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1)
제 22화
9화. 마음의 눈이 대체 뭔데?(5)
세계 유일의 창성기사, 시론 룬칸델.
그는 4년 전 검의 정원에서 자신의 막내아들을 환영해 준 이후, 곧장 다시 흑해로 떠났다. 언젠가 막내아들에게 받은 화두가 풀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나는 신보다 강할 수 있나.’
흑해의 마물들은 시론에게 덤비지 않는다. 놈들은 시론이 앉아 있는 흑해 중앙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잡아먹고, 잡아먹히고.
시론은 흑해의 그런 단순함이 마음에 들었다. 그가 늘 흑해를 찾는 여러 이유 중 하나인 것이다.
며칠 전 한 기사가 흑해를 찾았다.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마물을 베어 피를 뒤집어쓰는 수고를 마다 않고, 마침내 시론을 만날 수 있었다.
“칸입니다, 가주님.”
시론은 돌아보지도 않고 감은 눈을 떴다. 정좌하고 있는 그의 몸이 바닥에서 한 뼘쯤 떨어져 있었다.
“말하라, 칸.”
칸이 갑옷에 묻은 피를 닦으며 시론의 곁으로 다가왔다.
경직된 얼굴로 한참 동안 무언가를 보고하는 칸. 그리고 덤덤한 얼굴로 칸의 보고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시론.
이야기를 듣는 시론의 얼굴에 한 번씩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이상입니다.”
허공에 뜬 시론의 몸이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왔다.
“막내가… 그랬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가주님.”
칸이 보고한 것은, 최근 초급 훈련반에서 진이 일으킨 소동에 대한 내용이었다.
가론은 그 일에 대해 단단히 함구하겠다고 말했으나, 룬칸델의 주인에게까지 비밀로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시론의 심복인 칸에게 알린 것이다.
물론, 다른 이들에겐 알리지 않았지만 말이다. 가론은 현재의 진이 두렵지 않았으나, 미래의 진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크허허.”
별안간 시론이 고개를 젖히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이 막내의 신념이로구나. 패도를 걸으면서, 때로는 나약한 인간도 보듬겠다는 건가.”
칸은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씨익, 시론의 입가에 큼직한 미소가 걸렸다. 반신의 경지에 오른 후, 요즘처럼 많이 웃는 날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 신념에, 과연 가치가 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겠지. 칸.”
“예, 가주님.”
“돌아가서 가론에게 이렇게 전하라. 중급으로 진학시키기 전에, 막내에게…….”
칸은 가주의 전언을 전하기 위해, 다시금 몇날 며칠 마물을 뚫고 돌아가야 할 예정이었다.
* * *
1795년 1월.
열다섯의 진은 3성 기사로 인정받았고, 초급 훈련반에서의 마지막 휴식을 누리고 있었다.
매년 초가 되면, 생도들은 2주의 자유 시간을 하사받는다. 1년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지는 훈련 중 유일한 휴식기였다.
일종의 방학인 셈이다.
대부분의 생도들은 그 시기에 보통 고향에 다녀온다. 뛰어난 생도들은 개인 훈련과 점검을 실시하며, 더 뛰어난 생도들은 휴페스터 연합국의 대장간을 돌아다니며 자신만의 검을 주문한다.
검을 주문하는 이유.
그것은 생도 자신이 ‘진학 대상’이라는 걸 명확히 인지한 경우였다. 결과는 휴식기가 종료된 후 발표되지만, 굳이 까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영역인 것이다.
중급반부터는 더 이상 훈련용 목검이 아니라, 손에 딱 맞춘 본인의 검을 사용했다.
메사 밀카노를 비롯한 훈련반 최상위 생도들이 무기를 구하러 검의 정원을 잠시 떠난 이유였다. 그들은 결과를 보기 전에 스스로가 진학 대상인 걸 알고 있었다.
“진, 막내야.”
“첫째 누님.”
당연히 올해 초급 훈련반의 최고 성적자는 당연히 진이다.
진이 생도였다면, 아마 메사 무리와 함께 지금쯤 휴페스터의 대장간을 돌아다니고 있을 테지만.
그는 룬칸델이다. 명검이 발에 채이다 못해 썩어 넘치는, 검술명가의 막내아들인 것이다. 가문 무기고에서 아무거나 한 자루 골라잡으면 된다는 뜻.
