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051)
제 1051화
251화. 대적자들(1)
1804년 6월 2일, 자정.
이야기의 탑에선 여전히 심연 군단과 블리기에트, 켈리악의 전투가 한창인 와중, 바멀 연합은 난데없이 정원에 강철문이 열린 장면을 목도하고 있었다.
“강철문? 오르갈 이 새끼가 미쳤나, 티칸궁 한복판에 허락도 없이 저걸 열어?”
“엥, 무라칸 친구. 저 문에서 뭔 시커먼 것들도 좀 튀어나오는데?”
“그러게, 뭐야 저거. 설마 침공인가? 정말? 진 형제한테 편지도 보내고, 항복 선언도 해놓고, 이렇게 갑자기 뒤통수를 친다고? 아니, 그것보다 어떻게 여길 칠 생각을 하지? 창성만 셋에, 초인급 인원은 손가락으로 셀 수도 없는데. 미치지 않고서야.”
마치 사람처럼 보이는 검은 윤곽이 벌써 열댓이나 쏟아졌다. 카시미르가 긴급 사태를 선포하려는 찰나, 강철문에서 마지막으로 오르갈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르갈은 멀리서도 확연히 보일 정도로 오만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심기가 매우 불편한 듯 보였으나, 공격을 시작할 기색은 전혀 없었다. 검은 윤곽들도 오르갈의 옆에 가만히 선 모습.
연합의 초인들은 그들을 바로 포위했다.
“오르갈, 이게 뭔 짓거리냐? 이 검은 덩어리들은 뭔데?”
무라칸이 오르갈의 앞에 서며 말했다. 루나와 룬티아가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녀들은, 오르갈이 대답하기 전에 ‘검은 덩어리’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자, 잠깐…… 저거…… 저건, 나……? 세상에, 나라고?”
“……뭐? 언니도 느꼈어?”
“엉? 너희 갑자기 뭔 소릴 하는 거야? 왜 그래?”
루나와 룬티아는 태어나 처음 겪는 기묘한 감각에 부르르 몸을 떨고 있었다. 또 다른 ‘자신’을 마주하는 감각에.
심연 군단은 전원 오르갈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다. 모든 세계에서 온갖 우연과 필연이 겹친 결과로 헬루람을 찾아간, 다른 영웅들도 몇 사람 포함되어 있었다. 다른 세계의 루나와 룬티아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그저 괴물, 혹은 검은 살덩이처럼 보이지만, 저건 분명히 나다. 오랜 투쟁과 싸움에 닳고 닳아서, 한없이 퇴화한…….’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대체 어떻게……?’
다른 동료들도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있었다.
[하하! 여기 이 병사들과 대응되는 인물이 하나도 없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이군. 하긴 없을 리가 없지. 이러면 설명은 빨라지겠군! 염병할! 좋다, 좋아! 아이 좋아!]오르갈이 입을 연 순간 티칸의 일원들은 일순 굳어버리고 말았다. 무언가 사건이 있었고, 그로 인해 다소 맛이 간 게 분명해 보였다. 그 옆에선 루나와 룬티아까지 충격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으니, 동료들로서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오르갈. 마르지엘라가 너와 이야기를 해보라고 편지로 알려주긴 했다만, 설마 이런 식일 줄은 몰랐어. 못 본 새에 성격도 좀 달라진 것 같군. 괜찮나?”
[어, 그래. 우리 진 룬칸델! 난 괜찮아, X, 진짜 괜찮다고…… 흑, 커흑흑.]돌연 오르갈이 울음을 터뜨리자, 진은 저도 모르게 손수건을 건넸다.
[꺼져! 네놈이 뭘 안다고 내 슬픔을 달래려 들어? 이제야 나타난 네놈이?]“이게 진짜 돌았나. 야, 뒤질래?”
[크하핫, 그래, 그래. 네놈들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니까, 뭐. 무라칸, 내 오랜 친구여. 그러나 무지는 큰 죄라네.]“어우, 머리야. 감당 안 되려고 한다. 꼬마, 이거 왜 이러나 물어봐. 루나, 룬티아. 너희도 정신 차리고 설명을 해.”
“오르갈, 일단 진정해라. 무슨 일인지 차분하게 이야기해보자고. 누님들도 설명을 해주십시오.”
