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398)
제 333화
119화. 검황성의 연회(4)
예상한 반응이라는 듯, 단테는 덤덤히 제 조부를 올려다보았다.
그 눈동자가 론의 마음을 착잡하게 만들었다.
그가 생각했던 손자, 단테는 강인한 인간이었다.
선천적으로 나약하고 왜소하게 태어난 자신의 손자가 차기 가주가 되리라는 사실을, 하이란의 그 누구도 상상하지 않았었다.
단테가 자신의 아버지와 그 형제들, 자신의 형제들을 모두 제치고 완벽한 차기 가주가 되기까지는 론의 전폭적인 지지 덕이 크지만.
그 지지의 배경엔 모질었던 수련이 있었다.
목이 다 걸걸해지도록 악을 써가며, 검이라는 계단을 힘겹게 오르는 단테의 모습은 론에겐 세상에 다시없을 감동이었다.
그건 사람들이 ‘흔히’ 대단하다고 말하는 정신력이나 의지 정도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10성에 오른 절세의 무인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강력하고 희귀한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수련이었다.
다섯 살 때부터 시작한 그 모든 수련이 이어진 지도 어느덧 17년.
그 혹독한 성장을 견뎌온, 혹은 견딜 수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슴 깊은 곳에 거대한 악귀를 품을 수밖에 없을 터.
그렇기에 론은 손자가 마냥 선하고 정의로운 인간은 아닐 것이라고 믿어왔다.
세계는 동화가 아니었다. 때로는 룬칸델처럼 패도를 서슴지 않아야 하고, 때로는 지플처럼 양면이 달라야 하며, 다른 거대 세력들이 다 그렇듯 온갖 더러운 짓을 해야 할 때가 있었다.
아무런 가책 없이 그런 일을 해내는 것은, 집단의 우두머리가 되기 위한 기본 중의 기본.
그러나 믿음과 달리, 그간 지켜봐온 단테는 단 한 번도 타고난 선한 성품에 반한 적이 없었다.
‘그래, 단테. 내 손자. 너는 원래 그런 아이였다.’
문득 그런 생각이 론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단테가 가주가 되거나, 진흙탕 속을 구르더라도 권력을 쥐어 세상을 호령하길 바라는 건 자신의 바람일 뿐.
‘네가 지금껏 그토록 괴로운 나날을 감내해온 건, 자신을 자신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혹은 검을 휘두르는 행위 그 자체가 좋아서였을 테지.’
생각을 조금 바꿔보면.
그 초인적인 의지 덕에 단테는 지금껏 특유의 올곧은 성품을 지켜온 것일지도 몰랐다.
누구라도 한 번쯤은 유혹에 빠질 수 있었다.
더 쉽게 강해질 수 있는 유혹, 더 쉽게 권력을 거머쥘 수 있는 유혹, 더 쉽게 경쟁자들을 제거할 수 있는 유혹…….
자신의 손자는 단 한 번도 그런 유혹에 관심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저 묵묵히 검을 휘둘러왔을 뿐.
“……그건 오직 너만이 갖고 있는 가치일 것이다, 손자야.”
“조부님?”
맥락 없는 이야기에 단테가 의문을 표하자 론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단테야. 룬칸델과 동맹을 맺을 수는 없다. 가문의 그 누구도 그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는 단테.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향후 지플이 기억 조작 마법을 이용할 때,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긴 할 테지.”
론이 단테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뒷말을 이었다.
“이 할아비는 진 룬칸델, 네 벗이 그 수단을 찾고 있거나. 이미 소유한 상태라고 생각한다.”
서서히 단테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러니 네가 진 룬칸델의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진 룬칸델이 너의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라. 그리하면 네가 가주가 되었을 때, 아무도 너의 결정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조부님!”
“물론 그때에도 네 벗이 그만큼 쓸모 있는 인물일 때 가능한 이야기지만 말이다.”
단테로서도 예상치 못한 이야기였다. 그는 자신의 조부가 때로 누구보다 냉정한 인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론이 단테의 의견을 은근히 긍정해주는 것은 그만큼 ‘정신 조작’이라는 사안이 심각하다는 의미였다.
아무리 강인한 무인이라 할지라도 정신이 조작된다면. 자신도 모르는 새에 지플을 위해 행동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인 것이다.
‘지플의 정신 조작이 단테가 말한 수준이라면, 그리고 계속 더 발전하고 있다면. 누구라도 그렇게 될 수 있다. 단테를 보좌할 하이란의 검들도, 단테도. 어쩌면 나조차도.’
론이 우려하는 건 바로 그것이었다.
정신 조작은 지금껏 세계 권력 구도에 단 한 번도 등장한 적 없는 수니까.
‘지플의 정신 조작을 인지하고 있는 세력은 극히 적을 것이다. 나조차 단테를 통해 방금 알았을 정도니…… 룬칸델 내에서도 저 악마 같은 놈을 제외하면 아는 이가 별로 없을지도 모르겠어.’
시론 룬칸델.
자신이 평생의 적수로 삼았던 그자는 과연 그 사실을 알고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알고 있다 할지라도 그 괴물이 흑해를 빠져나오지 않고 있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테지.’
론이 진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자신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진을 쳐다보고 있었다.
본래 론은 이번 연회를 이용해 다시 한 번 단테가 차기 가주라는 것을 만인에게 공표할 생각이었다.
요즘 들어 딴마음을 먹고 있는 듯 보이는 단테의 형제들에게도 확실히 해두고 싶었다.
