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19)
제 111화
37화. 세상을 지우는 힘, 세상을 지탱하는 힘(4)
미리 정박시켜 둔 범선으로 모든 사람이 대피하기까지 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배는 곧장 티칸을 향해 바다를 가르기 시작했고, 서른 남짓 남은 콜론인들은 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옛 신, ‘클람’이 그들에게 거울을 수호하라는 사명을 내린 후.
일만 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원시의 패자였던 그들은 힘없는 소수 민족으로 전락해 지플의 노예가 되었다.
이후 지금까지 이어져 온 탄압과 수탈의 역사 속에서, 과연 몇 명의 콜론인이 억울하게 죽었는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아마 진 공자를 만나지 못했다면. 우린 사명조차 완수하지 못한 채 무의미한 삶을 끝냈겠지요. 거울이 끝내 공자의 손에 닿아 다행입니다.”
티카가 진에게 다가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아뇨, 콜론인들이 지금까지 버티지 못했다면 이건 결국 지플의 손에 넘어갔을 테죠. 그 미친놈들이 이걸 어떻게 사용했을지는 안 봐도 뻔한 일입니다.”
진은 전생에서 거울을 얻은 지플이 어땠는지를 실제로 겪어 보았다.
‘그때는 단지 7성 마법사를 양산하기만 한 줄 알았는데, 클람의 말대로라면. 전생의 지플은 세상을 끝장낼 뻔했군.’
거울로 마력을 얻는 인간이 많아질수록, 솔더렛의 봉인은 헐거워진다.
그리고 클람의 봉인이 깨진다는 건 곧 세상이 멸망할 수도 있다는 뜻.
“결과적으로 나를 만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던 건, 콜론인들이 버텨 준 덕입니다. 그러니 자책하지 말고 이제 앞으로의 삶을 생각하십시오, 티카. 휴페스터 연합국에 콜론인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진 공자께선 지금 예비 기수 신분 아니십니까? 룬칸델의 예비 기수는 가문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온 디노가 난처한 듯 말하자 진이 미소를 지었다.
“기자 디노, 그 부분은 방법이 있으니 염려하지 마라. 넌 이제 콜론인들을 위해 기사를 쓸 생각만 해.”
진이 한 장의 서신을 작성했다.
수신자는 루나 룬칸델. 진은 콜론인들을 그녀가 개인적으로 관리하는 땅으로 보낼 생각이었다. 그쯤은 되어야 차후 콜론인들의 안전이 보장되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루나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예비 기수로서 법도를 어기는 일이긴 했다. 언젠가부터 진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법도지만 말이다.
“티칸에 도착하면 칠색조가 밀항 경로를 짜 줄 거다. 그때 루나 누님의 땅으로 가서 이 편지를 보여, 알겠나. 디노?”
“……감사합니다, 진 공자.”
“감사하면 기사나 열심히 써. 지금껏 지플이 콜론에서 해 온 모든 개짓거리를 낱낱이 까발려라.”
“확실한 증거와 정황이 몇 있으니 기사를 내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만. 놈들의 언론 통제가 걱정입니다.”
진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세상에 지플을 싫어하는 사람이 너 하나뿐일까? 네가 물꼬를 트면, 룬칸델과 그 동맹 세력의 펜대들도 미친개처럼 같이 물어뜯어 줄 거다. 증거가 확실한 만큼, 알아서 여론전을 도와준다는 것이지.”
심증만으로 기사를 쓴다면 세상 그 누구도 디노의 기사에 관심을 갖지 않을 테지만.
확실한 증거품과 정황이 포함된 이상, 지플의 적대 세력들은 어떻게든 디노를 보호하며 여론전을 펼칠 터.
그렇게 되면 지플도 디노를 함부로 해할 수 없었다. 평소 ‘대외적으로는’ 정의와 선을 추구하는 그들이, 용감한 기자를 암살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아… 그것도 그렇군요. 미처 그 생각은 못 하고 있었습니다.”
“대大기자가 되겠군. 미리 축하를 전하지, 디노 재글런. 기사를 낸 직후부터 분명 너를 영입하려는 세력이 많을 텐데, 어느 곳에 소속될지 잘 골라 보라고.”
디노가 대기자가 되는 건 기정사실이나 다름이 없었다. 다른 가문도 아니고, 지플의 만행을 알릴 수 있는 기자란 세상에 정말 드문 존재였다.
