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372)
제 333화
112화. 그들이 테마르의 무덤을 찾는 이유(5)
* * *
완타라모 숲의 나무와 식물들도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나무가 쥐어짜지듯 뒤틀리며 수액을 토했고, 식물들은 잎을 떨구며 지독한 냄새를 뿜었다.
쉴라가 권위를 잃었으니, 완타라모 숲은 마일라의 육신과 이어져 있었다.
[까아아아!]불쾌하게 고막을 긁는 비명에 진과 아리아가 인상을 찌푸렸고, 숨어있던 쉴라와 묘인족들이 밖으로 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언니! 칵! 나 좀, 살려줘!]염치도, 자존심도 없이. 마일라는 쉴라를 보자마자 목숨 구걸을 해댔다. 전신을 뒤덮은 끔찍한 고통에 몸부림을 치면서도 납작 엎드려 비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마일라를 내려다보는 쉴라의 두 눈동자가 쓸쓸하게 빛났다.
[나는 네게 언니이자, 친구였으며, 부모였다. 또한 너와 동족들의 왕이기도 했지.] [잘못했어……!] [언제나 네게 관대했으며, 네가 날 배신하려고 마음먹은 순간에도 원망하지 않았다. 동족들을 선동해 내 권위를 앗아간 다음에도 네가 미웠던 적은 없다.] [언니! 언니!]마일라는 그때쯤 쉴라에게서 희망을 엿본 것 같았다. 언제나처럼 어리석은 동생을 용서해주는 든든한 언니의 모습을.
[어, 언니에게 다시 숲의 통제권을 돌려줄게! 부탁이야, 살려만 주면…….] [날 해하려 한 것은 용서하겠다.]마일라가 고개를 들어 쉴라와 눈을 맞췄다. 마치 빛을 처음 본 생명처럼 감동에 젖은 표정을 지으며.
그러나 쉴라는 한동안 그 시선을 마주하다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숲과 동족들을 위험에 빠뜨린 것은 용서할 수가 없구나.] [언니……?] [잘 가렴, 사랑하는 나의 동생.]말을 끝맺은 쉴라의 외형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었다.
탐스럽게 빛나는 날개가 눈이 녹듯 사라졌고, 요정족 특유의 자그마한 몸뚱어리가 붉게 부풀어 올랐다.
곧 그녀는 인간과 유사한 모습이 되어 붉은빛을 발했다.
그리곤 절망에 빠져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고 있는 마일라를 찬찬히 양손으로 들어올렸다.
[안 돼, 제발!]몸부림을 쳤지만, 마일라는 쉴라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었다.
후우…….
손 안의 민들레 씨앗을 날리듯, 가볍게 마일라를 향해 입바람을 부는 쉴라. 입바람이 닿자 마일라의 몸이 눈송이처럼 부서지고 있었다.
아아아아-! 마일라가 내지른 마지막 비명이 바람을 타고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마일라였던 빛나는 붉은 입자들이 사방에 궤적을 남겼다.
쉴라의 손아귀가 텅 비자, 그때서야 숲도 울음을 멈췄다.
뒤틀린 나무들은 다시 제 모습을 찾아갔고 식물들은 다시 향긋한 내음을 풍겼다. 어둡게 젖어있던 하늘은 구름이 걷히며 샛노란 새벽달을 보여주었다.
바닥에 즐비한 시체들도 흙에 삼켜져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채 1분이 지나기도 전에,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전투가 있었다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깨끗한 풍경이 되었다.
쉴라는 한동안 제 손아귀를 들여다보며 말이 없었다.
그녀는 죽은 마일라로부터 ‘과거의 자신’을 엿보고 있었다.
[진 룬칸델.]쉴라가 돌아서서 진을 바라보았다.
“예.”
[이 가왕주에 적힌 이름은, 본래 나의 것이었다.]가왕주를 받아들며 다시 한 번 이름을 살폈다.
