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350)
제 333화
107화. 킨젤로의 방문(3)
비먼트 황실.
세인들이 흔히 고귀한 핏줄, 신비의 황가라 부르는 인간들이자 제국의 지배자. 그들이 테마르의 무덤을 찾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왜?
그들에게 동선이 노출된 적 있다는 말에 대해서보다, 근본적인 의문이 먼저 떠올랐다.
‘테마르의 무덤을 찾아서 뭘 어쩔 셈이지?’
그림자의 계약자가 아닌 존재는 솔더렛이 남긴 유산을 이용할 수 없다.
그렇다면 제3자들이 무덤을 찾는 이유는, 계약자가 유산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위함일 가능성이 높았다.
혹은 테마르의 무덤 속에 진이 모르는 또 다른 무언가가 존재하거나.
“그다지 놀랍지 않다는 얼굴이네요? 분명 놀라셨을 텐데.”
“놀랍습니다.”
“와아, 이럴 때 제 오라버니만큼 표정 관리를 잘하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부바르를 대하는 모습을 돌아보면 비슈켈은 그다지 표정을 잘 감추지 못하는 것 같았으나,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지플이야 그렇다 치고, 비먼트 황실도 테마르의 무덤을 찾고 있다고 칩시다. 어떻게 알아낸 정보입니까?”
“글쎄요, 우리 단장이 모르는 건 세상에 별로 없다. 이 정도 설명으로는 부족할까요?”
마르지엘라가 천진난만한 얼굴로 답하자 진이 입꼬리를 올렸다.
“딱히 부족할 건 없습니다. 킨젤로가 내게 모든 걸 명명백백히 보고해야 할 의무도 없고. 그냥 한 번 물어본 겁니다.”
“시원하게 넘어가 주시네요.”
“정보의 출처는 불명확해도 의도는 빤하니까 말이죠. 거짓 정보일 것 같지도 않고.”
출처가 궁금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어차피 알려주지 않으리라 생각했을 뿐.
“이유도 알고 있습니까?”
“비먼트 황실이 룬칸델 초대 가주의 무덤을 찾는 이유 말이에요?”
“예.”
“호호, 그건 잘 기억이 안 나네요. 진 경께서 저희와 함께 혁명에 동참하시면, 뿅 하고 떠오를 것 같기도 한데.”
“그냥 계속 잊고 사시길.”
“정말 아쉽지 않으시겠어요? 지금까지 알려준 것 중 가장 대단한 정보라고요.”
보통내기가 아니다.
정체는 불명이고, 혼돈의 기운에 물든 것으로 추정되며, 얼굴은 두껍고, 능글맞은 데다 여유롭기까지. 마르지엘라는 상대하기 상당히 피곤한 부류였다.
다행히도 진은 이런 사람들을 다루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이만 돌아가십시오. 찻값은 받지 않겠습니다.”
“찻값이라고요?”
“밀라산 최고급 차였거든요. 저도 아껴 먹는. 뭐 그건 중요하지 않고, 길리. 비슈켈 경과 마르지엘라 양을 배웅해드려.”
“알겠습니다, 도련님.”
“농담이죠?”
“진담입니다.”
“자, 잠깐만요!”
진은 그 말을 듣지도 않고 홱 돌아서버렸다.
“살짝! 살짝 귀띔은 해줄게요. 다시 여기 좀 앉아보…….”
그러나 진은 이미 다른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린 상태였다.
마르지엘라는 한동안 닫힌 문을 멍하게 바라보다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사교계에선 이런 걸 밀고 당기기라고 표현하던데, 내가 너무 당겼나? 오라버니. 어떻게 생각해요?”
“……그리 적절치 않은 표현 같구나.”
“음, 길리 맥로란 경? 제가 무례를 사과하면, 진 경이 다시 나와 주실까요?”
고개를 젓는 길리.
“절대로 나오지 않으실 겁니다. 따라오십시오.”
길리가 먼저 방문을 나서자 비슈켈은 휠체어를 밀며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마르지엘라는 몹시 실망한 눈치였고, 비슈켈은 냉담한 얼굴이었다. 진이 자신의 동생에게 무안을 줬다는 마음에 화가 난 것 같기도 했다.
“길리 맥로란 경.”
“말씀하세요, 마르지엘라 님.”
“황실이 찾고 있는 건 테마르 룬칸델의 시신이랍니다. 진 경에게 전해주세요.”
