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033)
제 1033화
248화. 어서 오세요, 라프라로사에(2)
사람들은 직감하고 있었다.
지금 저 발코니 위의 투신이 마음을 먹기만 한다면, 십여 초 내로 여기 모인 인파 9할 이상이 목숨을 잃을 것이라고.
무인도, 무인이 아닌 자도, 하다못해 부모의 손을 잡고 찾아온 어린애들조차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영역이었다.
현실감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토록 광대한 힘을 가진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은, 두 눈으로 직접 보고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상식, 범주, 규격을 아득히 벗어난 거인.
군중들은 이제껏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흉신의 지배를 겪은 이들도, 진마계의 폭정과 적명족의 파괴력을 목도한 이들에게도, 반은 그 무엇과도 비교가 불가한 강대한 존재였다.
본래라면 두려움에 몸을 떨었을 것이다.
아니, 몸을 떨 수도 없이 그냥 얼어붙고 말았을 것이다. 감히 눈을 뜰 수도, 숨을 쉴 수도 없어서 서서히 질식했을 것이다. 단지 반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그녀가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반대였다.
군중들은 그녀로부터 무한한 믿음을 얻고 있었다. 그녀가 존재하는 한 이 세상이 다시 불구덩이에 휩싸일 일은 없을 것만 같았다.
반은 명백히, 진의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진이 목숨을 걸고 해방한 형제들이었다.
“나는 반만년 전, 이곳. 라프라로사를 하늘 가장 높은 곳으로 올리고자 했었다. 명왕족만의 힘으로 신이라 불리는 이들을 모조리 소멸시키고,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빛나는 존재는 우리 명왕족임을 증명하려 했었다.”
반은 희미해진, 그러나 결코 잊을 수는 없는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잠시 말을 멈췄다. 살리지 못한, 함께 살아남아 지금 다시 세상을 보지 못한 형제들의 광심장이 아른거리는 듯했다.
“어리석은 짓이었지. 이제는 우리가 왜 그들을 죽이려 들었는지, 어째서 그런 마음을 갖게 되었는지, 아주 선명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와 형제들이 그때 패배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뚜렷하다.”
우리만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만년 만에 이루어진 고백과 참회가 라프라로사를 두드리고 있었다.
“우린 우리만을 생각했다. 명분이 아예 없지는 않았으나, 근본적으로 우린 우리만을 위해서 싸웠다. 우리의 힘을 증명하려 했고, 그 방식은 세상을 정복하는 것이었지.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지 않은가? 부끄럽게도 우린, 지금껏 진 형제가 처단한 적들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인파 사이에 섞여 있는 명왕족들은 고개를 숙였다. 반은 덤덤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반면 진 형제는 언제나 우리와는 다른 싸움을 해왔지. 진 형제는 늘 힘이 약한 자들을 지키려 했고, 책임지려 했고, 살리려고 했다. 그 모습이 마침내 우리에게도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어.”
진은 후회하고 있었다.
‘투신 형제가 이렇게 갑자기 부담스러운 금칠을 해주시는군. 미리 무슨 말을 할 건지 좀 물어보고 말릴 걸 그랬어…….’
분명히 회귀 후 진은 수많은 위업을 달성했다. 세인들이 세상의 수호자로 여기며 그를 믿고 의지할 만큼.
하지만 진은 언제나 생각했다. 지금 세상을 어지럽히는 거대한 비극들은, 자신이 회귀하기 전에는 없던 일이라는 사실을.
죄책감과 부채감, 그리고 책임감. 진은 자신이 회귀자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마음으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중이라 생각했다.
-네가 가는 길에 놓인 죽음들은 너의 책임이 아닐 것이다. 너를 그렇게 만든 존재의 책임이라 할 수 있겠지. 그러나 네가 그 길의 끝에 도달할 때…… 어쩌면 너는 그렇게 많은 죽음에 짓눌리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네가 창성이 되자마자 재생의 권능을 얻은 이유가 있을 것이야.
-그러니 죄책감에 짓눌려 쓰러지지 말거라, 진. 너는 저들에게, 이전에 그렇게 죽은 이들에게, 이후에 그렇게 죽을 이들에게 삶을 돌려주기 위해, 결코 쓰러져선 안 된다.
불현듯 아율라가 소멸하기 전 해준 말이 떠올랐다. 희망의 신이 유언 대신 남긴 응원이 내면에서 메아리치며 진을 위로하고 있었다.
“이제부터 우리 명왕족은 그 길을 따라가고자 한다. 약자들을 지키고, 책임지고, 살리는.”
군중들의 눈동자가 빛나고 있었다. 박수를 치거나 함성을 지르진 못했으나, 가슴에서부터 벅차오르는 감정이 눈으로 쏟아질 것 같았다.
“그대들은 내가 믿음직스러울 것이다. 아마 나와 형제들만 있으면, 이제 다시는 세상이 위험해지지 않을 것 같겠지.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언제나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한 집단의 힘만으로는 모든 것을 해낼 수 없다. 반만년 전에도 이미 증명된 바 있는 일이지. 따라서, 그대들도 싸워야 한다.”