맞춤 제작 따윈 필요 없다. 수천 자루의 명검이 있는데, 그중 한 자루쯤은 무조건 손에 착 감겨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네게 어울리는 검을 찾느라, 오랜만에 꽤 머리가 아팠다.”
그러나 진은 스스로 검을 고를 수 없었다. 루나가 직접 선물하겠다며, 한 달을 들들 볶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검을 보는 눈은 지금의 진보다, 루나가 백만 배는 더 나으니 나쁠 게 없는 선택이었다.
“기대하겠습니다, 누님.”
쿵!
루나가 자신의 등에 메고 있는 한 자루의 거대한 도끼검을 바닥에 내려 두었다. 그녀의 애검인 ‘크란텔’과는 다른 것이었다.
진으로선 아리송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루나가 내려놓은 도끼검은, 진의 몸뚱어리보다도 더 커 보이는 것이다.
반면 루나의 눈에선 반짝반짝 빛이 났다.
“한 때 ‘베일즈의 학살’이라 불린 검이지. 내가 십대 때 즐겨 사용한 녀석이기도 하고.”
도끼검이란 무엇인가?
이름 그대로, 검 끝에 도끼날을 달아 놓은 무기다. 크고, 육중하며, 더없이 거칠게 생긴 이 무기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루나 룬칸델이 열다섯 때 직접 고안하기 전까진, 아무도 이 기괴한 검을 사용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즉, ‘베일즈의 학살’이라는 이 도끼검과 이름의 유래 역시. 루나가 보낸 파란만장한 사춘기의 결과물이라는 의미.
“어떠냐? 마음에 드니?”
순진무구한 얼굴로 말하는 루나. 진은 오소소 소름이 돋아 헛기침을 했다.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순식간에 시무룩해진 루나가 어설픈 웃음을 지었다.
“하하, 농담이다, 농담.”
농담이 아닌 것 같은데요, 진은 그 말을 속으로 삼키며 허허 웃었다.
루나는 몇 초쯤, 진이 이 도끼검을 받는 일말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다가. 이내 한숨을 쉬며 다른 검을 꺼내 놓았다.
“어쩔 수 없구나, 그럼 이 검을…….”
루나가 내민 검은 장식 하나 없이 단정한 검은 검집에 꽂혀 있다.
언뜻 평범한 물건처럼 보이나, 검을 받아 든 진의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막내 너는 선택 의식에서 바리사다를 골랐으니까. 이게 가장 어울리겠지. 네 검술에도 잘 맞을 거고.”
스르릉.
천천히 검을 뽑자, 눈처럼 새하얀 순백의 검신이 드러났다.
‘브라다만테!’
진이 속으로 검의 이름을 외치며 감탄했다. 태양빛에 물든 것도 아닌데, 다이아몬드처럼 다각으로 반짝이는 검신에 금방이라도 마음이 홀릴 것 같았다.
브라다만테.
초대 가주, 테마르 룬칸델이 사용한 바리사다의 형제검이자 시험작. 바리사다를 제외하면, 브라다만테보다 뛰어난 검은 룬칸델의 무기고에도 그리 많지 않았다.
전설의 대장장이 ‘피콘 민체’가 바리사다를 주조하기 전, 시험작으로 만든 물건임에도, 이름난 명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다.
“마음에 든 모양이로구나.”
“물론입니다, 누님. 가문의 명검 중에서도 아주 뛰어난 물건이니까요. 감사합니다.”
담담하게 말했으나, 진은 사실 너무 좋아서 어린애처럼 방방 뛰고 싶을 지경이었다.
‘루나 누님이 아니었다면, 내가 직접 골랐어도 이걸 얻긴 쉽지 않았을 거야. 브라다만테라니… 무라칸이 나중에 반드시 구하라고 했던 검인데!’
브라다만테는 특히 뛰어난 편에 속한 검인만큼, 형제들 중에서도 탐내는 자가 많았다.
그러나 이 검이 진에게 더욱 특별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영기.
바리사다와 브라다만테는 영기를 머금었을 때야 그 진가가 드러나는 검.
그건 그림자를 다루는 이들에게만 허락된 비밀이었다.
“브라다만테는 다른 형제들도 탐내는 검인데… 제가 누님께 어떻게 보답해야 좋을지 모르겠네요.”
“보답이라. 넌 아직도 나를 불편하게 생각하는구나. 서운해질 것 같군.”
“누님, 그게 아니라.”
