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116)
제 1116화
258화. 전 차원의 포식자(6)
“후우, 후…….”
루나가 거친 숨을 토하며 크란텔에 새로 심홍기를 둘렀다. 지쳤음에도 심홍기는 처음과 똑같이 진한 빛을 뿜었다.
진의 노화를 배제하게 되었으니 창성들은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일 수 있었다.
물론 근본적으로 상황이 좋아진 건 아니다. 한없이 나빠지기만 하는 걸 잠시 밀어냈을 뿐.
화염계가 멸망했으니, 이미 677차원은 세상의 가장 중요한 질서 하나가 사라진 셈이었다. 윤회, 이제 죽은 이들의 영혼은 갈 곳이 없다.
전장 뒤편에선 마신대의 창성과 신들, 불사조들, 함대와 마법사들이 계속 연합원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라프라로사의 보호막 안으로 들어가는 이들보다 그러지 못하고 최후를 맞이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켈리악이 전장에 나타나고 이제 겨우 한 시간이 지났다.
봉인 해제까지는 아직도 17시간, 이대로라면 켈리악은 반드시 그 안에 연합 전체를 몰살할 터였다. 아무리 많은 기적이 일어나도, 아무리 강하게 저항해도, 신념과 긍지를 위해 온몸을 내던져도, 그건 결코 변치 않는 사실일 것 같았다.
“아버지, 어떻게 해야 하죠.”
“잠시 늙더니 약해졌느냐, 네가 이런 질문을 다 하는군.”
시론이 루나의 옆으로 날아든 켈리악의 광선을 쳐내며 말했다.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싸우고, 그러다 지고, 죽는 건 두렵지 않아요. 하지만 가문이, 동료들이, 사람들이 전부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미칠 것 같습니다.”
“마성화가 찾아올 것 같더냐?”
“그건 아니에요.”
“그럴 것이다. 그러니 미칠 것 같아도 괜찮다. 그만큼 네가 강해지고 있다는 뜻이니. 또한 놈에게 남은 적이 우리가 전부는 아니지 않더냐.”
말루기아.
당연히 연합은 그녀가 전장에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녀가 근본적으로 원하는 건 결국 파멸이라 할지라도, 연합에 유리한 변수가 더 많아질 가능성이 높으니 말이다.
“나 역시도 말루기아가 여기로 오면 좋겠군, 시론 룬칸델.”
치이잉-!
시론의 머리 위로 명원의 창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시야가 제한된 상태인 만큼, 이런 다발성 공격을 쳐내는 게 가장 까다로웠다.
순식간에 잔상처가 늘었다. 곧장 환부로부터 노화가 시작되었고, 시론은 급격히 무겁고 둔해지는 몸을 놀려 창이 쏟아지는 구역을 빠져나왔다.
“이 자리에서 전부 깔끔하게 처리하는 게 좋거든.”
허세가 아니다. 허세 따윌 부려야 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켈리악에겐 아직 몇 가지 수가 더 남아 있는 것이다. 연합에 솔더렛의 유산과 말루기아의 난입이라는 패가 남아 있듯이.
그리고 그는 그 수들을 숨길 필요도 없는 인물이었다.
“완성된 마신석, 그게 어떤 힘을 가졌는지 궁금하지 않나?”
방금까지 하늘에 떠 있던 켈리악이 어느새 시론의 바로 앞에서 손을 뻗고 있었다. 루나와 반, 오르갈이 동시에 달려들어 그의 손을 쳐냈다.
지난번 제국에서의 전투와 똑같은 양상이 이어졌다. 맨몸에 세 자루의 검이 박혔건만, 그의 팔은 모자이크처럼 일그러지며 공격을 모조리 무효화했다.
“이 정도 조작과 왜곡은 마신석 없이도 가능한 영역이지. 이것만으로도 꽤 답답할 것이다. 그런데 이제 곧 내 부름에 의해 가장 뛰어난 마신석이 이곳으로 도착할 예정이로군.”
