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18)
제 111화
37화. 세상을 지우는 힘, 세상을 지탱하는 힘(3)
클람이 강림한 사실은 진이 가장 늦게 깨달았다.
다른 이들은 이미 5분쯤 전부터 정리된 상황 속에서 진이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내가 방금까지 본 게 전부 환상이었다고?’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파편이 가슴팍을 꿰뚫은 것도, 몇 움큼씩 피를 토해 내며 쓰러진 것도 모두 현실감이 넘쳤으니. 오히려 멀쩡히 서 있는 지금이 가짜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럼 나는 아까 라오사 신녀가 직접 걷기 시작했을 때 이미 의식을 잃었던 건가.’
정확했다. 진은 그때 이미 치명상을 입고 의식을 잃었다. 그러나 지금은 역류를 비롯한 모든 부상이 말끔하게 사라진 모습이었다.
몸이 씻은 듯이 가벼웠고, 반사적으로 뺨을 꼬집으니 통증이 느껴졌다.
그 모습을 보고 풋, 웃음을 터뜨리는 시리스.
“방금까지 마지막을 각오한 사람처럼 행동하더니, 너도 목숨이 아깝긴 아까운 모양이지?”
“그러는 시리스 님도 저를 구하려고 하셨잖습니까. 제가 쓰러졌을 때…….”
“뭐래? 내가 언제 그랬다고. 그리고 너 쓰러지자마자 저 신이 강림해서 상황 종료였거든?”
진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이 클람이라는 신은 일이 잘못되었을 때의 가정을 내게만 보여준 모양이로군.’
나머지 사람들은 진처럼 ‘가정’을 체험하지 못했다.
그러나 진은 그것이 가정이 아니라 현실이었어도, 시리스가 똑같이 행동했을 것 같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흐응, 솔직히 나는 룬칸델 애기가 대체 뭘 믿고 그렇게까지 무모한 건지 의아했는데. 설마 신을 강림시킬 줄이야…… 딸, 네 애인 말이야. 이 나이에 벌써 능구렁이 같은 구석이 있네?”
탈라리스는 클람의 강림이 진의 계산 하에 이루어진 일이라 착각했다. 시리스 역시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두 사람은 내심 감탄하고 있었다.
그 분위기를 읽은 진은 다소 민망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걸 정정해 주는 것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산더미였다.
“무라칸. 무라칸은!?”
“멀쩡하다. 이 빌어먹을, 망할, 때려죽일 꼬맹이 자식! 네놈이 죽는 줄 알았잖아!”
잔뜩 화난 얼굴로 욕설을 쏟아 내는 무라칸은 진이 멀쩡해진 지금도 연신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이번엔 정말로 위험했던 것이다.
옛 신, ‘클람’이 강림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여정은 오늘로 끝이었을 터.
한참 진을 타박하던 무라칸이, 홱 고개를 돌려 클람을 쏘아보았다.
“그래서, 댁은 뉘쇼? 권능 부리는 걸 보아하니, 어디 구석탱이 잡신은 아닌데. 이 무라칸의 기억 속에 전혀 없는 기운이란 말이지.”
무라칸은 클람에게 그다지 호의적인 분위기가 아니었다.
과거, 전성기에 솔더렛과 함께하던 때 수많은 신들을 경험한 바. 신이 이변을 일으킬 때엔, 주로 본인의 이득을 취하기 위한 밑그림을 그리는 경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이야, 저기 저 함선 빠개진 것 봐. 지플의 천재들은 죄다 기절해서 바닥을 구르고 있고… 이만한 힘이 있는데, 굳이 이제야 나타났다는 건. 뭔가 원하는 게 있기 때문이겠지. 말해 보쇼, 꼬마에게 뭘 원하는지.”
무라칸이 가리키는 곳마다 마력 역류에 빠져 의식을 잃은 마법사들이 보였다. 그들과 함께 온 여섯 마리의 적룡도 역류를 이기지 못하고 기절한 상태였다.
모두 클람이 권능을 부려 역류를 일으킨 것이다. 대답 대신 품속에서 작은 거울을 하나 꺼내 보였다.
‘거울!?’
