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399)
제 444화
119화. 검황성의 연회(5)
론의 인사가 끝나자 본격적인 연회가 시작되었다.
황제가 직접 보낸 황실 악단이 음악을 연주하며 들어섰고, 듣기 좋은 선율과 함께 연회장 사방에서 축포가 터지며 오색찬란한 꽃잎들이 쏟아졌다.
비먼트 마법 극단에서 준비한 각종 연출도 눈에 띄었다.
마력으로 형성된 불과 얼음, 뇌기가 거대한 색종이처럼 내부를 꾸미고 있었다.
비먼트, 그중에서도 하이란의 연회는 인기가 좋다.
룬칸델의 연회는 사실상 원한 해소의 결전지로 매우 살벌한 분위기고, 지플의 연회는 딱딱하고 지루하기가 짝이 없는 반면. 하이란은 연회라는 이름에 걸맞게 활기차고 아름다운 사교의 장이기 때문이었다.
응접실에 대기하고 있던 귀족들도 하나둘씩 연회장으로 들어섰다.
한껏 차려입은 선남선녀들이 위명 드높은 무인들에게 선망의 눈길을 보냈다. 그저 귀족가에서 태어난 이들에게 여기 모인 무인들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과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중 가장 빛나는 인물은 연회의 주인공인 단테 하이란이다.
스물두 살, 하이란의 소가주. 그야말로 미소년다운 용모에 행실과 인품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비먼트의 초신성.
비먼트엔 남녀를 불문하고 단테와 가약을 맺고자 소망하는 이들이 발에 차일 지경이었다.
한 번씩 단테가 손을 흔들 때마다 귀족들 사이에서 자지러지는 환호가 터졌다.
귀족들 사이에선 이번 연회가 ‘론 하이란이 손자의 짝을 찾기 위해 열었다’는 소문이 돌았었다.
하지만 정작 단테는 진에게만 관심을 드러내는 모습이었다. 그 근처에 있는 베라딘과 함께 말이다. 라타 또한 맹렬한 살기를 담아 진을 노려보고 있었다.
“야, 꼬마. 저거 이따 자정에 아주 그냥 박살을 내버려. 눈깔 나쁘게 뜨고 다니다가 잘못 걸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라고.”
길리가 걱정스러운 듯 눈썹을 내렸다.
“아직 젊어서 평가 절하되는 경향은 있으나, 귀신대장은 용병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자입니다. 가이파 군도의 대용병 아멜라, 흑왕단장과 더불어 3대 용병이라 불리기도 하죠. 괜찮을까요? 도련님.”
길리가 그렇게 말하자 동료들이 일제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꼬마는 얼마 전에 검의 정원을 박살내고 룬칸델 3기수를 반시체로 만들었는데, 저깟 놈이 뭐라고?”
“귀신대장이 3대 용병이라 불리긴 하지만, 아멜라나 흑왕단장에 비하면 분명 위명이 떨어지는 인물입니다. 제 생각에도 진 공자가 무난하게 승리를 거머쥘 것 같군요.”
“게다가 론 경의 입회하에 치러지는 결투니, 만에 하나 공자가 패하더라도 목숨을 잃을 일은 없습니다. 패하는 경우에도 이름값이 다르니 진 공자는 손해가 아니고요. 물론 제가 보기에도 공자가 이길 것 같지만 말이죠.”
카시미르와 알리사도 같은 의견을 더했다.
알리사의 말대로 현재로서는 귀신대장 라타가 진보다 무명이 높았다.
진이 이번에 3기수를 꺾은 일은 숱한 기사가 쏟아지고 있으나 아직 ‘정설’로 통하는 단계는 아니기 때문이었다.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단테와 베라딘, 그리고 다른 무인들의 시선이 진에게 고정되어 있는 것이 귀족들의 흥미를 끌고 있었다.
“저 사람이 진 룬칸델이라고?”
“광고판에 있던 그 얼굴이랑 똑같잖아. 미화할 필요가 없었긴 하군.”
“그 화장품 너도 한 번 써봐, 다신 다른 물건 못 써.”
