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14)
제 111화
36화. 각자의 지원군들(5)
“내 비록 비궁주에 미칠 바는 아니나, 지플의 이름에 먹칠을 하진 않을 것이오.”
퍼엉!
또 한 번 폭발이 일었다. 이번에도 얼음 결정에 막히긴 했지만, 탈라리스는 껄끄러운 듯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 대목에서 미도르는 어쩌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으나, 그것은 크나큰 착각이었다.
“흐응, 공간 폭발이라. 켈리악이 잠깐 맡겨둔 힘으로 너무 까부는구나.”
쿵!
탈라리스가 한 차례 발을 가볍게 구르자.
쩌저적……!
마법사들이 쳐 놓은 결계가 급속도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무려 서른 가까운 마법사가 친 방어 결계가 완전히 얼어붙고, 유리창처럼 깨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3초 남짓.
“이, 이 무슨!”
7마탑의 마법사들은 전원 탈라리스의 얼굴을 알고 있지만 그녀와 싸워본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한 사람이라도 그녀의 무위를 겪어본 자가 있었다면, 그들은 결코 덤비지 않았을 것이다.
마법사들의 얼굴이 사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적룡들도 두려움을 느낀 듯, 낮은 울음소리를 냈다.
반면 힘을 사용하기 시작한 탈라리스의 긴 머리칼이 스산스럽게 흩날렸다.
동시에 셀 수 없이 많은 얼음 결정들이 그녀로부터 소용돌이를 쳤는데, 그 빛 때문에 사방이 환해질 지경이었다.
“내가 요즘 활동을 너무 안 하긴 했나 봐. 나 참, 그렇다고 이렇게 별 시답잖은 놈들까지 덤비고 있으니… 기분이 좀 그래. 너희 가주한테 내 얘길 직접 들어 본 적이 없나 보지?”
크즈즉!
이내 얼음 결정 중 일부가 탈라리스의 오른손에 모여들어 기다란 형태를 갖춰 가기 시작했다.
검이었다.
‘만빙’이라는 이름의.
“교훈을 주마.”
휘익……!
탈라리스가 단 한 번, 만빙을 휘두르자 검 끝에서부터 날카로운 바람이 형성되었다.
말 그대로 ‘살을 에는’ 바람. 새하얀 한기가 뒤섞인 바람이 앞으로 뻗어 나가자, 마법사들이 온갖 방어 마법을 펼쳤다.
그러나 탈라리스가 검을 쥔 이상,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은 그야말로 무용지물.
“으윽!”
가장 먼저 미도르가 짧은 신음을 토했고, 바람이 그를 지나치자 뒤에 있던 마법사들이 비명을 질렀다.
바람이 아니라 수천 개의 칼날이 밀고 들어온 듯, 진을 짜고 있던 마법사들의 온몸에서 쉴 새 없이 선혈이 튀었다.
로브가 찢기고, 지팡이가 동강나고, 살과 뼈가 무참히 베이는 풍경이 이어졌고.
탈라리스가 하찮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다 죽이지는 않겠다는 뜻이야.”
정신을 집중해 회심의 일격을 날린 것도, 오러를 끌어올려 비장의 기술을 사용한 것도 아니다.
그저 가볍게 만빙을 휘두른 것에 지나지 않건만, 이미 7마탑의 마법사들 전원은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심지어 사망자도 다섯이나 되었는데, 그들 모두가 7성 이상이라는 걸 생각하면.
‘이게 정말로 인간의 힘이란 말인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강하다.
가까스로 정신을 붙잡은 미도르의 어깨가 달달 떨리고 있었다.
이만한 격차라면, 다른 마법사들은 주문을 영창하기도 전에 다음 일격에 전투 불능이 될 터. 그나마 반격할 수 있는 건 공간 폭발이 있는 자신뿐이라고 생각한 찰나.
“아, 그리고 미도르라고 했나? 애기는 실수를 했어. 공간 폭발은 내가 아주 싫어하는 마법이거든. 전에 켈리악하고 싸울 때 얼마나 짜증이 나던지.”
