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10)
제 444화
120화. 왜 하이란인가(5)
괴한은 말이 없었다. 복면에 가려진 얼굴 너머의 표정이 어떠할지 예상이 되질 않았다.
“……단테 하이란을 공격하기에, 드디어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나 싶었건만.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군, 진 룬칸델.”
제대로 된 판단, 괴한이 단테가 납치되는 것을 그렇게 표현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그게 룬칸델에 이득이기 때문이었다.
하이란은 룬칸델 다음가는 검가이자, 4대 세력의 한 축인 비먼트의 핵심 세력이다.
따라서 하이란이 무너지는 것은 곧 비먼트가 심대한 타격을 입는 것과 같다.
4대 세력 중 룬칸델과 지플은 명백한 대립 구도.
비먼트와 킨젤로는 아직 적이 명확하지 않았다.
그러나 비먼트는 옛부터 지플과 완전한 동맹까지는 아니어도 많은 교류를 해왔고, 룬칸델과 지플 중 반드시 한 세력을 골라 손을 잡아야 한다면. 지플을 택할 가능성이 높은 세력이었다.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건 그쪽이지. 하이란을 기껏 나의 동맹으로 만들고 있는데, 다 된 밥에 이런 재를 뿌려?”
스악! 검은 칼날이 괴한의 얼굴을 내리쳤다. 괴한은 검을 세워 막아냈으나, 중압의 힘이 거슬리는 듯 힘 대결을 하지는 않았다.
‘말하는 걸 보아하니 확실해. 흑기사다.’
확신을 갖기로 했다.
그가 흑기사인지 다른 무인인지가 딱히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어차피 괴한은 룬칸델이 이득을 보는 결과를 위해 움직이고 있고, 흑기사급 실력을 가진 건 자명한 사실이니까.
“알아들었으면 썩 꺼져, 조슈아의 강아지.”
브라다만테를 내지를 때마다 영기와 청화가 어우러지며 날카로운 궤적을 남겼다.
괴한은 첫 합을 막아냈을 때와 달리 직접 검을 맞대지 않고 어렵지 않게 진의 검을 피하는 모습이었다.
진이 작정하고 내지르는 공격을 이토록 깔끔하게 피할 수 있는 무인은 세상에 정말로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계속 ‘여유롭게’ 피할 수 있는 무인은 분명 손에 꼽을 수 있었다.
언뜻 보기엔 괴한도 여유로운 듯 보이나 아니었다. 진의 공격이 이어질수록 회피 반경이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알겠군.’
진이 속으로 미소 지으며 괴한의 검을 살펴보았다.
평범한 강철검, 그게 바로 괴한이 검을 섞는 걸 기피하는 이유였다. 결코 진의 공격 따윈 여유롭게 피하고도 남기 때문에, 그래서 적당한 순간에 단칼에 제압하기 위해 회피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본래 사용하는 검이나 이름난 명검을 가져왔다간, 그 자체가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가 되었을 테니.’
물론 진의 기준에선 평범하다 할지라도, 어떤 대장간에 보여주더라도 훌륭하다고 평할 검이었다.
하지만 그 평범한 강철검이 맞서고 있는 것은 브라다만테다.
전설의 대장장이 피콘 민체가 신이 되어 완성시킨 최고 걸작 중 하나.
세인들은 흔히 깨달음을 얻은 무인들, 말하자면 무기의 품질 따위가 중요하지 않을 만큼 강한 무인들에게 명검이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건 제대로 검을 쥐어보지 않은 이들의 허황된 상상일 뿐.
완전히 같은 힘을 가진 두 무인이 싸운다면 당연히 승자는 무기가 더 좋은 쪽이다.
그렇기에 시론도 바리사다라는 절세의 명검을 사용하고, 론은 라시드를, 탈라리스는 만빙을 사용했다. 다른 무인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일반적인 강철검은 아무리 잘 벼린 물건이라 할지라도, 사용자가 초월적인 힘을 가졌을 땐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고 부러질 수 있었다.
‘이미 내 검과 단테의 비기를 쳐내느라, 또 이전까지 하이란의 기사들을 상대하느라 저 강철검의 내구도가 바닥을 치고 있는 거다.’
