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40)
제 111화
47화. 키다드 홀의 죽음 이후(2)
카시미르가 구해놓은 것은 ‘무명패’라는 물건이었다.
무명의 본거지인 도시, ‘사밀’에 입장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물건. 무명패 없이 사밀을 찾아가는 건 곧 자살을 뜻했다.
그러나 무명패를 소지했다 할지라도 사밀에서 안전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사밀은 흑해 같은 미보호 구역보다도 위험한 곳이었다.
암살자들의 성지.
사밀엔 양민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곳에 주거하는 자들은 모두 무명이 되기 위한 생도들이며, 도시 자체가 거대한 훈련장이었다.
도시 속에서 언제나 암살 훈련이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훈련과 달리 생도 간 살인을 허용하며, 방문객 보호는 그들의 의무에 포함되지 않는다.
즉, 방문객을 암살 훈련에 사용해도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는 의미.
‘무명패를 소지하고 찾아간다는 건 곧 그들의 방식을 따르겠다는 의미니까.’
반대로 무명패가 없이 찾아간 경우는 곧장 방문객이 아닌 적으로 규정되었다.
방문객은 생도들에게 암살 시도를 당해도 잘 버티고 살아서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적은 도망에 성공해도 무명의 살생부에 올라 평생을 암살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무명의 살생부에 이름이 적히고도 살아남기를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을 다 통틀어도 많지 않다.
진이 무명패를 만지작대며 소파에 드러누웠다.
‘요나 누님이 있는 곳. 그리고 내가 요나 누님을 만나는 건, 예비 기수의 법도에도 어긋나지 않는다.’
요나는 현재 검의 정원, 룬칸델 소속이 아닌 무명의 살수. 따라서 진은 그녀를 만나도 가문의 처벌을 받을 일이 없었다.
회귀 후, 진은 1799년이 되기 전에 무명을 찾아가려고 했었다.
벌써 찾아가는 건 조금 이른 감이 있긴 했다. 무명 생도들의 암살 시도는 7성 이상의 기사에게도 위협적이니까.
‘무명 생도의 암살 시도 정도는 코웃음도 안 나올 때 찾아가려고 했지만…… 그 안에 쿠잔을 다시 만나거나, 그만한 수준의 독술사와 싸우게 될 일이 생기면 답이 없어.’
진이 무명의 도시 사밀을 찾아가는 이유는 독이었다.
‘세상엔 룬칸델의 축복받은 육체로도 감당할 수 없는 독이 너무 많다.’
회귀 후, 벌써 몇 번이나 사망 직전까지 내몰린 기억이 떠올랐다.
첫 임무에서 백랑족 전사 콰지토 트루카를 만났을 때, 안드레이와 싸움을 벌였을 때, 콜론에서 지플의 마법사들을 상대했을 때 등등…….
그중 가장 위험했던 건 바로 베리스와 쿠잔을 만났을 때였다. 쿠잔의 독에 당한 순간, 델키의 라이카 왕자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반드시 죽음을 맞이했을 터.
타이뮨의 죽음에서도 느낀 바가 많았다.
‘쿠잔도 계속 날 추격할 거고, 그 외에도 독을 써서 나를 죽이려는 놈들은 셀 수 없이 많겠지. 본가로 돌아간 다음에도.’
무명에 소속된 모든 이들은 훈련을 통해 독 내성을 길렀다. 사밀에서 훈련 중인 생도들마저 대부분 중급 독까지는 견딜 내성을 갖고 있었다.
생도들이 정식으로 ‘무명의 암살자’가 되면, 맹독에도 상당한 내성을 갖는다.
그러나 진이 원하는 건 그 정도가 아니었다. 그만한 내성은 이미 룬칸델로 태어난 순간부터 갖고 있는 것이다.
‘만독주, 그걸 얻어야 해.’
무명의 최고 살수들에게만 전해지는 비전 영약, 만독주.
그걸 마신 이들은 만독불침에 가까운 몸이 된다.
절대적인 만독불침은 기록에 남아 있지 않으나, 룬칸델의 초대 가주인 테마르와 현 가주인 시론 그리고 초대 무명왕 ‘코룬’만이 닿은 영역이라 추정될 뿐이었다.
물론 만독주는 얻고 싶다고 그냥 얻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무명왕의 인정을 받은 무명 소속 최고 살수들에게만 지급되는 영약이니 당연했다.
‘하지만, 전생엔 분명 앤 누님이 만독주를 마셨지. 1799년 무렵에.’
