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147)
제 1147화
최종화. 순례하고 회귀하는
1806년 9월 9일.
룬칸델 60대 가주, 진 룬칸델이 여는 첫 연회가 개최되었다.
작년 가주 계승식보다도 더 많은 사람이 검의 정원을 찾았다. 룬칸델과 바멀 연합의 기둥들은 똑같이 도전자들을 받아주었고, 사람들은 지난 1년 동안 쌓은 서로 간의 은원을 풀었다.
“올해도 그야말로 대축제네.”
“그러게요. 하지만 진 공자가 없어서 너무 아쉬워요.”
퀴칸텔과 엔야였다. 바멀 연합의 주축들은 연회장 귀빈석에 앉아 대련장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룬칸델의 연회, 심지어 그것도 가주 탄신일도 함께 기념하는 연회인데 정작 본인은 없다니, 이상하긴 하지.”
“진 공자와 발레리아가 잠깐이라도 얼굴을 보여줬다면 완벽했을 거예요.”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어쩔 수 없지. 그 녀석들도 우리가 보고 싶을 거야.”
“통신이라도 해볼까요?”
“조금 전에 해봤어. 못 받는 모양이더라.”
“으, 아쉬워…… 통신도 매번 잘 안될 정도라니, 둘 다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생각하면 안타깝기도 해요.”
진과 발레리아는 연회에만 참석하지 않은 게 아니다.
동료들 대부분은 마지막으로 두 사람의 얼굴을 본 게 1년 전으로, 바리사다를 제외한 시론의 무구를 룬칸델의 영묘에 안치한 날이었다.
“단테, 너랑 베라딘도 우리 가주한테 아무런 연락 못 받았어?”
“그렇소, 메리 경.”
단테와 메리였다.
동료들은 두 사람의 약지에 끼워진 같은 반지를 바라보았다. 약혼반지였다.
“참 신기하단 말이지…… 두 사람은 대체 언제 그렇게 가까워진 거야?”
퀴칸텔의 물음에 단테는 헛기침을 하며 말을 돌리려 했으나 메리는 씨익 이를 드러냈다.
“전쟁통에도 사랑은 피는 법이라는 말이 있지. 뭐 그런 것 아니겠어? 단테라면 평생 싸우면서 지내도 내 검을 얼마든지 버틸 수 있을 테니, 이만한 남편감은 없지.”
“맞습니다, 누님! 하지만 단테 경, 지금이라도 도망가!”
“맞아, 지금이라도 얼른 도망쳐라, 단테 경……!”
맞은편 테이블에 있던 토나 형제가 대화에 끼어들자, 메리는 그들의 머리를 쥐어박으려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했다. 연회장에서 기수가 기수들을 패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토나 형제는 크헬헬 웃으며 메리에게 혓바닥을 내밀었다.
“하하, 하여간 사랑하는 우리 동생들. 나중에 보자?”
“아이고 무서워.”
“무섭다 무서워. 하지만 우리도 아버지와의 수련으로 꽤 강해졌거든.”
“이젠 누님도 우리 두 명을 동시에 상대하는 건 버거울걸?”
단테는 익숙한 상황에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사실 토나 형제는 단테와 따로 술을 마실 땐 메리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는 했다.
“흠, 흠흠…… 메리 경이 혼자 두 분을 상대할 일은 없을 것이오.”
“크, 단테 이 귀여운 녀석! 잘도 그런 간지러운 말을 하는군. 마음에 드는걸? 다시 말해봐.”
“메리 경, 똑같은 말을 또 하는 건 좀…….”
“아 어서 다시. 한 번만 부탁해.”
“음…… 메리 경이 혼자 두 분을 상대할 일은 없을 것이오…….”
칼칼 호탕한 웃음을 터뜨린 메리와 얼굴을 붉히는 단테를 보며 동료들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나저나 막내랑 발레리아가 너희 결혼식은 올 수 있는 건지 모르겠네.”
이번엔 막 도전자들을 다 때려눕히고 대련장을 나온 룬티아였다.
