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157)
제 111화
54화. 사칭, 짠(1)
1796년 10월 17일 정오.
진과 엔야는 비먼트 남부 중소도시 ‘호슨’의 한 여관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제가 지금 비먼트를 돌아다니고 있다니 기분이 이상하긴 해요. 공자를 처음 만났을 때, 티칸 무역선에 숨어들어 도망치던 날도 떠오르고요.”
“그래서 신분증도 새로 만들고, 변장……도 했으니. 너무 걱정하진 마요. 그리고 공자가 아니라 형이라고 불러야죠.”
진은 예비 기수가 되자마자 얻은 ‘진 그레이’의 신분증을 그대로 사용했고, 엔야는 칠색조가 ‘오스틴 그레이’라는 위조 신분증을 새로 만들어주었다.
행정상으로 엔야는 비먼트에 존재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는 비먼트의 비공식 수배자이기도 하므로, 남장까지 한 상태.
풋.
진이 참고 있던 웃음을 내뱉었다. 콧수염을 붙이고, 펑퍼짐한 남성용 로브에 파묻힌 엔야의 평소 모습이 어떤지 아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형! 제가 웃겨요?”
“솔직히 아니라곤 못 하겠군요. 목소리도 조금 더 걸걸하게 내도록 노력하세요. 그리고 저도 이제부터는 반말을 할 겁니다. 우린 친형제니까. 오스틴도 원하면 반말 써.”
“크헐헐헐. 이렇게요? 이 정도면 충분히 걸걸해요?”
“훌륭해.”
밝고 명랑한 두 사람의 대화와 다르게.
호슨은 해가 쨍쨍한 대낮인데도 거리에 음울하고 무거운 기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어두운 표정을 한 채 힘없이 걸었고, 들개들의 눈빛엔 두려움이 가득 배어났다.
여관으로 오는 동안 지나친 시장마저 한산했다. 물건을 내놓고 파는 이를 찾기 어려울 만큼 도시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이다.
‘암흑마법회 잔당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그들이 짐을 푼 여관에서 말로 한 시간을 달리면 제국 중남부로 이어지는 긴 숲길이 나온다.
현재 암흑마법회 잔당들은 그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서너 명씩 조를 짜서 마을을 습격하고, 약탈하며 횡행을 이어가는 중이다.
때문에 거리마다 무장한 경비병들이 깔려 있지만, 그들의 분위기도 주민들과 썩 다르지 않았다.
영주의 명령이므로 어쩔 수 없이 순찰을 하는 것일 뿐 피곤하고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나저나 형, 암흑마법회 잔당들 말이에요. 아주 나쁜 놈들인가 봐요. 아까 경비병이 하는 말 들었죠? 어린애들까지 서슴없이 납치한다면서요. 여기가 비먼트가 맞나 의심이 될 지경이에요.”
“너는 수도에서 지냈으니 더 이상하게 느껴지겠지. 비먼트 수도보다 치안이 좋은 도시는 세상에 몇 없으니까.”
“그 악당들을 이제부터 저랑 형이랑 다 쳐부수면 되는 거죠?”
“아마도. 일단 놈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려보자고.”
하지만 밤이 되자 먼저 나타난 것은, 한 무리의 귀족 마법사들이었다.
난데없이 휘황찬란하게 도금한 고급 마차가 호슨의 관문을 통과하고 있는 것이다.
마차를 구경하러 양민들이 몰려들었고, 진과 엔야도 거리로 나서 인파에 섞였다.
“아카데미의 마법사들이다!”
“놈들을 소탕하러 온 게 분명해!”
마차에 꽂힌 깃발마다 비먼트 마법 아카데미를 상징하는 금독수리 문양이 가득했다.
-귀족들의 사냥감으로 두는 것이죠. 제 생각에, 비먼트 수비대가 암흑마법회를 치지 않고 있는 건, 분명 아카데미 마법사들이 활약할 기회를 만들어주려는 속셈일 겁니다.
‘아니길 바랐는데, 카시미르 경 말이 정확히 들어맞았군. 게다가 하필 우리랑 똑같은 날에 도착할 건 또 뭐야?’
진이 쯧 혀를 차며 로브 후드를 고쳤다.
“어…….”
엔야는 마차를 마주하자마자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그녀는 아카데미에 좋은 기억이 단 하나도 없는 것이다.
“형, 왜 하필 저 사람들이……? 좋은 일 하러 온 모양이긴 한데…….”
