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31)
제 33화
12화. 투쟁, 쟁취, 향유(2)
후우아!
방으로 돌아온 진이 한 차례 길게 심호흡을 했다. 문을 닫아걸고 벽에 기대니, 드디어 긴장이 좀 풀리는 느낌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이제야 제대로 긴장을 표출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오, 씨.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방금 숙부, 제드 룬칸델과 나눈 대화를 돌아보니 스스로가 놀라울 지경이었다.
회귀 덕에 그의 성격도 알고, 자신의 강점도 알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상대가 상대였다.
제드를 도발하며 조금이라도 두려운 기색을 드러냈다면, 사지 중 하나 정도는 분명 잘려 나갔을 터였다. 어쩌면 그의 말대로 목이 베였을 수도 있고.
그러나 진은 잘 해냈다. 제드와 생도들에게 잊지 못할 강렬한 인상을 심어 줬고, 토나 형제와의 서열 전쟁에서 초장부터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
제드를 상대로 목숨 걸고 얻은 대가치고는 작아 보일 수 있지만.
진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룬칸델에선 작은 것에도 툭하면 목숨이 오가고, 늘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얻을 수 있는 게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을.
‘투쟁, 쟁취, 향유… 확신할 수 있어. 회귀자라고 해서 모두가 나처럼 할 수 있지는 않을 것이다.’
전생엔 증오해 마지않은 룬칸델의 3대 덕목.
이제는 그것들과 누구보다도 가까워진 진이었다.
“길리.”
“예, 도련님.”
“토나 형님들과 본격적인 서열 전쟁이 시작됐어. 그런데 아무래도 토나 형님들 뒤에 앤과 뮤 누님이 있는 것 같아.”
찻잔을 닦고 있던 길리의 손길이 멎었다.
진이 중급반에 오르면 토나 형제와 서열 전쟁을 시작하리라는 건 그녀도 예상하고 있었다. 중급반이라는 한 울타리에서 같이 지내는 만큼 피할 수 없는 것이니까.
그런데 토나 형제에게 조력자가 있다는 건 길리의 예상 밖이었다. 이내 길리의 눈동자에 짙은 투기가 서렸다.
“아가씨들께서… 정말인가요?”
“그래. 오늘 토나 형님들과 함께 있던 생도 하나를 베었는데, 알아보니 누님들의 파벌이었어. 애초에 토나 형님들이 벌써 5성 기사를 파벌로 뒀을 리도 없고.”
아무리 룬칸델의 직계라 하더라도, 파벌은 보통 그보다 약한 사람이 소속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토나 형제는 아직 3성 중반에 불과했다.
“하아, 아가씨들께서 도련님을 벌써 견제하기 시작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분들은 이미 기수로서 활동하고 계시잖아요.”
뮤와 앤은 7성 기사인 데다 여러 전장에서 공도 세운 만큼, 가문의 기수 자격을 획득한 인물들이었다.
시론의 열세 자식 중 현재 기수가 되지 못한 이는 네 명.
진과 토나 형제, 그리고 딸 중에 가장 어린 요나였다.
길리는 순식간에 착잡한 얼굴이 된 채 마른 헝겊만 만지작댔다.
“누님들이 나를 견제하기 시작한 건 오히려 기분 좋게 생각할 일이야, 이미 기수가 되었는데도 한참 어린 내가 신경 쓰인다는 뜻이니까.”
“그래도 너무하시네요. 도련님은 이제 겨우 열다섯이라고요. 기수는 기수끼리 싸우는 게 암묵적인 룰이고요!”
길리가 분통을 터뜨렸다.
“괜찮아. 누님들이 나를 단지 신경 쓰이는 정도가 아니라, 두려워하도록 바꿔주면 돼.”
펑!
고양이로 변신한 채 저쪽에서 햇볕을 쬐고 있던 무라칸이 인간으로 변신하는 소리였다.
“왜, 왜? 무슨 얘긴데? 나도 좀 듣자.”
길리가 간단하게 설명해 주자 무라칸이 탄식을 내뱉었다.
“내가 정체를 드러낼 수 없는 게 아쉽군. 7성 기사 둘쯤이야 한입에 조질 수 있는데. 그것들은 차후 가문에서 유일하게 지플을 씹어 먹을 수 있는 널 왜 못 잡아먹어 안달이냐?”