그런 상황에 공방을 이어가다가 무기가 깨지면.
제아무리 흑기사라 할지라도 맨손으로 진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단테에게는 슬픈 일이지만, 진에게는 다행히도.
방금까지 제왕검 비기 태양이 대전당을 가득 채운 덕에, 바닥에 즐비한 시체들의 검도 모조리 파손된 상태였다.
당장 검이 부러지더라도 괴한은 다른 무기를 습득할 수가 없는 것이다.
씨익, 진이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대놓고 무기를 걱정하면 어떻게 하나, 흑기사.”
속도를 높였다.
다시 영기의 장막을 펼치고, 그 사이를 오가며 쉴 새 없이 검기를 쏘았다. 중압의 기운을 머금은 검기가 무겁게 괴한을 압박하고 있었다.
괴한은 더는 피하기만 할 수 없는 듯 검기 일부를 받아치는 모습을 보였다.
공격을 막는 것도 급급한데, 본인의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반면 진은 편안하게 검기를 쏟아냈다.
‘놈이 취할 수 있는 무기는 단테의 검뿐이다.’
쓰러진 단테 쪽을 의식하며 위치를 잡았다. 흑기사가 행여 단테의 검을 얻으면 전세가 다시 뒤집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여분 무기라도 좀 챙겨오지 그랬나.”
쩌엉-!
괴한이 별안간 거리를 좁혀 들어온 진의 일격을 쳐내자 귀가 멍멍한 굉음이 일었다.
그 굉음 사이로, 금속에 균열이 가는 특유의 진동이 느껴졌다. 오러로 감싸고 있어도 감출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아, 원래 만약의 경우엔 다른 기사들의 검을 사용하려고 했나?”
영검 가위의 칼날이 괴한의 등 뒤로 뻗어 나오고 있었다. 가까스로 몸을 숙여 피하긴 했으나, 직후에 이어진 종베기까지 완벽하게 피할 수는 없었다.
핏방울이 튀었다.
브라다만테의 칼끝이 그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상처가 깊지는 않았으나, 먼저 유효타를 성공시켰다는 점이 중요했다.
“물러가라. 네 임무는 실패다.”
“알 수가 없군.”
어깨를 으쓱이는 괴한.
“단테 하이란과 우정이 있다고 하여, 정말로 하이란이 룬칸델의 편에 설 것 같던가?”
“그러지 못할 이유가 있나?”
“그렇게 순진한 구석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그 순진함이 나의 룬칸델과 하이란이 함께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거다. 네 주인이나 지금의 썩은 룬칸델은 가지지 못한 가치지.”
“말이 통하지 않는군.”
“우리가 말이 통해야 할 사이는 아니니 괜찮아.”
쾅-! 콰가각-!
이번엔 진과 괴한의 공방에서 나는 소음이 아니었다.
바깥이었다. 론과 베락트의 싸움이 점점 더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이토록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두 사람이 뿜어내는 강력한 기운이 진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성 전체에 위태로운 진동이 가득했다.
“하던 것이나 마저 하지.”
영검 1식 영혼 베기.
소리 없이, 그림자처럼 나아간 긴 검기가 괴한의 정면을 긁었다. 그건 진이 가장 자신 있는 영검, 무엇이든 반드시 베겠다는 의지를 펼치는 것이었다.
그 일격에 결국 괴한의 검이 동강나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쨍겅-!
그러나 괴한도 그렇게 될 것을 예상한 듯 당황한 눈치가 아니었다.
그의 소매에서 날카로운 무언가가 새로 빠져나온 것이다.
‘클로!?’
사용하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은 무기였다. 길리의 본가, 맥로란가를 상징하는 무기이기도 했다.
맥로란 출신 흑기사인가?
그런 의문이 든 찰나.
화살처럼 몸을 튕긴 괴한의 클로가 눈앞까지 다가왔다.
‘클로가 본 무장이었나……!’
별 볼 일 없는 무기를 들고 있는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괴한의 진짜 무기는 이 클로였다. 고대 만년철로 제작한 것이 분명한 물건, 진은 더 이상 무기의 우위를 점한다고 할 수 없었다.
“사람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군?”
카가각, 그그극!
