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368)
제 333화
112화. 그들이 테마르의 무덤을 찾는 이유(1)
‘갑옷 덕에 영기로 존재감을 지우는 게 훨씬 수월해졌어.’
이번에도 무인들은 진의 움직임에 재빨리 반응하지 못했다.
진이 무지막지한 속도로 이동한 탓도 있지만, 영기로 옅어진 존재감을 읽는 건 등 뒤의 그림자를 느끼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샤악……!
오러에 물든 비먼트 무인들의 칼날이 사위를 환하게 밝힌 가운데, 또 한 번 선혈이 튀었다. 핏방울은 영기의 입자와 섞여 탁한 빛깔이었다.
‘얕았군.’
처음과 달리 일격에 죽이지 못했다. 브라다만테는 무인의 목정맥을 스치고 허공에 길고 어두운 궤적을 남겼다.
그러나 그 궤적에는 ‘흐름’이나 ‘소리’라고 할 만한 요소가 단 하나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말하자면 쇳덩이를 휘두를 때 필연적으로 번질 수밖에 없는 무게감이라는 것이, 날붙이가 바람을 가를 때 퍼지는 파공음이라는 것이 없었다.
그저 유령이 지나간 것처럼 스산한 기운만이 피 흐르는 상처 주위를 맴돌 뿐이었다.
실제로 무인들은 일순 자신을 공격한 존재가 유령이라고 착각했다.
엄청난 속도로 쇄도한 기색은 물론이고 칼날이 움직이는 것조차 보이지 않은 데다.
자신들의 오러 때문에 주변이 환한 지금도 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으니 그렇게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어디냐, 어디로 숨은 것이냐?
비먼트 무인들의 머릿속에 같은 문장이 떠올랐다.
동시에 그들은 모두 무인으로서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습격을 받고도, 그것도 단 일격에 한 사람을 잃고도, 곧장 이어진 추가 공격에 또 한 사람을 잃을 뻔하고도.
즉각적으로 습격자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드는 것이다.
‘이게 무슨……! 진 룬칸델이 아니라, 무명의 최고 살수. 아니, 무명왕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그들의 인식 범위에서 이런 수준의 습격은 무명왕에게나 가능한 일이었다.
문제는 무명왕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영기로 최대한 존재감을 지운 진이라는 사실이었다.
“두 명씩 붙어라!”
비먼트 무인 중 하나가 아랫배에 힘을 꽉 주고 소리를 질렀다. 그가 여기 모인 무인들의 조장이었다.
조장의 명에 따라 무인들이 재빨리 짝을 지어 양방향을 경계했다.
비록 단칼에 당했다곤 하나, 그들 역시 비먼트 내에서 일반적으로는 최고 중의 최고로 통하는 무력집단이었다.
‘황실 직속 친위대로군.’
숲의 어둠에 숨어 그들의 옷차림을 살펴보는 진.
친위대의 상징과도 같은 황금 견장이 그들의 어깨에서 빛나고 있었다. 핏방울로 더럽혀진 그들의 순백색 코트와 진의 영기 갑옷이 대비되었다.
조장이 무인들의 가운데 서서 숲의 어둠을 살폈다. 진을 찾으려는 것이다.
벌써 그의 턱으로 차가운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조장은 극도의 긴장과 더불어 한계까지 곤두세운 감각에 벌써 호흡이 가빠질 지경이었다.
과연 그는 황실 직속 친위대의 조장이라 할 만한 인물이었다.
“나와라……!”
정확히 진이 숨은 어둠 속에 검을 겨누는 조장. 그의 부하들은 진이 그쪽에 숨어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 찬찬히 진이 걸음을 옮겼다.
진의 모습을 본 친위대들은 한 차례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뮬타의 룬과 영기 갑옷, 그리고 어둠 때문에 진은 그야말로 그림자가 일어선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나는 대 비먼트 제국 황실 직속 친위대 5조장 릭 헬터다. 이름을 밝혀라.”
“굳이 소속을 밝히는 걸 보니 겁을 먹은 모양이로군.”
“……우린 황제 폐하의 명을 받아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네가 누구든, 친위대의 임무를 방해해서 제국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군.”
