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132)
제 1132화
259화. 세상의 진실, 너의 진실, 나의 진실(1)
[가, 꼬마!]무라칸이 검은 핏물을 쏟아 내며 소리쳤다. 숨결로 바다에 구멍을 뚫는 동안, 빛의 송곳이 수십 번은 그를 찔러 댄 것이다.
괜찮냐, 그런 말을 건네기는커녕 무라칸을 한 차례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다.
켈리악이 감각을 거의 되찾았으니 더 정교하고 잔인한 공격이 시작될 터였다.
저 알 수 없는 검은 결계를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죽음이 있었나, 진은 이미 이를 악물며 몸을 던졌다.
“부탁한다!”
“어딜……!”
진이 안배에 닿기 직전, 켈리악은 두 눈을 부릅뜨며 그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했다.
조준해서 빛을 떨구고, 바다에 난 균열을 채웠다.
진의 주위에 퍼진 바닷물을 날카로운 고체로 변환시키기도 했다.
빛과 붉은 칼날이 하강하는 진의 몸 곳곳을 찌르고 베었다.
뼈와 장기에 걸릴 만큼 깊이 들어선 칼날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진은 숨이 붙은 채 검은 결계 안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하.”
낮은 탄식을 내뱉는 켈리악, 반면 무라칸은 날개가 너덜너덜하게 찢기는 와중에도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이를 어쩌냐? 켈리악 지플. 그러게 꼬마 말고 우리한테 좀 더 집중하지 그랬어. 그러면 내가 네놈의 그 역겨운 욕망을 빠져나와서 이렇게 꼬마를 도울 수 없었을 텐데.]켈리악은 대답하지 않고 진이 사라진 붉은 바다에 시선을 두었다.
무라칸의 말처럼, 켈리악은 진을 신경 쓰느라 붉은 바다의 힘이 약해진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진에 대한 집착이 일을 망친 것이다.
자신이 정말로 유일신다운 여유를 가진 채 적들을 짓밟았다면, 지금처럼 황당한 사태는 애초에 벌어질 수도 없었다.
별안간 켈리악이 무라칸의 바로 앞, 진이 사라진 자리에 나타났다.
순간 이동, 켈리악은 황급히 거리를 벌리려는 무라칸을 신경도 쓰지 않고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가볍게 손을 휘젓자 바다가 양옆으로 갈라지며 다시 검은 결계가 드러났다.
솔더렛의 마지막 유산, 켈리악은 그 위로 거칠게 빛의 기둥을 떨궜다.
그러나 결계는 물처럼 일렁이기만 할 뿐, 전혀 파괴될 기미가 없었다.
하강해서 직접 결계로 들어서려 해도 아무런 반응이 일어나지 않았다.
심지어 결계는 잠시 후 흐릿해지며 공간 속으로 스며들듯 사라지는 모습을 보였다.
감각을 곤두세워도 걸리는 게 없었다. 이제 더는 진을 추적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게 네 한계다, 켈리악은 방금 진이 한 말을 속으로 곱씹으며 수면 위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바다 아래에서부터 새하얀 지팡이가 치솟아 그의 손으로 감겼다.
방금 막 복원이 끝난 마신석이었다.
“……그래, 오늘은 내가 여러 번 우스워지는 날이로군. 하지만 지금부터 너희는, 진 룬칸델이라는 자가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없게 될 것이다.”
* * *
“크으윽…….”
한 움큼 핏물을 뱉어내며, 진은 방금의 기억을 떠올렸다.
바리사다를 휘둘러 결계를 벤 순간이었다.
하필 그때 켈리악의 빛과 날카롭게 굳은 붉은 바닷물에 찔린 탓에 거의 의식이 끊어질 뻔했다.
오른쪽 발목에 엄지손톱만 한 구멍이 뚫렸고, 양 옆구리도 뼈와 살점이 한 뭉텅이씩 뜯긴 상태였다.
