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41)
제 222화
76화. 쪽박과 독박(7)
문이 이어진 곳은 수인들의 땅이었다.
현 백랑족의 대전사 ‘베락트 시드리커’의 거처이자 킨젤로의 본회.
“단장!”
“단장님!”
단장과 조가 문을 빠져나오자 인간과 수인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동시에 몇 명의 수인들이 재빠르게 달라붙어서 단장을 부축했다.
이어 곳곳에서 안도의 한숨이 들렸다.
단장과 조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조, 네놈은 죽어서도 단장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네깟 놈을 위해 단장이 성치도 않은 몸으로 그 위험을 감수한 게 가당키나 한 말이더냐?”
베락트가 조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말했다. 조는 감히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단장이 옛 오테리엄을 찾은 건, 킨젤로에겐 말 그대로 사고였다.
최대 위험 세력인 지플과 룬칸델 쪽에선 별다른 조짐이 없었건만, 난데없이 진과 무라칸이 암흑마법회의 본진을 습격하리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것이다.
추콘과 수잔만 있었다면 모를까, 설상가상으로 본진엔 ‘명인’을 완성시키기 위한 핵심 인력인 조가 대기하고 있었다.
조가 사망하면 명인의 개발이 늦춰진다는 것이고, 그건 곧 대업의 실현이 미뤄진다는 뜻.
때문에 단장은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나서서 그를 구해왔다. 1분, 1초가 다급한 와중 공간 이동 능력을 갖춘 건 오직 그 하나뿐이었으니까.
[너무 그러지 마라, 베락트. 아무 일 없이 돌아왔으니.]“다음부턴 차라리 대업이 좀 늦춰지더라도 본인의 안위를 더 챙기시오, 단장. 그대 하나만 바라보는 수많은 동지들을 위해서라도.”
[그러도록 하지. 그런데, 가서 재미있는 정보를 하나 확인했다.]“무슨 정보를?”
[바멀, 그자는 룬칸델의 막내였어. 이 사실을 과연 지플과 비먼트가 인지하고 있을지 궁금하군.]“뭐, 뭐라고요!”
단장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한 남자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쳤다.
[부단장, 왜 그러지?]킨젤로의 부단장, 비슈켈 이블리아노.
평소 냉철하기로 유명한 그가 이토록 격한 반응을 보이자 자연스레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닿았다.
“아니, 아닙…… 니다. 놀랍군요, 단장님. 진 룬칸델이 설마 바멀이었을 줄은.”
[조의 눈을 통해 본 그는 마법과 명왕족의 힘을 사용하는 것도 모자라, 솔더렛의 계약자이기도 하더군. 지플과의 맹약을 어긴 것이지. 아무래도 룬칸델이 지플과 한판 붙기로 마음을 먹은 모양이야, 우리도 준비를 해야겠어.]진을 제외하면, 단장은 ‘명왕족’의 힘을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인물이었다.
비슈켈은 쿵쾅대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외나무다리 파티에서 부바르와 엮인 것도, 몇 달 전 조각 공방을 찾아온 것도…… 설마 전부 의도된 접근이었단 말인가? 나와 부바르의 정체를 알고 있어서? 그렇다면 대체 언제부터, 어떻게……!’
오싹,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진 혼자서 자신들의 정체를 알아냈을 리는 없었다. 분명 룬칸델이 가문 차원에서 진에게 정보를 내어주고, 명령을 내렸을 터였다.
‘기수들의 세력엔 어디든 우리 첩자들이 하나씩은 심어져 있는 걸 알고, 오히려 예비 기수인 진에게 우리의 동향을 파악하도록 시킨 것이다! 우리가 예비 기수까지 신경 쓰진 않으리라는 판단에!’
순식간에 거기까지 상상과 가정의 나래를 펼친 비슈켈이 이를 악물었다.
비슈켈은 이 모든 게 자신의 실책이라고 생각했다. 진과 부바르가 묘하게 엮인다는 생각이 들 때부터, 진에게 하나라도 사람을 붙였어야 했다. 부단장이란 그런 직책인 것이다.
특히 마지막 만남.
부바르를 핑계로 자신과 겨뤄보고 싶다고 조각 공방을 찾아온 그날, 진의 행동은 분명 일반적이지 않았다.
-예비 기수가 된 후, 꽤나 많은 이들과 싸웠습니다. 그러나 상대가 부족했던 건지, 단 한 번도 비슈켈 경과 겨뤘을 때처럼 절박한 감각이 깨어나질 않더군요. 심검을 펼치는 감각 말입니다.
