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48)
제 222화
77화. 악역(6)
외나무다리 파티에서 마르지엘라가 일부러 비슈켈을 곤란하게 만들고, 그걸 즐기던 모양새가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때는 좀 짓궂은 사람인 줄만 알았는데, 저 여자도 킨젤로였다는 말이지.’
의외였다. 무위나 마법이 출중한 것도 아니고 몸까지 불편한 인물이니 그런 테러단체, 아니. 악질 사이비(진은 킨젤로를 그렇게 규정했다)에 속해 있으리라 생각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하필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 이유가 무엇일까?
‘킨젤로는 날 돕겠다, 그러니 좀 봐주라고?’
단순히 진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하기 위함이라면 다른 단원을 보냈을 것이다.
단지 마르지엘라의 몸이 불편하기 때문이 아니다. 비슈켈은 킨젤로의 간부고, 그녀는 비슈켈이 끔찍이 아끼는 하나뿐인 여동생이었다.
진이 그간 킨젤로라면 대부분 가차 없이 쓸어버린 사실을 뻔히 알고 있는데, 그렇게 소중한 여동생을 보낸다?
진으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었다.
‘뭔지는 몰라도, 저 여자…… 왠지 요나 누님이나 부바르처럼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
알아보면 될 일.
머리 아프게 고민해봐야 의미가 없었다. 진은 우선 그녀에게 답장을 해주기로 했다.
그녀처럼 입 모양을 벙긋대는 게 아니라, 만국공통의 한 제스쳐를 이용해서.
저요?
검지로 자신을 가리키는 진.
그는 마르지엘라의 메시지를 알아듣지 못하는 척을 할 생각이었다.
‘킨젤로는 당신을 도울 거라고요.’
마르지엘라가 다시 입을 벙긋댔다.
진은 또 한 번 ‘저요?’라고 제스쳐를 취한 뒤, 괜히 좌우를 살핀 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여주었다.
그러자 마르지엘라가 답답한 듯 제 가슴팍을 두들겼다.
‘아니, 룬칸델은 입술 읽기도 안 배우나!?’
몇 번이나 시도해보았지만 결과는 같았다. 네 번째쯤부터 진은 아예 그녀 쪽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마르지엘라는 결국 진이 자신의 의사를 전달받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그녀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
조금 더 위험을 무릅쓰고 아예 진의 근처까지 가서 입 모양이 아니라 음성으로 전달해주고 싶었으나. 휠체어 때문에 그러기도 쉽지 않았다.
진이 일부러 못 알아듣는 척을 하는 건 다름이 아니었다.
‘어차피 킨젤로는 내가 어떻게 행동하든 날 돕는다.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나올 정도면 굳이 놈들 장단에 맞춰줄 필요가 없어.’
자신을 돕기로 한 이유야 뻔했다. 지플에 다 덤터기를 씌우고 있으니 살살 눈치를 살피는 게 당연했다.
“진.”
“왜, 무라칸.”
“저쪽에 휠체어 탄 인간, 계속 너한테 뭐라고 하는 것 같은데?”
“그쪽 쳐다보지 말고, 지금부터 그 여자 잘 살펴봐. 이따 좀 만나봐야겠으니.”
“네 취향이냐?”
“아니, 킨젤로야. 이따가 인파가 해산될 때쯤 조용히 잡아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군.”
“할 수 있지?”
“그걸 말이라고, 식은 죽 먹기지.”
기자를 죽이지 마라! 진상을 제대로 밝혀라!
여전히 성난 군중들이 악을 지르고 있었다.
지플을 욕하는 이들이 절반, 그리고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룬칸델을 응원하는 이들이 절반이었다.
루나와 조슈아는 그저 시선으로 백야의 마법사들을 압박했다. 지플 측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
군중 속 곳곳에서 열심히 펜을 놀리고 있는 이들이 진의 시야에 닿았다. 그들은 모두 기자였다.
묘한 구도였다.
평소 선과 정의의 상징이던 지플은 손가락질을 받고, 악과 패도의 상징이던 룬칸델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진이 원한 구도였다.