지플을 씹어 먹을 수 있다.
무라칸의 그 표현은 더없이 정확했다. 솔더렛의 힘이 있는 한, 진의 성장이 끝나면 룬칸델은 지플을 짓밟고 세계의 정점에 오르게 될 터.
아직까진 지플이 우위였다. 전면전을 치른다면 결국 승리하는 쪽은 지플일 것이다.
지플이 아직까지 룬칸델과 전면전을 치르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싸움이 끝나면 지플도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과, 시론 룬칸델의 존재.
그러나 지플이 모르는 게 한 가지 더 있다. 그들이 염원해 마지않는 신, 솔더렛이 현재 진과 함께하고 있다는 것.
“네가 솔더렛의 계약자라는 걸 모르기 때문에 그런가?”
“아니, 그냥 싹이 보이는 놈이 싫은 거야. 오히려 내가 계약자라는 걸 알면 아마 지금보다 열 배는 더 견제했을걸. 아직까지 숨이 붙어 있기도 어려웠겠지.”
“하여간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지랄 같은 가문이군. 그래도 정작 네놈들 초대 가주는 싸가지가 없었다 뿐이지, 정이 없는 놈은 아니었는데.”
“……그럼 도련님께선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어떻게 하긴. 누님들은 이미 나한테 한 방 먹었어. 내가 벤 생도는 중급반 최상위권인데, 첫날부터 내게 베인 것도 모자라 공식적인 파벌까지 토나 형님들에게 옮겨졌거든.”
진이 훈련장에서 겪은 이야기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카진은 더 이상 대외적으로는 앤의 파벌이 아니게 되었다. 토나 형제가 직접 ‘내 생도’라는 표현을 사용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번 일로 토나 형님들은 아마 누님들한테 뒤지게 깨질 거야. 분명 내일 얼굴이 팅팅 부어서 훈련장을 찾아올 거라고. 사실상 중급반의 파벌로 나를 압박하는 건 어려워진 셈이지.”
왕이 장수에게 훌륭한 군사력을 제공했는데, 그걸 첫날에 다 잃는다면 왕은 앞으로 장수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
뮤, 앤과 토나 형제의 상황이 딱 그랬다.
“게다가 이미 기수인 누님들이 직접 중급반을 찾아와 나를 짓밟을 수도 없지. 그렇다면 누님들이 나를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은 딱 하나뿐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길리가 탄식을 뱉었다.
“임무로군요!”
“그래. 아마 기수의 권한으로 내 임무 일정을 조정하려 하겠지. 더럽게 난이도 높은 임무만 쏙쏙 골라서 보내려고 할 거야. 거기서 내가 죽거나 다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야.”
“제가 아가씨들의 유모들과 얘기해 보겠습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게 둘 수는 없습니다.”
착하고 소박한 길리는 영악하게 생각하는 법을 잘 몰랐다.
“안 돼, 길리. 그렇게 했다간 누님들이 네가 월권을 시도한다며 직접 징계할 수도 있어. 게다가 임무 관리는 기수들의 권한이니까, 우리 쪽에서는 막을 명분이 없기도 하지.”
“젠장, 망할! 빌어먹, 앗, 죄송합니다. 도련님. 저도 모르게 그만.”
“괜찮다, 딸기파이여.”
무라칸이 대신 대답하자 진이 빙긋 웃으며 뒷말을 이었다.
“하지만 누님들이 잘 모르는 게 하나 있다고. 고난이도 임무 중엔 단독 임무가 많은데… 단독 임무에선 내가 능력에 제한을 둘 필요가 없다는 말이지?”
단체 임무와 달리, 혼자 수행하는 임무라면 마법과 영기를 사용해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마법과 영기, 무가 비전서의 비기를 펼치는 동안 목격자를 만들지 않거나, 목격자를 모조리 죽이기만 한다면 말이다.
“그래서 단독 임무는 오히려 기회야. 누님들이 단독 임무를 보내 주면 나야 고맙지. 안 그래도 검만 쓰려니 답답했는데 가서 숨겨 둔 힘을 이용해 싹 쓸어버리고, 실적이나 쌓으면 되는 거거든.”
임무 실적, 그것이야말로 중급반을 평가하는 절대적인 척도였다.
검술이 뛰어나도 실전이 약한 경우가 있고, 검술이 다소 모자라도 실전에 강한 경우가 있는 것이다. 당연히 더 중요한 쪽은 실전이었다.
