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284)
제 222화
89화. 테마르의 첫 번째 무덤(6)
“실더레이가 누군데?”
폭풍성과 생도 시절 가문 역사 교육을 받을 때도, 진은 그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실더레이와 관련한 모든 기록을 지플이 지워버렸기 때문이었다.
아직 실더레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어둑한 공간 너머 깊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기운만이 느껴질 뿐.
마치 바다 저 깊은 곳에서부터 심해의 괴물이 올라오는 걸 목도한 기분이었다. 마주치기 전부터 알 수 있었다. 적이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솜털이 바짝 곤두서는 감각에, 약간의 희열이 함께했다. 스릉, 검집을 빠져나온 시그문드의 창백한 칼날이 어둠 속에서 번들거렸다.
“테마르의 십대기사 중 하나. 지금 룬칸델 흑기사의 전신이라고 볼 수 있겠군. 본래 성은 지제크인데, 나중엔 테마르를 따라 룬칸델로 성을 바꿨어.”
“흑기사의 전신이라, 흥미로운 이야기인데.”
진의 대답에 무라칸이 질색을 했다.
“흥미롭다니, 이 상황에? 네놈도 미쳐가고 있구나. 나 지금 전투 불능이라고. 저 수호자가 실더레이의 전성기를 그대로 재현한 것이라면, 어우, 감당 안 돼. 승산이 한없이 밑바닥이지.”
“그건 대보기 전엔 모르는 일이지. 그리고 꼭 싸우게 되리란 법도 없잖아? 테마르를 위로하러 왔냐고 물었으니, 생각보다 호의적일…….”
“그럴 리가 없다. 저건 진짜 실더레이가 아니라 녀석을 본떠서 만든 수호자란 말이다. 그리고 수호자는 일단 침입자를 다 족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서서히 수호자의 기운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무라칸의 말이 옳았다. 그 기운은 명백히 투기를 품고 있었다.
살갗이 찌릿찌릿 불타는 것 같이 맹렬하고 거대한 투기를.
“어느 정도야?”
“뭐가?”
“네가 기억하는 실더레이의 전투력.”
“10성. 그중에서도 빼어난 수준. 다행히 순혈 룬칸델처럼 마검사는 아니었어.”
“부디 전성기를 재현시킨 게 아니길 바라야겠군. 이 아공간에서 도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 같지?”
“열쇠에 같은 양의 영기를 주입하거나, 수호자가 길을 안내해주거나. 둘 중 하나일 테지.”
“좋아,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싸움이네. 일단 한판 붙고 나서 생각해보자고.”
진이 자세를 잡았다.
무라칸은 그런 진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어째, 이 미친 꼬마 놈…… 즐기고 있는 것 같은데.’
어느 정도는 그랬다.
진은 실더레이라는, 흑기사의 시초나 다름없는 인물과 겨뤄볼 수 있다는 것에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건 단지 무인으로서의 호승심, 혹은 치기에서 비롯된 만족감은 아니었다.
‘솔더렛의 안배, 그가 내게 남긴 시험은 모두 결국엔 내가 반드시 극복할 수 있는 시련이었다. 게다가 10성 기사와 검을 섞을 수 있는 기회는 아무 때나 오는 게 아니야.’
다른 10성 기사인 흑기사 첩자, ‘바르톤 비체나’ 암살 임무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10성 기사와 싸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실전 감각을 끌어올리기에 수호자보다 적합한 상대는 없었다.
무엇보다.
진은 무라칸의 의견과 달리, 승산이 아주 없다고 판단하지 않았다.
‘혹 최악의 경우가 오더라도, 라프라로사의 형제들을 소환하면 된다. 썩 내키지는 않지만.’
마침내 어둑한 공간 저편에서 수호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룬칸델 수호기사들과 흡사한 형태의 갑옷을 입고 있었다. 장대한 근골, 갑옷으로도 감춰지지 않는 폭발적인 근육, 강철도 꿰뚫을 것처럼 묵직하고 예리한 눈빛.
그리고 몸집보다 거대한 듯 보이는 대검이 인상적이었다.
루나의 도끼검보다도 육중한 그 대검은, 실더레이라는 무명武名이 후대에 전혀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습게 만들고 있었다.
누구라도 저만한 대검을 뜻대로 휘두를 수 있다면 역사에 길이 이름이 남았을 테니 말이다.
