에 불과해.”
로키아의 세계가 정확히 무엇인지, 진은 그 실체를 직접 본 일이 없다. 그러나 로키아가 ‘룬칸델’을 원하는 건 선명하게 보였다. 거대한 창 너머 그녀의 눈동자를 번들거리게 만들고 있는 건, 오로지 룬칸델을 향한 집착이었다.
“그러나 네가 나의 룬칸델에서 가져갈 수 있는 건 단 하나뿐이다, 로키아 가네스토. 그건 네가 받아야 할 죗값이지.”
-[그자가 배신자였소…… 마녀와 손을 잡고, 테마르를 괴물로 만들었지. 모든 게 로키아의 계략이었소. 솔더렛이 테마르를 잠시 떠났던 것도, 신들이 우리를 배신한 것도, 지플이 득세하게 된 것도.]
-더 자세히 말씀해주십시오.
-[날 죽이기 전, 로키아는 자신의 목적이 태양신의 부활이라 하였소. 동료들을 모조리 죽여놓고 베일만 살려둔 이유지. 지금의 세계를 완전히 말소시키고, 다시 온당한 세상을 되찾겠다더군. 세상의 본래 형태라고 했던가, 로키아는 그걸 위해 모조리 다 이용한 거요. 가문도, 마녀도, 심지어 지플까지도.]
진은 파들러가 소멸하기 전 유언처럼 내뱉은 말들을 떠올렸다. 로키아가 한 짓은, 그 이면에 무엇이 있든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일들뿐이었다.
“로키아 가네스토!”
진의 눈동자에 시퍼런 뇌기가 맺혔다.
“너는 천 년 전 가문을 배신하고, 테마르 룬칸델과 십대기사들을, 그들을 따른 자들을 해하고, 현재까지 그 저주받은 생명을 이어와서 가문을 해할 모략을 꾸미고 있다. 가문의 소가주로서 네가 받아야 할 처벌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마. 처벌은, 영원한 절망이다. 너는 바라는 것을 이룰 수 없고,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없으며, 닿고 싶은 것에 닿을 수 없다.”
화아아악-! 츠즈즛……!
명왕군림검의 사나운 뇌기가 다시금 대사막을 가득 채웠다. 채 1초가 지나기도 전에, 진의 근처까지 잠식하고 있던 혼기가 밀려난 것이다.
푸른 폭풍이 진을 중심으로 반원을 그리며 끝도 없이 나아가고 있었다. 네 기의 공중요새는 그 척력에 크리의 뒤편까지 밀려났고, 내내 구덩이 속을 헤매던 시마트는 다시 지상으로 올라 검을 움켜쥐었다.
‘이건 또 무슨…… 아직도, 끝이 아니었단 말인가.’
안개가 걷히듯, 절망에 덮여 있던 시마트의 어두운 눈동자가 열리고 있었다.
그는 마침내 동굴을 빠져나와 빛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이 푸른 뇌기는 충분히 자신을 찢어버릴 수 있음에도, 빼앗긴 크리보다 더 잔인하게 자신을 짓밟을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그를 보호하고 있었다. 언젠가 태양신의 제단에서 겪은 신비로운 감각, 그 이상의 평온을 주고 있었다.
그건 진에게 태양신과 관련한 특별한 권능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단지 진은, 그에게 희망을 주고 있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싸움을 이어갈 수 있는 희망을.
구원.
시마트는 돌연 그 단어를 떠올렸다. 명왕족 투신이 했던 말, 자신들은 진으로부터 구원받았다는 이야기를.
‘구원은…… 신이 아니라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시마트는 구원받고 있었다. 자신의 목숨, 그리고 동포들을 구하는 건 여전히 불가능한 일임에도.
그저 오랜, 그리고 헛된 망상이 깨지고 진실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때로는 구원이었다.
물론 진은 시마트가 무엇을 깨달았든 그를 존중하지 않는다. 그러기엔 그들의 붉은 검에 무고하게 죽은 이들이 너무 많았다.
단지 그의 칼날이 이제 자신이 아니라 로키아를 향하고 있기에 살려둔 것일 뿐. 만일 시마트가 다른 결정을 내렸다면, 진은 가장 먼저 그를 소멸시켰을 터였다.
“고맙다, 진 룬칸델. 그래도 우리가 동료가 되는 건 불가능할 테지만, 마지막은…… 내 동포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내가 동포들을 위해 싸울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한 너를 위해서도.”
후우우우…….
시마트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는, 자신을 감싼 푸른 뇌기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오래전 그의 광심장은 이미 푸른 뇌기를 받아들인 적이 있다.
누명을 쓰고 크리틸에서 쫓겨난 날, 우연히 엘티엇을 마주한 날이었다. 그때 이미 거인이었던 엘티엇은 그를 청명으로 받아들이려 했으나, 시마트는 그를 배신했었다. 그것이 적명의 길이라 믿었기에.
