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106)
제 1106화
257화. 마신대의 습격(10)
어쩔 수 없이 초인들을 희생시켜야만 하는 시점이었다.
[아아,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흑해로 그냥 같이 올 걸 그랬어, 그치? 진. 혹시 우리가 너무 늦은 건 아니겠지?]가장 먼저 오르갈이 날개를 펼치며 차원문을 빠져나왔다. 그 뒤로 킨젤로의 함대와 룬칸델의 황금함대가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시론! 내 손주, 어디에 있느냐! 이 할아비가 드디어 너를 보는구나!]뒤이어 발라스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전장을 울렸다. 시론은 수십 년 만에 재회한 조부를 돌아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조부님은 여전하시군, 생각하며.
룬칸델과 킨젤로, 합쳐서 천여 대에 이르는 함대 전력은 순식간에 차원문을 빠져나와 자리를 잡았다. 일단은 연합이 적 창성들을 상대하고자 초인들을 희생시킬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적들은 난데없이 참전한 연합군의 모습에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라면 함대전도 다시 밀리기 시작할 테니, 마신대로서는 계획했던 것보다 더 빠르게 병력을 내보내는 선택을 내려야 했다. 크나큰 대가가 따를 수밖에 없는 선택을.
막 활약하려던 마신대의 창성 두 사람도 후방으로 물러나고 있었다. 이제 그들은 다음 창성들이 차원문을 빠져나오기 전까지 어떻게든 연합의 맹공을 버텨 살아남아야 하는, 부조리한 역할을 맡을 예정이었다.
킨젤로와 룬칸델의 함대는 바로 포격을 진행하지 않았다. 우선 적진 내 아군 위치를 확보하고 기존 함대와 합을 맞출 필요가 있었다.
백색 함대 역시 포격을 중지하며 전열을 가다듬으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즉 연합과 마신대의 포격이 일시적으로 모두 멈추었고, 전장은 처음으로 일시적인 소강상태에 돌입하고 있었다.
양측 도합 이천이 넘는 함대, 지상을 가득 채운 병력들…….
방금까지 그토록 치열한 싸움이 있었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일순 전장이 고요해졌다. 각 세력의 함대가 대열을 정비하며 일으킨 동력의 진동만이 묵직하게 울리고 있었다.
그 가운데, 진은 한 차례 아군을 돌아본 후 적을 향해 한 발자국을 내디뎠다.
“방금, 연합의 가장 충실한 종, 귀신대장 라타 프로치가 적들의 비수에 찔려 죽음을 맞이했다. 나처럼 그를 사랑하고 아낀 사람들은 오늘을 반드시 기억하라. 라타 프로치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안위보다 연합의 승리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진은 그를 기리며 몇 차례 가슴을 두들겼다. 먼 북소리처럼 진한 소리가 울렸다.
“오늘은 우리 중 누구라도 싸우다 세상을 떠날 수 있는 날이다. 오늘뿐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저 개자식들을 모조리 찢어발기기 전까지는 매일이 그런 날일 테지.”
이내 진이 검을 들어 올렸다.
“지치는 싸움이고, 슬픈 싸움이고, 불리한 싸움이다. 이 자리에 함께 서 있는 모두에게 감사를 전한다. 내가 만약 전장에서 죽는다면, 유언으로 남길 것은 그대들이 자랑스러웠다는 말뿐일 것이다.”
[유언? 재수 없게 뭔 소리야, 퉤퉤퉤. 내가 부정 안 타게 침 뱉었다. 유언은 네가 아니라 저 시궁창 같은 놈들이 남겨야지.]“맞는 말이다, 오르갈. 그래서 마신대, 나는 네놈들에게도 한 가지 묻고 싶군. 너흰 무엇을 위해 싸우는 것이냐? 무엇을 위해 켈리악의 개가 되었고, 무엇을 위해 이 지독한 전장을 견디는 것이냐? 너흰 죽을 때 무슨 말을, 무슨 마음을 남기고 싶은 것이냐.”
진심으로 궁금했다.
단지 전 차원 일통을 이루고자 하는 한 사람의 욕망에, 한 집단의 욕망에 이토록 많은 이들이 어떻게 목숨을 던질 수 있는 것인지, 창성들조차 그토록 무조건적인 복종을 하고 있는 것인지.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마신대는 소리 없이 전열을 가다듬었다.
“내가 보기에 너희에겐 신념이 없다. 설령 있다 한들, 그건 켈리악 지플이라는 폭군에 의해 부러지고 변질된 잔재일 뿐이겠지. 전 차원을 정복해서 너희가 무엇을 얻을 수 있지? 마신석으로 너희만을 위해 조작된 세계를 완성하는 게 그리 영광된 일인가?”
긍지가 거세된 병사들이여, 너흰 틀렸다.
진이 뒷말을 이으며 다시 한 번 가슴을 두들겼다. 그를 지켜보는 연합의 모두가 가슴을 두들기고 있었다.
“전 차원에 존재하는 그 수많은 세계 속, 유일한 정답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자리에 서 있다. 아직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면, 너희가 맞이할 미래는 하나뿐이다. 바로 우리보다 더 많이 죽는 것, 끝내 멸망해 사라지는 것!”
브라다만테의 칼끝이 적들을 겨눴다.
그 순간 연합의 함대는 전진하며 포격을 시작했고, 초인들은 지상으로 하강하며 적들을 향해 쇄도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다시 시작된 싸움은, 전과 똑같다.
지원군이 도착한 바멀 연합이 조금은 우세한 양상을 보였으나, 마신대 또한 차원문 내부에 대기 중인 병력을 더 빨리 내보내고 있었다.