놀랍게도 탈라리스는 벌써 거리를 좁혀 미도르의 코앞까지 다가온 모습.
“허억!”
“뭘 그렇게 놀라? 방금 자기 오른손이 사라진 것도 모르는 주제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내리는 미도르는, 정말로 제 오른손이 깔끔하게 베여 바닥에 떨어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절단 부위는 얼어붙어 있었고, 고통조차 느낄 수 없었다.
“마법사들은 이런 점이 정말 별로야. 그 와중에 손을 확인한단 말이야? 내가 코앞에 있는데? 단련된 무인들은 이럴 때도 적에게서 절대 눈을 떼지 않는 법이거든. 안 그러면 다음 순간엔 목을 베이니까.”
흠칫!
미도르가 목을 감싸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 모습을 본 탈라리스가 쯧, 혀를 차자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치심에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지만.
미도르는 감히 탈라리스를 노려볼 수도 없었다.
“부탑주!”
“부탑주를 보호해라!”
“배경만도 못한 것들이 충심 하나는 괜찮구나. 이 나를 상대로 대체 어떻게 보호할 것이냐? 너희들은 오히려 미도르를 질타해야 마땅해. 상대의 힘을 몰라보고 모두를 사지로 내몬 어리석은 지휘관이니.”
탈라리스가 싸늘한 미소를 짓자 마법사들은 이를 악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미도르 본인 역시 그 사실을 절감했으나, 상황이 이토록 어이없이 흘러왔다는 게 그저 한스러울 뿐이었다.
‘빌어먹을, 예상은 했지만 가주께 공간 폭발의 권능을 받고도 이런 격차라니! 이래서는 다른 마탑과 본가에서 지원이 와도……!’
이길 수 없다.
켈리악 지플이 직접 오거나, 본가 최정예 마법사들인 ‘백야’라도 오지 않는 한 절대로.
“남길 말은 없… 어, 저건 또 뭐야?”
미도르가 절망에 빠진 순간, 돌연 새벽하늘 저 멀리서부터 등대처럼 빛이 뻗어지고 있었다.
빛의 정체는 하늘을 나는 거대한 범선.
그리고 탈라리스는 그 배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알고 있었다.
‘백야의 배잖아? 카시미르 놈, 이런 지원군이 있을 거라곤 말해 주지 않았는데.’
처음으로 탈라리스의 표정이 굳었다.
미도르와 마법사들 역시 느낌은 다르지만 마찬가지로 표정이 굳었다. 설마 본가에서 백야를 지원군으로 보낼 줄은 그들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우웅……!
하늘을 나는 유일한 배.
‘코젝’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진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미친, 저게 대체 왜!’
코젝은 지플이 ‘전쟁’을 선포했을 때만 움직이는 걸로 알려진 함선. 진 역시 두 눈으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그 위용에 대해선 익히 들어온 바였다.
펑, 무라칸도 다시 인간으로 변신해 코젝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이 이어졌고, 시리스도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아, 잠깐. 코젝이라니, 이건 저 여자도 혼자 감당하기 어렵겠는데? 아니, 미도르. 그놈이 지플에서 그렇게까지 중요한 놈이었어?”
“……내 생각엔, 안드레이의 죽음 이후 지플이 좀 예민해진 것 같군. 또 순혈 지플이 공격당했으니, 이번에야말로 본때를 보여 주겠다는 심산이겠지. 게다가 이곳엔 놈들이 수백 년을 찾은 물건이 숨겨져 있으니.”
진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탈라리스 님이라 할지라도 백야를 혼자 상대하는 건 무리일 것 같은데…… 거울은 둘째 치고, 이렇게 되면 남은 원주민들을 살려서 데려가는 것조차 불가능해.’
코젝의 등장으로 전투가 멈춘 사이, 원주민들은 아직까지도 의식을 계속하고 있었다.
아직 시간은 새벽 네 시. 의식이 끝나는 정오가 되기까진 8시간이나 남은 데다 코젝까지 등장했으니. 라오사의 부탁을 들어 주는 건 완전히 끝장이 난 셈.
