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49)
제 111화
50화. 이틀 긴 밤, 하루 짧은 밤(2)
퐁.
퐁퐁퐁…….
문제는 멸살암천화염옥 마황 1형의 불길이…… 거창한 이름에 비해 한없이 하찮았다는 것이다.
처음 보호막 사이를 비집고 나온 딱 한 줄기만 ‘맹렬할 뻔’했으나, 그마저도 순식간에 공기 중에 사라지더니 이내 거품처럼 퐁퐁거리는 작은 불꽃방울이 퍼지고 있을 뿐이었다.
“엥?”
“으잉?”
진과 단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이제껏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작은 감정 한 번 드러내지 않은(심지어 진이 6성 위력으로 조장을 압도할 때도, 단테가 비기를 펼쳤을 때도) 살수들의 목소리였다.
오죽 황당하면 감정 제어 훈련을 받은 무명의 상급 살수들이 그러겠는가.
그들은 두 소년이 죽어라고 마법사를 지키기에, 대체 어떤 무시무시한 마법이 완성될지 내심 긴장하고 있던 것이다.
퐁퐁, 퐁퐁퐁. 푸시시식…….
그런데 이런 앙증맞은 불꽃이라니.
심지어 물에 들어간 눈처럼 공기 중에 쉴 새 없이 녹아버리는 꼴이, 양초조차 녹이지 못할 수준이었다.
‘미친.’
잠시간 정적이 흘렀다. 굳이 시간을 따지자면 2초 남짓이지만 진과 단테, 베라딘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을 원망하기엔 충분했다.
특히 베라딘은 평소의 철면피는 온데간데없이 귓불까지 얼굴이 새빨개진 모습.
‘멀쩡한 위력이 나올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심한데.’
멸살암천화염옥 마황 1형.
그 거창한 마법은 한 특별한 힘이 없는 한 10성, 아니. 창성 마법사라 할지라도 완벽하게 펼칠 수 없었다.
다만 진은 베라딘이 지플의 정통 후계인 만큼, 최소한 1할 정도 위력은 가능하리라 기대했었다.
“다 했나?”
그사이 황당한 마음을 억누른 조장이 처음으로 목소리를 냈다. 살수들도 낮은 조소를 터뜨리며 저들끼리 눈짓을 주고받았다.
그들도 사람인만큼, 방금까지 받은 수모를 되돌려주고 싶은 것이다. 특히 싸움은 당신들 전문이 아니라는 진의 한마디에 받은 모욕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무명의 상급 살수 열 명이 지금껏 덜 자란 괴물들을 죽이지 못했다는 것도 치욕이었다. 행여 바깥에 알려지면 무명 전체의 위신에도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는.
그러나 조장은 실수를 되풀이할 정도로 미숙한 사람이 아니다.
‘검은 머리에게 비장의 수가 남아 있을 것이다. 근접전의 변수가 될 수 있으니, 원거리 공격으로 끝낸다. 놈들이 그곳까지 가기 전에!’
조장이 신호를 보내자 살수들이 사삭 흩어지며 다시 진을 펼쳤다. 단테에게 당해 부상당한 살수들까지도.
그 정도 부상에 임무를 속행하지 못할 정도라면, 그들은 상급 살수로 임명되지 않았을 것이다.
재빨리 단테와 베라딘을 살펴보는 진.
‘단테는 체력이 거의 동났고.’
후욱, 후.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이 거친 숨결이 증명했다.
‘베라딘은…… 아이, 이 망할 자식이. 역류 초기 증상!?’
그때까지도 부끄러움에 몸서리치던 베라딘은, 그야말로 콸콸 코피를 쏟고 있었다. 멸살암천화염옥 마황 1형의 식이 꼬이며 마력이 조금 역류된 것이다.
업고 뛰는 동안 빌어먹게도 무겁던 가방에서 일각수 뿔이 튀어나온 것이 그나마 위안이랄까.
그러나 일각수 뿔을 깨먹어도 역류 반응이 사라지기까지엔 최소 한 시간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두 사람은 사실상 비전투 전력이 된 셈.
“오, 오랜만에 펼쳤더니 식을 헷갈린 것 같아…… 워낙 복잡해서…… 콜록, 콜록!”
베라딘이 기어드는 목소리로 변명을 늘어놓자, 단테가 괜찮다며 그 곁에 섰다. 물론 지켜보는 진의 입장에선 복장이 터질 노릇이지만.
‘어쩌겠어. 애초에 저것들이 싸우자고 했을 때 말리지 않은 내 업보지.’
아직 답이 없는 상황까지 온 것은 아니었다.
“단테, 베라딘 업고 달려. 내가 살수들 떨궈내면서 뒤따라갈 테니까.”
“그대 혼자 괜찮겠소?”