“장난을 하는 것인가?”
“우린 진 룬칸델을 만나러 왔다.”
진은 속으로 실소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림자의 계약자라는 사실이 세상에 밝혀진 지 오래인데, 황실 최고의 정보기관이기도 한 친위대는 아직 모르고 있었나 보군.”
릭과 부하들의 눈동자가 커졌다.
지나치게 긴장한 나머지 일순 자신들 사이를 휘저었던 검과, 눈앞의 남자가 입고 있는 갑옷을 뒤덮고 있는 힘이 무엇인지도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그들은 그저 암살자가 야음에 섞이기 위해 무구를 검게 칠했다고만 생각했었다.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그사이 공포에 젖어있던 릭 헬터와 부하들의 눈빛은 짙은 살의로 바뀌어갔다. 수치심과 굴욕감에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움에 짓눌려 검 끝이 떨리는 모습 따윈 없었다.
그들 또한 친위대.
비록 방금은 상대를 착각하고 어설픈 모습을 보였으나, 목표가 명확해졌을 땐 결코 물러서지 않는 인간들이었다.
처음 진에게 습격당한 순간, 그들은 ‘알 수 없는 상대’ 그 자체를 두려워한 것이 아니었다.
제3자에게 개죽음을 당해 황제의 명을 실행하지도 못할 뻔했다는 게 두려웠을 뿐.
“날 만나서 어쩔 셈이었나? 죽일 것인가? 아니면 협상을 제안할 것이냐.”
진 룬칸델을 조우할 경우, 친위대의 최우선 목표는 생포였다.
그리고 릭은 즉시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여섯으로 진 룬칸델을 생포하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
‘아니, 여섯이 아니라 친위대 육십이 있었다 한들 놈을 생포하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까드득, 릭이 이를 악물었다.
“……쳐라!”
부하들이 순식간에 진을 포위했다.
릭은 한가운데로 밀고 들어오며 있는 힘껏 곡검을 휘둘렀고, 그와 동시에 포위진이 좁혀지며 사방에서 칼이 날아들었다.
친위대는 당연히 진이 공격을 피하리라 예상했다. 세 개쯤은 피하고, 두 개쯤은 쳐내며 반격하리라고 말이다.
그러나 진은 우뚝 선 채 그들의 칼날을 피하지 않았다.
캉, 카앙-!
영기 갑옷엔 이음새가 없다. 그럼에도 릭과 부하들은 본능적으로 평범한 갑옷의 이음새가 있는 부분을 베었으나 돌아오는 건 칼날이 튕겨 나가는 허망한 파열음이었다.
심지어 진은 왼편으로 들어온 한 자루의 칼날을 손으로 잡기도 했다.
크그극, 카각, 빠지려는 칼날이 건틀렛을 긁었다. 진은 그것을 그대로 잡아당겼고, 미처 무기를 놓지 못한 친위대는 무방비하게 끌려올 수밖에 없었다.
푹!
브라다만테가 그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넷.’
곡검이 영기 갑옷을 내리친 자리엔 자국이 남았다. 릭 헬터의 곡검이 닿은 부분은 살갗을 아슬아슬하게 감출 만큼 깊게 패었다.
하지만 최상위 마물들의 초속재생처럼 순식간에 팬 부위들이 아물어갔다. 진에게서 뿜어지는 영기가 갑옷을 재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전의가 꺾이진 않았으나, 친위대로서도 이쯤되면 기가 질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화아앗!
“큭!”
“으윽!”
친위대원들이 질끈 눈을 감으며 신음을 흘렸다.
섬광포.
첸미가 남긴 그 고대의 빛 마법은 어둠 속에서 더욱 극적인 효과를 발휘했다. 특히 이렇게 상대를 압살하고 있는 순간이라면 더더욱.
스악-!
또 한 번 핏물이 허공에 아치를 그렸다.
흔히들 눈 깜짝할 새, 라고 표현하는 극히 짧은 순간은 경지에 이른 무인들 사이에서 충분히 승패를 가를 수 있는 틈이 되는 법이다.