(가왕주 – 쉴 다미로)
이 술을 빚어 이야기를 남기고자 했던 사람의 이름. 그건 다름 아닌 요정족 후예들의 왕 쉴라의 옛 이름이었다.
진은 대답하지 않고 가왕주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아까 전에 쉴라와 나눈 대화 한 가지를 떠올렸다.
-[마일라. 그 아이는 내가 솔더렛과의 약속을 지키는 게 싫었던 모양이야. 다른 아이들도. 다들 우리 요정족의 후예들이 쓸데없는 희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 혹은 의미 없는 희망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래서 쉴라 님을 사실상 왕위에서 끌어내리고, 마일라가 숲을 장악하고 있던 겁니까?
-[그렇다. 널 기다리는 것은 너무 불확실한 데다 보상조차 불분명한 일이었던 반면…… 단지 약간의 정보만 제공해줘도 우리가 원하는 모든 걸 주겠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으니. 어떤 면에서 배신은 당연한 일이지.]
-요정족의 후예들이 원하는 게 무엇입니까?
-[우리의 본래 모습을 되찾는 것.]
본래 모습.
완타라모 숲의 존재들은 본래 ‘후예’가 아니라 요정 그 자체였다.
퐁……!
쉴라가 뚜껑을 열었다.
그리곤 뚜껑을 잔으로 삼아 가득 술을 채워 진에게 내밀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향긋한 냄새가 퍼지는 가운데, 잔 속에 영기가 일렁이는 모습이 도드라졌다.
진과 발레리아는 그 술을 한 잔씩 번갈아 마시기 시작했다.
적옥묘 슈리를 만났을 때 마신 가왕주와 달리 노랫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노랫소리를 대신해 들리는 것은 누군가 슬피 흐느끼는 소리였다. 쉴라가 이름을 잃기 전, 술을 빚으며 울던 소리가 담긴 것이었다.
잠시 후, 그들은 테마르의 네 번째 무덤에 담긴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 수 있었다.
* * *
태초의 숲.
요정들이 살았다는 신비의 공간.
진과 발레리아는 가왕주를 마시고 자신들이 들어선 공간이 바로 그 땅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인지할 수 있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고, 태초의 숲을 묘사한 그림조차 본 적이 없으나.
가왕주에 담긴 기록의 힘은 마치 처음부터 그들이 태초의 숲을 알고 있던 것처럼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
수풀 가득한 땅을 밟아도 두 사람의 발자국은 남지 않았고, 서로를 향해 목소리를 내도 기록 속에 존재하는 이들에겐 들리지 않았다.
말하자면 진과 발레리아는 ‘관찰자’로서 숲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왜인지.
발레리아는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가슴을 도려내는 것 같은 그리움을 느꼈다.
회색부엉이 용병단의 형제들을 잃었을 때처럼, 견디기 어려운 슬픈 감정이 가슴을 할퀴고 있었다.
그래서 한동안 주저앉아 가쁜 호흡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발레리아.”
“괜찮아.”
이내 발레리아가 일어섰고, 두 사람은 함께 걸음을 옮겼다.
걷는 동안 기록 속에 담긴 ‘태초의 숲에 대한 정보’가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이 숲은 현재 요정족 왕 르엣 다미로 율이 다스리고 있었다.
“저 사람이 르엣 다미로 율인가.”
숲의 깊은 곳에 다다르자, 발레리아가 그곳에 서 있는 한 요정을 보며 말했다.
붉은 머리, 잔뜩 화가 난 듯 차가운 표정. 진과 발레리아가 그녀의 바로 옆에 자리를 잡았다.
진은 그녀를 자세히 살펴보곤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세 번째 무덤의 기록 장치에서 본 사람이 아니야. 다른 요정족인 것 같군.”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그 요정족의 이름을 알 수 있었다.
쉴.
또 다른 요정이 숲 깊은 곳에 모습을 드러내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르엣 다미로 율이었다. 그녀는 분노에 찬 채 자신을 찾아온 동생, 쉴 다미로를 만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왕이시여.
쉴이 한쪽 무릎을 꿇자 르엣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까지 예의 차릴 필요 없어, 쉴.