지금은 성국의 중앙 광장에 국한된 구도일 뿐이지만, 결국엔 세계적인 인식을 전부 바꿔버리고 싶었다.
자신의 룬칸델이 지플을 대신해 새로운 정의의 상징이 되길 바라는 마음은 없었다. 그렇게 믿지도 않았고. 다만 지플의 위선자들이 세계에 군림하는 꼴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지플 놈들, 일단은 물러날 수밖에 없겠군. 누님과 전투를 벌이고, 군중들을 다 학살할 게 아니라면.’
마울이 고개를 저었다. 그도 진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더 이상 칼 지플을 처단하고 끝내라고 압박할 명분이 없는 것이다.
“……백야! 전원 본가로 복귀한다!”
분한 듯 소리치는 마울.
백야의 마법사들도 마울과 비슷한 심정이었다. 지플의 특급 정예 마법사가 된 이후, 이런 수모를 받아본 것은 모두 처음이었다.
“잘 생각했소, 마울 경.”
루나가 씨익 웃으며 돌아선 마울의 뒷모습에 손을 흔들었다.
마울과 백야의 마법사들이 코젝 아래로 뻗은 빛의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자, 루나도 몸을 돌렸다.
“우리도 그만 빠지도록 하지, 2기수.”
“알겠습니다.”
“디노, 자네는 이따가 보자고.”
다시 후드를 쓴 두 사람이 천천히 군중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루나는 일부러 라니에게 따로 인사를 하지 않았다. 자신이 무슨 말을 전하든, 룬칸델이 성국에 관여하려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쪽이 조금 더 룬칸델이라는 이름이 멋있어지는 느낌이기도 하고 말이다.
반드시, 자신의 막냇동생이 지배하게 될 그 이름이.
와아아아-!
악을 쓰던 신민들은 이제 함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룬칸델의 기수들을 향한 환호와, 지플을 물러나게 만들었다는 승리감에서 비롯된 함성이었다.
그 속에서, 칼 지플은 여전히 구속구에 묶인 채 말이 없었다.
백야는 돌아가기 전에 칼을 챙기지 않았다. 다시 본가로 데려가는 순간, 지플 스스로 칼이 ‘꼬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꼴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칼 경,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당신이 정말 생체 실험과 관련이 있습니까?”
라니가 칼을 보며 말했다.
“죽이시오. 변명하고 싶지 않소.”
“차후 당신이 진범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당연히 그리할 것입니다. 그러나 위증이라면 당신은 평생 성국의 지하감옥에서 썩게 될 겁니다. 황금방패회, 칼 경을 수감소에 가두도록 하세요.”
* * *
오후 광장에 있던 기자들은 전원 인생 최대의 특종을 얻은 셈이었다.
따라서 저녁부터 전 세계에 미친 듯이 속보가 갱신되었다.
칼 지플의 자백, 디노의 폭로, 킨젤로의 정체, 백야와 룬칸델의 대치 등등. 근 10년 내에 한 나라에서 일어난 사건이 이토록 빠르게 세계로 퍼진 적은 없었다.
휴페스터 연합국으로 대표되는 룬칸델의 펜대들과, 루테로 마법연방으로 대표되는 지플의 펜대들은 그야말로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룬칸델은 코젝까지 가져온 백야가 ‘룬칸델 기수 둘’을 당해내지 못해 물러났다는 것을 광고했고, 지플은 마치 그것이 백야가 자비를 베푼 것처럼 서술했다.
그러나 그 전쟁은 시작되기 전부터 룬칸델 쪽으로 승기가 기울어있었다.
최초 폭로자인 디노가 휴페스터 소속인 데다, 백야가 성과 없이 돌아갔으니 뻔한 일이었다.
중립적인 언론사들은 생체 골렘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유추하는 기사를 써냈다. 디노가 뿌린 소식지를 똑같이 따라 쓴 수준이었으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들의 최대 관심사는 ‘바멀’이라는 이름이었다.
대체 바멀은 누구인가?
무슨 목적으로 지플의 비리를 밝혀내고 있는 것인가?
성국의 아픔보다 그에 대한 궁금증을 드러내는 세인들이 더 많았다. 타인의 고통보다 흥미로운 이야기에 열광하는 이들이 더 많은 건 씁쓸한 현실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성국에겐 큰 도움이 되었다.