진의 전생에선 지플의 손아귀에 들어가 수많은 7성 마법사를 양산한 신물, 거울.
클람이 진 쪽을 쳐다보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한쪽에서 고개를 조아리고 있던 콜론인들도 힐끔힐끔 진을 쳐다보았다.
[나는 한때 세상의 모든 마력을 주관하던 신이다. 그러나 스스로의 힘을 견디지 못해 세상을 멸망시킬 뻔한 순간, 솔더렛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를 이 거울 속에 봉인했지.]“난 솔더렛에게 그런 얘길 들어 본 적이 없는데. 게다가 마력의 신이 따로 존재했었다는 이야기도.”
[네가 의심하지 못할 증거를 하나 보여 주마, 흑룡아.]클람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거울의 표면이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이어서 거울에서부터 무언가 빠져나오려고 꾸물대는 모습이 이어졌는데, 표면에 맺힌 검은 힘이 그것을 억지로 틀어막는 형상이었다.
그 검은 기운은 다름 아닌 영기였다. 그것도 전성기의 무라칸조차 다룰 수 없을 만큼 진하고 강인한.
“솔더렛의 봉인……?”
무라칸은 과거 솔더렛이 여러 강한 존재를 봉하는 모습을 직접 지켜봤으나 이처럼 강력한 봉인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무라칸이 당황한 기색을 지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을 멸하게 할 뻔했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 모양이군…… 대충 알겠어. 점점 봉인이 약해지고 있군? 그래서 봉인을 유지할 수 있는 자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었고.”
[그렇다. 이 봉인이 막고 있는 것은 무한한 마력의 근원, 그 자체로 나다. 그리고 끝없이 팽창하는 마력은 언제든 이 세상을 통째로 지워 버릴 수 있지……]클람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만약 마력이 공기보다 많아진다면, 세상의 그 어떤 생명체도 호흡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솔더렛에게 부탁해 스스로를 이 거울 속에 가뒀다. 그리고 당시 나를 섬기고 있던 콜론인들에게 이것을 지키도록 사명을 내렸지.]“그렇게 중한 일을 왜 하필 저런 약골들에게 맡긴 거냐? 저 인간들이 지난 수백 년 동안 얼마나 고생했는지는 알고 있나?”
[……그때는 태초에 가깝던 시절이라, 저 녀석들이 꽤 득세하고 있었다. 당시 기준으론 인간 중에 가장 강한 민족에 속했지.]놀랍게도 콜론인들의 먼, 아주 멀고도 먼 조상은 원시시대의 패자였다는 이야기.
[게다가 나는 봉인된 상태인 만큼, 녀석들에게 적절한 진로를 제시해 줄 수도 없었다. 기술을 발전시키고, 더 나은 문명을 이뤄서 강대해지라고 조언해준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콜론인들마저 할 말을 잊은 사이, 클람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 선택은 옳았다. 마침내 솔더렛이 말한 천 년의 계약자가 나를 찾아왔으니.]클람이 진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받아라, 진 룬칸델.]진이 거울을 받아 들자 표면에 떠오른 영기가 빠르게 안정을 찾아 갔다.
그리고 진은, 봉인에 이용된 어마어마한 영기와 그것을 빠져나오려는 무한한 마력이 전류처럼 제 몸속에 흐르기 시작한 것을 느꼈다.
그저 만지는 것만으로도.
감당하기 벅찬 두 가지 강대한 기운이 전신을 마구잡이로 휘젓고 있는 것이다.
[그대가 붙잡고 있는 것은 세상을 지탱하는 힘이다. 솔더렛의 봉인 말이야.]당연하게도.
진이 전생에서 얻은 ‘거울’에 대한 정보엔 이런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저 쳐다보기만 해도 마력이 쭉쭉 올라가는 사기적인 아티팩트라고만 들었을 뿐.
‘이건 아티팩트가 아니라 재앙이라 불러야 더 마땅한 물건이었군.’
거울을 쥔 손끝으로 미친 듯이 마력이 올라오고 있었다. 며칠만 쥐고 있어도 7성 이상의 마력을 거저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마력이 올라올 때마다, 아주 미세하게 봉인이 헐거워지고 있어.’