르엣의 말에 쉴이 몸을 일으켰다.
언니.
말하렴, 동생아.
르엣과 쉴은 한동안 서로를 쳐다보며 말이 없었다.
이 만남이 있기 전까지, 두 사람은 혈육으로 태어나 처음으로 깊은 갈등을 겪었다.
르엣은 널 이해한다는 것 같은 표정을, 쉴은 언니를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정말로 인간들의 일에 관여할 생각이야?
이윽고 쉴이 입을 떼자 르엣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랫입술을 깨무는 쉴.
그녀는 언니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었다. 쉴을 따르는 다른 요정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꼭 그렇게 해야겠어? 나서지 않으면, 지플은 우릴 공격하지 않을 거야.
쉴, 이미 역사를 조작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그들은 우릴 공격한 셈이다.
아니, 그건 언니의 생각일 뿐이야. 지플은 우리가 나서지 않고, 인간끼리 문제를 해결하길 바라고 있다고.
어찌 그리 확신하지?
쉴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언니, 잘 생각해봐. 우리가 도움을 준다 할지라도, 룬칸델이 지플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그들이 고마운 마음을 갖기는 할까?
그건 중요치 않은 문제다.
아니, 이것보다 중요한 문제는 없어! 온 동족의 생명이 걸린 일이라고. 언니의 잘못된 판단이 우리 동족들을 다 죽일 수도 있단 말이야!
쉴이 악을 쓰며 소리를 지르자, 르엣이 눈을 감았다.
언니는 지금 동족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어. 절반 이상의 동족들이 반대하고 있잖아,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알고 있다.
안다면, 지금이라도 다른 결정을 내려줘.
쉴.
르엣이 다시 눈을 뜨며 제 동생을 바라보았다.
개인은 잘못된 길을 고를 수 있다. 그러나 왕은 언제나 옳은 선택을 해야 한다.
언니.
너도 언젠가 왕이 되면 알게 될 거다.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지…….
쉴은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솔직하게 말해, 언니. 언니는 룬칸델의 수장에게 사랑을 느끼고 있을 뿐이야. 그래서 테마르 룬칸델을 돕기 위해,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우리 동족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거라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
더 이상 언니를 믿을 수 없어.
르엣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더는 날 믿을 수 없기에, 이토록 많은 동족들을 데려와 나를 겁박하려는 것이냐, 쉴.
르엣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숲의 어둠 곳곳에서 또 다른 요정족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쉴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요정들이었다.
모두 르엣을 바라보는 시선에 적의가 가득했고, 날카롭게 벼려진 단검을 들고 있었다.
날 죽이고, 네가 새로운 왕이 될 것이냐?
언니가 의지를 꺾지 않는다면, 그렇게라도 할 수밖에.
쉴이 르엣을 노려보며 답했다.
르엣은 여전히 동생을 바라보는 시선이 처음과 같이 담담한 모습이었다.
쉴은, 언니가 결국 물러나리라 생각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르엣은 자신과 동족들이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고집을 부릴 사람이 아니었다.
언제나 자신보다 뭐든 뛰어나게 해냈고, 그래서 자신을 괴롭게 만들었고, 그토록 바랐던 왕위까지 오른 언니가 늘 미웠지만.
그래도 믿음이 있었다. 재수 없는 언니는 언제나 요정족을 위한 선택을 할 것이라고.
그렇기에 최근 르엣이 내린 결정을 믿을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것이다.
하는 수 없구나.
결정을 바꿀 거야?
고개를 젓는 르엣.
아니, 이게 네가 원하는 결말이라면…… 날 죽여라.
르엣이 쉴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쉴은 품에서 단검을 꺼내 르엣의 목에 들이밀었다.
그러나 르엣은 칼끝이 목을 찌르고 있음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을 기세였고, 쉴은 머릿속이 하얘지는 와중 이를 악물었다.
젠장……!
쨍강!
결국 쉴은 바닥으로 단검을 내동댕이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