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127)
제 1127화
258화. 전 차원의 포식자(17)
투벤이 죽었고 무라칸은 실성해서 제대로 싸울 수 없다. 게다가 붉은 바다는 계속 연합원들을 미치게 만들고 있으니, 중앙 전장의 전세는 완전히 마신대에게 넘어가고 있었다.
폭음과 비명.
시뻘건 바다와 불, 그 위로 쏟아지는 피와 재.
뒤에서 죽어가는 동료들을 외면할 수밖에 없다. 진은 희망, 오르갈이 말한 그 희미한 단어에 기댄 채 켈리악의 욕망을 헤맬 수밖에 없었다.
걸음을 뗄 때마다 고통이었다.
붉은 바닷물을 밟을 때마다 온몸에 수천 개의 갈고리가 꽂히는 것 같았다. 그만 쓰러지라고, 그만 이 자리에 잠겨서 멈추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진의 두 눈동자는 멍하게 흔들리다가 단단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루나 누님.”
“진.”
“라프라로사를 지켜야 합니다.”
중앙 전장을 그냥 내버려두면 라프라로사까지 위험해질 수밖에 없다.
진은 그들을 지원하는 패로 루나를 골랐다. 오르갈은 서 있는 것도 힘겨운 상태고, 시론과 반은 마지막까지 켈리악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필요가 있었다. 헬루람이 반드시 한 시간을 버텨준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그래, 다녀오마.”
루나가 쉰 목소리로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죽지 마십시오.”
“차라리 내가 죽는 것은 괜찮다. 너도 그렇지 않더냐, 지켜주지 못하는 것보다 훨씬 낫지. 열아홉에…… 나는 가문을 수호하는 검이 되기로 결심했다. 끝까지 살아남아서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할 것이야, 어떻게든.”
쿨렁, 쿨렁……!
붉은 바다가 요동치고 있었다. 이내 루나가 전장 뒤편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 위로 어둠이 내려앉는 모습이 이어졌다.
헬루람이 마지막 남은 권능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진, 어디로 가겠느냐.”
“……잘 모르겠습니다, 아버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 붉은 바다와 어둠 어디에 솔더렛의 안배로 들어서는 입구가 감춰져 있나, 우리가 추구하던 미래는 어디에 있나, 알 수 없다. 발레리아가 의식을 잃고 있으니 작은 단서조차도 추적할 수 없었다.
“그러니 그냥 나아가야겠습니다. 아버지, 투신 형제. 길을 열어주십시오. 어느 쪽으로든…….”
“그리하마.”
바다에서 퍼지는 붉은 기운과 하늘을 뒤덮은 심연에 비해, 두 창성의 검은 촛불처럼 작고 희미하게 빛났다.
“힘들어도 잘 따라오너라.”
“예, 아버지.”
진은 코트를 찢어 발레리아를 제 몸에 더 단단히 묶었다. 다행히 엔야는 진의 손을 잡고 뛸 수 있는 정도의 의식은 있었다.
[야 진…… 나도 좀 어떻게 안 되냐. 안아줘, 못 걷겠다.]“내 손 잡아요, 오르갈.”
[젠장 마지막은 좀 편하게 있고 싶었건만.]진에게 묶인 발레리아, 그 손을 잡은 엔야, 또 그 손을 잡은 오르갈.
진은 문득 우스꽝스러운 자신들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아직 웃을 힘이 남았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돌아보면 신이라 불리는 이들은 킨젤로부터 시작해 대부분이 사람들에게 그리 이롭지 않았다. 애초에 진은 솔더렛조차 열렬히 믿고 따른 적이 없었으니, 신적인 존재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 건 아니었다.
왠지 세상에 고맙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이토록 절망적이어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슬퍼도,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카하아아!”
평소라면 전장을 온통 뒤흔들고도 남을 시론의 포효는, 욕망과 어둠 속으로 잠기며 공허한 외침이 되었다.
그 목소리에 반응한 듯 욕망의 바다가 사납게 몰아치고 있었다. 폭풍우에 휘말린 배처럼, 창성들은 시작부터 입과 귀와 코로 흘러드는 켈리악의 욕망을 견뎌야 했다.