켈리악이 말루기아를 기다리는 이유였다.
완성된 마신석까지 도착하면, 그로서는 모든 변수가 원천적으로 차단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나는 그 힘으로 말루기아를 흡수할 것이다. 그리고 태양신의 힘을 손에 넣고, 시간마저 완벽하게 지배할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날 것이다.”
“시간을 지배하는 것에 유난히 집착하는군, 켈리악.”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나, 시론. 그건 아직 내가 손에 넣지 못한 유일한 힘이니. 그간 수백에 달하는 올타를 죽이거나 흡수해왔다. 그럼에도 시간을 지배하기 위해선 결국 온전한 태양신의 힘이 필요하더군. 말루기아는, 그 마지막 조각이다.”
완성된 마신석, 온전한 태양신.
그 두 가지를 다 가진 켈리악 지플의 권능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켈리악 본인조차도 가늠하지 못할 지경이니까.
“변치 않는 것을 변하게 만들고, 존재할 수 없는 것을 존재하게 만드는, 돌아갈 수 없는 길을 돌아갈 수 있게 되는, 그보다 즐거운 일은 없을 테지…….”
처음으로 켈리악은 흥분한 기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광인처럼 폭소하며 몸을 지나는 적들의 검을 받아들였다. 작은 생채기조차 남지 않는 무의미한 공격들을.
“17시간! 솔더렛의 유산이 있는 아공간으로 들어서기까지 너희에게 필요한 시간이지. 너흰 그곳으로 갈 수 없다, 그걸 위해 내가 직접 온 것이다.”
“확실한가?”
이번엔 시론이 아니라 진이었다. 켈리악이 고개를 돌려 진을 응시했다.
“진 룬칸델, 노화를 견디게 되더니 자신감이 좀 솟은 모양이군?”
“네놈은 이 전장의 모든 걸 네 몸처럼 읽을 수 있을 테지. 아니, 어쩌면 전장뿐만이 아니라 흑해 전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인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실제로 켈리악은 흑해 초입의 작은 마물들이 굴속으로 숨어드는 것까지도 인지하고 있었다. 굳이 감각을 곤두세울 필요도 없이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이를테면, 너는 지금 이 땅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인지할 수 있다. 하지만 방금 네 입으로 직접 말하지 않았나, 너는 아직 시간을 정복하지 못했다고. 그런데 어떻게 미래를 확신하지? 단지 네놈이 우리보다 강하기에 당연한 결과라는 논리는, 언제든 틀어질 수 있다는 걸 정녕 모르는 것이냐?”
십여 초쯤, 정적이 흐른 후 켈리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는 말이다.”
파아아앗……!
돌연 켈리악을 공격하던 창성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그로부터 폭발한 명원계, 암원계 마력에 밀려난 것이다.
이어 하얗고 검은 마력이 대지를 물들이기 시작했다. 명원에 젖은 땅을 밟으면 육신의 노화가 찾아오고, 암원의 땅을 밟으면 육신이 사라진다.
보기에 압도적이긴 하나 효과적인 공격은 아니었다. 창성들은 땅을 밟지 않아도 얼마든지 동일한 수준의 전투를 이어갈 수 있었다.
다만 켈리악은 창성들을 압박하고자 마력을 펼친 게 아니었다.
“내가 말루기아를 집어삼키기 전까지는, 결코 반박할 수 없는 이야기지.”
켈리악이 말을 끝낸 직후, 하늘에서 무언가가 추락했다.
마치 별 하나가 통째로 떨어지듯이, 황금색으로 빛나는 한 거대한 존재가 지상으로 추락한 것이다.
말루기아였다.
그녀는 제국에서와 똑같이 강처럼 긴 머리칼을 가졌고, 그 머리칼들은 뿌리처럼 대지를 파고들며 태양기를 발산했다.