“어머, 저기 좀 봐. 비궁의 시리스 엔도르마 아니야? 진 경한테 가는 것 같은데!”
다음으로 진에게 온 것은 시리스였다.
화려하게 물들인 금발과 빛나는 은발.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서자 귀족들은 묘한 기대감에 찬 채 얼굴이 상기되는 모습이었다.
“진.”
“시리스 님, 오랜만입니다. 연회에 오셨었군요.”
“좋아 보이니 다행이군.”
“걱정해주셨습니까?”
의외라는 듯 묻자 고개를 끄덕이는 시리스. 그 모습이 진은 내심 당황스러웠다. 시리스가 자신을 가까운 인물로 대하는 게 왠지 낯선 것이다.
“네가 사용한 그 핏방울은 우리 비궁이 보관하고 있던 것이다.”
진과 동료들은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 집사장 하인츠가 가져왔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몰랐습니다. 감사를 전해야겠군요. 탈라리스 님이 내어주신 겁니까?”
“……그건 아니고, 시론 경이 오래전 어머니께 맡기셨다더군. 어머니께서 알려주신 적이 없으니, 나는 그게 처음부터 비궁의 물건인 줄 알고 있었지.”
“아.”
“그리고 어머니께 시론 경은 아직 그 값을 치르지 않으셨다고 들었다.”
“원하시는 게 있다면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제가 아버지를 대신해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나랑 춤이나 한 번 춰.”
“예?”
“비궁이 너와 우호적 관계라는 걸 슬슬 지플에 알려야 할 것 같거든. 마침 지플의 차기 가주가 보고 있으니 메시지를 보내기에 더할 나위 없지.”
시리스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귀족들뿐만이 아니라 무인들조차 입이 떡 벌어지는 순간이었다.
무인들이 아는 시리스 엔도르마는 결코 연회장에서 타인에게 관심을 드러내는 부류가 아닌 것이다.
“좋습니다. 영광으로 받아들이죠.”
진이 그 손을 맞잡으며 일어서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수긍하는 무인들도 있었다.
4년 전, 룬칸델의 연회에 참석해 진과 시리스의 관계를 ‘오해했던’ 이들이 그랬다.
‘룬칸델 외나무다리 파티에서도 두 사람 사이엔 묘한 기류가 흘렀었지.’
‘당시 룬칸델 4기수가 두 사람의 과감한 스킨십을 보며 말세라고 개탄하던 모습이 떠오르는군.’
‘어쩌면 룬칸델은 12기수를 비궁의 사위로 보내고 싶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미 견고하게 다져진 2기수의 권력 구도를 깨기엔 적절치 않은 시점이니. 비궁이라는 든든한 아군을 확보하는 게 여러모로 이득일 테지.’
‘어쨌거나 보기 좋은 한 쌍이지 않은가?’
물론 실제로 두 사람은 아무도 모르게 결투를 펼쳤을 뿐이지만, 그건 아직까지도 동료들만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대다수의 중장년 무인들은 보기 좋다는 듯 흐뭇한 미소를 지었고, 청년층은 왠지 모르게 끓어오르는 분노와 질투를 삭여야만 했다.
그리고 2년 전, 벨라도 제후국의 도박장을 찾았던 귀족들은 묘한 기시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 그때는 진 룬칸델 경이 바멀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었고. 당시 도박장에 있던 젤리아라는 여성이 지금 생각해보니 시리스 경과 닮았잖아……?’
‘설마 진 룬칸델이 예비 기수 시절 가명을 사용할 때도 같이 활동했던 건가? 도박장의 젤리아가 시리스 엔도르마였다고?’
각자의 감상이 지나가는 사이.
진과 시리스는 무대로 나와 멋들어지게 춤을 추고 있었다.
두 사람이 춤을 추는 모습은 오늘부로 음유시인들을 통해 대륙 전역에서 노래 될 예정이고 말이다.
벌써 입이 닳도록 아름답다고 말하며 두 사람을 화폭에 담는 화가들도 있었다.
“큭, 부럽습니다, 나리……! 이 제트는 여인과 춤이란 걸 춰본 지가 대체 언제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
“저랑 춤춰요!”