“하아? 언니, 그건 말도 안 되지. 막내가 설마 내 결혼식까지 불참을 하겠어?”
“공식적으로는 네 결혼보다 오늘 연회가 더 큰 행사야.”
“젠장, 그건 그렇네. 하지만 그건 우리 룬칸델 기준이고, 바멀 연합 기준에서는 우리 결혼식이 더 큰 행사 아닌가?”
“그것도 그렇네. 부디 너희 결혼식 덕분에 걔들 얼굴 좀 볼 수 있으면 좋겠구나.”
“단테, 만에 하나라도 막내가 안 오면 우리 결혼식은 취소다. 무조건 막내가 올 수 있는 날에 하자.”
“물론, 당연히 그리해야 하오.”
“농담이야. 걔들이 오든 말든 그날 주인공은 너랑 나인데 당연히 예정대로 해야지.”
“나는 진심이었소.”
“그, 진짜로? 주인공은 우리라니까?”
“사실은 농담이었소. 미안하오. 사죄의 의미로 오늘은 이따 둘이 있을 때 지난번에 말한 노래를 불러드리리다.”
“역시 귀여워!”
동료들은 춤을 추러 가는 단테와 메리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진 오빠는 저번에 잠깐 통신 됐을 때 뒤늦게 소식 듣고는 좀 놀라더니, 왠지 그럴 것 같았다며 금방 납득하더라. 엔야 언니, 오빠랑 발레리아 언니가 진짜로 두 사람 결혼식에 못 오는 건 아니겠지?”
“그러진 않을 거야, 유리아.”
“이럴 땐 예지의 권능이 사라진 게 조금 아쉽네.”
“유리아, 그런 말은 농담으로도 하면 안 된다.”
“앗, 알겠습니다 어마마마. 실수했어요. 다만 제가 두 사람이 보고 싶어서 한 말은 아니고…… 길리 이모가 안타까워서 그랬어요.”
길리의 이름이 나오자 동료들의 표정이 숙연해졌다.
그녀는 지난 1년 동안 부쩍 수척해진 상태였다. 오늘 연회에서도 그녀는 최고 귀빈으로 대우를 받으며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고 있으나, 연회장보다 예전에 쓰던 방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지금도 길리는 멍한 눈으로 창밖 하늘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터였다.
“안 되겠다. 핀테, 코우랑 길리 이모 좀 보고 올게요.”
“그래, 다녀오너라. 그래도 길리가 너희랑 있을 땐 보다 자연스럽게 웃는 편이니.”
“총수 녀석 어렸을 때 생각이 나는 게지. 애들은 다 닮은 구석이 있는 법이니 말이다. 무라칸이 애들과 놀아주던 모습도 떠오를 것이고.”
엘티엇이 뛰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말하자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야속하지만 야속하다고 할 수 없는 일이니, 길리가 겪는 인고의 시간이 어서 끝이 나면 좋겠구나. 세상이 복원되고 벌써 2년이나 되었어. 장생하는 존재들에겐 짧은 시간이나, 인간에겐 결코 그렇지 않은 시간이다. 사무치게 그리워하며 기다린다면 더더욱…….”
그 말대로 벌써 2년이었다.
평화로운 날들이 으레 그렇듯이, 시간은 어느새 갑자기 자라는 아이들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 * *
1807년 5월 22일.
단테와 메리의 결혼식은 검의 정원에서 먼저 비공개 예식을 치른 후, 제국에서 공개 예식을 하기로 했다.
당연히 비공개 예식엔 가문의 권속들과 바멀 연합의 일원들만이 참석했다.
“단테.”
“말씀하시오, 메리.”
“너도 결혼식으로 고르고 싶은 날짜가 있었을 텐데, 내 의견을 따라줘서 고마워. 함께 산 건 벌써 반년이 넘었는데, 막상 결혼식이라는 걸 하려니 기분이 이상하네. 디푸스 오라버니가 보고 싶다.”
5월 22일, 4년 전 오늘은 디푸스가 흉신의 권능 한 조각과 함께 세상을 떠난 날이었다.