“기사에 나와 동료들의 이름을 빼라는 것은 잊지 않았겠지?”
“물론입니다. 콜론을 구한 건 지나가는 행인… 무명의 실력자였다. 그렇게 작성하도록 하겠습니다. 당연히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그게 진 공자와 일행들이었다는 것도 마찬가지겠죠.”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놈들은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하면, 모든 악행은 뮤론 지플의 개인적 일탈이었다고 성명을 낼 거다.”
“예, 저도 그러리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증거품으로 챙긴 코젝의 부품을 그때 터뜨려. 놈들의 절대적 권력을 상징하는 배까지 이렇게 파괴되었는데, 어디서 오리발을 내미느냐고 말이야.”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도.
지플을 향한 대중들의 충성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터였다. 불편한 진실에서 조금만 눈을 돌리면, 지플은 더 많은 돈을 풀어 루테로 마법 연방의 백성들을 배불릴 테니 말이다.
그 모든 결과를 예상한 디노가 쓴웃음을 짓자, 진이 그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쾌거다. 이렇게 계속 한 방씩 먹이다 보면, 마침내 놈들이 침몰하는 꼴도 언젠가는 볼 수 있겠지.”
“그때까지 저는 기자이자, 콜론의 친구로서 사명을 다하겠습니다. 훗날… 진 공자가 룬칸델의 패권을 잡게 된다면 잊지 말고 저를 써주십시오.”
“기대하겠다.”
티카와 디노가 물러가자, 이번엔 진이 탈라리스를 찾았다. 그녀는 갑판 위에서 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왜인지 무라칸과 시시덕대면서 말이다.
“경황이 없어 제대로 인사를 못 드렸습니다, 탈라리스 님.”
“인사치레는 됐어, 룬칸델 막내 아가야. 내가 카시미르에게 들은 것보다 훨씬 더 엄청난 짓을 저질렀더구나.”
“설마 놈들이 백야와 코젝까지 보낼 줄은 몰랐습니다. 저 때문에 비궁이 지플의 표적이 될까 염려스럽군요.”
“흐응, 아니. 오히려 켈리악은 내가 더 강해진 줄 알고 비궁을 더 신중하게 대할 거야. 백야를 제압하고 코젝을 부순 게 나인지 정체불명의 옛 신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테니까 말이야.”
코젝이 반파된 건 클람의 ‘세상 모든 마력을 주관하는’ 권능 때문이었다. 백야의 마법사들이 모조리 마력 역류에 빠져 기절한 것도 마찬가지.
“백야의 마법사들은 옛 신이 강림함과 동시에 기절했어. 그래서 놈들도 내 힘이었다고 착각할 수밖에 없지.”
“그렇게 된다면 다행입니다.”
“그리고 나는 의뢰를 받고 일을 한 거잖니? 덕분에 오랜만에 이렇게 잘생긴 오빠랑 수다도 떨어 보고 말이야.”
탈라리스가 무라칸을 가리키며 웃었다.
“원래는 추가 보수를 엄청나게 뜯어먹을 생각이었는데 말이야… 룬칸델의 막내가 솔더렛의 계약자이자, 마검사였다는 정보까지 알게 되었으니. 그건 그냥 넘어가 줄게.”
웃고 있는 탈라리스의 진심을 읽기 어려웠다.
‘다행히 내게 호의를 보이고 있지만, 비궁이 내 정체를 너무 일찍 알아 버렸어.’
언젠간 세상 만인이 진의 능력을 알게 될 테지만, 지금은 최대한 숨겨야 했다. 만일 탈라리스가 비밀을 빌미로 진이 밑지는 거래를 요청하면, 지금으로선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가주가 되기 전에 협박을 시작하면 곤란해.’
지금은 좋은 사람으로서 진을 대하고 있지만, 탈라리스의 태도는 언제 바뀌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룬칸델과 비궁은 결코 동맹 관계가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진이 긴장한 기색을 감추는 사이, 탈라리스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 시리스의 남편감으로 더할 나위 없는 녀석인 것 같은데 말이야. 흐응, 어차피 막내니까 이 애기가 가주가 될 가능성도 거의 없고…… 시론을 한번 만나서 슬쩍 혼담을 꺼내 볼까?’