그러나 그날과는 다르다. 말루기아의 태양기는 지상을 덮은 켈리악의 마력을 빠르게 밀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번 전투의 여파에 켈리악보다 더 시달리고 있던 까닭이었다. 추락하듯 과격하게 떨어진 것도 그 이유였다.
“역시, 화염계 근처에 숨어 있었군…… 말루기아. 하긴, 그곳이 아니면 숨을 곳이 없기는 했지. 차원 통로로 기어들어 오는 어리석은 짓은 할 수 없었을 테니.”
조금 전 화염계를 멸망시킬 때부터, 켈리악은 그쯤 어딘가에 있을 말루기아에게까지 타격을 줄 생각이었다.
그 판단은 유효했다. 말루기아는 회복에 집중하느라 존재를 정지시키고 있었고, 때문에 화염계와 그 주변으로 뻗친 켈리악의 마수를 방어하지 못했다. 그 결과 어쩔 수 없이 지금 전장에 나타난 것이다.
본래 지금부터 정확히 15분 뒤, 그녀는 완벽하게 회복을 끝낸 상태로 전장에 난입할 예정이었다. 말루기아의 계산에 의하면 마신석이 전장에 도착하는 건 그보다 한 시간이 더 늦기 때문이었다.
45분, 말루기아로서는 그 시간이면 마신석이 도착하더라도 켈리악이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들 수 있었다. 바멀 연합을 이용해 함께 켈리악을 압박할 수만 있다면 가능하다는 판단이었다.
즉, 그 15분을 다 채우지 못한 탓에 말루기아의 계획엔 치명적인 문제가 생긴 것이다.
“말루기아를 보호해야 합니다!”
본능적으로 소리를 지르는 진.
지금 말루기아는 제국에서 본 것보다 명백히 약해진 상태였다. 그러니 켈리악에게 말루기아가 제압되는 순간, 변수는 사라진다.
켈리악은 마신석이 도착하는 즉시 제압해둔 말루기아를 흡수하고, 태양신의 힘까지 얻게 되는 것이다.
진이 소리치고 있을 때, 이미 켈리악은 미리 대지에 펼쳐둔 마력을 그물처럼 사용해 말루기아를 묶으려 하고 있었다.
창성들은 반사적으로 마력을 피하려 보법을 밟다가, 진의 목소리를 듣고 급히 방향을 틀었다.
“커헉……!”
“큽!”
명원, 암원의 마력이 창성들의 온몸을 난자했다.
늙고, 지워지고. 발레리아와 엔야의 복구엔 한계가 존재한다. 한계를 넘어서면 되돌릴 수 없었다.
[명원, 노화는 내가 전부 감당한다! 너흰 암원만 쳐내!]오르갈이었다.
그는 마족이라는 특성, 그리고 헬루람의 선택을 받은 덕분에 노화에 가장 적은 영향을 받는 인물이었다. 이미 한 번 죽고, 마녀로부터 새로이 목숨을 부여받은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알 수 없다.
그가 얼마나 많은 세월을 견딜 수 있는지는, 오르갈 본인조차도 모르는 영역이었다. 그 말은 곧 발레리아와 엔야가 그를 돌이켜 줄 수 있는 한계점 또한 알 수 없다는 뜻.
지금 명원계 마력을 혼자 다 쳐낸다면, 천 년 이상의 노화가 한꺼번에 진행될 수도 있었다. 어쩌면 만 년 이상까지도.
[끄아아아악……!]창성들은 오르갈의 말을 따랐다. 그게 아니면 말루기아를 구하다 전멸할 수도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창성들이 켈리악의 마력을 밀어내며 말루기아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이어졌다.
대지를 감쌌던 마력이 모조리 사라졌을 때, 창성들은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루기아를 확인했다. 다행히 그녀는 기운을 가다듬은 후 켈리악에게 역공을 펼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리고 오르갈의 손가락은, 앙상해진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