그러니 진 앞에서 눈을 감고 뒷걸음질을 치고도 살아남으려면 엄청난 요행이 터지거나, 진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의 실력을 가진 인물이어야 했다.
이번엔 두 사람이 한 번에 당했다. 섬광포를 정면에서 마주한 인원들이었다.
‘둘.’
릭과 단 한 사람의 부하. 이제 남은 건 그들이 전부였다.
그들은 다시 진과 거리를 벌린 채 필사적으로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떠올리고 있었다.
결론을 내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방법이 없다고.
다만 인정하는 게 쉽지 않았다. 이토록 무력하게,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인간으로서의 삶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결코 친위대가 약한 게 아니다. 그들은 무인들의 세계에서 충분히 강자라고 불릴 만한 인물들이었다.
다만, 진은 이제 평범한 강자들과 전혀 다른 차원에 서기 시작한 인물이라는 게 친위대의 불행이었다.
숲이 훼손되는 걸 불사하고 처음부터 친위대 고유의 파괴적인 검진들을 펼쳤다면 조금은 덜 허망한 모양새로 싸울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로서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하고, 싸워서 이기는 것도 불가능했다.
개처럼 목숨을 구걸하라고 훈련받은 적은 없으며, 진과 그들은 애초에 서로를 죽이기 위해 마주친 것이다.
무인들의 세계에서 모두에게 가장 공평한 것이 하나 있다면. 패배와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만큼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돌연 릭과 부하가 뒤돌아섰다. 감히 등을 보일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폐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죽음을 먼저 받아들인 신의 불충을 용서해주십시오.”
그들은 마지막으로 비먼트 황제가 있는 쪽을 향해 검례를 올리기 위해 뒤돌아선 것이었다.
진은 두 사람이 등을 보였을 때, 죽이자고 마음먹었다면 코를 푸는 것보다도 쉽게 그들을 끝장낼 수 있었다.
“가능하다면, 죽음 이후에도 폐하를 모시는 영광을 누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존중해주기로 했다. 개인적 원한이 없는 상대에게 그 정도 자비를 베푸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비먼트 황제의 지도력이 대단한 건가, 아니면 황실의 세뇌 능력이 뛰어난 건가. 대단한 충성심이로군.’
다시 돌아선 릭과 부하가 자세를 가다듬었다.
“고맙군, 진 룬칸델. 덕분에 폐하께 친위대 기사로서 마지막 인사를 올릴 수 있었어.”
“다 끝났나?”
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문 모를 불쾌한 미소를 짓기도 했으나 진은 개의치 않고 브라다만테를 겨눴다.
챙-!
진과 친위대들의 칼날이 부딪혔다.
릭의 하나 남은 부하는 열댓 번의 공방이 이어지는 동안 진의 갑옷조차 한 번 스치지 못하고 최후를 맞이했다.
조장인 릭은 확실히 부하들보다 몇 단계는 높은 검술을 구사했지만, 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허억, 헉……!”
백여 회의 공방이 끝난 후, 릭은 온몸에 상처를 입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는 모습이었다. 치명적인 부상도 다수였고, 출혈이 심해 그대로만 있어도 곧 죽음에 이를 터였다.
털썩!
결국 릭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이 몸으론 더 이상 싸움을 이어갈 수 없었다.
무심한 눈동자로 그를 내려다보는 진.
“더 남길 말은 없을 테지.”
릭은 대답하지 않고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출혈 때문에 추위를 느끼는 것인지, 정말 마지막에 이르니 새삼 죽음이 두려워 이러는 것인지 진은 알 수 없었다.
스걱…….
대신, 릭의 목을 벤 직후에 그가 떨고 있던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릭의 몸속에서부터 무언가 불길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던 것이다.
‘피가, 마법진을 그리고 있어……!?’
릭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바닥에 기묘한 마법진을 형성하고 있었다.
돌아보니 릭뿐만이 아니라, 이미 죽어 쓰러진 친위대원들의 피도 바닥에 동일한 마법진을 그리는 중이었다.
“진, 이건…….”
이상한 낌새를 느낀 발레리아가 진의 옆으로 달려와 말했다.
“확실하진 않지만, 육체를 변환시키는 종류의 마법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