길리는 대답하지 않고 계속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만 않을 뿐, 가슴이 쿵쾅거려 미칠 것 같았다.
길리는 두 번째 무덤에서 수호자로 빚어진 사라의 멀쩡한 모습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어쩌면 테마르 역시 그런 식으로 그를 위한 어느 무덤 안에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있는 듯 보이는’ 사람의 형태를 한 채.
동시에 불길한 마음이 들었다.
‘무덤 어딘가에 초대 가주님이 존재한다면…… 그분은, 도련님께 우호적일까?’
사라는 진을 보자마자 공격했다. 또 진에게 듣기로는 첫 번째 무덤에서 만난 수호자, 실더레이 룬칸델 역시 그랬다고 했다.
‘왠지 모르게 불길하지만, 어차피 내가 아니라 도련님이 판단할 문제다.’
길리가 대답이 없자 마르지엘라가 섭섭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전 그저 진 경과 한편이 되고 싶을 뿐인데, 진 경은 절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아요. 짝사랑이라도 하는 기분이라니까요.”
우뚝.
그러자 잠시 길리가 걸음을 멈추고 마르지엘라를 돌아보았다.
“킨젤로는 과거부터 줄곧 도련님과 마찰을 일으켜왔습니다. 생도 시절엔 도련님의 사람을 납치했었고, 지플과 동맹을 맺고 괴상한 물건을 만들어 세상을 위협했으며, 그 과정에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은 한둘이 아니죠.”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당신들이 만든 나침반을 이용해 지플은 계약자들을 신기한 물건을 찾듯 수집해왔고, 킨젤로 산하 암흑마법회는 성국의 신민들을 생체 골렘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아…….”
“당신도 성국 사건 때 직접 보았다고 들었습니다. 생체 골렘 피해자들을 말이죠. 온몸이 흉측하게 변해 삶을 잃은 그들의 모습을 보고도, 가책 같은 건 전혀 느끼지 못한 겁니까?”
“그건.”
“도련님께 작은 도움을 준 적이 있다고 해서 착각하지 마십시오. 도련님은 당신들이 없었어도 이번 위기를 극복하실 수 있었어요. 도련님이 세상에서 가장 혐오하는 건, 바로 당신들 같은 사람입니다.”
일순 살기를 드러낸 길리가 다시 무심한 표정을 지었다.
‘……이 미친 작자들의 과거를 돌아보다 욱해버렸군. 하지 않아도 될 말이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서서 이블리아노 남매를 안내하려는 찰나.
“이해하기 어려우실 테지만.”
마르지엘라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분명 우리가 나쁜 사람들처럼 보일 테지만 말이에요. 우리 킨젤로는, 넓은 의미에선 세상을 위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랍니다.”
“뭐라고요……?”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겁니다, 우리는. 그리고 그 일에 진 경께서도 동참하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지요. 진 경도 결국 우리의 뜻을 알게 되면, 긍정적으로 생각할 거예요.”
그 말에 하마터면 이성이 끊길 뻔했다.
분명, 누군가 길리의 어깨를 붙잡아주지 않았다면. 반드시 그랬을 것이다.
“……넷째 아가씨.”
길리의 어깨에 손을 얹은 것은 뮤였다.
“넷째 아가씨? 네가 나를 그렇게 불러도 되나?”
“죄송합니다, 8기수님.”
“그래, 그게 맞지. 다음엔 경고로만 넘어가지 않겠다, 길리 맥로란.”
“예, 알겠습니다.”
길리가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뮤의 시선은 이블리아노 남매를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복도를 걷다가 우연히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다 들은 참이었다.
“이런 미친 것들은 어딜 가나 존재한단 말이지. 세상을 위한 일? 3류 테러 단체였던 새끼들이 기껏 한다는 말이 그거냐? 재수 없으니까 닥치고 빨리 꺼져. 휠체어 부수고, 팔도 못 쓰게 만들어버리기 전에.”
대번에 비슈켈의 눈동자에 살기가 번졌다.
그러나 뮤는 그 모습에도 아랑곳 않고 코웃음을 쳤다.
“왜요? 비슈켈 경, 마음에 안 들어? 막 모욕당한 기분이에요?”
“말씀이 지나치시군요. 뮤 룬칸델 경.”
“뭣하면 결투장으로 가시죠. 연회 중은 아니지만, 기수한테 그 정도 권한은 있거든요.”