“응, 나는 괜찮아. 그런데 너흰 죽을 수도 있지. 정말 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뛰지 않는다면 말이야.”
“앗.”
“아아.”
진의 말뜻을 알아챈 베라딘과 단테가 탄식을 내뱉었다.
이런 탁 트인 땅에서라면, 사실상 진은 살수들에게 당할 위험이 없다. 열 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지 않는 이상 근접전에선 우위를 점할 수 있고, 암기는 쳐내면 그만이었다.
무엇보다 다시 추격전으로 흘러갈 테니 열 명에게 포위를 당할 일도 없었다. 애초에 순수 달리기는 진과 단테가 그들보다 빠르기에 여기까지 온 것이다.
“내가 모든 암기를 다 쳐낼 수 있길 빌면서…… 뛰어!”
진이 살수들을 향해 검기를 날리며 소리쳤다. 초승달 형태의 시퍼런 검기가 날아들자 잠시 살수들의 대열이 흐트러졌다.
동시에 베라딘을 번쩍 들어 안은 단테가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만일 암기가 하나라도 진을 지나쳐 그들의 등을 찌른다면, 지플과 하이란은 후계를 잃게 될 터였다.
그건 차후 룬칸델의 가주가 될 진에겐 호재에 더 가깝다.
그리고 진은 미래의 호재보다 기분에 충실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들이 죽지 않았으면 하는 현재의 기분에.
‘어떻게든 중심부까지만 내가 잘 지키면, 분명 다 같이 살 수 있을 것이다!’
무명왕이 ‘반드시 도시 중심으로 도망쳐라’고 말한 것엔 다 이유가 있을 터. 진이 믿는 희망은 그것이었다.
“크아아아!”
단테가 괴성을 지르며 뛰자마자 암기 세례가 이어졌다.
챙! 키킹! 캉!
진은 그 뒤에 붙어 달리면서도 계속 돌아보며 암기를 쳐내는 신기를 보였는데, 한 달 전이었다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최근 진은 자신이 새로운 성취에 다가섰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심안이 거의 열렸다.’
문득 토나 형제와 청아석 훈련을 하던 때가 떠올랐다.
중급반 비밀훈련장에서 매일같이 토악질을 해대던 토나 형제의 실수로, 어디서든 청아석이 날아들던 그때.
바로 그때 처음 느낀 그 기묘한 감각. 어디서 철 구슬이 날아들건, 날아들 예정이건. 마치 그 방향과 궤적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 같은…….
‘이 도시에 와 지금껏 그 고생을 한 게 헛것은 아니었군. 요나 누님 덕인가.’
아직 만독주를 얻은 것은 아닌데다 몇 번이나 목숨의 위협을 느꼈으니, 감사하다는 마음은 일지 않았다.
‘모레까지 반드시 살아남아 누님께 만독주를 받고, 무명왕이 약속을 이행하도록 만든다.’
물론 단테와 베라딘도 살려서 길이길이 생색을 낼 것도 잊지 않을 예정이었다.
* * *
두 번의 긴 밤이 지났다.
이틀 차에도 세 사람과 살수들의 추격전은 거의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갔다. 진 파티 암살조로 편성된 상급 살수는 스물로 늘었으나, 오히려 첫날보다도 쉽게 끝낼 수 있었다.
무명왕의 지도를 따라 도시 중심부로 향하는 대로가 나왔을 때, 굳이 오기를 부려가며 전면전을 펼치지 않은 덕이었다.
“그 대로만 넘어가면 살수들이 거짓말처럼 공격을 멈출 줄이야. 신기하고 매력적인 전통이야.”
“무명 살수들의 전통이 아니었다면 그저께는 우리 둘이. 어제는 셋 다 죽었을 거요, 베라딘.”
사밀의 중심부.
그곳은 무명 살수들의 가족들과 특별한 은인들이 기거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무명의 살수들은 적의 침략이나 그에 준하는 비상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무슨 일이 있어도 그곳에선 검을 뽑거나 흉수를 쓰지 않는 전통이 있다.
즉, 사밀의 유일한 금살 구역이라는 뜻.
퀴칸텔조차 모르는 전통으로, 그녀가 왕성히 활동하던 시대 이후에 생긴 불문율이었다.
“베라딘은 무슨 베라딘. 앞으로 멸살암천화염퐁퐁옥 마황 1형 공자라고 부르기로 했잖아.”
“그만 놀려……! 사람이 실수도 할 수 있는 거지.”
“사람이 놀릴 수도 있는 거야.”
진은 피식 웃었고 단테는 험험 기침으로 웃음을 억눌렀다.
“흠! 아무튼, 저녁에 놈들이 찾아올 때마다 사밀 중심부로 도망치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 같은데, 너랑 무명의 높은 분이 했다는 내기는 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매번 중심부까지 도망치기만 해도 되는 내기는 아닐 것 같소만. 무명의 높은 분은 누군지도 궁금하오.”