그보다는 덜 치명적인 관통상과 자상, 절상은 셀 수도 없었다.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진은 검을 바싹 그러쥐며 주위를 살폈다.
여기가…… 솔더렛이 남긴 마지막 유산인가.
어두웠다.
빛이라곤 한 점도 없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손바닥 위에 한 덩이 화염을 빚어 주위를 밝히니, 보이는 건 오직 자신의 그림자뿐이었다.
뚝, 뚝…….
몸에서 흘러내린 핏방울이 바닥에 스며드는 모습이 보였다.
암석처럼 단단한 바닥인데도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이런 유형의 아공간은 이미 몇 번쯤 겪어 보았다.
진은 쩔뚝이는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한시가 급하다.
아공간과 바깥의 시간은 아마 다르게 흐를 테지만, 최대한 빨리 힘을 얻어 돌아가야 했다.
힘.
진이 이곳을 찾은 이유, 그토록 많은 이들이 희생한 이유.
-영기도 혼기도 아닌, 그보다 높은 차원의 권능……인 것 같군요, 투신 형제.
-막내가 헛소리를 할 리는 없으니…… 일단 좋은 소식이로군. 그 힘을 얻으면, 너는 더 강해지는 거겠지?
처음 유산의 입구를 찾은 순간이 떠올랐다.
그날 진은 유산을 감싼 결계로부터 영기보다 우월한 권능의 존재를 처음 마주했었다.
무엇이라고 명명할 수 없는 검은 기운.
손에 넣는다면, 켈리악이 말하는 ‘유일신’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지금 사방을 채운 어둠이 바로 그 기운이었다.
닷새 전엔 단지 이 어둠을 마주한 것만으로도 인간성을 잃을 것 같아 공포에 질렸으나, 이제는 그저 절실했다.
최대한 빨리 검은 힘을 얻어 밖으로 나가 켈리악을 쓰러뜨리고 싶을 뿐이었다.
사람들의, 세상의 복수를 하고 싶을 뿐이었다.
“하아, 하아……!”
출혈이 극심한 탓에 점점 몸이 무거워지고 있었다.
테마르의 왼팔에선 더 이상 진기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발레리아, 솔더렛……!”
소리치는 진.
이러다가는 유산 속을 걷기만 하다 쓰러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찰나, 저 앞에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마치 흐린 밤에 홀로 뜬 별처럼 외로운 푸른빛, 히스터의 마력이 분명했다.
“발레리아!”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건가, 아니면 잘못 본 것인가.
진은 마음이 다급해져 연신 소리를 지르며 빛을 향해 나아갔다.
허상이 아니다. 분명 걸음을 옮길 때마다 조금씩 빛은 가까워지고 있었다.
망망한 와중 이정표가 생겼다.
고통과 현기증을 견디는 건 바깥을 생각하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과거 룬티아 누님을 흉신의 아공간에서 구할 때처럼, 발레리아가 방향을 알려 주고 있……!’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진은 자신이 본 빛은 단지 기록창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발레리아였다.
그녀가 푸른빛을 쥔 채 바닥에 쓰러져있는 것이다.
“……발레리아!? 발레리아, 정신 차려!”
다른 세계의 발레리아 히스터, 분명 그녀였다.
그녀는 연합이 마신대의 창성을 상대할 때 명왕포 속에서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켈리악이 태양신의 힘을 각성하기 시작한 순간 시간을 멈춰 진의 목숨을 살렸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진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도 없었다.
진은 직감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지금 발레리아가 여기 쓰러져 있는 이유는, 그 모든 일의 대가이리라고.
심장이 주저앉는 것 같았다. 진은 황급히 발레리아를 살폈다.
온몸에 자신보다 더 깊고 심각한 상처가 가득했다.
“으…… 윽…… 지, 진…….”
상처가 깊으니 일단 아무것도 말하지 마, 내가 사람을 데려올게.
반사적으로 그런 말이 나올 뻔했다.
그러나 지금 이 암울하고 황량한 공간엔 진과 발레리아 두 사람뿐이었다.