마르지엘라는 사랑스러운 자신의 오라버니가 난처하지 않도록, 혹은 분노에 취해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활짝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어머, 당신이 뮤 룬칸델 경이군요. 예쁜 얼굴에 험한 말씨는 오랜 제 취향이었답니다. 이렇게 또 좋은 구경을 하네요?”
“뭐?”
“만나서 반가웠어요. 불쾌하게 하려는 의도는 없었지만, 휴페스터 패자 가문의 기수로서 넓은 아량을 발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쌔앵! 마르지엘라가 전속으로 휠체어를 밀어 뮤를 지나쳤다.
그 가녀린 팔에서 나올 수 있는 속도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만큼 빠른 모습.
“아, 그리고 길리 경. 안내 고마웠어요! 다음엔 제가 차를 타드리도록 하죠.”
비슈켈은 잠시 뮤를 노려보다가 제 여동생을 따라 달렸다.
그의 마음속에 부바르만큼이나 죽이고 싶은 인간이 한 사람 늘어난 순간이었다.
“길리.”
“예, 8기수님.”
“방금 저것들을 베려고 하지 않았나. 유모 따위가, 미친 것이냐?”
길리가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조아리자, 뮤의 손이 올라갔다. 길리의 뺨을 후려치려는 것이다.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야, 뮤. 지금 막내 유모한테 손찌검을 하려는 거냐? 손 내려라.”
이번엔 메리였다.
공교롭게도 그들이 말하고 있던 곳은 메리의 방 앞이었다. 그래서 메리는 흥미롭게 바깥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어떤 일이 벌어질 줄 알고 복도로 나온 것이다.
“메리 언니?”
“그렇게 부르게 되어있어?”
“……7기수.”
“그래. 길게 말 안 할게. 뒤지기 싫으면 그냥 가던 길 가라.”
“언니!”
“이게 또 언니라고 부르네. 야, 이 멍청한 것아. 넌 막내한테 잘 보일 수 있는 상황 잘 만들어놓고, 왜 굳이 또 감점을 당하려고 난리를 치는 건데? 길리를 때린 다음엔, 감당이나 할 수 있고?”
물론 뮤가 진의 호감을 얻기 위해 이블리아노 남매를 모욕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단지 이블리아노가, 혹은 킨젤로 ‘따위’가 겁도 없이 검의 정원에서 헛소리를 늘어놓는 게 듣기 싫었을 뿐. 다른 의도는 전혀 없었다.
“하.”
“하? 더 해봐.”
까드득……!
뮤가 이를 악물며 메리를 노려보았다.
“……오늘은 물러나지만, 언니도 적당히 해요. 패서 말을 잘 듣게 되는 건 짐승이지, 난 사람이거든. 언제까지 참을 거라고만 생각하진 마.”
“말 잘 하네, 짐승도 패면 말을 듣는데. 사람은 더 잘 들어야지?”
뮤가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움켜쥔 채 떠나자 메리가 어깨를 으쓱였다.
“루나 언니가 저것들을 왜 이렇게 피곤하게 생각했는지 알겠단 말이지.”
“……감사합니다, 메리 아가씨.”
“뮤가 좀 재수 없게 말하긴 했지만, 넌 내가 아니라 저 녀석한테 고마워하긴 해야 해. 방금 이블리아노를 진짜로 공격했다면, 답이 없었을 거다.”
길리 스스로가 가장 잘 아는 사실이었다.
분에 못 이겨 이블리아노 남매를 공격했을 경우, 진이 얼마나 난처해졌을지 말이다.
그래서 스스로가 급격히 싫어졌다.
진에게 도움은 못 될망정, 하찮은 감정에 휘둘려 실수를 저지를 뻔한 것이다.
“뭐, 그래도 나는 너희들 그런 정의감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마음에 들어. 그 순혈에 그 유모지. 내 유모도 그렇게 했을걸?”
메리가 씨익 웃으며 길리의 어깨를 두들겼다.
“막내한테 조만간 결투 날짜랑 종목 잡자고 전해줘. 그리고 길리.”
“예.”
“내가 볼 때, 막내가 이성을 잃고 미쳐 날뛸 경우는 동료들이 잘못되었을 때밖에 없어. 그중에서도 너에 대해선 특히 각별할 테니, 앞으론 더 영리해지도록 해. 넌 막내에게 그 누구보다도 소중한 사람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