팽, 패헤엥-! 달빛 아래서 오르갈은 한동안 코를 풀고 얼굴을 닦았다. 루나와 룬티아가 먼저 정신을 다잡고 입을 열었다.
“진, 설명하기 어렵지만 저 검은 덩어리들 중 둘은 나와 룬티아다. 보자마자 알아볼 수 있었어. 어딘가…… 다른 세상의, 나야.”
“다른 세상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래. 분명 나인데, 나와 다른 삶을 살았어. 순간적으로 이 검은 덩어리의 기억이 밀려들더군.”
루나가 헛소리를 할 리는 없다. 설령 오르갈이 어떤 사술을 부리는 중이라고 해도, 창성의 통찰력은 이렇게 간단히 무너지지 않을 터.
진은 마르지엘라가 보낸 편지를 떠올렸다.
-(사실은 저희에게도 최근 혼란스러운 일이 하나 있었거든요. 단장님께서 마녀를 만나고 온 후, 많은 상황이 변했답니다…… 이에 대해선 추후 단장님께 직접 듣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꽤 충격적인 이야기거든요.)
그때쯤 뒤늦게 나온 베라딘과 산드라, 헤도도 심연 군단을 보며 앞선 두 사람과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내가…… 오르갈과 동료였다고?”
“저 산드라는 진 자기를 못 만났어!? 그보다, 내가 어떻게 둘이지?”
“이게 무슨.”
계속해서 밀려드는 다른 세계의 기억. 그들은 오르갈만큼 선명한 기억을 전해받지는 못했으나, 그럼에도 병사가 ‘자신’이라는 사실은 분명히 인지할 수 있었다.
[진 룬칸델.]오르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언제 울었냐는 듯 멀쩡한 얼굴에 평소처럼 깊고 단단한 눈동자였다.
[내가 너에게 이 세상의 진실을 알려주마. 헬루람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다. 발레리아 히스터를 불러. 그녀도 반드시 이 내용을 알아야 하니까.]“안으로 들어가지.”
오르갈과 티칸에 대기 중인 연합의 주요 인원이 모두 회의실로 모였다.
이후 오르갈은 한동안 자신이 헬루람에게 들은 모든 이야기를 진과 바멀 연합에게 상세히 전달해주었다.
그는 이야기하는 내내 고통스러운 듯 잠시 쉴 때가 많았다. 분노와 울분, 슬픔과 회한, 절망과 증오가 뒤섞인 한숨이 이빨 사이로 독처럼 비어져 나오기도 했다.
병사들의 기억을 본 일부 초인들은 특히 더 혼란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느라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상이다. 이제 알겠나? 우리 킨젤로가 왜 너희를 돕기로 했는지, 내가 왜 미친 것인지. 아, 물론 증거가 필요하다고 말할 테지. 일단 심연 군단으로부터 또 다른 자신을 본 이들의 기억이 증거가 될 거고, 또…… 제기랄, 내가 그딴 것까지 더 신경을 써야 되나?]이야기가 끝난 후 꽤 오랜 시간 동안 정적이 흘렀다.
그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다만 무리 없이 받아들이기엔 너무 거대한 진실일 뿐.
고대부터 살아온 아메리스와 엘티엇조차 오르갈의 이야기를 실감하지 못했다. ‘실감’을 한 건, 심연 군단으로부터 자신을 본 이들뿐이었다.
[정말 재미있는 일이지 않나, 진 룬칸델. 너와 발레리아 히스터는 그 어떤 세계에도 등장한 적 없다는 사실이. 그래서 여기 모인 이들 중, 유일하게 너희 두 사람만이 타 차원의 지플들도 모르는 변수라는 사실이…….]회의실에 모인 이들도 그 사실에 주목하고 있었다.
심지어 오르갈이 심연 군단으로부터 본 기억에 의하면, 라프라로사가 해방된 일조차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현재까지 드러난 바로는 딱 두 번, 다른 세계에서 해방된 적이 있었다. 한 번은 테마르가, 한 번은 오르갈과 차가운 조, 그리고 시론이 성공시켰다.
그러나 지금처럼 명왕족들이 온전하게 풀려난 적은 없었다.