“겁내지 않아도 괜찮아, 오스틴. 별것 아닌 놈들 같으니까.”
진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작 암흑마법회와 싸운다고 할 때도 위축된 적 없는 그녀가 아카데미 깃발을 보자마자 굳는 걸 보니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응, 고마워요.”
진도 전생에서 한창 마법을 익힐 무렵, 비먼트 아카데미 출신 마법사들과 웬만해서는 상종을 하지 않았다.
그들의 특권의식과 선민사상이 역겹기 때문이었다.
진이 만난 아카데미 출신 모두가 그랬던 건 아니지만, 마차에 쓸데없이 금칠을 해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그들은 대부분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하고 잘난 줄 아는 부류였다.
‘뭐,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야. 실제로 적당히 재능 있고 배경 좋은 놈들이 모인 건 사실이니까. 놈들이 평민인 엔야를 얼마나 하찮게 여겼을지는 안 봐도 뻔하지. 장학생이라는 것에 대한 질투와 시기가 하늘을 찌르기도 했을 거고.’
진이 보기엔 엔야가 그들 대부분보다 백만 배는 더 재능을 타고났다. 혈통을 그토록 중요시한다는 시간의 신 올타가 평민 소녀에게 계약을 제의할 정도였으니.
“마차에 어설프게 금칠 해둔 걸 보니, 대부분 정식 마법사도 아니군. 한창 자부심에 젖어 있는 생도들이 분명한데, 내가 보기에 저것들로는 암흑마법회 소탕 못해.”
“예? 생도라고 해도, 다들 꽤 대단한 마법을 구사하긴 할 텐데요. 평균 4성 정도는 될 거예요. 암흑마법회 잔당들은 3성에서 4성 50인에, 상급마법사 몇이 섞인 정도잖아요.”
“그래서 상대가 안 된다는 거야. 잔당들은 하나같이 음지에서 더럽게 굴러온 베테랑들이거든. 그리고 생도들은 아직 실전과 이론은 전혀 다르다는 걸 모를 수밖에 없는 시기지. 잔당들에 비해 숫자도, 경험도 부족해.”
마차는 총 열 다섯 대.
한 대당 두 명의 생도가 탔다고 가정해도 서른 명에 불과했다.
“그래도 아카데미 위원회가 생각이 아예 없진 않을 테니, 정식 마법사 한둘쯤은 섞어 보냈을 거야. 카시미르 경이 말한 ‘전공 몰아주기’에 흠집이 나지 않도록, 적당히 7성 정도로.”
“으음, 아카데미 출신 7성 마법사가 둘이라면 우리가 나설 기회는 아예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진이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그건 지켜봐야 알겠지.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나온 김에 간단하게 맥주도 한잔하고.”
“오오, 좋아요, 형!”
아카데미 생도들의 화려한 등장은 파급력이 상당했다.
음울했던 거리가 순식간에 환해졌다. 굳게 닫혀있던 식당과 선술집들이 문을 열었고, 뒷골목에 작게 형성된 유곽까지 불을 밝혔다.
돈 잘 쓰기로 유명한 귀족 생도들이다. 도시를 구하러 온 영웅들이기도 하니, 오랜만에 도시에 활기가 퍼질 수밖에 없었다.
진과 엔야는 적당히 요리와 주류를 함께 판매하는 주점을 골랐다.
“형, 정말 다 시켜도 돼요?”
“그럼.”
“제일 비싼 메뉴들인데?”
“……오스틴. 나를 포함해 우리 동료들이 대부분 어마어마한 부자라는 자각이 조금 필요하지 않을까? 뭘 그런 것까지 물어봐?”
“하지만 저는 부자가 아닌 걸요. 티칸에선 몰랐지만, 밖에 나오니 왠지 함부로 돈을 쓰기가 꺼려진단 말이에요.”
“돌아가면 티칸 중앙은행이나 대륙 통합 철룡은행, 반켈라 영원창고 중 하나 골라서 개인 창고 개설해. 온전히 너 혼자 쓸 수 있는 용돈 좀 챙겨줄 테니.”
“펴, 평생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형님! 돌아가면 사인도 해주셔야 해요!”
“그래, 그래.”
일반적인 기준에서 대충 금화 오천쯤이면 본인이 상당한 부자라고 느끼려나.
고민하는 사이 잔뜩 신이 난 엔야가 온갖 메뉴를 주문했다.