“아무래도 이 서운한 마음을 달래려면, 널 괴롭혀야겠어. 당장 눈을 감아라, 동생아. 수련을 시작하겠다.”
“예…….”
루나가 피식 웃으며 진의 머리칼을 헝클었다.
“나는 오늘도 네게 마음의 눈으로 보라고 말할 것이야.”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오늘은 네가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할 것을 한 가지 더 알려 주마.”
“그게 무엇입니까? 누님.”
몸을 숙인 루나가 진의 두 손을 감싸 쥐었다.
“서로 다투고 짓밟기 바쁜 우리 형제들 가운데, 늘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도 하나는 있다는 것 말이다. 그러니 더는 이 누이를 서운하게 만들지 말거라.”
“죄송합니다, 누님.”
“나는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혈육 사이에서 충분히 외로웠으니. 너는 그럴 필요가 없다.”
진은 더 이상 루나의 호의에 한 점의 의문도 품지 않기로 했다.
이렇게 따뜻한 첫째 누님조차, 전생의 자신을 철저히 외면한 건 사실이지만. 이제 그 정도는 눈감아 주어도 될 것 같았다.
‘전생에서, 첫째 누님께 무슨 사정이 있었던 건지는 나도 다 알지 못하니까.’
* * *
“아직 일러.”
“뭐?”
“아직 브라다만테를 깨우기엔 네 영기 운용이 미숙하다고, 이 꼬맹아. 최소 영기 해방 3성에는 이르러야 검을 각성시키는 흉내라고 낼 수 있을 거다.”
“3성이라, 곧 닿을 것 같긴 한데. 그럼 금방 써 볼 수 있겠군.”
탁!
춘화집을 소리 나게 덮은 무라칸이 진을 쏘아보았다.
“잘 들어, 꼬마. 바리사다와 브라다만테. 그 두 영검은 함부로 각성시키면 안 되는 위험한 물건이다. 3성은 어디까지나 최소 기준이고, 5성에 이르기 전엔 그냥 평범한 검으로 써. 알겠냐?”
“난 참을성이 썩 좋지 않은 편인데. 아무래도 1년 내로 5성을 이뤄야겠군.”
“응, 네놈이 어린이 영기 대회 1등 출신에 밥 대신 영기만 먹고 사는 놈이라 쳐도 그건 말 같지도 않은 말. 어림없는 이야기. 지나가는 개도 허허 웃을 소리.”
유치하다, 유치해. 삼천 년을 존재해 온 용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그렇게 생각한 진이 미간을 좁히다 무라칸의 춘화집을 홱 낚아챘다.
“방금 뭐라고? 뭐? 어린이 영기 대회가 어째? 잘 못 들었는데, 다시 말해 봐.”
“춘화집 내려놔라, 딱 내려놔. 어? 그거 진짜 힘들게 구한…….”
“도련님!”
티격태격하던 두 사람이 뛰어오는 길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몹시 다급한 분위기였다.
“무슨 일 있어? 길리.”
“가론 교관이 도련님을 찾습니다.”
“휴식기에 가론이 날 찾을 일은 없을 텐데? 그리고 할 말이 있으면 직접 오라고 해.”
“그게…….”
걱정스러운 눈빛을 한 길리가 진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지도를 보며 작전 개요를 알려 드려야 하니, 도련님이 직접 오셔야 한다고 했습니다.”
“작전이라고?”
“예, 가론 교관이 도련님께 첫 ‘임무’를 배정했어요. 게다가 휴식기가 끝나면 곧장 출발이라더군요.”
진이 춘화집을 내려 두었다.
‘임무라… 3성이 되었으니, 슬슬 그런 걸 한 번 나갈 때가 되긴 했는데. 휴식기가 끝나자마자 바로?’
이상한 일이었다.
‘임무’는 중급반 이상부터 시작이었다. 암살, 전투, 마물 토벌 등을 행하는 만큼, 초급 훈련반은 제외되는 것이다.
그리고 룬칸델 생도들의 진학은 휴식기 종료 한 달 후에 진행된다.
‘뭐, 나는 사실상 중급반이니. 상관없다고 판단한 건가.’
진이 고개를 끄덕인 순간, 길리가 또 다른 정보를 전했다.
“그리고 이번 임무는… 진 도련님을 포함해 초급 훈련반 열 명이 함께 출전합니다. 뭔가 이상하니, 어서 가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