하지만 진과 발레리아, 엔야, 오르갈은 붉은 바닷물을 뒤집어쓰지 않았다. 시론과 반이 필사적으로 그들을 지켜주는 덕이었다.
“하아……!”
켈리악과 헬루람은 어떻게 싸우고 있는가, 창성들은 그들을 볼 여유조차 없었다. 잠시라도 뒤를 돌아보면 몰아치는 파도 어딘가로 휩쓸려 사라질 터였다.
피처럼 찐득한 바닷물이 출렁이는 소리에 그저 정신이 없을 뿐이었다. 뱉어내고, 게워내며 검을 휘두르면 앞은 잠시 어둠에 잠겼다가 붉게 물들어댔다.
몇 걸음이나 나아갔는지, 대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전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점점 높아지는 파도는 이제 곧 중앙 전장에서 퍼지는 충격파마저 다 가려버릴 기세였다.
[행운…… 돌아보면 네놈은 늘 운이 좋았어, 진.]“맞아요, 진 공자는 매번 대운이 따르는 편이었죠.”
시론과 반은 당연히 말을 할 여유가 없고, 진도 자신에게 붙은 사람들을 지키느라 여력이 없었다. 시론과 반의 검막을 뚫고 들어차는 물을 쳐내느라 이를 악물어야만 했다.
그렇기에 엔야와 오르갈만이 입을 열 수 있었다. 물론 그들도 머릿속을 휘젓는 켈리악의 욕망에 벌벌 몸을 떠는 중이었다.
차라리 욕망을 이겨내는 일에 모든 정신력을 쏟아야 할 테지만, 그들은 왠지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지금이 아니면 이 사람들과 다시는 대화할 수 없기에, 자신들이 아니면 누구도 이들에게 힘내라고 소리칠 수 없기에.
[우리가 적이었을 땐 괴로웠지. 이 새낀 대체 뭔데 맨날 이렇게 잘 풀리나…… 우린 매번 호구처럼 이용당하고. 그런데 이제 그 이유를 좀 알겠어.]“운에 이유가 있어요?”
[있어. 내가 볼 때, 이 세상은 저 녀석을 사랑한다. 그리고 켈리악 저 새끼는 아주 증오하지. 그나저나 헬루람은 잘 막고 있는 건가, 쿠학.]엔야는 별안간 핏덩이를 토하는 오르갈에게 말을 멈추라 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가슴께에 걸쳐진 묵직한 핏덩이를 손으로 치워주고, 소매로 입가를 박박 문질러 닦아주었다. 마치 그가 한 시간 후에도, 내일도 살 수 있는 사람인 것처럼.
[으윽, 네 손에서 나는 냄새 장난 아닌데.]“닷새를 한숨도 못 자고 싸우는 중이니 당연하지. 그래서 싫다고요?”
[아니. 또 심연 군단이 되어도 잊지 못할 것 같은 악취다. 그래서 더 좋지. 켈리악에 대한 원한 말고도 무언가 하나는 더 기억하는 병사가 될 테니까.]걸음이 길어질수록 오르갈이 핏덩이를 뱉는 간격이 짧아지고 있었다. 때로는 뼈처럼 보이는 작은 조각들도 토해낼 정도였다. 그때마다 엔야는 묵묵히 그의 입가를 닦아주었다.
[……어쨌거나 내가 하고 싶던 말은, 찾을 수 있다. 진, 찾을 수 있어. 그런데 우리가 지금…… 뭘 찾고 있더라?]“솔더렛의 안배잖아요.”
[그래, 그거. 아마 멀쩡한 형태로 널 기다리고 있을 거다. 그러니까, 어, 찾을 수 있다고.]오르갈의 삶에 한계가 찾아오고 있었다. 그는 이제 똑바로 걷지도 못해서 엔야에게 겨우 질질 끌려다니는 지경이었다.
엔야는 오르갈이 횡설수설할수록 더 그의 손을 꽉 붙잡았다.
붉은 바다를 잠깐이라도 갈라 길을 만들고자 악귀처럼 검을 휘두르는 시론과 반, 2초 간격으로 고개를 떨구고 일순 움직임을 멈추는 진.