‘만약 탈라리스 님이 혼자 백야를 다 상대할 수 있다 할지라도, 그분 입장에선 그렇게까지 해줄 필요가 없어. 아마 나와 무라칸만 데리고 탈출하겠지.’
탈라리스가 카시미르에게 받은 부탁은 진과 무라칸을 구출해 주라는 것.
그 안에 원주민들의 의식을 지켜 주라는 내용은 없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탈라리스가 지플의 마법사들을 물리쳐 주면, 진 일행이 알아서 해야 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은 정말로, 포기하고 싶지가 않았다. 마지막의 마지막이라도 희망을 잡고 싶었다.
그건 고대의 마스터피스, 거울을 갖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 아니라.
바로 몇 시간 전까지, 이곳에서 대를 이어 수백 년을 학대당한 콜론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대로 탈라리스와 눈두꺼비 모트를 타고 콜론을 탈출하면, 평생 동안 마음의 짐이 될 것 같았다.
“꼬마, 어디 가!?”
“원주민들 좀 보고 올게.”
진이 다시 뮬타의 룬으로 얼굴을 가린 채 원주민들에게로 달렸다. 그 모습을 감지한 탈라리스가 잠시 얼음 결계를 풀어 주자, 기다렸다는 듯 티카가 진의 손을 붙잡았다.
그녀는 몹시 다급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진을 붙잡을 생각이 없었다. 그녀를 포함한 콜론인들 모두가 말이다.
“아무래도 안되겠습니다. 저 배가 뭔지, 저희도 알고 있어요. 진 님이라도 탈출하세요. 정말 미안합니다, 진 님께서 그토록 노력해 주셨는데 저흰…… 보답하진 못할망정, 껄끄러운 결말만 보여 드리는군요.”
“티카.”
“……수백 년 수탈의 역사에서, 지플에 맞서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준 건 진 님과 디노뿐이었어요. 은인이시여, 부디. 어서 가십시오.”
사실, 그들에겐 어젯밤부터 일어난 모든 일이 기적이었다.
진 일행이 콜론을 찾아온 것도, 뮤론이 죽음을 맞이한 것도, 죽은 동족들의 묘를 만들어 줄 수 있던 것도, 7마탑의 마법사들이 추격을 왔을 때 탈라리스가 등장한 것도.
그러니 또 한 번 기적을 바랄 수는 없는 것이다. 하물며 지플의 최고 전력인 백야를 상대로는.
“난 당신들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의식을 더 빨리 끝낼 수는 없습니까? 내가 탈라리스 님을 잘 설득하면, 백야와 전면전을 펼치진 않더라도 어쩌면 시간을 벌어 줄지도 모릅니다.”
“라오사 신녀께서 신력을 잃기 전엔 가능했으나 지금은 불가능합니다. 안 돼요, 그냥 가세요. 저들은 신물을 얻기 전까진 우릴 죽이지 않을 거예요, 아마도.”
아마도.
그 말이 진의 가슴을 쿡 찔렀다. 아까 전, 200개 가까운 콜론인들의 묘를 만들 때도 느낀 감정이었다.
“라오사 신녀는 신력을 다 잃지 않았습니다, 날 처음 봤을 때 신의 통찰력을 발휘했었어요.”
“하지만.”
“내가 라오사 신녀를 데려오겠습니다. 그래도 안 된다면, 그때 포기하도록 하죠.”
“안 돼요! 시간이 없습니다. 제발, 그냥 도망치세요. 진 님은 우리한테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단 말입니다. 이미 차고 넘치게 감동을 주셨다고요. 그런 분을 죽게 만들 순.”
보오옹!
별안간 진의 옆쪽에 새하얀 차원문이 열리며 눈두꺼비 모트가 튀어나왔다.
진을 뒤따라온 시리스가 소환한 것이었다.
“타.”
이미 모트의 등에 오른 시리스가 손을 내밀었다.
“어?”
“타라고, 룬칸델이 달리 인연도 없는 약자를 위해 목숨을 거는 게 신기해서 선심 쓰는 거니까. 대신, 많은 시간은 못 줘.”
진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시리스 님.”
“고맙다는 말 정도면 돼. 어려운 일 아니니까.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