“나도 조부님이 그립소. 5월은, 내게도 의미가 있는 달이지. 빛이 된 조부님 앞에서 진과 함께 술잔을 기울인 게 5월이었으니 말이오.”
이제 론 하이란이 남긴 빛은 검황지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세상이 복원될 때 수호라는 자신의 의무가 끝났음을 깨닫고 자연으로 돌아가기를 택했다.
“그래, 나도 아버지 생각도 났다. 아마 우리 아버지도, 론 경도 어디선가 우릴 지켜보고 있겠지. 디푸스 오라버니는 그 사이에 껴 있겠군. 너그럽고 부드러워진 아버지께 적응을 잘 했으려나.”
“메리와 가족들도 금방 적응했으니 그럴 것이오. 오히려 우리 조부님이 걱정이로군, 분명 아직도 시론 경이 은근히 낯설다고 생각하실 것 같소.”
“하하, 그건 그렇겠다. 자, 이제 시간이 다 됐네. 나가자, 결혼하러.”
“손을 주시오. 잡고 나가고 싶소.”
문이 열리자 동료들과 가문의 기사들이 내지르는 환호성이 들려왔다. 두 사람은 그들에게 손을 흔들며 진의 얼굴을 찾았다.
“저기 있다, 진! 막내야, 발레리아! 오랜만이다! 그래, 우리 결혼식은 와야지.”
“왔군, 그대들……!”
진과 발레리아는 맨 앞 가운데에 앉아 이제 부부가 될 이들을 축복하고 있었다.
다만 다른 동료들과 달리 아주 차려입지는 못한 모습이었다. 오랜 여행의 흔적이 묻어나는 가벼운 코트와 로브, 그러나 중요한 건 그들이 왔다는 사실이었다.
“축하드립니다, 메리 누님. 축하한다, 단테.”
“두 사람, 잘 어울려요.”
진은 가주로서 단상에 올라 두 사람을 위한 축사를 했고, 발레리아는 기록 마법으로 서약을 맺어주었다.
“미안하다, 공개 예식까지는 자리를 지킬 수 없을 것 같네.”
“무엇이 미안하다는 것이오, 그대. 오히려 그대들에게 우리가 미안하오. 메리와 행복하게 지내며 그대들의 몫만큼 주변도 더 잘 살피고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돌아가시오.”
“그래, 막내야. 요나가 가주 대행을 생각보다 엄청 잘하더라.”
“히, 내 얘기 했어? 맞아, 난 가주 대행 잘하고 있어. 왜냐하면, 할 일이 없거든……!”
“요나야 그렇게 보고 싶다고 하던 진 왔으니까 최대한 많이 봐둬. 또 오래 못 볼 가능성이 높다.”
사실 요나는 진과 발레리아를 이미 대여섯 번쯤 보았다.
룬칸델 60대 가주 대행은 시간이 많은 자리고, 요나는 기록 마법사인 발레리아를 제외하면 세상에서 가장 사람을 잘 찾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요나는 형제와 동료들에게 진과 발레리아의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매일 전쟁만큼이나 힘겨운 날을 보내고 있다는 걸 알면, 다들 걱정할 테니 말이다. 실제로 진과 발레리아는 요나가 자신들을 지켜보다 돌아간 걸 눈치챈 적이 없을 만큼 늘 지쳐 있었다.
“히,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걸 걱정하는 건 서로에게 좋지 않아.”
“응?”
“그냥 갑자기 생각난 말이야, 루나 언니. 막내랑 오랜만에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 너무 좋다, 그치.”
“그럼. 둘 다 식사는 잘 챙기면서 다니는 거지?”
“설마 밥을 굶겠습니까, 루나 누님.”
“왜들 그렇게 밥은 잘 먹고 다니냐고 묻는 건지, 솔직히 이해가 잘 안 됐어. 이제 알겠네. 너희가 아무리 강해도 그것부터 걱정이 되는구나.”
그러나 형제와 동료들은 모두 진을 오래 붙잡지 않았다. 어차피 정말로 오래 있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동료들은 지금 진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잊지 않았다.
“길리.”
“도련님.”