“그리고 염치없지만, 한 가지만 부탁하고 싶군. 청풍제에게…… 미안했다고 전해다오. 네 덕분에 그 노인네가 내게 준 은혜가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를 깨달았거든.”
시마트의 광심장이 자줏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조화, 그 시절 엘티엇으로부터 배우고 지금껏 부정해온 특질. 잔인하지 못한, 유약한 자가 자신을 감추기 위해 꾸민 허상이라 치부해온 진리.
테탈론.
시마트는 태양신의 힘이 담긴 그 검을 내던졌다. 새로 깨우친 진리를 실현하기에, 그 검엔 너무 낡은 것들이 깃들어 있었다.
대신 시마트는 조심스레 뇌기를 써서 새로이 한 자루 자줏빛 검을 형성했다. 그 무엇에도 흐려지지 않을 듯 단단한 칼날이 그의 손에서 형형한 빛을 일으켰다.
시마트는 그 감각에 취해 시간이 흐르는 걸 잊고 있었다.
그가 푸른 뇌기를 받아들이고 테탈론을 버리기까지, 30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진과 동료들, 그리고 로키아 사이엔 셀 수 없이 많은 공방이 오갔다.
진은 더 이상 라프라로사를 지키고 서 있지 않았다. 그를 대신해 무라칸과 명왕족 투왕들이 그 앞을 지키는 중이었다.
시그문드는 네 기의 공중요새를 무시한 채, 오로지 크리로만 뻗어졌다.
크리의 그 무지막지하게 거대한 선체는, 반대로 보호막을 뚫기만 하면 그 모든 곳이 타격점이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크리는 단지 거대하기만 한 공중요새가 아니었다. 적명족 기술력의 정수가 극한까지 적용된 그 전쟁병기는, 마치 함선이 아니라 아공간처럼 움직이는 모습을 보였다.
장갑 위로 검을 내리치면, 돌연 그 부위가 일그러지며 사라지는 것이다. 선체의 한 부분을 전부 덮을 수 있는 검기를 쏘면, 정확히 그에 닿은 부분만 투명해졌다.
때문에 진의 검기는 연달아 허공을 치는 형상이었다. 아무리 매서운 검이라도 닿지 않으면 목표를 벨 수 없었다.
그러나 진은 전혀 답답하게 느끼지 않았다. 로키아 또한 진의 검이 무위로 돌아가는 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진은 길을 찾고 있을 뿐이었다. 크리를 송두리째 파괴하지 않고도 로키아에게 닿을 수 있는 길을.
크리를 파괴하는 건 로키아의 영체를 소멸시킨 다음이었다. 그 영체로부터 진짜 로키아가 있는 곳에 대한 단서를 찾아야 했다.
진의 반대편에선 시마트의 자줏빛 뇌기가 크리를 뚫고 있었다. 그 또한 진과 마찬가지로 로키아의 영체를 찾는 중이었다. 그녀를 죽여야만 동포들이 혼돈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역시 요새 내부가 아니었군.’
먼저 영체의 위치를 파악한 건 진이었다.
이미 시그문드는 크리 전체를 한 번씩 모두 지났다. 그럼에도 검에 무언가 걸린 적이 없으니, 로키아의 영체는 외부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로키아가 숨어 있던 공간은, 라프라로사의 통로 뒤쪽의 구덩이였다. 그리고 그곳엔, 크리로부터 분리된 주포가 함께 투명화된 채 놓여 있었다.
진이 뒤를 돌아본 순간 로키아는 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 주포가 터지면, 막을 수는 있을 것이다. 대신 무라칸은 물론이고 명왕족 투왕들도 다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주포가 발사되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십대기사였던 자가, 그따위 장난질에 시간을 쏟다니. 아니면 이렇게 직접 나서서 전투를 하는 건 오랜만이라 감을 잃은 건가?”
본래 크리는 적뇌를 기반으로 움직인다. 그 성능을 다 끌어내려면 반드시 그들의 투신인 시마트의 광심장도 필요했다.
그러나 지금 크리의 동력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 로키아가 부리는 혼기였다. 그리고 진은, 로키아의 위치를 찾는 동안 그녀의 혼기를 서서히 묶어두고 있었다. 지금처럼 뜻대로 개수작을 부리는 일이 없도록.
“지금이라도 크리를 지키려 하는 게 좋을 거다, 로키아. 잊은 모양인데, 넌 이 함선이 없으면 내 형제들을 조금도 위협할 수 없다. 지금 지켜야 할 것이 있는 건, 사실 나뿐만이 아니라는 뜻이지…….”
진의 검은 다시 크리를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