그 발랄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제피린이었다.
어느새 또 무르카의 눈을 피해 진의 테이블로 다가온 것이다.
“이런 감사할 때가! 신이시여! 좋습……!”
제트가 기쁜 마음으로 화답하는 찰나, 퀴칸텔이 무라칸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네가 가서 제피린에 대해 알아봐’라는 뜻이었다.
“제피린이라고 했나? 그쪽은 나랑 놀지.”
“엇, 제 이름을 기억해주셨군요! 그럴까요?”
“아니, 무라칸 님!? 이러시깁니까!? 무라칸 님? 저기요?”
무라칸은 이미 제피린과 춤을 추러 떠난 참이었다.
뒤늦게 제피린을 발견한 무르카는 다시 한 번 땅이 꺼지도록 푹푹 한숨을 내쉬며 주먹을 부르르 떨 수밖에 없었다.
제트는 무라칸과 제피린의 뒷모습을 도끼눈을 뜬 채 노려보았는데, 결국 보다 못한 길리가 제트에게 손을 내밀었다.
“음, 제트. 저라도 괜찮으면?”
“그저 황송할 따름입니다, 딸기파, 아니. 길리 님!”
이번엔 반대로 무라칸이 제트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아닌 게 아니라 보는 눈만 없었다면 당장이라도 제트를 초주검으로 만들 기세였다.
제트는 자신 같은 사람도 이런 번듯한 연회에서 춤을 출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카시미르도 알리사와 함께 춤을 추러 나섰고 쿠잔과 베리스도 마찬가지였다.
테이블엔 퀴칸텔과 엔야만이 남아 다과를 먹고 있었는데,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온갖 무인과 귀족들이 두 사람에게 춤을 청하러 오는 광경이 이어졌다.
엔야에겐 베라딘이 붙었고, 퀴칸텔은 단테와 짝을 이뤘다. 그 묘한 구도 또한 연회에 온 사람들에겐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되고 있었다.
특히 단테는 엔야와 퀴칸텔이 제국의 비공식 수배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일부러 두 사람과 친분을 드러내 수배 명령을 철회시키려는 의도였다.
“아! 나도 춤추고 싶네요!”
한편, 춤으로 이어지는 행렬을 보며 아쉬워하는 한 사람.
마르지엘라 이블리아노. 그녀 또한 이블리아노로서 연회에 참석했다. 비슈켈과 변장한 부바르가 그녀의 옆을 지키고 있었다.
비슈켈의 표정이 어두웠다.
“에이, 제가 휠체어를 타고 다닌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그렇게 안타까워할 것 없어요, 오라버니.”
“맞습니다, 비슈켈 님. 그나저나 여기 크로켓 정말 죽이는군요…… 비슈켈 님은 하이란가와 친분이 좀 있죠? 가능하다면 이 크로켓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라도 구해주시면.”
언제나처럼 부바르는 안 그래도 울적한 비슈켈의 가슴 속을 벅벅 긁어대며 성질을 돋우고 있었다.
닥쳐라, 부바르. 비슈켈은 그렇게 쏘아붙이기도 힘들 만큼 슬픔에 휩싸여 있었다.
“오라버니?”
“마르지엘라. 나는…… 이런 일에 널 이용해야 한다는 사실이 괴로운 것이다.”
그러자 마르지엘라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제 역할이 바로 그런 것인걸요, 오라버니.”
“하지만.”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그리고 부바르 씨는 크로켓 좀 그만 먹어요. 날씬해지기로 했잖아요?”
“하핫핫. 그럴까요? 마르지엘라 양.”
밤이 다가오고 있었다.
내일도 연회가 이어질 예정이니, 본래 저녁 무렵이면 다소 사람이 빠지기 마련이었으나.
자정이 올 때까지 단 한 사람도 연회장을 떠나지 않았다. 당연히 진과 라타의 대결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자정이 되자 손님들이 모두 제자리에 앉아 론을 기다렸다.
“다들 오래 기다리셨소. 지금부터 기사들이 안내를 시작할 테니, 대련장으로 이동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