단테를 보좌하는 것이 너희가 검황성에 발붙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그런데 저 불청객이라 불러도 좋을 녀석이 22년 만에 연 자신의 연회에서 주인공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으니, 심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차라리 단테를 위해 저 녀석을 좀 이용해야겠군.’
론이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알겠느냐?”
“예, 조부님. 명심하겠습니다!”
“허허, 그래. 이제 슬슬 귀빈들이 모두 모인 것 같으니, 연회의 시작을 알려야겠구나.”
짝……!
론이 가볍게 손뼉을 치자 어수선한 연회장이 일시에 고요해졌다. 그저 박수일 뿐임에도 깊고 거대한 기운이 담겨 있어, 경지에 이른 이들은 론이 이룬 무위를 엿볼 수 있었다.
자연스레 모두 론과 단테를 올려다보았다.
“찾아와줘서 고맙소, 검황성주 론 하이란이오.”
한동안 박수갈채로 화답하는 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는 론.
본래라면 다음 순서는 이 자리를 찾아준 ‘황족’들을 위한 감사의 인사가 이어져야 했다.
그러나 론은 황족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다음 말을 이었다.
“내 오늘 연회를 연 것은, 여기 있는 내 손자. 단테 하이란을 축하하기 위함이오. 다들 아시다시피, 내가 유명한 손자 바라기인지라. 이 녀석이 곧 내 검을 물려받으리라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 잠이 오지 않는 나날이 많아졌소.”
황족들은 명백히 자신들이 무시당했음에도 전혀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론의 이야기에 가볍게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
론이 비먼트에서 얼마나 큰 권력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 자리에 황족이 아니라 황제가 있었다 할지라도, 론 경은 그에게 따로 감사를 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이 황족들이 앉은 테이블에 시선을 두며 생각했다.
제국의 신비주의자들.
휴페스터에선 비먼트의 황족들을 그렇게 불렀다.
그들은 ‘황제’를 제외하면 전면에 나서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황족들은 이런 식으로 거물들의 연회에 참석하거나, 제국의 큰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는 게 거의 전부였다.
‘그런데도 황족들이 론 경이나 다른 공신들에 버금가는 권력을 지니고 있는 건, 그들이 황실 친위대와 특임대를 발굴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지.’
황실의 친위대와 특임대에 대한 임명권은 황족들의 고유 권한이었다.
‘완타라모 숲에서 본 생체 골렘들도 황족들의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 신비주의가 아니라, 그저 구린내 나는 놈들이라는 걸 조만간 밝혀주도록 하지.’
한 황족과 시선이 마주쳤다. 진은 그와 자연스레 눈인사를 하며 그런 생각을 했다.
한편 간신히 어색한 웃음을 머금고 있는 이들도 보였다.
단테를 제외한 다른 순혈 하이란들. 그들은 차마 대놓고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을 뿐,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자체가 고역인 듯했다.
“그런데, 이 기분 좋은 날에 괜한 소란을 일으키려는 자들이 있는 것 같소.”
돌연 론이 웃음기를 지우며 그렇게 말한 순간, 순혈 하이란들이 흠칫하며 몸가짐을 고쳤다.
그러나 론이 겨냥한 것은 그들이 아니었다.
“룬칸델의 12기수와 귀신대장. 그대들이 보인 행동은 내가 뜻대로 꾸짖어도 문제가 없을 만큼 대단한 결례였소.”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진과 라타에게로 모여들었다.
“죄송합니다, 론 경.”
“죄송합니다.”
두 사람이 대답하자 론이 다시 미소를 지었다.
“혈기 왕성한 시기니, 이해는 하오. 하지만 대가를 치르긴 해야겠소. 마침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단 말이지, 찾아주신 귀빈들께 어울리는 볼거리를 준비해놨어야 한다고. 아무래도 이 노인의 얼굴만으론 부족하지 않겠소.”
그러자 라타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귀신대는 비먼트에 본채가 있는 만큼, 두 집단은 평소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그렇기에 라타는 론이 자신을 도와주는 것이라 이해하고 있었다.
진을 곧장 꺾어버릴 수 있도록 말이다.
“오늘 자정에 두 사람이 결투를 통해 내 손자를 축하해주면 좋겠군. 연회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말이오. 다들 결과가 궁금한 눈치이기도 하고 말이오.”
“귀신대장 라타 프로치, 론 경의 배려와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그 순간 곳곳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당연히 사람들은 진과 라타의 결투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은밀히 끝나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나와 라타를 꾸짖으며 자연스레 단테의 격을 높이시는군.’
하이란은 명백히 세계 최대의 명가 중 하나지만, 룬칸델에 비하면 격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진이 ‘단테를 축하하기 위해’ 결투를 펼치는 것이 되면, 단테의 격이 오르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룬칸델 12기수, 받아들이겠습니다.”
진의 대답에 론이 흡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좋소. 그럼 다들 내가 준비한 술과 음식을 마음껏 즐기고, 자정에 두 신성의 무예를 구경토록 합시다.”
연회장이 순식간에 열기로 차오르는 와중.
진의 뒤편에 앉아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은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라타 프로치의 돌발행동 덕에 거사를 치르기가 더 좋아지겠군.”
“자정 이후, 지플과 하이란은 적이 되는 것이다.”
아무도 그들을 주의 깊게 살피고 있지 않았으나, 단 한 사람.
제피린은 그들을 보며 생글생글 미소를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