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1)
제 11화
5화. 폭풍성을 떠나다(1)
그리고 또 6개월이 흘렀다.
1790년 3월 12일. 폭풍성 아래로 펼쳐진 미텔 왕국엔 슬슬 봄이 다가오는 중이고, 진은 반년 후 열 살 생일이 지나면 폭풍성을 떠날 터였다.
무라칸이 무려 사과파이 100개를 걸고 장담한 만큼, 루나는 가문에 그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다.
하나 사과파이를 받을 수는 없었는데, 그건 당시 진 역시 루나가 알리지 않는 쪽에 승부를 걸었기 때문이다.
지난 6개월은.
폭풍성 수호기사와 하인들에겐 고요하고 지루한 시간이었고, 진에겐 바람처럼 지나간 성장의 시간이었다.
“질렸다, 질렸어.”
무라칸이 진을 빤히 쳐다보며 혀를 내둘렀다.
“1년 만에 마력 이동을 10분에서 5초로 당긴 것도 모자라, 또 반년 만에 마력 개방을 숨 쉬듯 해낼 수 있게 되었단 말이지. 내 눈으로 보고도 의심스럽군.”
진은 무라칸이 2년을 예상한 마력 이동의 완성을 계획대로 1년에 끝냈고, 루나가 떠난 6개월 동안은 마력 개방을 완성시켰다.
진도 조절을 성공적으로 해낸 것이다. 그러나 마냥 진도를 조절한 것에만 의미를 둘 일은 아니었다.
전생에선 3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5성까지 급히 달리기만 하느라 이런 훈련을 할 시간이 없었다. 스물다섯이라는 늦은 나이에 시작한 만큼 속전속결을 펼칠 수밖에 없던 것이다.
그러나 마력 이동을 천천히, 반복적으로 펼쳐 보니 또 다른 영역에 닿은 기분이었다. 길을 전속으로 달릴 때와, 찬찬히 걸을 때 보이는 풍경이 다르듯 말이다.
“너를 만난 이후 늘 그래 왔는데, 새삼스럽게 유별은.”
아울러 루나가 떠난 직후부터 시작한 마력 개방.
그 역시 마력 이동처럼 이미 쉬운 일이었으나, 6개월 동안 훌륭한 복습이 되었다. 전생에선 자신의 기본기가 꽤 허술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던 것이다.
“여기가 폭풍성인 걸 다행으로 여겨라, 꼬마. 비먼트 제국 아카데미 같은 곳이었으면, 아마 너 재수 없다고 꽤나 밉보였을 거다.”
그건 진이 전생에서도 ‘스승’에게 몇 번 들어 본 이야기다.
‘스승은 지금쯤 뭐 하고 있으려나. 아무래도 아직 코 찔찔 흘리고 있겠군.’
문득 자신에게 마법에 재능이 있음을 일깨워 준 스승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때 진을 가르친 마법사는 그보다 두 살이 어렸다.
‘그런 주제에, 7성이었지. 그것도 8성을 바라보는. 이 세상엔 타고난 인간이 너무 많아. 휘둘리지 말고, 늘 정진해야겠어. 놓치는 것 없이.’
진이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그럼, 오늘부턴 진짜 영기 개방을 배우는 거지?”
“그래. 필사 끝나면 말해.”
“무라칸. 나한테 관심이 너무 없는 거 아니야? 비전서 필사는 일주일 전에 다 끝냈잖아.”
기수에게만 허용된 타 가문의 비전서를 필사하는 것도, 필요 없는 것들을 제외하곤 모두 완료했다.
여전히 비전서를 다 이해할 순 없었으나, 필사 노트는 장차 검술 실력이 오를수록 진가를 발휘할 터였다.
이제 폭풍성을 떠나기 전까지, ‘영기 개방’을 익히는 것만 남은 셈이다.
무라칸은 처음 영기 개방을 말했을 때, 본격적인 수련을 폭풍성에서 시작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의욕을 불태워 주기 위해 꺼낸 말인데, 앞으로 폭풍성을 떠날 때까진 꼼짝없이 진에게 시달릴 운명이었다.
“참, 그랬지. 네놈한테 관심이 없어서는 아니고. 그럼, 곧장 시작하지.”
사뭇 진지한 목소리를 꾸민 무라칸이 진을 정좌로 앉혔다.
“미리 말해 두는데, 영기 개방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단기간에 완성시킬 수 없다.”
“알겠어.”