초인들은 여전히 성수단의 엘로나와 마신대의 정예들을 상대하며 포효를 내질렀고, 창성들은 적 창성들을 추적하고자 적진 가장 깊숙이 침투하고 있었다.
다만 울림이 다르다.
40시간에 다다르도록 이어진 혈전에 지쳐가던 연합원들은, 진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한 번 자신이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 무엇을 지키고자 이 지옥을 견디고 있는지.
삶을 위해서였다.
진이 두각을 드러내기 전까지, 마신대에겐 그저 ‘677번 차원’이었을 뿐인 이 세계에서의 모든 기억, 그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위해서였다.
바멀 연합에 입단하였다고 하여 모두가 처음부터 좋은 의도만 가지지는 않았다. 누군가는 출세를 위해, 누군가는 생존을 위해, 누군가는 대세에 따르기 위해 입단했다.
하지만 그랬던 이들도 지금은 모두 한마음이 되고 있었다. 이 세계와 삶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한다고, ‘바멀 연합’으로서 혜택을 누려온 만큼,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고.
이를테면 지금 연합원들의 내면엔 부채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건, 지금껏 진이 유일한 회귀자로서 지니고 있던 부채감, 그 고민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었다.
마신대에 대항하고자 이 자리에서 싸우는 이들 중, 그 누구도 이 세계에 빚을 지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크하하하, 손주야! 볼수록 너는 운이 좋은 녀석이다! 그저 평생 투쟁만 했는데, 이토록 좋은 할아비를 만났고 이토록 훌륭한 자식들을 두었군. 증손 녀석이 방금 얼마나 멋졌느냐? 확실한 건 말재주는 너를 닮지 않았다는 것이다, 크하핫!]“히, 할아버진 무리하지 마. 또 죽으면 안 되잖아. 팔도 하나밖에 없으니까.”
[오냐, 요나야! 그럼 우린 저것들 잡으러 갈 테니, 고생해라 손주, 창성 녀석들!]발라스의 호탕한 목소리를 따라 룬칸델의 기사들이 검진을 펼치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단테와 베라딘을 중심으로 연합의 초인들이 뭉치고 있었다.
“망할, 저건 또 뭐야. 이 개자식들은 엘로나 경을 대체 어디까지 능멸할 셈이지?”
“그러게 말이오, 베라딘 공. 흠, 일단 우린 저 엘로나 경 형태의 병기들을 묶으면서 진 쪽을 지원할 방법을 모색하는 게 좋겠소. 적들이 창성을 너무 많이 보유하고 있으니, 언제든 합류할 수 있어야 하오.”
단테는 초인 중에서도 단연 핵심이었다. 지원군이 도착하기 직전처럼, 창성 쪽에 갑자기 초인의 지원이 필요할 때 헤도와 더불어 가장 큰 보탬이 될 인물인 것이다.
그러나 단테의 눈엔 도무지 길을 열 방향이 보이지 않았다. 전선이 이렇게 되었으니 적 창성들은 반드시 후방에서부터 등장할 테고, 거리는 그만큼 아군 창성과도 멀 수밖에 없다.
적들을 베며 단테가 잠시 고민하는 사이, 그 옆으로 한 사람이 다가왔다. 엘티엇, ‘조화’의 창성을 이룩한 위대한 청명족.
비록 그는 창성임에도 육신이 망가져 그만한 무위를 발휘할 수 없으나, 그가 가진 조화의 권능은 여전히 전장 전체에 충분히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다.
“떽! 이놈, 쓸데없는 고민을 하느라 적을 베는 걸 잠시라도 쉬지 말거라. 이제부터 후방 대열은 이 몸이 모두 조율할 것이다. 너와 헤도 같은 이들은 언제든 창성 쪽에 합류할 수 있도록, 그리고 지상 병력이 최대한 안전하게 싸울 수 있도록 전선을 꾸릴 것이니, 지금부터 내가 보일 때마다 내 보법을 그대로 쫓으며 싸워라.”
단테는 그 말대로 곧장 엘티엇의 보법을 따라 움직였다. 그러자 놀랍게도, 단테의 눈에는 보이지 않던 길이 조금씩 드러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부터 전장 전체에 조화의 청풍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엘티엇은 바람처럼 전장 사이를 오가며 계속 아군의 전열을 잡아주었고, 그러면서도 계속 단테와 헤도의 근처로 돌아와 새로이 길을 열어주기를 반복하는 신기를 펼치고 있었다.
때로는 창성들의 전장까지 진입해서 도망치는 적 창성을 아군 창성 쪽으로 몰아오기도 했다. 이 모든 건, 오직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루나, 심홍검을 너무 진하게 쓰고 있다! 이래서는 남은 시간을 견딜 수 없으니 조금 더 자제하거라!”
“예, 스승님!”
“그리고 시론, 자네도 방금까지 오의를 쓰느라 몸이 상했군. 5초만 휴식하게, 내가 대신 저놈들의 발을 그만큼 묶어두겠네.”
아메리스가 테마르의 육신에 남은 저주를 해제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약 80시간.
바멀 연합은 말 그대로 이 전쟁에 전력을 쏟아부었고, 연합원들은 그 과정에서 모두 고민을 끝냈다. 싸우는 이유를 재차 절감했고, 삶을 다시 돌아보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적들은, 마신대의 일원들은 고민하고 있었다. 진이 한 말을 도저히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무엇일까.
언젠가부터, 그들은 답을 알 수 없게 된 질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