전생과 똑같이 흘러간다면 앤은 약 3년 뒤에 만독주를 마시게 될 것이다.
요나, 그녀가 선물로 준 것을 말이다.
‘요나 누님은 무명 역사상 최단기로 최고 살수 지위를 얻었어. 게다가 이미 본인은 날 때부터 만독불침에 가까운 몸으로 태어났으니, 만독주를 마실 필요도 없었지.’
그래서 요나는 자기 몫의 만독주를 가문에 바쳤다.
무명왕은 그 일에 크게 분노했으나, 두 가지 이유로 사건을 조용히 덮었다. 첫째로 그는 요나를 자식 이상으로 아끼기 때문에, 둘째는 룬칸델에 보복했다간 무명이 멸망할 걸 각오해야 하므로.
대신 무명왕은 룬칸델에 생색을 부려 요나를 무명에 계속 묶어두고자 했다. 요나가 계약기간이 끝난 후에도 무명에 남도록 말이다.
‘그쪽이 차라리 요나 누님에겐 좋은 일이었을 테지. 아무튼, 그때는 앤 누님이 만독주를 마셨지만… 이번엔 내가 갖는다.’
진이 느끼기에 앤은 명백히 조슈아의 편이었다.
그리고 진은 적들에게 좋은 것은 무엇이든 하나부터 열까지 망쳐버릴 예정이었다. 놈들에게 득이 될 것은 빼앗고, 해가 될 것은 가중시키고.
그렇게 차츰차츰 복수를 해나갈 것이다.
* * *
역류의 서 룬 치환이 완성되었다.
“아오, 드디어 끝났네, 망할! 이리 와서 등짝 대.”
“고마워.”
한 글자, 한 글자 진의 등에 룬 문자를 새기며 구시렁대는 무라칸.
진은 룬 문자가 새겨질 때마다 역류계 마법의 모든 것에 대한 이해도가 빠르게 상승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역류환과 역류폭을 비롯한 역류계와 심화 역류계의 일반 마법들은 물론이고.
키다드 스스로 ‘역천’이라 이름 붙인 역류계의 궁극 마법까지. 진이 흡족한 듯 웃음을 터뜨리자 무라칸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게 좋냐?”
“마법은 이런 게 좋아. 룬 문자 치환 같은 방식으로 검술 결전기를 얻을 순 없잖아.”
“그게 마법의 단점이기도 하지. 룬 문자가 없으면 배워봤자 제대로 된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경우가 많으니까. 나도 그래서 섬광포 안 쓰잖냐. 이 몸은 원래 그런 거 필요 없을 만큼 강하기도 하지만.”
“섬광포에 이어 무기 하나를 제대로 얻은 기분이야.”
“내가 해독하면서 잘 살펴봤는데, 꽤 쓸 만한 마법들이긴 하더군. 그 역천이라는 걸 대성하면, 지금도 7성 이하의 마법사들은 떼거지로 덤벼봤자 너를 잡을 수 없을 거다.”
역천은 쉽게 말해 하늘에 거대한 역류폭을 띄우는 마법이었다. 당연히 손바닥 위의 역류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하게 마력을 빨아들였다.
게다가 기존 역류 법칙을 또 한 번 깨부수는 마법이기도 했다. 역천은 대상이 술자보다 마력이 높아도 최소한의 역류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만일 키다드가 펼친 게 역류폭이 아닌 역천이었다면, 거울의 힘을 빌렸다 할지라도 그토록 쉽게 죽일 수 없었을 것이다.
“거울의 봉인에 무리가 갈 걸 담보로 얻은 마법인데, 그만한 가치는 있어야지.”
“하이고, 참나. 솔더렛이 전성기 때 만든 봉인이 9성 마법사 하나 족쳤다고 헐거워질 것 같냐? 좀 더 편하게 써도 돼, 그거.”
“그래도 찝찝해. 행여 봉인이 깨지면 세상이 멸망하잖아. 이런 건 만약의 만약까지 생각하면서 사용해야 된다고. 그리고 거울에만 기대면, 진짜 성장은 늦춰질 수밖에 없고.”
“뭐, 그건 그렇지.”
심드렁하게 말했으나 무라칸은 내심 감탄하고 있었다.
‘키다드라는 놈을 죽이면서 무한한 마력이라는 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절감했을 텐데, 이 쪼끄만 놈은 편리함의 유혹에 빠질 생각이 없어 보인단 말이지…….’
