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26)
제 222화
73화. 무라칸의 은인(3)
“재밌는 농담을 하는군.”
“어서 이쪽으로 들어가요!”
라니가 손가락으로 골목 안쪽의 한 틈을 가리켰다. 그녀와 다른 성기사들이 일행을 쫓아오며 사용한 길이었다.
일행이 그녀를 지나쳐 먼저 그곳으로 향했다. 쿠잔의 발끝이 틈 속으로 딱 사라진 순간, 이십여 명에 달하는 성기사들이 골목을 덮쳤다.
“라니 살로메!? 놈들은 어디에 있나!”
대장 성기사가 라니 옆에 쓰러진 성기사들을 보며 눈을 부라렸다.
라니는 여전히 검을 뽑지 않은 상태였고, 대장은 그게 무척 못마땅한 눈치였다. 다른 성기사들도 그녀를 보며 저마다 한숨을 쉬거나 혀를 차는 모습.
모두 ‘이단’이 아닌 자는 절대 공격하지 않는 라니의 철칙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라니의 기준에서 이단이란, 성왕 미클란이 주관하는 최종 재판에서 명확히 이단 판정을 받은 자들과, 스스로 이단을 자처하며 흑마법을 구사하는 이들에 한했다.
“죄송합니다, 놓쳤습니다. 1구역 쪽으로 향하는 걸 확인했습니다, 어서 추격을…….”
“흥! 어차피 그놈들은 독안에 든 쥐새끼에 불과하다. 곧 잡힐 것이야. 그런데 라니 살로메, 자네는 동료들이 쓰러지는 걸 보고도 또 검을 뽑지 않았군. 그러고도 교리수호 여명회의 성기사라 할 수 있을 것 같나.”
까드득.
두 눈은 내리깔았으나, 라니는 대장이 다 들리도록 이를 갈았다.
“징계라면 추후 달게 받겠습니다. 우선 침입자들을 쫓아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매번 실망스러운 모습만 보이는군. 그분께서 자네를 언제까지 감싸고 돌 수 있을 것 같나? 이단자를 앞에 두고도, 쯧!”
“추격이나 하시라고요! 그리고 5대장께선 어떻게 그들이 이단이라고 확신하십니까? 아직은 단순히 침입자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버럭, 소리를 지르는 라니.
대장은 한동안 그녀를 노려보다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3조는 라니의 조원들을 성자들에게 보내고, 1구역 쪽에서 다시 합류해라. 그리고 2급 성기사 라니 살로메는 현 시간부로 근신에 처하니 막사에 복귀해 무기와 갑옷을 반납하고 대기하도록. 이것마저 어기면 뒷일은 나도 모른다. 알겠나?”
성기사들이 라니를 지나쳐 골목을 빠져나갔다. 라니 대신 쓰러진 그녀의 조원들을 챙기는 성기사들은 연신 그녀에게 험담을 늘어놓았다.
“나도 너처럼 좋은 아버지가 있으면 좋겠네, 명령 불이행에다가 대장께 그렇게 까불어도 근신이 고작이라니.”
“그거 알아? 네가 이단보다도 더 이단 같다는 거. 돌아가면 제발 보직 이동 신청해서 어디로든 꺼져버려, 여명회에 먹칠 좀 그만하고.”
그들마저 떠나자 골목엔 라니 혼자만이 남았다.
그리고 진 일행은 옆쪽 틈에서 내내 그 대화를 듣고 있었다.
‘라니 살로메…… 어딘가 익숙하다 싶었는데, 기억이 나는군. 성왕 미클란의 수양딸.’
전생에 소식지에서 그녀에 대한 일화를 한두 번쯤 읽은 적이 있었다.
성왕의 딸인데도 매일 술에 젖어 방탕한 삶을 살아 성국 신민들조차 손가락질을 하는 인물이라는 기사였다. 지면 구석에 아주 작게 다뤘으나, 성왕의 딸이라는 신분 때문에 기억에 남아 있었다.
이내 라니가 주변을 살피곤 일행이 있는 틈으로 들어왔다.
“일단 위기는 넘겼군요.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서 대화를 좀 하도록 하죠.”
“그전에, 잠깐. 라니 살로메. 당신은 우릴 도우려는 것 같은데, 대체 왜지? 그리고 우리가 흑룡과 관계가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고?”
진이 시선을 맞추며 묻자 라니는 몇 초쯤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내면에서는 수없이 많은 생각이 지나가는 듯했다.
“……저는 교리수호 여명회 소속 성기사입니다.”
“그건 아까도 말했어.”