[다른 오르갈들이 겪은 세계에서 투신 반은 죽거나, 송장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해방되었다. 그리고 그 라프라로사의 기술력은 오히려 지플을 위해 사용되었지.]그 외에도 글리엑이 봉인에서 풀려나고, 흉신이 탄생하고, 지토가 깨어나고, 적명족이 나타난 일 모두, 심연 군단의 입장에선 여러 차례 반복된 역사였다.
진이 없어도 어딘가에선 그 모든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세부적인 내용에만 차이가 있었을 뿐. 그리고 그 끝에는 언제나 지플의 승리가 있었을 뿐.
[왜, 왜 하필…… 진 룬칸델, 너일까?]오르갈이 진과 눈을 맞췄다.
그는 억울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지플로부터 세상을 구하고자 그 수많은 세계에서 싸움을 이어온 건, 죽어서도 심연 군단이 되어 다시 이 자리에 선 건 바로 자신인데.
왜 지금은 진이 자신보다 더 특별한 존재처럼 느껴지는 것인지,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마음도 들었다.
오르갈은 그 어떤 세계에서도 지금의 바멀 연합만큼 강력한 우군을 둔 적이 없었다. 바멀 연합과 완전히 손을 잡는다면 이번에야말로 지플을 꺾어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니지, 생각해보니 왜, 라는 건 중요치 않아. 솔더렛이 정말 이 모든 걸 읽고 너와 발레리아 히스터를 준비한 것인지, 정말 솔더렛이 마신대에 이용되고 있는 건 아닌지, 중요한 건 그것이다.]“솔더렛의 진의가 완전히 드러난 건 아니니, 나를 철저하게 신뢰할 수는 없다는 뜻이군, 오르갈.”
[그래, 그거다.]“피차일반이다. 네가 오늘 이야기한 모든 내용은 아마 진실일 테지. 그러나 그 세계의 오르갈들은, 엄밀히 말하면 네가 아니다. 너는 그들과 다른 사람이다. 살아온 과정과 목적이 모두 달랐으니까. 그 오르갈들이 끝까지 세계를 지켰다고 하여, 너도 그러리라는 법은 없지.”
바멀 연합과 킨젤로, 두 집단이 진정한 동맹이 되는 건 조심스럽고 어려운 문제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킨젤로의 목표는 지플 타도가 아니라 태양신의 부활이었다.
[네놈이 만약 지플과 싸우지 말라고 작정하고 나를 뜯어말려도, 내 삶은 이미 정해졌다. 태양신 부활과 별개로 그것들은 반드시 멸망시켜야 해. 망할, 난 얼마 전까지 적이었던 네 동료들 대부분에게 이제는 전우애 비슷한 무언가까지 느끼는 입장이 되었다는 말이다. 다른 사람이라고? 그들은 분명히 나였다. 그리고 루나 같은 녀석들은 내 동료였고!]오르갈은 지독했던 다른 세계의 최후와 그때 끝까지 함께한 동료들, 지금 눈앞에 다른 모습으로 서 있는 이들을 떠올리며 뒷말을 이었다.
[어차피 네가 날 믿든 안 믿든 그건 상관없어. 네놈은 늘 지플과 싸워왔으니, 갑자기 그쪽에 붙어먹을 일은 없겠지. 물론 나로서는 솔더렛의 배신을 언제나 상정할 수밖에 없긴 하군. 너무 기분 나쁘게 듣지는 마라, 내 입장에선 어쩔 수 없으니.]솔더렛의 진의.
진은 직감적으로 그게 시론이 말한 흑해의 공간과 관련이 있으리라 짐작했다. 그리고 오르갈은 이미 그 정보도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이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처음으로 발레리아가 입을 열었다.
“오르갈, 너는 진과 내가 한 번도 다른 세계에 등장한 적 없다고 했어.”
[그래.]“그런데 내 생각엔, 진은 몰라도 나는 분명히 그 세계들에서 무언가 활동을 했을 것 같군……. 그게 아니라면, 라프라로사가 해방되었을 때 내가 이런 기록창을 볼 일은 없었을 테니까.”
–
라프라로사가 해방된 날 지팡이 위로 나타난 푸른 기록창.
발레리아는 다시 그 기록창을 띄워 오르갈에게 보여주었다.
“이건 아마도, 다른 세계의 내가 이 세계의 나에게 남긴 기록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