반이 천천히 아래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각자의 삶을 견디라는 의미다. 그리하여 그대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음을 언제나 맹렬하게 소리치는 거다. 일격에 산을 허물 수 있는 한 뛰어난 개인의 힘은, 생각보다 쉽게 지워질 수 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의 삶을 흔적도 없이 지우기란 어려운 일이다.”
반은 단지 힘없는 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허울 좋은 말들을 꾸미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지플의 역사 조작에 대항할 수 있는.
“나는 천 년 전 룬칸델의 초대 가주를 가르쳤고, 그때도 지플은 역사를 뜻대로 조작해왔다. 그들은 지우고 싶은 것을 뜻대로 지웠고,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이 세상에서 지운 건 단지 몇 가지 사건과 기록일 뿐이야. 천 년 전 전성기를 누리던 지플도 모든 사람의 삶을 지우지는 못했어.”
존재의 힘.
천 년 전 룬칸델은 테마르가 가진 존재의 힘을 기반으로 지플의 역사 조작에 저항했다.
반이 생각하기에 존재의 힘은 일종의 구심점이었다. 한 사람이 가진 존재의 힘이 아무리 커도, 결국 그 안에 모여들 사람들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고 말이다.
테마르를 따르던 사람들, 그를 믿던 사람들, 그에게 의지하던 그 수많은 사람처럼.
이제 바멀 연합은 진을 중심으로 그렇게 역사 조작에 맞서야 했다.
“우리가 지워지면 그대들이 우리를 기억해서 찾고, 그대들이 지워지면 우리가 그대들을 기억해서 찾는다. 역사 조작의 어두운 그림자 앞에, 연대하지 못하면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연대하면, 반드시 승리한다.”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제 반이 아니라 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반이 처음 등장한 순간 형용할 수 없이 압도적인 무력을 느꼈듯이, 진으로부터 ‘존재의 힘’을 보고 있었다.
“물론 가장 좋은 건 지플이 역사 조작을 완성하기 전에 놈들을 끝장내는 겁니다. 실제로 아직 놈들의 역사 조작 능력이 심각하게 위협적이진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킨젤로든, 태양신교든, 가네스토든. 적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전에 끝을 내는 게 좋겠죠. 이제 바멀 연합의 무력은 압도적이니,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무력에 한정하면, 이제는 감히 그 어떤 세력도 바멀 연합을 따라올 수 없다. 심지어 일주일 전 멸망한 적명족이나 진마계가 갑자기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지금은 내가 여러분께 명왕족 형제들을 소개하는 순간이자, 바멀 연합의 총수로서 적들에게 마지막 경고를 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수백만 명이 몰렸다. 인간, 수인, 마족, 용, 인세를 살아가는 온갖 종족이 지금 라프라로사 안에 최소 한 명씩은 존재하고 있었다.
그중엔 분명 적들도 섞여 있을 것이다. 인파 사이에 숨어 라프라로사를 엿보는 적들이 없을 리는 없다.
연합은 그런 정탐을 막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모든 것을 똑바로 확인하고 돌아가기를 바랐다.
명왕족이 얼마나 건재한 상태로 해방되었는지, 루나가 시마트를 꺾고 정말 창성이 되었는지, 지금의 바멀 연합은 얼마나 강한 것인지. 두 눈으로 똑똑히 파악하기를 말이다.
대량 살상 테러 같은 건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애초에 정탐꾼 중 누군가 그런 짓을 시도하면 반드시 그 전에 잡힐 수밖에 없었다. 반과 진, 루나, 무라칸을 비롯한 연합 초인들의 감각을 뚫고 성공적인 테러를 행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무엇보다 이 판국에 축제에 온 민간인들을 다치게 했다간 연합이 곧바로 전군을 이끌고 모든 세력을 칠 수도 있다. 적들에게 그보다 더 부담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그 대단한 적명족이, 하루아침에 멸망하고 채 열흘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일주일을 주겠다.”
진의 눈동자에 살의가 맺혔다. 그를 믿는 이들에겐 마냥 아름답고, 적들에겐 공포 그 자체인 눈빛이었다.
“킨젤로, 태양신교는 일주일 내로 항복하라. 그리하면 최소한의 인격적 대우와 적법한 재판 절차를 약속하겠다.”
물론 적들이 백기를 내민다고 하여도 처벌을 면해줄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항복하지 않는다면 너흰 끔찍한 일을 겪게 될 것이다. 너희 스스로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속도로 무너지고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이다. 항복은, 너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품격 있는 최후라는 뜻이다.”
킨젤로, 태양신교. 진은 두 세력에게만 항복을 권고했다.
지플과 가네스토에겐 그만큼 자비를 베풀 수 없기 때문이었다.
“룬칸델 천 년의 원수 지플, 그리고 쓰레기 같은 배신자 집단인 가네스토는 그냥 그대로 있도록. 드디어 네놈들을 멸문할 때가 되었군……. 단, 그저 소모품처럼 사용되고 버려지는 위치에 있는 말단과 고용인들은 바멀 연합에 자비를 청해도 좋다. 죄질이 아주 더럽지만 않다면 조사와 처벌을 끝낸 후, 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살 수 있게 만들어주겠다.”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연합원들의 귀에 인파 사이사이 숨어있는 정탐꾼들이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내 진은 군중을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저와 반 형제가 준비한 연설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럼 찾아오신 여러분 모두, 라프라로사를 마음껏 즐기다 돌아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