그리고 무라칸은 삼천 년을 넘게 살아오는 동안.
지름길의 유혹에 빠져 망친 천재들을 숱하게 보아왔다. 효율적으로 강해지는 건 분명 중요한 일이나, 세상에 마냥 쉽고 빠르게 강해지는 방법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흠, 어쨌든 기념으로 한 번 써볼까?”
“역천?”
“응.”
“잠깐 기다려, 영기 해방 좀 하게.”
“어차피 영창에 시간이 걸려, 아직 미숙해서. 9성 마법사의 궁극기였던 만큼, 마력이 좀 부족하기도 하고.”
“그리고 여기 실내거든, 미친 꼬마야.”
“훈련장만큼 넓은 실내지. 시작한다.”
진이 눈을 감고 역천을 영창하는 동안, 무라칸이 잽싸게 영기로 몸을 가렸다. 그에게도 마력이 있으니 역천의 영향력에 노출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후우웅- 카아아앙……!
이내 진의 손에서 빠져나온 마력이 천장에 거대한 구체를 이루기 시작했다. 천장을 다 가릴 정도로 커지기까지 15초.
영창이 끝나자, 구체가 맹렬히 회전하며 드넓은 거실 전체에 얕은 진동이 일었다.
“오!”
무라칸이 신기한 듯 역천을 올려다본 순간.
“진 공, 자아아악!”
막 진을 찾아 거실로 들어온 엔야가 거품을 물었다. 역천의 영향에 노출된 것이다.
“이런!”
황급히 역천을 거두며 엔야에게 다가가는 진. 무라칸이 그 모습을 보며 통쾌한 듯 손가락질을 했고, 진은 엔야를 끌어안듯 부축할 수밖에 없었다.
“괜찮습니까, 엔야! 미안합니다. 엔야 양이 근처에 있는 줄 몰랐…….”
척!
엔야가 엄지를 치켜들며 눈을 반짝였다.
“최고에요……!”
“예?”
“최고라고요! 지금! 완전 멋져요!”
역천이 최고고 멋지다는 건지, 지금 이 상황이 그렇다는 건지 구분하기 어려웠으나.
진은 일단 엔야가 크게 다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 다행입니다. 엔야 양이 다쳤다면.”
“잠깐만 이렇게 있어요! 아니 영원히! 지금 전 인생을 성공했다는 기분이 들… 억!”
어느새 다가온 퀴칸텔이 엔야의 뒷목을 후려쳤고, 엔야는 잠시 의식을 잃었다. 종종 있는 일이다.
“미친… 이제 엔야가 널 희롱하는 단계에 이르렀단 말이냐? 세상에, 아무리 좋아도 그래선 안 된다고 내 누누이 일렀거늘.”
그때쯤 무라칸은 신난 강아지마냥 바닥에 몸을 비비며 박장대소를 터뜨렸고 진은 한참 동안 퀴칸텔에게 상황을 설명해야만 했다.
“제 잘못입니다. 퀴칸텔 님, 엔야 양이 깨어나면 사과하도록 하겠습니다.”
“사과까지야… 됐다, 엔야도 정신 좀 차려야 하니까. 아무튼, 너 곧 사밀. 무명의 도시로 간다며? 네 누이한테 만독주 얻으러.”
“예. 아마 모레쯤 출발하지 않을까 싶군요.”
“거기가 어떤 동네인지는 알지?”
“알고 있습니다. 도시 자체가 거대한 훈련장이고, 방문객도 암살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한 곳이죠.”
“지금 네 수준이라면 무명 생도들의 공격 정도까지는 잘 버틸 것 같은데 말이야. 사밀은 네가 막으면 막을수록, 점점 더 강한 암살자들이 몰려오거든. 끝까지 막으면 최고 살수들이 와.”
“어, 그런 이야기는 못 들어봤습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그런 말을 밖에 퍼뜨릴 만한 놈들은 다 죽었거나, 무명에 대해서 이야기하길 꺼려할 테니까. 보통은 최고 살수가 오기 전에 죽거나 용무를 마치고 돌아가지만 말이야.”
퀴칸텔의 시대에도 무명은 유명한 살수 집단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동료들 중 무명에 대해 가장 많은 걸 알고 있었다.
“무명의 진짜 암살자들은 네가 아니라 네 누이라 해도 장담할 수 없어. 그러니, 암살자들을 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을 때. 이걸 꺼내서 보여줘. 그러면 살 수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