클로와 칼날이 맞물리며 불쾌한 마찰음이 번졌다. 새로운 무기를 꺼내든 괴한은 이전과 전혀 다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쩐지, 처음에 괴한을 보자마자 그토록 위험한 직감이 왔던 것에 비해 아주 대단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무기 때문인 줄 알았건만.’
클로가 움직일 때마다 세 갈래의 검기가 쏘아졌다. 초 단위로 수십 번씩 움직이는 두 개의 클로가 쏟아내는 검기에 눈이 부실 지경.
영기 갑옷을 발동시키지 않았다면, 진즉에 온몸에 경미한 절상을 입었을 것이다.
“신분을 감춰야 하는 것 아니었어? 그렇게 특정할 수 있는 무기를 사용하면.”
“목격자를 남기지 않으면 그만이다.”
“목격자는 나 하나뿐인데?”
“그래, 널 제거하겠다는 뜻이지.”
“그런 살벌한 농담은 별로야. 지금 날 죽이는 것이야말로 룬칸델에 큰 손해일 텐데?”
괴한은 대답하지 않고 클로를 뻗었다.
클로를 사용하는 무인을 상대한 경험은 손에 꼽았다. 사실상 기수가 되고 길리의 봉인이 해제되었을 때, 몇 번 대련을 해본 게 전부였다.
-분명 내가 길리보다 월등히 강한데, 상당히 까다로운 느낌인데.
-클로는 검과 전혀 달라요, 도련님. 어설픈 자들이 사용하는 건 무서울 이유가 없지만, 제대로 된 사용자를 만나면…… 전투 도중 검이 도련님 뜻대로 움직이는 일이 거의 없을 겁니다.
길리와 가볍게 대련을 해보며 나눴던 대화.
그녀의 조언처럼 검을 뜻대로 가누기가 쉽지 않았다. 검이 클로의 이 사이에 끼어 움직임이 제한되고 있는 것이다.
왼손으로는 검을 봉하고, 오른손으로는 지근거리에서 공격을 퍼붓는 식이었다. 뮬타의 룬까지 발동시켰음에도 클로가 얼굴을 스칠 때마다 간담이 서늘해졌다.
‘장난 아니네.’
밀려나는 도중 몇 번 반격을 시도하긴 했으나, 그의 기세를 밀어낼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업화나 명왕군림검을 펼치기엔 단테가 너무 위험하다.’
우선 거리를 벌려야 했다.
영기 갑옷이 보호해주고 있으나, 근접전이 길어지면 결국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괴한은 진이 후방으로 보법을 밟아도 끈덕지게 들러붙는 모습.
영혼 베기를 연속으로 펼쳤으나, 괴한의 클로가 강철검처럼 부러질 리는 없었다. 다만 아무런 충격도 주지 못한 것은 아닌 듯 몰아치던 클로가 일순 잦아들었다.
그 덕에 열 걸음 정도의 거리를 확보할 수 있었고, 진은 계속 그 거리를 유지한 채 싸움을 이어나갈 계획이었다.
괴한보다 월등한 검술을 지니지 못한 이상, 근접전에서는 할 수 있는 게 극히 적었다.
홱!
그때, 괴한이 뒤돌아 목표를 바꿨다.
‘단테!’
처음부터 괴한이 노린 것은 단테였다. 일부러 진이 거리를 벌리도록 유도한 후 본래 목표인 단테를 확보해 탈출하려던 것이다.
진과 괴한이 동시에 단테에게로 몸을 던졌다.
열 걸음의 차이가 있는 만큼, 단테에게 먼저 닿는 것은 괴한이었다.
괴한의 빛나는 클로가 쓰러진 단테의 목덜미로 향하고 있었다. 단테를 납치하지 않고 죽여도 상관없다는 듯이.
이내 클로가 단테의 목을 꿰뚫으려는 찰나. 진이 브라다만테를 던져 클로의 경로를 가로막았고, 동시에 시그문드를 뽑았다.
하지만 무리하게 검을 던진 탓에 자세가 흐트러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괴한은 단테에게 향하던 클로를 진에게로 다시 되돌리고 있었다.
콰각-!
클로가 영기 갑옷을 찔렀고, 진이 한 움큼 피를 토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