-제 오만과 결례를 인정합니다, 비슈켈 경. 저는 아직 비슈켈 경과 감히 검을 맞댈 수 없는 애송이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 친구가 룬칸델을 모욕하는 건 또 다른 문제이지요……. 한 걸음이라도 움직이면 베겠다, 부바르.
어떻게든 자신의 주의를 잡아끌려고 과격한 언사와 행동을 연달아 이어갔던 것이다.
그때는 단지 치기 어린 무인의 사춘기라고만 생각했지만, 이제야 비슈켈은 진이 왜 그랬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 그날 분명 진이 떠나고 부바르와 나침반 회수에 대한 대화를 나누던 중 미약한 기척을 느꼈었다. 진이 내 주의를 그토록 잡아끌려고 애를 썼던 건, 조각 공방에 귀가 될 인물을 심어두기 위해서였어……!’
그날 부바르와 나침반 회수에 대해 모든 내용을 떠들었던 기억도 났다. 회수 장소, 날짜, 지플과의 동맹이 완전히 파기되었다는 특급 기밀까지 발설했던 그 기억이.
그리고 유월 초하루, 지플과 킨젤로의 간부들밖에 모르는 그날의 벨라도 제후국엔 바멀, 이제 막 진 룬칸델로 밝혀진 그자가 나타났다.
나침반 회수에 실패한 이후. 도대체 킨젤로 내부에 몇 번의 긴급회의가 펼쳐졌으며, 정보 유출자와 경로를 색출하고자 얼마나 많은 조사와 질타가 있었던가…….
비슈켈로서는 온몸에 핏기가 싹 가시는 기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단장님, 드릴 말씀이 있…….”
비슈켈이 혼이 나간 목소리를 내뱉은 순간.
[아! 젠장!]별안간 단장이 이마를 짚으며 탄식을 내뱉었다.
“왜 그러시오, 단장?”
[그걸 놓고 왔어. 젠장, 상황이 워낙 급박했다 보니 챙길 생각을 못했다고. 하, 이런 실수를……!]“그것이 무엇이기에. 아, 설마……!”
베락트의 물음에 단장이 고개를 푹 수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멸살암천화염옥 최종형. 암흑마법회 본산에 보관되어 있던 리올 지플의 유산을…… 챙기지 않았어. 조, 혹시 네가 챙겼나? 제발 그렇다고 답해주면 좋겠군.]“허. 그, 그게. 단장님, 저도 경황이 없었습니다…….”
“이 하등 쓸모없는, 머저리 자식이! 조, 암흑마법회의 수장인 네놈이 그걸 잊었단 말이냐? 단장이 그런 것까지 일일이 신경을 써야 하냐는 말이다!”
베락트가 조의 멱살을 그러쥐며 칼눈을 떴다.
“베, 베락트 대전사. 이거 놓고 이야기하십시오! 나도 채, 챙기려고 했소만 너무 경황이 없었단 말입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분통이 터져 돌아버릴 지경이다. 크아악! 야! 누구든 이 벌레 놈 내 눈앞에서 치우고, 당분간 내 눈에 띄지 않게 조치해라. 보이면 죽일 것 같으니!”
홱! 철푸덕!
조를 바닥에 내던진 베락트가 반사적으로 발을 올렸다. 분에 못 이겨 머리통을 짓밟으려고 한 것이다.
“아이고, 대전사님!”
“대전사님, 단장께서 어렵사리 살려서 데려온 몸입니다! 고정하십시오!”
다행히 다른 수인들이 몸으로 막은 덕에, 애써 구해온 조의 머리가 터진 수박이 되는 일은 없었다.
한바탕 소요가 지나간 후에도 베락트는 씩씩 거친 숨을 내뱉으며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제대로 낭패를 봤군. 지플에게 써먹을 가장 중요한 패 한 장을 잃었어. 미치겠네, 조만간 켈리악하고 멸살암천화염옥 최종형에 관련해 거래하기로 했는데 말이지.]“우라질! 하여간 인간 놈들,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소! 후.”
베락트의 시선이 굳어있는 비슈켈에게 닿았다.
“흠, 흠흠! 물론 부단장은 빼고 말한 것이오. 인간 벌레들이 우리 부단장의 반의반만큼만 닮았어도 내 이토록 울화통이 터질 일은 없을 것이건만. 대체 왜 똑같은 인간인데 이리도 다르단 말이오?”
동감한다는 듯, 단장이 수인들에게 끌려나가는 조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슈켈은 가슴이 콱 틀어 막히는 것 같았다.
