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12)
제 222화
69화. 청새 군도 32번 섬의 비밀(3)
하늘을 가린 뇌전이 율리안에게로 모여들고 있었다.
쏟아지는 빗방울에도 옅은 뇌기가 서려 있었고, 섬의 대기를 가로지르는 강풍 속에선 쉴 새 없이 푸른 불꽃이 튀었다.
“……저게 다 저놈이 펼친 뇌전이라고? 어떻게 된 거야?”
하늘을 올려다보는 진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방금까지 진에게 율리안은 ‘신경 쓰이는 상대’였지만, 이제는 감당키 버거운 무언가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좀 두들겨 팼더니, 갑자기 맛이 가더라고. 네 검 때문에 불안정한 상태였던 모양이야. 영기 폭주 겪어봤지? 그거랑 비슷한데, 신이 직접 계약자의 몸에 일부 강림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후, 제대로 꼬였군. 장난 아닌데? 도주는 어렵겠지?”
“나더러 저 뇌전 속을 비행하라고? 그냥 죽으라고 하지 그러냐.”
“미안, 물어볼 수는 있잖냐.”
우웅, 우우웅-!
시그문드가 다시금 그람의 무덤과 공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진은 처음과 달리, 이제는 율리안의 힘도 시그문드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검이 분노하고 있는 것 같다…….’
단순한 느낌이 아니었다.
시그문드의 주인이 된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기묘한 감각이, 검신을 타고 진의 뇌리로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사물이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는 걸 말로 들어서는 진도 선뜻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그문드의 검신이 떨릴 때마다, 진은 점점 그 감정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죽이고 싶은 나의 형제, 페이텔.)
이윽고 그런 목소리를 듣게 되기까지 채 3초도 필요하지 않았다.
천둥의 신 그람. 시그문드 속에 남아있는 그의 잔존 사념이 내는 목소리였다.
(감히 내 무덤에서…… 강림할 생각을 했단 말인가.)
진은 그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그람은 진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시그문드는 어디까지나 그람 그 자체가 아닌, 그의 힘을 봉해 만든 검.
따라서 목소리는 공허한 혼잣말에 불과했다. 목소리는 진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았고, 그저 페이텔에 대한 분노를 끊임없이 토해내기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잔존 사념이라 할지라도 그람은 한때 수많은 다른 신들을 압도하던 존재다.
페이텔을 향한 잔존 사념의 분노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그 분노는 점차 시그문드의 검신에 떠오른 문양 속으로, 뇌기가 되어 맺혀갔다.
츠즈즉, 츠즉-!
시그문드가 푸르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분명 진이 지닌 뇌기를 한참 상회하는 기운이었다.
그람의 잔존 사념이 지닌 분노가 더해져, 일시적으로 시그문드의 기운이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꼬마!”
무라칸이 화들짝 놀라며 시그문드를 가리켰다. 그도 시그문드에 뭔가 변화가 생겼다는 사실을 눈치 챈 모양이었다.
“설마 너도 폭주냐? 아니면 그것도 투신기?”
“아니, 설명은 나중에. 보호막 쳐!”
하늘에 떠 있는 뇌전이 당장이라도 떨어질 기세였다. 율리안에게 흡수되던 뇌기는 이제 하나의 거대한 뇌우雷雨로 변모해 있었다.
“이봐, 쿠잔 마리우스. 너도 상황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는 눈치 같군. 어떻게 할까? 하던 것 마저 할까, 아니면 일단 서로의 식구를 좀 챙길까?”
진이 시그문드로 베리스를 가리켰다. 그녀는 완전히 의식을 잃은 채 간헐적으로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저대로라면 번개가 쏟아지기 시작하는 순간 죽음을 면치 못할 터.
까득, 쿠잔이 이를 악물었다. 그는 여전히 혼란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진이 타이뮨을 죽인 진범이 맞다면, 베리스가 죽더라도 진과 결판을 내야 한다. 하지만 진의 말이 사실이라면? 실은 조슈아가 진범이고, 자신과 베리스가 그간 속고 있던 것이라면…….
쿠잔이 잠시 고민하는 찰나.
콰즈즉-!
한 줄기 번개가 지상을 강타했다. 진, 무라칸, 쿠잔과 베리스가 있는 쪽은 아니었으나.
첫 번개의 빛이 사라지기도 전에 다음 번개가 이어졌다. 무작위로 떨어지는 번개가 청새 군도 32번 섬은 물론이고, 저 멀리 해변과 바다까지도 들쑤시는 모습.