반짝반짝 눈을 빛내는 두 사람은 내심 진이 내기의 내용까지 자세히 말해주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사실 내기가 아니라 명령에 더 가깝지만, 진은 정정해주지 않고 딴청을 피웠다.
‘무명왕과의 약속대로라면 오늘 나는 저녁이 오기 전에 이 둘을 사밀 바깥으로 보내야 해.’
-모레 아침이 밝으면 두 차기 가주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도록 종용해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네 말을 듣지 않는다면 무력으로 제압해서라도 내보내도록 해라.
오울이 넣어둔 지도 덕에 일단 지금까지는 약속을 성실히 이행했다.
사실 그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중심부로 도망치는 꼼수를 썼다지만, 세 사람이 사밀에서 무명의 상급 살수 수십을 상대로 이틀이나 생존했다는 걸 세인들은 쉽게 믿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세 사람도 오늘만큼은 절대로 버틸 수가 없었다.
‘오늘 밤엔 분명 최고 살수가 온다. 그리고 무명왕은 여전히 내 옆에 붙어 있는 단테와 베라딘을 보며 간담이 서늘해지겠지.’
진은 두 사람을 도시 밖으로 내보낼 생각이 없었다.
“내기는 오늘이 마지막 날이야. 둘 다 저녁까지 푹 자.”
“오오, 이 고생을 한 번만 더하면 된다는 말이군.”
“네가 이겨서 뭔가 받으면, 꼭 우리랑 나눠야 한다? 그럴 거지? 각축장 때처럼 말이야.”
“응.”
기념품은 줄게.
진이 뒷말을 삼키며 웃었다.
* * *
“오울 님, 지금부터 제 질문에 솔직히 답해주세요.”
“음…… 요나야, 무엇을 말이냐?”
“도와줬죠?”
오울이 뜨끔한 기색을 감추며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소리냐?”
“말이 안 되잖아요. 어떻게 막내랑 그 이상한 놈들이 이틀이나 연속으로 금살 구역으로 가느냐고요? 이건 분명 무명왕님이…….”
“하하, 절대 그런 거 아니란다.”
“거짓말 다 티나요, 히히.”
요나가 웃으며 말하자 등골이 오싹해지는 오울이었다.
“크흠, 그나저나 도시 파괴 건에 대한 반성문은 다 썼…….”
“히, 오울 님이 먼저 약속을 어겼으니 오늘은 제가 직접 나설 거예요.”
“날 믿지 못하는 것이냐?”
“네. 그리고 오울 님은 지금부터 저녁까지 저랑 꼭 붙어있어요. 또 걔들을 찾아가 도움을 줄지도 모르니까요.”
“허허.”
허탈한 듯 웃지만, 오울은 애초에 사태가 이렇게 흘러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어차피 두 사람은 그 총명한 녀석이 잘 내보낼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최고 살수보다 요나가 일대일로 진을 노리는 게 낫다. 요나는 진을 아끼는 듯 보이기도 했으니…… 자비를 베풀어줄지도.’
확신할 순 없었다. 요나의 성격엔 짙은 혼돈이 배어 있으니, 사랑하는 동생도 얼마든 죽일 수 있는 것이다.
“이제 곧 저녁이네요. 그 애들이 죽을 때가 됐다는 뜻이죠. 같이 가실 거예요?”
“그러마.”
“히히!”
소리 없이 진 파티가 있는 여관으로 향하는 두 사람.
건너편 건물 지붕에 자리를 잡았을 때, 오울은 뒤통수가 찌르르 당기면서도 가슴이 콱 막히는 경험을 해야만 했다.
‘저, 저. 왜 세 놈이 다 같이 있는 것이야!’
커튼이 쳐지지 않은 창 너머로 똑똑히 보였다. 세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이.
심지어 진만 깨어 있고, 베라딘과 단테는 아직까지도 침대에 퍼질러져 자고 있기까지 했다.
“요, 요나야.”
“죽이기 좋게 오손도손 예쁘게도 모여 있네요…….”
“잠깐 기다…….”
“어!?”
“허!”
별안간 두 사람의 동공이 커졌다.
진의 손에 쥐어진 것을 본 것이다. 퀴칸텔이 준 바로 그 물건.
그리고 놀랍게도, 진은 정확히 요나와 오울이 있는 쪽으로 그것을 내보이고 있었다.
요나가 홱 고개를 돌려 오울을 쏘아보았다.
“그래도 명색이 무명왕인데, 저것까지 줬어요!? 쟤들을 살리려고!”
“아, 아니야, 이건 정말 아니다, 요나야!”
오울은 실로 오랜만에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