“그러니까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 그야말로 기본이자 필살에 속하는 기술이니까. 우선 시범을 보여 주지.”
화악!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라칸의 근처에서부터 검은 기운이 연기처럼 솟구쳤다.
영기였다. 안개가 그저 시야를 뿌옇게 흐리는 수준이라면, 무라칸의 영기는 빛조차 빨아들일 듯 깊고 어두운 형상이다.
진으로선 그와 처음 정식으로 인사를 나눈 이후 처음 보는 기운이었다.
‘내 영기보다 훨씬 짙고 무거워 보여.’
후우우……. 진이 춤추듯 일렁이는 영기를 집중해서 쳐다보았다.
마치, 영기들이 자신에게 이리 들어오라 손짓하는 느낌. 하마터면 저도 모르게 영기 속으로 손을 뻗을 뻔했다.
“힘이 지닌 색이 다를 뿐, 마력을 개방했을 때와 거의 비슷한 모습이지?”
“그러네. 훨씬 신비롭게 보이지만.”
“마법사들의 마력 개방은, 자연에 존재하는 마력에 본인이 지닌 마력을 연결하는 행위지. 내가 그걸 통해 뭘 추구한다고 했지?”
“마력 회복과 마법 강화.”
“그래. 자연의 힘을 이용해 떨어진 마력을 채우고, 다음에 펼칠 마법의 위력을 상승시키는 거야. 영기 개방의 경우도 그와 똑같다. 다만, 몇 가지 차이점이 존재하지.”
“무슨 차이점인데?”
“영기 개방은 네 힘을 자연에 연결하는 것이 아니야. 자연을 네게 연결시키는 거지.”
“자연을…… 내게?”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인간이 지닌 오러와 마력, 그것들은 강과 같다.
강은 언제나 바다를 향해 흐른다. 그리고 강은 결코 바다보다 크지 않다. 육지로 뻗어진 바다의 한 갈래일 뿐.
영기의 경우는 그 반대였다.
“그림자.”
무라칸이 자신의 신체를 반쯤 가리고 있는 영기를 손으로 흩어 놓으며 말했다.
“영기란 결국 그림자에서 파생된 것이지. 그렇다면, 그 그림자는 어디에서 시작되었지?”
간단하고 짧은 질문이다. 그러나 신의 오묘함이 담긴 질문이기도 했다.
“솔더렛으로부터 시작되었겠지.”
“‘되었겠지’가 아니야. 이 세상의 모든 그림자들은 명백히 솔더렛의 바람으로 탄생한 것이다. 솔더렛은 세상 모든 그림자의 주인이고, 너는 그의 유일한 계약자다.”
무라칸이 목소리에 힘을 주어 뒷말을 이었다.
“즉, 너 또한 세상 모든 그림자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림자’라는 셀 수 없이 많은 강줄기를 자신에게 당겨 오는 것. 바로 그들의 원류이자, 바다나 다름없는 자신에게.
그게 영기 개방이었다.
무라칸의 영기가 작은 소용돌이를 하나씩 형성하기 시작했다. 자두보다 조금 큰 소용돌이였으나, 순식간에 수천 개가 뭉쳐 현란하고 다채로운 무늬를 만들었다.
“지금부터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보아라.”
진은 감각을 잔뜩 끌어올려 무라칸을 관찰했다. 영기 개방이 그에게 어떤 변화를 불러일으키는지, 지켜보는 이 순간이 한없이 느릿느릿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이게 무슨!’
본격적인 변화가 눈에 들어오자, 진은 헛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무라칸의 뒤쪽으로 보이는 유리관.
그 유리관 근처로 펼쳐진 촛대와 횃대들.
어두운 지하실에 낮게 깔린 그것들의 그림자가, 긴 물줄기처럼 변해 무라칸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책장의 그림자도 마찬가지였다.
일순 현기증이 일었다.
겪어본 적 없는 극단적인 괴리감이 온몸을 잠식하고 있었다. 긴장해서 꽉 쥔 주먹 속이 축축했고,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칠 것 같았다.
착시일까?
그런 생각이 들어, 진이 번뜩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착시가 아니라 착각이다. 사물들의 그림자는 분명히 무라칸을 향하고 있었다.
유령 같다.
서서히 어둠에 젖어 드는 무라칸이 내뿜는 위압감에 솜털이 모두 곤두선다.