그중 한 줄기가 베리스를 덮쳤다.
쿠잔은 번개가 시작되자마자 반사적으로 베리스에게 향하고 있었지만, 율리안의 번개는 그가 베거나 쳐낼만한 속도가 아니었다.
파창……!
벼락과 벼락이 부딪혔건만, 유리가 깨지는 것 같은 날카로운 소음이 일었다.
진이 평식 벼락을 펼쳐 베리스를 덮친 번개를 쳐낸 것이다.
“엇……!”
“자세한 이야긴 나중에 하고, 이 빚을 잊을 생각 따윈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이어 진이 벼락으로 베리스의 바로 옆 지면을 터뜨렸다. 그러자 반동에 베리스의 몸이 튀어 올랐고, 미친 듯 달려든 쿠잔이 그녀를 받았다.
“그리고 개죽음을 당하기 싫다면, 지금부터라도 정신 똑바로 차려라. 아무래도 더 이상 네놈들까지 신경 써줄 여유는 없을 것 같거든.”
전투가 끝날 때까지 쿠잔과 베리스를 잠시 잊기로 했다.
무리를 하면서까지 그들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대화를 하려고 했던 건 어디까지나 조슈아의 개짓거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지, 그들이 정말로 가엽거나 딱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번개를 피하지 못하고 죽는다면 놈들의 운명은 거기까지인 것이겠지. 웬만하면 살아남아서 조슈아에 대한 정보를 좀 풀어주면 좋겠긴 하지만.’
혹은 죽여도 자신의 손으로 죽이고 싶었다. 조슈아 때문에 오해가 생겼다 할지라도, 델키에서 놈들에게 당할 뻔한 걸 잊을 생각까진 없었다.
돌아선 진이 무라칸에게로 달렸다. 쿠잔은 베리스를 안은 채 번개를 피해 이리저리 몸을 내던지느라 고군분투하는 모습.
“무라칸!”
“어, 살다 살다…… 이제는 화신체까지 난리네. 다행히, 제대로 강림이 이루어진 건 아니라서 아주 답이 없진 않아.”
“뭐든 방법을 말해봐. 최대한 맞춰볼 테니.”
땅이 터지고 뇌전이 빗발치는 사이, 그나마 안전한 곳은 무라칸의 영기 보호막 안쪽뿐이었다.
“영기 개방. 폭풍성 지하실에서 처음 보여준 그거, 기억나지?”
“물론.”
온 사물의 그림자를 빨아들이던 바로 그것.
“그것의 변형을 펼쳐서 저놈의 화신 상태를 강제로 해제할 거다. 너는 시간을 벌어. 날 지키라는 뜻이지.”
“얼마나?”
“10분. 그리고 네 영기도 좀 필요해.”
“그거면 충분하겠어?”
“아마도. 그런데 쉽지 않을 거다. 지금껏 내리친 번개는, 공격에 속하지도 않아. 화신체가 되면서 일어난 권능의 폭주에 불과하다고.”
무라칸의 말대로, 율리안은 일행을 공격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저 ‘뇌기’라는 자연의 힘, 그 자체로서 모습을 드러낸 것일 뿐.
쩌저저적-!
별안간 뇌우로 뒤덮인 하늘에 균열이 일었다.
차원문이 열린 것이다.
그 속에서 거대하고, 빛나는 한 자루의 활이 빠져나오고 있었다. 뇌기에 휩싸여 일렁이는 그 활이 ‘뇌궁 하르밀라’의 진짜 모습이었다.
이내 하르밀라가 점점 작아지며 율리안의 손에 맞춰졌다.
“진짜는 저거지, 하르밀라.”
마치 신이 천벌을 내리기 위해 준비라도 하는 듯.
뇌우 속에서 유난히 길고 날카로운 뇌전이 빠져나와 하르밀라의 활시위로 감겨들어갔다.
강림이 끝난 것이다.
[어리석은 형님의 힘이 느껴지는구나.]율리안의 시선이 짓누르듯 시그문드를 향했다.
온전치 않다 할지라도, 신의 강림이었다. 진은 그의 시선이 향한 것만으로도 숨이 갑갑해지는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나 투신 형제에 비하면 대단치 않다.’
천둥의 신, 그람의 목숨을 거둔 것이 바로 투신 반이었다.
(벌레 같은 놈……!)
시그문드가 다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이내 진은 무라칸의 보호막을 빠져나와 자세를 고쳤다.