진은 길리의 눈을 쳐다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진과 발레리아, 싸움이 다 끝나고도 두 사람이 동료들과 함께할 수 없는 이유는 당연히 무라칸과 미샤였다.
“길리…… 조금만 더 기다려 줘.”
“솔직히, 무라칸 님도 없는데 도련님까지 못 보니 날마다 사무치게 허전하고 외로운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어요.”
길리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하며 부드럽게 진을 끌어안았다.
“그러니 매일 그렇게 무언가에 쫓기듯이 지내지 마세요. 무라칸 님과 미샤 님께는 긴 시간도 아닐 테니, 저는 저대로 삶을 가꾸며 지내면 되는 겁니다. 얼굴이 수척해지셔서 마음이 너무 아프군요. 힘이 들면 언제든 집으로 와서 쉬세요.”
“응, 길리. 조금 더 자주 보러 올게.”
“저를 자주 보러 오시라는 뜻이 아닙니다. 도련님과 발레리아가 보다 스스로를 더 챙기면 좋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알아.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말하고 싶네.”
“오랜만에 딸기파이를 구웠습니다. 좋아하시는 샌드위치도 많이 만들었으니, 갈 때 잊지 마세요.”
* * *
1808년 9월 9일에도 연회가 열렸다.
이번에도 진과 발레리아는 참석하지 않았다. 다만 진과 발레리아는 메리와 단테의 결혼식 이후부터 두 달에 한 번씩 집에 돌아와 몇 시간을 보내고 다시 떠났으니, 동료들은 전보다는 조금이나마 덜 아쉬웠다.
1809년 9월 9일도, 1810년 9월 9일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동료들은 매년 똑같이 진과 발레리아가 없는 연회를 진행하며, 익숙해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언제든 그들이 돌아오면 그때부터 익숙해지기 위해서.
1811년에는 청풍제 엘티엇이 임종을 맞이했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이 다한 것이다. 진과 발레리아는 장례에 참석해 동료들과 함께 그를 보내주었다.
“한 번 일어난 일은 절대 없던 일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순간은, 기억은 영원히 부는 바람이다.”
“우린 결국 언젠가 다 세상의 부스러기로 흩어지기 마련이지만, 영원의 한 모퉁이엔 언제나 우리의 추억이 새겨져 있다. 사랑한다, 제자야. 그리고 친구들아. 나는 이만 가슴에 묻은 형제들을 만나러 먼저 흩어진다.”
반과 루나가 각각 후손으로서, 제자로서 엘티엇의 유언을 읊었다. 진과 발레리아는 다시 떠나는 길에 몇 번이고 그 유언을 떠올렸다. 영원의 한 모퉁이엔, 언제나 우리의 추억이 새겨져 있다.
그렇게 세상이 복원된 날로부터 7년, 8년, 9년…….
그리고 10년이 흘러, 1814년이 되었다.
9월 9일, 매년 룬칸델의 연회가 열리는 날. 오늘도 룬칸델과 바멀 연합의 별들은 검의 정원으로 모였다.
무인들의 도전을 받아주고, 회포를 풀고,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으려 노력하며 진과 발레리아를 기다렸다.
다만 한 사람.
길리는 작년과 달리 검의 정원 귀빈석에 앉아 있지 않았다. 진, 무라칸과 함께 쓰던 방에 혼자 들어가 창밖을 바라보고 있지도 않았다.
미텔 왕국의 한 오래된 여관, 그녀는 한 손에 바구니를 들고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여관은 오늘 영업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길리가 문을 두드리니, 안에서 진과 발레리아가 문을 열어주었다.
“왔어? 길리.”
길리는 안으로 들어서며 여관을 둘러보았다.
“도련님, 여긴…….”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길리는 1790년, 24년 전의 어느 날을 떠올리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또 10년이 흘러도, 100년이 흘러도 결코 잊을 수 없을 그날의 추억이 바로 어제처럼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맞아, 그 여관이야. 알지? 3층으로 가자.”
한 걸음씩 계단을 오르는 길리의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길리는 진과 발레리아의 뒷모습도 떨리고 있다는 걸 느꼈다.