누구도 그들을 도와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야 하나, 고맙다는 말을,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해야 하나, 아니면 숨이 위태로우니 유산의 힘을 취하는 방법을 물어야 하나.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발레리아는 달랐다.
“정말…… 너구나, 다행이야…… 네 마력을 좀…… 가져갈게.”
발레리아의 차가운 손바닥이 진의 가슴에 닿았다.
진은 자신의 마력이 조금씩 그 손바닥으로 빠져나가는 걸 느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마력 흡수를 끝낸 발레리아로부터 한결 편해진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치료가 된 건 아니었다.
“후우, 이 정도면 말은 할 수 있을 것 같아.”
이내 발레리아는 상체를 일으켜 진과 눈을 맞췄다.
그녀는 눈동자조차 끔뻑이지 않고 진을 빤히 응시했다.
눈 속에 그대로 담아두려는 듯이.
기분이 이상했다.
진은 발레리아의 주검을 르엣에게 맡기고 이곳으로 왔으니까.
그런데 이토록 익숙한 얼굴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죽은 발레리아보다도 더 가깝게 느껴지는 시선이었다.
“궁금한 게 많을 거야.”
“그래…….”
“가면서 이야기해 줄게. 여긴 유산의 초입이야. 솔더렛의 힘을 얻으려면 끝으로 가야 해.”
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등에 업었다.
마력을 흡수해서 기력을 조금 회복했을 뿐, 그녀는 걸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진과 발레리아의 몸에 난 상처들이 닿고 있었다.
어떤 상처는 더 벌어졌고, 어떤 상처는 묘하게 알맞게 포개져서 피가 멎었다.
상처에서 흐른 피가 서로의 몸으로 흘러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저 방향으로 가면 돼.”
진은 발레리아의 손가락이 향한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 또한 상처가 깊은 탓에 빠르게 뛸 수는 없었다.
너무 급하게 가면 발레리아가 버틸 수 없을 것 같기도 했다.
“솔더렛의 유산에서 너를 볼 줄은 몰랐어.”
“이 미래는 그와 내가 설계한 거니까. 로키아가 아공간 제작에 일조하기는 했지만, 그뿐이지. 그녀는 솔더렛과 뜻이 맞지 않았어.”
설계, 그 말에 진의 미간이 좁혀졌다.
“……발레리아, 내가 여기 올 걸 알고 있었어?”
“어느 정도는.”
“그렇다면 세상이 결국 켈리악 지플과 마신대에 의해 멸망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도, 너와 솔더렛은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어?”
“아즈 밀의 예지력으로도, 시간을 다루는 올타의 능력으로도, 마녀와 솔더렛의 힘으로도, 킨젤로의 권능으로도, 마신석으로도. 미래란, 아무리 대단한 힘이 있어도 결코 정확하게 읽을 수 없어. 그런 권능들은 그냥, 높은 산 같은 거야.”
“높은 산?”
“그래. 강을 바로 앞에서 보면 물길을 끝까지 따라가기 전에는 그게 어디로 흐르는지 알 수 없지. 하지만 높은 산이나 하늘에서 내려본다면, 한눈에 그 흐름을 파악할 수 있잖아? 그런 거야.”
어느 정도는.
발레리아가 진의 질문에 그렇게 대답한 까닭이었다.
“대신 멀리서 보면 흐름은 바로 보여도,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알 수 없지. 누가 그 강으로 물을 마시러 오고, 누가 그 강을 더럽히고 있는지. 멀리서도 보일 만큼 현상이 커진 다음에야 알 수 있게 돼. 나는, 그래서 늘 불안했어. 내가 설계한 미래가 옳은 것인지, 내가 선택한 사람이 정말 무슨 짓을 해도 파멸로만 흐르려는 물길을 바꿀 수 있는지…….”
내가 선택한 사람, 진은 그 말을 속으로 되뇌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발레리아는 이렇게 뒷말을 이었다.
“진, 너는 본래 솔더렛이 처음에 선택한 사람은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