영기를 사용하는 자가 아니면 결코 느낄 수 없는 감각.
‘이걸 아무 생각 없이 이용하다가 봉인이 깨지면, 그날로 파국이다.’
전생의 지플이 그랬다.
수천 명 이상의 양산 마법사가 만들어지는 동안 봉인은 계속 헐거워졌을 터.
수만 명의 양산 마법사를 만들 때쯤이면, 분명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이제 이걸 콜론인들 대신 내가 지키면 되는 겁니까?”
[정확히는 그대가 아니면 그 누구도 지킬 수 없던 것을, 콜론인들이 맡아 두고 있던 것이지.]“지나치게 무거운 의무입니다. 저는 당신을 섬기던 자들이 오랜 시간, 아무 대가 없이 고통 받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렇게 할 생각이 없습니다만.”
그러자 클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의 말이 맞아. 난 신으로서 나를 섬기는 인간들에게 해 준 게 없지. 그건 내가 봉인되어 있으니 어쩔 수 없었으나, 그대의 경우는 조금 달라.]“어떤 게 다릅니까?”
[솔더렛의 봉인. 그건 단순한 봉인이 아니라, 그대를 위해 준비한 솔더렛의 선물이기도 하거든.]“이 봉인이요?”
[그 봉인은 솔더렛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인한 힘을 지니고 있을 때, 모든 권능을 쏟아 만든 역작이다. 단순히 밀도 높은 영기가 아니라, 솔더렛의 일부이기도 한 셈이지.]“……제가 본래 받기로 했던 보상은, 라오사 신녀가 솔더렛을 한 번 불러 주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그대가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니 그렇게 말한 것이야.
그대가 어떻게 두 번의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는지도.
클람이 그 말을 삼키며 진과 눈동자를 맞췄다.
[네 도움을 얻기 위해 무리수를 던진 모양이군. 당장 네 옆에 있는 흑룡조차 부르지 못하는 존재를, 그 아이가 무슨 수로 부른단 말이냐.]진은 회귀 전,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부터 솔더렛과 교류가 끊겼고.
무라칸은 천 년 전 테마르와 싸워 패배한 직후 끊겼다. 두 사람은 다른 보편적인 계약자나 수호룡과 달리 신의 보살핌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 의미에서 그대와 콜론인들의 운명은 닮은 점이 있구나. 어쩌면 그대가 콜론인들에게 이토록 마음을 쓴 것에 이런 이유도 포함되어 있을지 모르겠어.]클람이 진을 향해 한 차례 고개를 숙였다.
그 광경을 본 탈라리스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충격을 받았는데, 그녀가 지금껏 직접 만나 본 신들은 단 한 번도 인간에게 고개를 숙인 적이 없던 것이다.
[내 대신 나를 섬기는 자들을 구원해준 그대에게 깊은 감사를 전하지. 이제 저 녀석들은 사명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그리고 진이 대답하기도 전에, 클람의 몸이 조금씩 투명해지고 있었다. 마치 흐르는 강물에 소금이 녹듯이.
현현이 끝나 가고 있는 것인데, 그건 곧 라오사의 몸이 사라진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클람, 라오사 신녀!”
진이 흐려지는 라오사의 몸을 붙잡으려 했으나, 손이 닿기도 전에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모든 힘이 봉인된 클람이 잠시나마 현현할 수 있던 것은, 라오사가 스스로를 제물로 바쳤기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흐응, 그래. 네가 솔더렛의 계약자였단 말이지. 여러모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어. 신이 인간에게 고개를 숙이는 장면도 처음 봤고 말이야.”
진이 흠칫하며 탈라리스를 쳐다보았다.
상황이 어쩔 수 없긴 했지만, 비궁 측이 이번 일로 진의 여러 비밀을 알게 된 건 사실이었다.
“탈라리스 님.”
“일단은 여길 뜨는 게 어떨까? 저 마법사 놈들, 내가 보기엔 몇 시간 내로 다들 정신을 차릴 것 같거든. 그리고, 저건 이제 추락할 것 같고 말이야.”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킨 하늘 위, 반파된 코젝이 서서히 지상으로 가라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