꼭, 그가 죽일 수 없는 존재는 세상에 단 하나도 없을 것 같은…… 그런 위압감이었다.
그리고 진은 본능적으로. 그 위압감에 자신이 눌려선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무라칸의 말대로라면,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오히려 그림자들이 아닌가?
저 어둡고 두려운 힘은.
결국 자신이 휘두르게 될 것이었다.
진의 눈빛에서 공포가 걷혀 나가자, 무라칸이 입꼬리를 올렸다.
“과연, 천 년의 계약자에게 어울리는 태도로군.”
사아아악…….
그림자로 이루어진 수천 개의 소용돌이가 움직임을 멈추고 있었다. 물줄기처럼 길게 이어진 사물의 그림자도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갔다.
강렬한 깨달음을 얻은 뒤에 보인 그 풍경은, 진으로 하여금 더없이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마치 밤이 끝난 듯. 혹은 축제가 끝난 듯.
떨어진 그림자들이 모두 제자리를 찾았다.
진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으나, 가슴팍에 들러붙은 셔츠를 떼어 내며 상쾌한 표정을 지었다.
“어때?”
“끝내주네.”
“그게 끝이냐? 기껏 이 무라칸의 결전기를 보여줬더니.”
“이 지하실의 낮과 밤이 네 뜻대로 바뀐 느낌이었어.”
진이 급히 꺼낸 표현이 흡족한 듯, 무라칸이 고개를 끄덕였다.
“낮과 밤이라. 오랜만에 듣는 표현이로군. 옛적부터 세인들은 영기를 다루는 이들을, 그런 단어들과 엮기를 좋아했거든. 밤의 지배자라던가, 한낮에 어둠을 만드는 존재라던가. 좀 유치하지만 말이지.”
“응, 유치하긴 하네.”
“그렇지. 게다가 ‘밤의 지배자’는 좀…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별명이기도 하고. 한 2천 년 정도 전의 인간들이 나를 그렇게 부르긴 했는데. 크하핫, 생각해 보니 또 영 틀린 말도 아니군.”
이 미친 용이 애 앞에서 무슨 저질스런 농담이야?
진이 그런 말을 삼키며 키득키득 웃었다.
“음, 그나저나. 느낌은 좀 오냐? 사실, 마력 개방의 응용이나 다름이 없어서, 이해했으리라 생각된다만.”
“아주 확실하게 느낌이 왔어. 한 시간만 주면, 똑같이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이 쪼그만 놈이 또 콧대가 높아지려고 그러네? 영기 개방은 아까도 말했지만 단기간에 완성할 수 없는…….”
“나도 알아. 내 말은, 영기 개방을 펼칠 수는 있되. 너랑 똑같은 위력과 효과를 낼 순 없다는 뜻이었어. 평범한 종베기도, 고수와 초보가 펼치는 건 격이 다르잖아?”
“그렇지! 그래서 내가 영기 개방을 시작이자 끝이라고 한 거다.”
“그럼, 무라칸이 방금 보여 준 건 어느 정도 경지인데?”
“중간. 혹은 중간보다 조금 나은 수준.”
중간이라니.
진은 장담할 수 있었다. 만약 지플의 대마법사들이 9성 마법 시범을 보인다 할지라도, 방금 본 영기 개방보다 뛰어나진 않을 거라고.
무라칸이 영기를 이용해 무언가를 파괴하며 위력까지 직접 보여 준 건 아니지만. 굳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영기라는 힘의 우월성은 얼마든지 절감할 수 있는 것이다.
“절정에 이르러 영기 해방을 완성하게 되면, 백만 대군을 한순간에 몰살하는 것도 가능하지. 생명에게서 그림자가 사라진다는 건, 곧 죽음을 의미하거든.”
쨍겅!
별안간 복도에 걸려 있던 촛대 두어 개가 부러지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사물에게서 그림자가 사라진다는 건, 파괴를 뜻하지.”
진이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멍하게 떨어진 촛대를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씨! 부수기 싫어서 힘 조절을 했는데. 왜 촛대가 떨어지고 지랄이야! 이러면 나가기 전에 고쳐야 하잖아. 짜증나게.”
우직, 우지직!
파괴된 것은 촛대만이 아니었다. 무라칸이 잠들어 있던 유리관의 석재 부분에도 큼직한 균열이 일고 있었다.
“염병.”
무라칸이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진이 지하실을 찾아오는 걸 기다리는 동안, 무라칸이 할 소일거리가 생긴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