그 비정하고 치열한 룬칸델 속에서 가주가 되지 못한 채 좋은 시절을 다 보내느니, 차라리 비궁의 안주인이 되어 서해를 호령하는 게 더 낫다.
탈라리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씨익.
탈라리스가 웃어 보이자 묘한 한기를 느끼는 진.
“뭐, 그럼 이만 우린 돌아가도록 하지. 조만간 잘생긴 오빠랑 같이 비궁에 한번 놀러 와.”
보오옹!
하얀 차원문이 열리며, 눈두꺼비 모트가 갑판 위에 소환되었다. 잦은 차원 이동에 조금 지친 듯, 커다란 눈망울에 쌍꺼풀이 진 모습.
탈라리스와 시리스가 모트에 올라타자, 진이 목례를 했다.
“돌아가면 카시미르를 티칸으로 보내 줄게. 그 녀석은 혹시 비궁을 상대로 수작을 부린 걸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감옥에 가둬 뒀었거든.”
“아, 부탁드리겠습니다.”
“진 룬칸델.”
진과 시리스의 시선이 닿았다.
“다음에 만날 땐 꼭 다시 승부를 가릴 수 있으면 좋겠군. 오늘 일을 빌미로 날 봐줄 생각은 하지 마라.”
“미안, 미안. 우리 딸이 아직 사춘기가 안 끝나서. 그럼 나중에 봐!”
모트가 차원문으로 들어섰고, 칠색조의 범선은 유유히 티칸을 향해 나아갔다.
* * *
티칸으로 복귀하기까지 꼬박 열흘이 걸렸다. 지플의 추적을 대비해 이동 관문을 이용하지 않고, 일부러 여러 무역 항로를 이용하며 무역품까지 챙겼기 때문이었다.
“진 공자!”
뛰쳐나와 진을 맞이한 카시미르의 두 눈동자엔 그렁그렁 눈물까지 맺혀 있었다.
“중간에 저만 빠져 혹시 진 공자가 잘못되면 어쩔지,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릅니다. 루카스를 통해 공자가 무사히 콜론을 탈출했다는 사실은 들었지만… 이렇게 직접 보니 드디어 마음이 놓이는군요.”
“카시미르 경도 비궁의 감옥에 갇혀 고초를 겪으셨죠.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 유모는 매번 줄타기를 하는 기분이군요. 이번에도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만. 섭섭한 마음을 지울 길이 없네요. 왜 제게도 비밀로 하셨던 거죠?”
“어? 길리. 무슨 비밀 말이야?”
“도련님이 비궁의 영애와 사귀는 사이였다는 것 말이에요. 카시미르 경에게 그 이야길 듣고, 얼마나 서운했는지 모르실 겁니다.”
진이 난데없는 이야기에 고개를 갸웃하자, 다른 사람들도 모두 고개를 갸웃했다.
“어… 아니에요?”
“내가 시리스 님과 사귄다니 대체 무슨 소리야?”
“분명 카시미르 경이… 비궁주께 그렇게 들었다고 말했습니다만.”
모두의 시선이 카시미르에게 향했다.
“아,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처음에 탈라리스 님은 비궁설화를 보고도 진 공자를 돕지 않겠다고 단언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시리스 양이 구하러 가자고 의견을 피력하니…….”
-딸아, 혹시 진 룬칸델. 그 아이를 좋아하니?
-그건 아닙니다, 어머니.
-그럼 내가 왜 지플과 싸우는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그 꼬마를 구하러 가야 하지? 그냥 죽게 내버려 둬도 상관없잖니. 아니면 설마 나 몰래 연애라도 하고 있는 거야?
-아니라니까요! 그냥 도와주러 가면 안 돼요?
-싫어, 싫거든. 그냥 죽게 내버려 두지, 뭐.
-하, 어머니. 그 녀석은 내가 꺾어야 한다고요.
-그러면 인정하렴, 그 소년을 좋아한다고.
-하! 좋아요, 인정할게요. 됐죠? 이제 가요!
그게 카시미르가 감옥에 갇히기 직전에 들은, 탈라리스와 시리스의 대화였다. 카시미르는 그 대화 때문에 진과 시리스의 사이를 오해하고 있던 것이다.
당시 탈라리스는 그저 제 딸을 놀리기 위해 그렇게 말한 것이지만.
지금은 탈라리스가 진지하게 룬칸델 측에 혼담을 제의하려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진은 물론 모두가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