그중에서도 고난이도 단독 임무라면 단연코 최고의 점수거리였다. 단독 임무는 주로 요인 암살이나 첩보로 이루어진 만큼, 가장 위험하기 때문이다.
“괜찮은 생각이로군, 꼬마.”
“……숨겨 둔 힘을 다 사용하신다면, 지금의 도련님께선 상급 생도 하위권까지는 상대가 가능할 테니까요.”
무라칸과 길리는 진의 진짜 전투력을 잘 알고 있었다. 검술 또한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으니 첫 임무 전에 4성은 완성할 수 있을 터였다.
“게다가 네놈에게 불가능할 것 같은 임무라면 나와 함께 가도 되고 말이야. 단독 임무여도 고양이 한 마리쯤은 데려가도 문제될 것 없잖아?”
“없지. 하지만 너는 따로 할 일이 있어.”
“뭔데?”
“나중에 알려 줄게. 대충 이야기가 된 것 같으니, 난 루나 누님의 훈련을 받으러 가야겠어. 나 없는 동안 사고 치지 말고 얌전히 있어라.”
* * *
중급 훈련반의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되었다.
훈련 내용은 진검을 사용한다는 점과 강도가 더 강해졌다는 것을 제외하면, 초급반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다만, 오후 훈련이 시작되면 진과 토나 형제는 훈련장 내의 비밀 공간에서 제드에게 직접 ‘룬칸델 검술’을 지도받았다. 순혈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인 것이다.
“우리 가문의 검술은 한마디로 패도다. 파괴적이고, 거침이 없지. 검술에 룬칸델의 성격이 그대로 묻어나는 것이다.”
정좌로 앉은 진과 토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토나 형제는 과연 진의 예상처럼 얼굴이 호빵처럼 부어 있었는데, 밤새 누이들에게 두들겨 맞은 덕이었다.
그러나 제드는 토나 형제에게 얼굴이 왜 그 모양이냐는 질문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진이 들어오기 전부터 토나 형제의 ‘싹’이 최고 수준은 아니라는 걸 느끼고 있던 것이다.
‘살다 살다 토나 형제가 불쌍하게 보이는 순간이 다 오는군. 뭐, 자업자득이지만.’
비록 전생에선 미치광이 살인광이었고, 지금도 예비 살인광으로 자라는 중이지만.
어쨌거나 토나 형제 또한 바깥에선 엄청난 천재로 취급할 꼬마들이었다. 그러나 제드의 눈에는 한참 미달이라 특별한 관심조차 받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어제 진에게 보기 좋게 망신까지 당했으니, 제드로서는 더더욱 토나 형제가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제드가 토나 형제에게 애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너흰 충분히 강해지기 전까지 막내에게 대들지 말거라. 오래 살고 싶다면 말이다. 그 아이는 너희들 상대가 아니야.
어제 훈련장에 토나 형제만 남긴 후, 제드가 그들에게 건넨 말이었다.
“너희도 익히 알고 있겠지만, 우리 가문의 검술엔 이렇다 할 식式이 없다. 비기와 결전기는 존재하나, 그건 기수가 되고 나서야 익힐 수 있는 것이지.”
가문 직계들이 배우는 룬칸델의 검술은 무형이다. 생도들이 익히는 것과는 달랐다.
식이 없고, 법칙이 없고, 보법이 없고, 마땅한 형태조차 없다. 다른 무가와 룬칸델이 구분되는 가장 큰 특징이었다.
“우리 가문의 검술에 형태가 없는 이유를 아느냐?”
“룬칸델이라는 혈통 특유의 신체 능력과 감각 때문입니다.”
“정확하다. 룬칸델이라는 축복받은 혈통은, 감히 보편적인 인간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육신과 검에 대한 감각을 지니고 태어나지. 백이면 백, 천이면 천!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말이다.”
혈통의 축복이 개화하는 시기와 능력의 수준은 편차가 있었지만, 천 년의 역사에서 그걸 누리지 못한 룬칸델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 대신, 마력에 대한 친화력은 더 이상 설명할 길이 없을 만큼 낮았다. 진이 룬칸델에서도 아주 특별한 존재인 이유였다.
제드가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 갔다.
“고로, 너희가 내게 배울 것은 간단하고 무식하다. 일어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