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067)
제 1067화
252화. 전쟁 시작(6)
바클 자치구.
밤이 되었는데도 달이 보이지 않았다.
구름에 가려진 게 아니었다. 낮에 민간인 거주 구역으로 마신석이 쏜 광선이 뜨거운 독무를 형성한 탓이었다.
펄펄 끓는 듯한 독무는 식을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들은, 차라리 즉사한 이들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피부가 모조리 녹아내리고, 흐물하게 변한 뼈는 마치 진흙처럼 뚝뚝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렇게 끔찍하게 죽어가는 사람이 지금 진이 서 있는 구호소 근처에만 수천을 넘어가건만, 비명조차 들리지 않았다. 비명을 지를 수 있는 환자가 아무도 없기 때문이었다.
생존자들은 그저 유령처럼 구호소 인근을 헤매고 있었다. 바로 앞에 놓인 표지판조차 읽지 못하는 몸이 된 채로.
전쟁은 그야말로 대승이었으나, 너무나도 많은 죄 없는 사람이 죽었다.
“오백…… 만이라고…….”
오백만, 마신석의 마지막 타격에 희생된 민간인의 추정 숫자.
진은 멍한 얼굴로 생존자들을 바라보며 그 숫자를 생각했다. 도무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수치였다.
심지어 피해자는 앞으로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연합은 현재 지원 가능한 모든 치료 인력을 피해 지역으로 보내고 있지만, 환자들을 모두 돌보는 건 불가능했다.
냉정하게 한 명, 한 명이 최소 성국 최상위 치유사들의 집중 치료를 받아야 살아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살아남더라도 이전과 같아질 수는 없었다. 최소 수십만, 많게는 백만 이상의 죽음이 더해질 것이다.
“진 경.”
성왕 라니가 진의 곁을 찾았다. 그녀는 켈리악이 도주하자마자 바로 이곳으로 날아와 지금껏 한 번도 쉬지 않고 생존자들을 돕고 있었다.
“……라니.”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앉아서 막사 바깥을 지켜보았다. 몇 초 단위로 픽픽 쓰러져서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이 보였다.
지옥에 직접 가본 이들조차 이보다 더 끔찍한 풍경은 본 일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토록 어마어마한 고통과 죽음이 가득한 와중, 어울리지 않는 금빛 기운이 피해 지역 전체를 밝히고 있었다.
재생의 권능.
진이 창성에 도달하며 얻은 권능이 폐허가 된 땅을 빛내고 있는 것이다.
진은 오히려 그 사실이 더 괴롭게 다가왔다. 진마계의 침공에 성국이 멸망할 뻔한 순간에도, 진마계가 지토의 폭정에 무너지던 때에도 이런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경이 무슨 짓을 저지른 게 아닙니다. 켈리악, 그 미치광이 괴물이 저지른 것이지.”
“……나도 알아. 하지만, 내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담담한 목소리.
켈리악의 말처럼, 진은 힘겹게 죄책감을 견뎌내고 있었다.
견디지 못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한 번이라도 무너지면 다시 싸울 수 없게 되거나, 마성화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건 내가 앞으로 겪게 될 악몽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하더군, 놈이. 내 약점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 아니, 예전부터 알기는 알았겠지. 다만 이제 거칠 게 없어졌을 뿐.”
이전까지 지플은 늘 대외적인 위신을 중요시해왔다.
이득을 위해 콜론 원주민 같은 소수 민족을 학살하는 일에 거리낌이 없기는 했으나, 적어도 ‘많은’ 이들의 눈은 의식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이제 그들은 절대다수의 평범한 인간들의 지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마신석이 그만큼 완성되었다는 뜻이겠지. 이미 타 차원엔 완성된 마신석들이 존재하기도 하고. 이 세상을 파괴하고, 모든 사람을 다 죽여도. 그냥 마신석으로 세상을 다시 창조하면 그만인 거다, 놈들에겐.”
끄드득……!
이가 갈렸다. 악다문 입술 사이로 비릿한 핏물이 새어 나왔다. 사람이 사람에게 이런 짓을 할 수가 있나, 도대체 어떻게, 그런 생각은 심마가 되어 계속 진의 내면을 침투하려 들었다.
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속죄는 그 개자식들을 모조리 이 세상에서 지워버린 다음이다. 이만 돌아가서…… 다시 싸울 준비를 해야겠어. 무엇이든 필요한 게 있다면 요청하도록 해, 라니.”
“진 경.”
“응.”
“아율라께선 경의 권능이 죽어서 저렇게 빛으로 변한 이들을 되돌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비록 지금은 우리 성국 때와 달리 누메루스의 날개가 더해지진 못했으나, 결국 모든 건 순리대로 돌아가게 될 겁니다.”
순리.
진은 종종 그 단어를 듣게 될 때마다 이런 생각을 했었다. 회귀자인 자신보다 이 세상의 순리를 거스른 존재는 아마 없을 거라고. 그러니 이토록 무거운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지플, 그리고 통합 지플이 저지르는 만행은 회귀 따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들을 멈추는 건, 회귀자로서 처음부터 정해진 숙명이었다.
“……물론 이 말이 위로가 되지는 않겠지만. 저는, 그리고 동료들은 믿고 있습니다. 모든 싸움이 끝났을 때, 결국 진 경은 이전보다 세상을 더 빛나게 만들 거라고. 그러니 언제든, 필요한 게 있으면 요청하세요. 저와 성국은 언제나 경을 위해 모든 것을 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저도 다시 일을 하러 가야겠군요, 무고한 이들을 살리는 것이야말로 제 사명이니.”
진과 라니가 동시에 막사를 나섰다.