동시에 율리안이 활시위를 잡아당겼다.
치이이잇, 쐐액!
뇌전이 시위를 떠난 순간, 진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람의 잔존 사념이 시그문드를 각성시키지 않았다면, 막을 생각 따윈 하지 못했을 거라고 말이다.
날카롭고 푸른 궤적이 뇌전의 정중앙을 갈랐다.
스걱-! 프즉! 단 하나의 뇌전을 막았을 뿐이건만, 시그문드의 것과는 전혀 다른 생소한 뇌기에 온몸이 찢어지는 감각이 일었다.
‘나쁘지 않아.’
한 번에 이 정도 충격이라면 10분쯤이야 얼마든지 버틸 수 있다.
‘문제는, 놈의 힘이 고작 이 정도일 리가 없다는 것.’
그러나 진 역시 각성된 시그문드의 위력을 새로이 절감하고 있었다. 잘 다룬다면, 무라칸이 영기 해방을 끝내기 전에 율리안에게 피해를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뒤쪽에선 무라칸의 영기 해방이 펼쳐지고 있었다. 어느새 영기로 이루어진 수백 개의 크고 작은 소용돌이가 무라칸의 보호막을 감싸고 있었고, 진의 영기가 그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크흐흐, 우습군. 그렇게 오만하더니, 힘이 봉해진 채 벌레의 손에 붙들려 휘둘리는 꼴이라니.]진이 시그문드에 뇌기를 불어넣었다. 광심장의 오러가 조금만 섞여 들어가도. 기름에 불이 붙은 듯 뇌기가 증폭되고 있었다.
잠시라도 집중을 잃으면, 스스로 검신을 빠져나가 마구잡이로 튀어오를 것 같은 힘. 말하자면, 시그문드는 언제든 폭주할 수 있는 상태였다.
그게 진과 율리안의 차이점이기도 했다.
율리안은 본인의 한계를 넘어선 힘을 제어하지 못해 폭주, 화신체가 되었고. 진은 시그문드를 온전히 제 의지로 휘두르고 있었다.
[어떠냐, 벌레. 형님의 힘이 마음에 드는가?]“그 벌레가 아니면 강림조차 못하는 주제에 주둥이가 방정이로군. 신이라면 조금 더 품격 있을 순 없는 건가?”
이길 수 있다.
어째서인지, 본능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진은 더 이상 긴장하지 않고 율리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크흐흐, 벌레 주제에 본인이 옛 명왕족이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로구나. 그 검을 어떻게 얻었는지는 모르겠다만…….]진이 피식 웃으며 젖은 코트를 벗었다. 이어 흑광갑을 풀어헤치자 새하얗게 빛나고 있는 광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굳이 이렇게 자신감을 드러내는 건,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다.
무라칸이 말한 10분. 페이텔의 어설픈 화신체를 꺾을 수 있다는 직감은 있어도, 무라칸의 영기 해방까지 준비시키는 게 안전한 길이었다.
뇌기에 가려진 표정을 읽기 어려웠으나.
진은 광심장을 본 순간, 페이텔의 눈동자에 일순 두려움이 맺힌 걸 느낄 수 있었다. 지금껏 페이텔은 진의 뇌기가 시그문드가 가진 힘이라고만 착각한 것이다.
“이 검은 네 형을 죽인 자에게 직접 받은 것이다. 투신 반, 내 형제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나?”
투신 반.
그 이름이 나오자마자, 페이텔이 허공에서 뒷걸음질을 쳤다. 완전히 공포에 사로잡힌 인간이나 짐승이 흔히들 그렇게 하듯이.
[크아악, 큭, 으으윽!]그리고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율리안은 화신체인 만큼 페이텔이 느끼는 모든 것을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었다. 페이텔의 내면에 갇힌 채, 그의 의식 아래로 떨어지는 감정과 감각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방금 페이텔이 느낀 반에 대한 ‘공포’는, 율리안의 의지로 감당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때문에 그 공포에 율리안의 정신이 일순 붕괴될 뻔했고, 페이텔과의 결속력에 균열을 빚기에 이르렀다.
진은 그 과정을 다 이해하지 못했으나 적이 흐트러진 것은 분명하며, 공격 기회를 붙잡는데 다른 계산은 필요하지 않았다.
시그문드에 담긴 어마어마한 뇌기가 분출되기 시작했다.
곧 그 기운은 하나의 거대한 검기가 되었고, 허공을 집어삼키며 페이텔에게로 쇄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