그 속에서 그들을 위해 혼자 떠드는 건 죽음보다도, 켈리악의 욕망에 파묻히는 것보다도 더 두려운 일이었다.
“진 공자, 그래도 아직은 헬루람이 잘 싸우고 있는 것 같아요. 바다가 난리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켈리악이 이쪽을 직접 공격한 적은 없잖아요. 오르갈도 그렇게 생각하죠?”
[어…… 어? 뭐라고?]“그냥 그렇다고 하면 돼요.”
오르갈이 대답하려는 찰나, 진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발레리아.”
“진 공자?”
“발레리아가 숨을 안 쉬어.”
엔야는 진에게 바짝 붙어 발레리아의 맥을 짚었다. 그러고는 입을 틀어막으며 울음을 삼켰다. 맥은 전혀 뛰지 않고, 몸은 그늘처럼 차갑기만 했다.
진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슬픔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단지 막연한 상실감을 떨쳐내려면 걸음을 멈출 수 없을 뿐이었다.
[젠장…….]오르갈이 한 박자 늦게 입을 열었다.
그는 발레리아의 숨이 멎은 것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았다. 그가 지금 목소리를 낸 건, 태양기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화아아아……!
별안간 어둠이 걷히고 있었다. 갑자기 새벽녘이 찾아온 듯 전장이 환해지고 있었다. 어디선가 퍼지는 광대한 빛이 붉은 바다 위로 부서지는 모습이 이어졌다.
[부활…… 하고 있어. 켈리악을 통해, 태양신이.]시론과 반은 처음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태양을 등지고 선 켈리악이 서 있었다. 그는 헬루람을 상대하면서도 말루기아와 아락시온의 힘을 빼앗았고, 이제 그 결과물이 전장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헬루람은 그의 앞에 주저앉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불멸자가 아니라 지치고 다친 평범한 인간처럼 몸을 일으키려 애를 쓰고 있었다.
“아, 이 세상을 만든 존재란 참 구성이 단순한 존재로군…… 조각들을 모으기만 하면, 이리도 쉽게 맞출 수 있는 것이었나.”
켈리악이 헬루람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직 헬루람이 완전히 소멸한 건 아니지만, 그녀에겐 이제 켈리악을 저지할 힘이 없을 것 같았다. 켈리악으로부터 내리쬐는 빛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육신이 조금씩 분해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헬루람이 그에게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한 건 아니었다. 켈리악은 손으로 제 눈가를 매만지며 어깨를 으쓱이고 있었다.
“쓰러뜨릴 순 없으니 잠깐이라도 눈을 가린다, 너로서는 이게 최선이었을 테지.”
아직 킨젤로의 힘은 완벽히 켈리악에게 귀속되지 않았다. 마신석이 정화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듯이,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켈리악은 눈을 가린 헬루람의 어둠을 곧장 떨쳐내지 못했다. 그러나 눈이 보이지 않더라도 적들을 공격하는 건 쉬운 일이었다. 태양기를 전역에 난사하고, 붉은 바다를 더 강하게 몰아치며, 재해를 일으키면 되는 것이다.
“네 최후를 직접 볼 수 없는 건 정말이지 아쉬운 일이다, 진 룬칸델. 하지만 여유를 부리고 싶지는 않군.”
켈리악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하늘에서 빛줄기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창성들의 검도, 라프라로사의 보호막도 모두 허상처럼 관통하는 빛줄기들이.
숨을 곳은 하나뿐이다. 붉은 바다, 그 속으로 몸을 내던져야만 그 빛을 막을 수 있었다.
진은 고개를 들어 얼굴로 떨어지는 한 줄기 빛을 바라보았다.
막을 수 없다.
눈을 끔뻑이는 것보다도 빠르게 떨어지는 빛이었다. 죽음, 이대로 빛이 머리를 관통하면 반드시 죽음이 찾아올 터였다.
그러나 그 순간.
떨어지던 빛이 멈췄다. 진은 눈앞에서 멈춘 날카로운 빛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를 생각했다.
‘시간이…… 멈췄어?’
시간이 멈췄다.
그리고 진은 한 푸른 창이 빛을 가리며 눈앞을 채우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발레리아의 기록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