수호자는 두 사람과 스무 걸음쯤을 남겨두고 멈췄다.
그는 진의 ‘검은빛 부르기’와 똑같은 형식으로 구현된 수호자였다.
특정 조건이 달성되면 일시적으로 망자가 인세에 현현하도록, 솔더렛이 실더레이의 영혼과 의지를 영기로 빚어둔 것이다.
진과 무라칸은 수호자를 보자마자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이 무덤의 수호자, 실더레이 룬칸델이다.]“야, 실더레이! 나 못 알아보겠냐?”
무라칸이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수호자는 그 목소리를 완벽하게 무시한 채 진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왜 대답이 없어, 실더레이. 이 자식아. 무라칸이란 말이다. 흑룡 무라칸.”
[그런 잡놈은 알지 못한다.]“뭐, 잡놈……!?”
[썩 꺼져라, 네놈은.]“하! 저거 말하는 것 좀 보게. 이 몸이 아무리 옛 힘을 잃었기로서니, 지금은 영기가 다 바닥났기로서니! 네놈이 내게 그따위로 말을 해도 된단 말이냐? 실더레이. 난 네 주군, 테마르의 수호룡이었다.”
[……테마르의 이름을 한 번만 더 거론하면 예고 없이 목을 베겠다.]수호자는 무라칸을 향한 모종의 원망이 있는 듯했다.
그는 영기로 빚어진 완벽한 복제인 만큼, 실더레이의 옛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다.
무라칸이 눈을 홉뜨며 수호자를 노려보았다.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패주고 싶지만, 그건 전성기의 무라칸에게도 마냥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지금은 영기를 다 소모한 상태니 참을 수밖에.
[이름을 밝혀라, 솔더렛의 마지막 계약자.]“진 룬칸델입니다.”
실더레이의 눈빛이 깊어졌다.
[……솔더렛은 약속을 지켰군. 그럼 이제 내가 약속을 지킬 차례로다.]후웅……!
실더레이가 부드럽게 대검을 휘둘렀다. 그것만으로도 묵직한 검풍이 흘러나와 진과 무라칸의 머리칼을 흩트렸다.
[십대기사 실더레이 룬칸델, 검과 그림자의 신 솔더렛과의 오랜 약속에 따라 그 마지막 계약자에게 내 의지를 전승하도록 하겠다.]의지의 전승.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계약자, 진 룬칸델은 나와 싸울 각오를 하라.]“수호자, 실더레이 룬칸델 경. 제게 한 가지를 약속해주십시오.”
말투는 공손했으나 진은 수호자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부탁이 아니라 통보를 하듯이.
[말하라.]“무라칸은 현재 전투가 불가한 상황입니다. 그가 죽지 않도록 배려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건 잡놈이 알아서 할 문제다.]“감사합니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무라칸의 자존심이 상하는 건 어쩔 수 없을 테지만.
[이후에 벌어지는 모든 결과는 겸허히 받아들이도록.]말이 끝난 직후에.
수호자의 대검이 번쩍, 빛을 발했다.
문자 그대로 잠시 번쩍한 느낌만이 있었다.
그러나 그건 대검이 움직이며 벌어진 현상이었고, 직접 보지 않는 한 아무도 그 육중한 대검이 이토록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걸 믿지 못할 것이다.
스걱, 콰아앙-!
대검과 시그문드가 부딪히자 머릿속이 멍멍해지는 굉음이 일었다.
단단한 석재로 이뤄진 듯 보인 바닥이 으깨졌고, 부서진 돌들은 영기로 변해 어디론가 증발했다.
충격파가 사방을 할퀴고 있었다.
까드득, 이를 악무는 진.
지난 1년 동안 라프라로사에서 투왕들의 검에 익숙해지지 않았다면, 혹은 이전에 바네사와 검을 맞대본 적이 없었다면, 일합을 받자마자 당황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굉장하군……!’
수호자의 일격엔 태산이 짓누르는 것 같은 압박감과, 깨진 흑요석 같은 날카로움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무라칸은 이미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첫 합의 충격파에 몸이 붕 떠서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다.
다행히 치명상은 피한 모양새였다. 무라칸은 간신히 바닥에 착지한 후, 저주에 가까운 온갖 욕설을 내뱉으며 전장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수호자는 굳이 무라칸을 추격하지 않았다.