“그러나 성기사이기 이전에 성국 반켈라의 신민이며, 한 사람의 인간이고, 한없이 자애로우신 우리 주 아율라의 말씀을 전하는 딸입니다.”
느닷없이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자기소개를 내뱉었으나.
어딘가 강대한 기개와 각오가 가득해서, 무슨 헛소리냐고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런 제가 해야 할 일은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거짓을 설파하고, 악을 선으로 위장하고, 권력과 야합해 추악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화룡 카둔, 그자야말로 우리가 추적해야 할 악이란 말입니다. 흑룡은 오히려 그가 도시를 불태우는 걸 막으려고 했다고요.”
부르르, 꽉 쥐어진 라니의 두 주먹이 떨리고 있었다.
“이만하면 내가 왜 당신들을 돕고 있는지 설명이 되었습니까?”
“그 녀석이 도시를 불태우는 걸 막으려고 했다고? 더 자세히 얘기해봐라, 성기사. 녀석은 어디에 있지?”
퀴칸텔이 라니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일단 따라오세요, 시간이 많지는 않습니다.”
라니를 따라 이동한 곳은 번화가였다.
그러나 반 이상 ‘녹아내린’ 건물들로 가득한 데다, 아직까지 카둔의 잔불이 남아 독성 연기가 쉴 새 없이 피어올라 도저히 재건할 수 없는 번화가.
성자와 마법사들도 이곳의 불을 진화하는 건 포기했고, 독성이 너무 강해 통제구역으로 지정하지도 않았다.
“잠시 기다리세요, 신성 보호막을 둘러드릴…….”
“나와 이 친구는 괜찮으니 이분만.”
“독성이 극심합니다.”
“상관없으니까, 빨리 하고 가지.”
“알겠습니다.”
라니가 퀴칸텔과 자신의 몸에 보호막을 둘렀다.
“여기라면 최소 30분은 동료들도 찾아오지 않을 겁니다.”
“흑룡은 어디에 있나?”
“이곳에 있습니다.”
“그 녀석은 지금 이만한 독기를 버틸 수 없다.”
“제 신성력으로 보호 조치를 해뒀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만, 그를 보기 전에 저도 하나 묻도록 하죠. 당신, 진 룬칸델이 맞습니까?”
돌연 진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쿠잔과 퀴칸텔의 눈동자가 커졌다.
진은 당황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이 말해준 모양이로군.”
“그렇습니다. 무라칸 님이 부탁을 하셨죠. 진 룬칸델이 금방 자신을 찾으러 올 테니, 그때까지만 자신을 좀 보호해달라고. 당신이 진 룬칸델임을 증명할 만한 표식을 하나만 보여주십시오. 제 입장에선, 당신들이 카둔의 다른 하수인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당장은 신분의 증거가 될 만한 물건이 없었다. 그나마 브라다만테가 룬칸델의 검이긴 하지만 그건 본가의 사람들, 혹은 휴페스터의 무인들이나 알아볼 만한 물건이었다.
“없습니까?”
“이봐, 공자님을 시험하는 건 그만두도록 하지. 우리가 화룡의 하수인들이라면, 왜 복잡하게 침입을 했겠나?”
쿠잔이 그녀의 목에 단검을 겨누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협박을 무서워할 것 같나요? 그랬다면 당신들을 이리로 데려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날 해하면, 무라칸 님도 반드시 죽는다는 걸 알아두세요.”
“검 치워라, 쿠잔.”
즉시 고개를 숙이며 물러나는 쿠잔.
라니는 완고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진이 신분을 증명하지 못하면 절대로 무라칸을 보여주지 않을 기세인 것이다.
“물건은 없다. 대신…… 이것으로 무라칸이 내 수호룡이라는 걸 밝히도록 하지.”
후우웅…….
진이 손바닥 위에 영기를 뭉치며 라니를 바라보았다.
“영기, 솔더렛의 힘이다. 내가 진 룬칸델이든, 아니든. 나는 그림자의 유일한 계약자다. 설마 다른 증거를 더 보여줘야 하나?”
지금은 자신이 계약자라는 사실을 감출 때가 아니었다.
“아뇨, 충분합니다.”
“녀석은 무사한가?”
“솔직히, 무사하진 않습니다. 많이 다치셨어요. 그리고…….”
“일단 좀 보도록 하지. 어서!”
진이 미친 듯 쿵쾅대는 가슴을 간신히 억누르며 말했다.
가슴 속에서 부글부글 쇳물이 끓는 것 같았다. 온갖 감정이 뒤섞여 일순 눈앞이 노래질 지경.