“어어, 로브에 지팡이? 자네들도 마법학도인가보군. 아까 온 생도님들의 종자들인가?”
굉장히 실례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주인장을 보며, 진이 고개를 저었다. 두 사람의 행색에서 썩 부내가 나진 않으니 오해를 산 것이다.
“그냥 지나가는 길에 우연히 들른 여행자들입니다. 아카데미와는 관계없으니, 특별히 서비스를 주지 않아도 됩니다.”
“아아, 그렇군. 허허, 하지만 이 친구가 아주 화끈하게 우리 특제 메뉴들을 전부 주문했으니 서비스는 안 줄 수가 없구먼. 보기보다 부자인가 보오.”
주인장이 사람 좋게 웃으며 주방으로 물러났다.
“형님, 기분 나쁘셨을 텐데 의외로 부드럽게 넘기시네요? 형님을 보기 전엔 룬칸델이라면 다 엄청나게 악독하고 무서운 사람만 있는 줄 알았다니까요.”
소곤소곤 진의 눈치를 살피는 엔야를 보니 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악의 없이 말실수를 좀 한 것뿐이잖아. 서비스도 잘 챙겨준다고 하고. 내 다른 형제였다면 상황이 달랐을 것 같긴 해. 아마 목이 떨어지고 팔다리가 사라졌을지도 몰라.”
진도 소곤소곤 대답하며 미소를 지었다.
“악독하고 무서운 사람만 모인 것 맞네요! 형님만 빼고.”
“그런데 왜 형에서 형님으로 호칭이 바뀐 거야?”
“용돈을 주시기로 했으니까, 흐흐.”
지글지글, 칙칙! 가게가 작아 불과 기름을 쓰는 소리가 선명히 번진다. 맛 좋은 냄새는 덤이고, 미리 나온 맥주 두 잔을 짠, 부딪치려는 찰나.
끼이익.
또 다른 손님이 가게로 들어섰다.
그리고 진은 문이 열리는 순간부터 불길한 예감이 일어,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었고 말이다.
“나 원, 영주 놈 아부 떠는 것 듣다가 입맛 버려서 식사도 못 했잖아. 그 돼지 같은 얼굴로 우효효, 웃으며 손을 싹싹 비비는 게 가당키나 하냐고?”
“동감이야. 그래도 선배들이 이쪽 지방 길거리 음식이 먹을 만하다고 했으니까, 한 번 기대해보자고. 어이, 주인장!”
“아이고, 예이, 예이!”
후다닥 달려 나온 주인장이 두 사람을 향해 연신 허리를 숙였다. 진, 엔야와 달리 금실이 들어간 흰 로브에 최고급 지팡이를 들고 호슨을 찾은 아카데미 생도들인 것이다.
‘어쩐지 편히 식사하기는 글른 것 같은데.’
괜한 시비에 휘말리기 전에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생도 셋은 주인장에게 주문을 하면서도 노골적으로 진과 엔야를 훑어보고 있었다.
무시하기 딱 좋아 보이는 추레한 행색의 마법학도가 둘이나 있으니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 고양이가 생선 앞을 그냥 지나지 못하듯.
진이 맥주잔 아래 금화 세 장을 깔았다. 그냥 나가더라도 식대는 치러야하니 말이다.
“오스틴, 우린 그냥 나가…… 음?”
그런데 엔야의 태도가 이상했다. 주먹을 꼭 그러쥔 채, 눈동자를 떨고 있는 것이다. 펑퍼짐한 로브 아래로 자그마한 몸뚱어리가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것도 느껴졌다.
‘설마? 정말, 하필?’
하필이면 저것들이 엔야를 괴롭히던 생도들이라고?
진이 엔야와 눈을 맞췄다.
“오스틴, 내가 생각하는 그거 맞아?”
“아, 형. 그게…… 어. 맞아요. 어, 얼른 나가요, 우리.”
원한다면 뒷일 생각 안 하고 두들겨 패줄게.
그렇게 말하고 싶으나, 엔야를 진정시키는 게 우선일 터.
‘대체 얼마나 괴롭혔기에, 엔야 양처럼 밝은 사람이 이렇게까지 무서워하는 거야……?’
까드득, 이를 갈며 일어서려는 순간.
“거기, 너흰 어디 소속이냐? 우리 종자들은 아닌 것 같은데.”
생도 하나가 울고 싶은 사람의 뺨을 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