두 번째, 세 번째 검격이 연이어 날아들었다.
한 수, 한 수 격돌할 때마다 뼈가 부서지고 살갗이 찢어지는 끔찍한 고통이 뒤따랐다. 그러나 고통과 별개로 진의 육체는 탄력적으로 충격을 분배하고 있었다.
‘그간의 수련이 헛되지 않았군.’
10성, 창성의 바로 전 단계.
수호자가 그중에서도 ‘빼어났다’는 실더레이의 전성기를 완벽하게 재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단순한 공격에도 10성의 위력이 스며있는 것은 확실했다.
바네사, 혹은 명왕족 투왕들과 엇비슷한 파괴력.
진은 그런 수호자의 공격에 순수 검술만으로 맞서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역공의 기회가 보이지 않아.’
문제는 반격이었다.
방어에 급급한 나머지 도저히 공격할 수 있는 틈이 생기질 않았다. 수호자의 대검은 1초에도 대여섯 번씩 온갖 방향에서 섬광을 일으키며 진을 압박해왔다.
이를테면 수호자는 진보다 명백히, 그리고 월등하게 강한 힘을 갖고 있었다.
보다 강한 상대와 싸우는 건 늘 있어온 일.
강적을 만났을 때, 진은 언제나 변수를 통해 전세를 역전하곤 했다. 상대는 내가 가진 무기를 다 알지 못한다는 마음, 그것을 기반으로 언제나 침착하게 대응했던 것이다.
섬광포, 뮬타의 룬, 명왕족의 뇌기, 영기 등. 비장의 한 수들은 언제나 훌륭한 결과를 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과연 10성 기사에게도 통할까?
진은 이미 바네사의 시험을 치를 때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경험했었다. 당시 그녀는 섬광포도, 명왕검도 그저 조금 신기한 기술 취급하며 간단하게 파해한 것이다.
검의 극지에 다다른 무인에게 변수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적어도 그들이 닿은 영역만큼 심도 깊은 기술이 아니라면, 모두 다 잡기에 불과했다.
‘처음부터 투신기를 펼쳐야 한다. 다른 건 전부 소용이 없어.’
물론 평식 벼락이나 압제가 결코 부족한 검은 아니었다.
하지만 진은 아직 그것들을 10성 위력으로 펼칠 수 없었다. 그것들로 어설프게 기교를 부리거나 함정을 파는 건 오히려 자승자박으로 달리는 수였다.
‘우선 테스를 소환해서 최소한의 시간을 벌고, 투신기 침식을 펼쳐 내 영역을 확보한…… 젠장, 차원문이 안 열리잖아! 여기도 죽은 세계였나……!’
화염계를 열기 위한 소환식을 맺어도 차원문이 열리지 않았다.
‘죽은 세계’에서는 차원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진은 이미 몇 차례 경험한 바가 있었다.
솔더렛이 손수 빚은 이 아공간 역시 죽은 세계였다.
어쩔 수 없이, 황급히 펼친 검은빛 부르기마저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어떤 형태의 소환도 죽은 세계에선 실현이 불가능한 것이다.
[무언가를 시도한 것 같은데, 다 실패로 돌아간 모양이군. 그럼에도 냉정을 잃지 않은 건 높이 살 만해.]수호자가 한층 더 매섭게 대검을 휘둘렀다.
진은 그때쯤 처음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슬슬 격차가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이다.
완력, 정확도, 경험. 당연하게도 수호자는 모든 면에서 진을 압도하고 있었다.
주륵, 진의 입가에 한 줄기 선혈이 흘러내렸다.
단지 충격에 입속이 찢어졌을 뿐, 장기가 다친 것은 아니었다.
‘망할, 이곳도 죽은 세계일 줄은 생각하지 못했군. 앞으로 낯선 공간에 도착했을 땐 소환 가능 여부부터 확인해봐야겠어.’
진이 호흡을 골랐다.
비록 최악의 경우를 상정한 수는 원천봉쇄 되었으나, 아직 끝난 건 아니었다.
‘며칠 뒤 있을 임무를 생각해서, 이건 정말 쓰고 싶지 않았는데.’
프즉, 프즈즉, 카직-!
광심장 속에서 급격히 뇌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것마저 수포로 돌아가면 그때 남는 유일한 수는, 도주와 기도뿐일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