[이번 일은 내 실책이기도 하니 어쩔 수 없다. 이미 지난 일이니 만회할 생각을 해야겠지. 베락트, 수인들 중 가장 빠른 자들을 오테리엄으로 보내라. 혹시 진, 그놈이 마법서를 챙기지 않았을 수도 있어. 애초에 마법서가 거기 있다는 걸 모를 가능성이 높으니 희망을 걸어보자고.]“알겠소, 단장. 당장 보내도록 하겠소.”
[비슈켈. 너는 지금부터 직접 칼 지플을 관리해라. 이번에 마법서를 가져갈 수 없다면, 그자라도 데려가서 협상을 해야 해.]고개를 끄덕이는 비슈켈.
[그리고, 내게 할 말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비슈켈.]단장과 눈이 마주친 짧은 순간, 비슈켈의 머릿속에선 실로 셀 수 없이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실책을 고백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정답은 10여 초 전 단장이 했던 말 속에 있었다.
‘이미 지난 일이니 만회할 생각을 해야 한다. 나까지 실책을 밝혀봐야 지금 좋을 게 하나도 없다. 일단은 당장 킨젤로의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해.’
무거운 양심의 가책을 견디며, 비슈켈이 입을 열었다.
“……성국에 관련된 사안이었습니다. 진, 그자가 성국에 오테리엄에 관한 실체를 고발해 생체 골렘 실험이 있던 사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릴지도 모릅니다. 룬칸델에겐 성국에 개입할 최적의 기회입니다.”
“오오, 역시 부단장이로군. 부단장의 말이 맞소. 분명 정치적으로 이용을 하려 들 것이야. 인간들 주특기가 아닌가.”
[흐음, 하긴. 그 녀석이 평범한 예비 기수는 아닌 것 같으니 검의 정원과 공조해서 사건을 키울 수도 있겠군. 어떻게 하는 게 좋겠나?]“제 생각에, 놈이 난데없이 오테리엄을 습격한 건 성국 충신들의 의뢰를 받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 성국이 우리와 지플로 양분된 사실도 알아냈을 거고요.”
[계속 이야기해봐.]“룬칸델의 입장이라면, 성국에서 우리보다는 지플을 먼저 몰아내고 싶을 겁니다. 둘 다 몰아내자니, 우린 대외적으로 알려진 바가 너무 적은 단체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생체 골렘 실험을 했다고 들먹여봐야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겁니다.”
[부단장의 말은, 진이 지플 쪽에 생체 골렘 실험을 덮어씌울 수도 있다는 말이지?]“예.”
[일리가 있어. 지플은 콜론에서 생체 실험을 자행했던 게 알려진 적도 있으니.]“일단 관망하면서 놈의 장단에 맞춰야 할 것 같습니다. 제 예상대로 흘러간다면, 분하지만…… 우린 놈의 행동에 힘을 실어줘야 합니다. 성국을 반이라도 쥐고 있으려면 말이죠.”
베락트가 비슈켈을 어여삐 여기고, 조금 어려워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지점에 있었다.
속 시원한 직언과 저 빛나는 통찰력. 베락트는 조 때문에 올라온 울화통이 차츰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부단장의 말이 옳아. 또 그놈 장단에 놀아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지만…… 별수 있나, 그게 최선인 것 같군. 한번 기다려보자고, 진이 어떻게 나오는지.]* * *
한편, 진과 무라칸은 아직도 꺼지지 않고 일대를 불태우고 있는 청화를 멍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 강철문은 대체 뭐야? 그것들, 정말 도망친 건가? 공간 이동을 했다고?
서로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려는 찰나.
푸른 불길 한가운데, 두 사람의 시선을 잡아끄는 새하얀 광채가 번지고 있었다.
진과 무라칸은 단장의 능력을 정확히 모르는 만큼, 당연히 그 광채가 그가 남겨둔 공격 마법이나 함정인 줄 알았다.
그러나 공격이 아니었다. 광채는 평범한 보호막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저건……?”
눈을 동그랗게 뜬 진이 황급히 광채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멸살암천화염옥 최종형.
미샤가 반드시 찾으라고 당부한 그 마법서가 청화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마법서를 감싼 광채의 정체는 ‘보호 마법’이었다. 2세대 전, 지플의 가주였던 여인이 제 마법서가 행여 손실될 것을 우려해 새겨둔.
“타, 타겠다. 무라칸! 청화 좀 빨리 꺼봐!”
무라칸이 잽싸게 몸을 던져 마법진 근처의 불길 위를 뒹굴었다.
“아오, 뜨거!”
그의 머리카락이 좀 타들어간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덕분에 진은 보호막이 끝장나기 전에 마법서를 확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