‘화룡 카둔. 네놈은 반드시 처참한 말로를 겪게 해주마…….’
터걱-!
라니가 발아래 놓인 판자를 뜯어냈다.
판자를 뒤덮고 있던 재가 뭉치로 휘날렸고, 그 사이로 호박색의 빛이 흘러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라니의 몸을 덮고 있는 빛과 똑같은 색. 신성력이었다.
그 신성력이 둥글게 몸을 말고 있는 한 마리의 검은 고양이를 보호막처럼 감싸고 있었다.
“무라칸……!”
솔더렛의 대리자이자 그의 친우이며, 그림자에서 빚어진 첫 번째 존재의 마지막 후손, 진의 단 하나뿐인 수호룡.
바로 그였다.
라니는 고양이로 변신한 그를 지금껏 이 독기 가득한 건물 속에 숨겨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지닌 뛰어난 신성력과 신념이 아니었다면, 결코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진이 무라칸을 조심스레 품안에 안자, 퀴칸텔의 눈에 물기가 맺혔다. 쿠잔 또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라니가 무라칸을 구할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녀와 성기사들은 대신관들의 명령에 의해 산텔로 파견을 나오게 되었다.
화룡 카둔을 도와 ‘마물’을 포위하고, 산텔이 이단자들의 도시가 될 위기에 놓였으니 ‘정화’하라는 명령이었다.
그러나 라니가 이곳에서 목도한 것은 마물도, 이단자들도 아니었다.
화룡의 무자비한 숨결에 죽어가는 양민들, 그리고 왜인지 도시가 무너지는 걸 막고 있는 흑룡.
파견된 성기사들 중 그 모습에 괴리감을 느낀 건 오직 라니뿐이었다.
심지어 ‘정화’라는 명목 하에, 성자들은 양민들을 선동하고 성기사들은 도시를 틀어막았다.
“정작 양민들을 죽이고 있는 건 카둔인데, 그 모든 학살이 무라칸 님의 잘못이 되기까진 채 두 시간이 필요하지 않더군요.”
라니가 도착한 당시는 카둔과 무라칸의 전투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였다.
카둔이 온 도시를 불태운 것은 단지 무라칸이 도망칠 수 없도록 만들기 위해서였다. 반면 무라칸은 양민의 피해를 막느라, 또한 힘이 부쳐 궁지에 몰린 상황.
무라칸은 결국 도주에 성공했다. 아니, 성공하는 듯 보였다. 카둔이 펼친 불의 결계를 뚫고 상공으로 날아간 것이다.
“그러나 멀리까지 갈 힘이 없었나보더군요. 카둔은 즉시 추격을 시작했고, 무라칸 님은…… 도박을 했던 것 같습니다. 카둔이 자신의 결계를 빠져나가 비행을 시작한 그 순간, 무라칸 님은 다시 도시로 들어섰거든요.”
등잔 밑이 어둡다. 다시 불의 결계로 들어서 산텔 상공에 자리 잡은 무라칸은 인간으로 변신한 채 지상으로 추락했다.
카둔은 무라칸이 하늘에 영기로 빚어놓은 그의 ‘그림자’를 쫓느라 그걸 확인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라니 혼자서만 똑똑히 지켜본 것은, 기적이라 부를 만한 일이었다.
라니는 즉시 그를 수습할 수 있었으나 산텔에 파견 온 다른 성기사들이 문제였다.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이었죠. 하지만 도시 재난민인 것처럼 성자들에게 보낼 수가 없었어요. 변신이 불안정해서 몸 곳곳에 검은 비늘이 돋아 있었습니다.”
라니는 필사적으로 흑룡을 살리려고 신성 마법을 펼쳤으나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무라칸은 의식이 흐려지는 와중 어째서인지 자신을 치료하려는 인간, 라니에게 가까스로 전언을 남겼다. 진 룬칸델이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고 말이다.
“그 말을 끝내자마자 이 모습으로 변신하곤 기절하셨습니다. 저는 신성력을 이용해 이곳에 무라칸 님을 숨겨두었고요.”
“진, 이건 변신한 게 아니야. 강제로 변신된 거다. 자세한 건 가서 이야기하도록 하고, 일단 여길 벗어나자.”
“탈출하기 가장 좋은 경로를 알려드릴 테니, 그쪽으로 가십시오.”
“……라니 살로메. 솔더렛과 룬칸델의 명예를 걸고, 이 빚은 반드시 갚겠다. 네 징계가 끝나는 대로 성국을 찾아가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