3층의 볕이 가장 잘 드는 방은 놀랍게도 그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먼저 온 진과 발레리아가 방 한가운데에 자그마한 빛 덩어리를 띄워두었다는 사실이었다.
“너무 늦어서 미안해, 길리. 미안하다는 말이…… 이제야 입 밖으로 나오네.”
“그러지 마세요, 도련님. 미안하다고 하지 마세요…….”
길리는 바구니를 내려놓고 두 손으로 제 입을 가리고 있었다. 젖은 눈동자가 반짝였다. 혹시라도 꿈이면 어쩌지, 지금 이 순간이 또 꿈이면 어쩌지, 그런 마음들이 뺨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꿈이…… 아니죠?”
“아니야. 이 순간을, 꼭 보여주고 싶었어.”
무구하게 일렁이는 한 덩이의 빛.
지난 10년 동안 진과 발레리아는 이 빛을 모으느라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 있었다. 빛을 타고 흐르는 무라칸과 미샤의 기록을 찾고, 붙잡고, 품에 안고…….
마침내 마지막으로 무라칸에 대해 가장 강렬한 기록이 남은 곳이 이 여관이었다.
24년 전, 폭풍성을 떠나던 중 진의 장난에 하마터면 무라칸이 고양이가 될 뻔한, 길리가 처음으로 무라칸을 마주한, 진과 함께 룬칸델 비공식 3인조를 결성한, 바로 그 여관.
이내 진은 손바닥 위로 앞에 있는 빛과 정확히 같은 크기의 영기를 일으켰다.
그건 이 세상에 남은 마지막 영기였다.
“이제 이걸 빛 속으로 흘려보내면 우리의 수호룡들이 돌아올 거야. 자 그럼…… 시작할게.”
진의 손 위에서 일렁이는 영기가 천천히 흩어지고 부스러지며 빛으로 다가가는 모습이 이어졌다.
빛은 한동안 몽글몽글 끓어올랐다. 그러다 반으로 나뉘어서, 두 마리의 검은 고양이가 되었다.
“냐? 냐아?”
“하악, 캬아악!”
어, 뭐지?
멍청아, 돌아온 거잖아!
다시 빚어진 남매가 처음으로 나눈 말이었다. 무라칸은 미샤의 앞발에 볼을 한 대 맞고 번쩍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사람으로 변신하며 눈에 보이는 이들을 모두 끌어안았다.
미샤는 일부러 바로 사람으로 변하지 않고 책상으로 올라가 서로를 안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녀도 물론 진과 발레리아와 딸기파이를 안아주고 싶지만, 그래도 무라칸과 살이 닿는 건 참을 수 없었다. 어차피 이제 앞으로 서로를 안아줄 기회는 많았다.
“딸기파이여! 꼬마……! 역사쟁이!”
“무라칸! 무라칸, 이 자식. 정말 너 맞지. 맞지?”
“그래, 나 맞다! 너도 너 맞지, 꼬마!”
“고생…… 싸우느라, 다시 돌아오느라 고생 많았어요, 무라칸 님. 이 말을 하기까지 10년이 걸렸네요.”
“딸기파이여, 이제 다신 너를 떠나지 않으마. 다시는 너를 두고 어디도 가지 않으마. 항상 네 옆에만 있으마, 항상!”
한참을 안고 있던 이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진과 무라칸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씨익 미소를 지은 두 사람은, 곧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이렇게 입을 열었다.
“나는 무라칸. 솔더렛의 대리자이자, 그의 친우이며, 그림자로 빚어진 첫 번째 존재의 마지막 후손. 천 년의 약속에 따라 오늘부터 나는 너와 함께할 것이다. 이름을 말하라.”
방금까지 아이처럼 울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진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은 일곱 살, 무라칸을 처음 만난 그날처럼 떨리는 가슴을 겨우 억누르며 대답했다.
“진 룬칸델입니다. 룬칸델의 열셋째, 가장 나중에 난 자식입니다.”
순례는 끝났고, 회귀도 끝이 났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다 함께 삶을 누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