밖에선 연합의 기사와 마법사들, 그리고 이엘로2들이 한창 독무를 걷어내고 있었다. 일검에 산을 베고 바다를 가르는 초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세상을 위해 싸울 수 있었다.
붉은부엉이에 오른 진은 곧장 티칸을 찾았다.
“오셨습니까요, 나리…….”
“음, 꼬마. 왔냐?”
제트와 동료들이 눈치를 살피며 진을 맞이했다. 방금 구호소에서 라니와 짧은 대화를 하기 전까지, 진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은 것이다.
아니, 하지 못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죄책감을 이겨내는 일에 모든 정신을 쏟아야만, 말 한마디도 할 수 없을 만큼 집중해야만 했으니까.
“블리기에트는 어떻게 됐지?”
블리기에트.
그는 지플에게 배신당한 후 창성들의 합공을 더 견디지 못하고 생포되었다. 세 사람을 상대로 무려 한 시간이 넘도록 버티긴 했으나, 태양신교 사원 때처럼 도주에 성공할 수는 없었다.
“아메리스 님과 루시 경이 대나으리님의 도움을 받아 구속에 성공하셨다고 합니다요……! 그, 나리 선조님의 육신도 일단은 분리가 완료된 상태라고 전해 들었습니다.”
“알았다. 너는 이제 성국에 지원할 물자를 확인하고, 디노에게 연락해서…….”
“디노 재글런에겐 우리가 연락해뒀다, 막내야. 휴페스터 전 언론에서 내는 모든 기사는 피해자들을 최우선으로 배려하라고.”
“행여 그들이 지플 땅에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쓸데없는 비방이 한 줄도 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말이지. 그런 기사를 쓰는 놈이 있다면 죄다 목을 치겠다고 엄포했다.”
토나 형제였다. 그중 데이토나가 앞으로 나서 진을 잠시 끌어안았다.
“하나하나 혼자 다 생각하고 해결하려고 하지 마, 네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에만 집중해. 그러려고 우리가 있는 거다, 막내야.”
그 말을 들으니 진은 속에서 무언가 울컥 치솟는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에 형님들이 형님들처럼 느껴지네, 고생해줘.”
죄책감은 진만 느끼는 게 아니다.
내내 진의 눈치를 살피던 동료들도, 형제들도 모두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회귀자가 아니더라도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런 면에서, 동료들은 진보다 조금 더 강한 영역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루나 누님께는 아직 연락 없었지?”
루나는 현재 함대를 이끌고 이야기의 탑을 추적하고 있었다.
“어. 아무래도 추적이 쉽지 않은 모양이야. 하지만 한 번씩 위치가 파악되는 중이라고는 하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루나처럼 추적을 하는 이들도, 구호소로 지원을 간 이들도, 영토 보호를 위해 대기하는 이들도.
모두 지플에 대한 증오를 정제하고 있었다. 정제하고 또 정제해서, 어떤 상황에서든 냉철하게 그들의 심장을 도려내고 머리를 베어야 했다.
이내 진은 티칸궁 지하 감옥으로 걸음을 옮겼다.
반과 아메리스, 루시가 감옥 최하층에서 블리기에트를 감시하고 있었다. 블리기에트는 여러 권능들로 형성된 특별한 구속구에 속박된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왔군, 진 형제.”
반과 아메리스, 루시도 잠시 진의 눈치를 살피고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행여 진이 마성화의 늪에 빠지면 어쩌나 내내 걱정한 것이다.
“다들 너무 걱정시켰군요. 죄송합니다. 저만 괴로운 게 아닐 텐데.”
“그런 말 마라, 진.”
“진 경…….”
루시가 울먹이는 목소리를 내며 진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블리기에트로부터 분리한 테마르의 왼팔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 천 년 전부터 지금까지, 목숨보다도 더 사랑한 사람의 일부였다.
그 왼팔은 테마르가 살아 있을 때와 하나도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루시의 가슴속을 찌르고 있었다.
진은 가만히 루시를 안아주었다. 루시는 그 품 안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죽어서도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과, 죽지도 못한 채 천 년이 넘도록 고독을 견뎌온 사람. 테마르와 루시의 재회는, 겨우 이것이었다.
“……이제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어요. 테마르를 편히 쉬게 해주고, 딸아이를 멈춰 세울 수만 있다면.”
루시의 뿔이 붉게 물들었다. 블리기에트의 구속구를 발동시킨 것이다.
[크하아악…….]그 뿔이 붉어질수록 블리기에트에겐 고통이 가해지고 있었다. 블리기에트는 마치 인두에 지져진 죄수처럼 허리를 꺾으며 신음을 내뱉었다.
이내 뿔의 빛이 연해지자 블리기에트는 호흡을 고르며 진과 루시를 올려다보았다.
[너흴 창조한 존재를 고통스럽게 만든다라…… 푸흐흐, 이래서 세상은 재구축되어야 하는 것이다.]“블리기에트, 너는 이제 다시는 세상 바깥으로 나설 수 없다. 지금부터 너는 여기서 우리가 묻는 모든 질문에 성실히 대답한 다음, 소멸하거나 봉인되는 것이다.”
[내가 고통이 두렵겠느냐? 어리석은 필멸자들이여.]“어차피 지플과 지킬 의리가 있을 리도 없을 테니, 서로 피곤하지 않게 끝나면 좋지 않겠나?”
[뜻대로 하여라. 어차피 나는…….]블리기에트가 거기까지 말한 순간, 돌연 루시가 우악스럽게 그의 턱을 붙잡았다.
“방금 내 말 못 들었나요? 블리기에트. 나는 이제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고. 고통이 두렵지 않다고요? 나 역시 당신처럼 태양신의 자아였습니다. 무엇이 당신을 가장 괴롭게 만드는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는 뜻이죠…… 장담하는데, 협조하지 않으면 후회하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