바멀의 행적을 추적하는 것이야말로 진실을 가려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젠장, 그 인간. 대체 뭐지?”
한편, 무라칸은 광장을 벗어난 후 계속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다.
마르지엘라를 놓쳤기 때문이었다.
“분명 잘 쫓아가고 있었는데,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연기처럼 사라졌다고.”
“알겠어, 누가 탓하는 사람도 없는데 왜 이렇게 화를 내냐.”
“묘하게 자존심이 상한단 말이다. 힘을 4할이나 되찾았는데, 그깟 인간 따윌 놓치다니. 게다가 그렇게 사라진 걸 보면, 내가 쫓아오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뜻이거든? 하!”
“내 생각엔 마르지엘라도 뭔가 특별한 힘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요나 누님이나 부바르, 아니면 킨젤로의 단장처럼.”
“그것들은 신도 아니면서 왜 자꾸 요상한 힘을 쓰는 거야?”
“마신석이 애초에 킨젤로의 작품이잖아. 신이 되고 싶나보지, 그것들도.”
마르지엘라를 놓친 게 아쉽기는 했다.
하지만 무라칸이 놓치는 걸 전혀 예상치 못한 건 아니었다. 그토록 아끼는 여동생을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보냈을 리는 없는 것이다.
“어쨌든, 이제 은혜 갚기의 막바지다. 진상규명이 완벽하게 이뤄지기는 어렵겠지만, 재판과 조사가 끝난 후 라니가 즉위할 만한 상황은 충분히 만들어졌어.”
라니는 가짜 성왕이 죽은 직후부터 성국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배신한 관료들은 여전히 그녀의 편이 아니었으나, 지플의 비리가 드러난 이상 그들은 더 이상 권력자라고 할 수 없었다.
권력은 백성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었다. 소식지를 타고 비투라의 명부도 전 세계에 뿌려진 덕에, 신민들은 배신자들의 이름을 달달 외우고 있었다.
지플도 더 이상 그들에게 힘을 실어줄 수 없으니 끝난 것이다.
반면, 신민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라니를 지지했다.
그녀는 여전히 광장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광장은, 칼 지플이 찾아왔을 때보다도 더 많은 신민들이 몰려있었다.
정확히는 광장이 아니라 성국 수도 전체에 모여있었다. 그 넓은 광장으로도 다 수용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신민들이 그녀를 지키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신민들뿐만이 아니라 순수하게 성국의 고통을 나누려는 타인들도 적지 않았다.
세상사람 모두가 흥미만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건 그렇지만. 종교쟁이 녀석, 잘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군. 그만한 인간이 감당하기엔 너무 큰일들이 벌어졌으니. 기수가 된 다음에도 종종 돌봐줘.”
“누군가가 돌봐줘야 할 정도라면 왕위에 오르지 않는 것이 맞아. 아마 라니 경은 잘 해낼 거다. 원래 자신을 배척하는 이들 속에서도 신념을 잃지 않은 사람이니까.”
“하여간 차갑기는. 뭐, 네 말이 맞긴 하군. 인간 세계에서 왕이란 그런 존재였지. 내가 삼천 년을 살며 본 것은 대부분이 왕 같지 않은 것들이었다만.”
곧 재판이 열릴 예정이었다.
몬티아노 대신관과 코뉴 대신관을 비롯한 배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재판이었다. 마지막 남은 충신들이 주최하는 재판인 만큼, 그들은 사형을 피할 수 없을 터였다.
‘비투라는 명예와 목숨을 잃었고, 죽음 뒤의 미래까지 잃었으니. 그놈들도 최소한 그 정도는 잃어야겠지.’
재판이 끝나면 성국 관료는 9할 가까이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국장과 생체 골렘 피해자들을 위한 진혼제는 그 다음에 열릴 예정이었다.
‘그나저나, 킨젤로가 날 어떻게 돕겠다는 건지는 잘 모르겠군.’
문득 마르지엘라의 메시지를 떠올리는 진.
그 궁금증은, 다음 날 해가 뜨자마자 해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