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27)
제 444화
124화. 위기의 원로들(2)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정녕 미치지 않고서야……!’
원로들은 식겁한 마음을 간신히 감출 수 있었다.
새파랗게 질린 목들이 긴 탁자 위를 어지럽혔다.
그 모습이 거추장스럽다는 듯, 진이 제 앞에 놓인 목 몇 개를 휙휙 손으로 쓸어내며 그 자리에 계약서를 올려두었다.
“혹시 몰라 사본을 좀 만들어왔습니다. 다들 한 번씩 읽어보셔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앞으로 원로분들께서 절 죽이려면 최소 귀신대 수준의 살수들에게 이 정도 대가는 지불해야 한다는 걸 참고하는 차원에서 말이죠.”
어째서일까.
왜, 저 미친 12기수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기가 쉽지 않은 걸까…… 돌멩이가 목구멍을 막고 있는 듯했고, 무겁게 가라앉은 회의장의 공기가 한없이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반면 진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뒷말을 이었다.
“아, 물론 어디까지나 최소 비용이라는 뜻입니다. 그 정도 대가만 지불한 상태에서 운이 좋지 않으면, 바로 이런 꼴이 나는 것이죠.”
숨소리조차 증폭되어 들릴 만큼 회의장이 조용해졌다.
진은 차분히 원로들의 면면을 살폈고, 원로들은 시선을 대체 어디에 두어야 할지 감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그들은 분명 룬칸델의 원로들이다.
어린 시절부터 천재로 분류되어 룬칸델의 생도가 되었고, 기사가 된 이후엔 오래도록 살아남아 수많은 전공을 세웠으며, 마침내 늙어서도 당당히 검의 정원에서 한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인 것이다.
그런 그들이 이렇게까지 굳어있는 이유는, 얼마 전 진이 보여준 괴물 같은 무위 때문이 아니었다.
싸움이라면, 압도적인 무위를 지닌 무인이라면 진절머리가 나도록 많이 겪어본 것이다.
다만 진에겐 분명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단지 무위가 뛰어나고, 배짱이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하는 것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꼭 벽을 보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해도 절대로 넘을 수 없고, 무슨 짓을 해도 부술 수 없는 벽.
이를테면, 원로들은 진에게서 젊은 시절의 시론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얼핏 시론이 보인다고 하여, 진이 진짜 시론인 것은 아니다.
두렵다는 이유로 찌그러져 있는 것 또한 룬칸델 원로로서 차마 할 수 없는 짓이었다.
“이런 미친 작자를 보았나! 12기수, 네놈이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지 알고 있느냐?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이딴 망발을 보이냔 말이다!”
“가문 원로에 대한 존중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군. 죽은 원로들이 널 죽이려 했다고? 고작 그따위 종잇조각을 증거랍시고 가져온 것이냐. 무려 열 명에 달하는 원로를 살해하고서는……!”
“이건 원로회를 향한 모독이다, 네놈이 저지른 짓은 가문을 향한 반역이란 말이다!”
막혀있던 둑이 터지듯, 벌떡 일어선 원로들이 악을 질렀다.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들이 당장이라도 진을 씹어 삼킬 것 같았다.
원로들이 내뿜는 살의에 온몸이 찌릿찌릿했으나, 이제 진에게 그 정도는 대수로울 것도 없는 기운에 불과했다.
“존중, 모독, 반역.”
피식…….
입술 사이로 비웃음이 빠져나왔다.
원로들을 더 분노하게 만들기 위해 억지로 웃은 것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진은 원로들이 하는 말이 우습게 들렸다.
저 늙고 썩은 인간들과 자신이 ‘룬칸델’이라는 이름을 함께 사용한다는 사실에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
“웃어? 실성을 한……!”
“이 썩어빠진 구시대의 망령들아, 네놈들은 정녕 부끄러움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냐?”
또 한 번 원로들은 커진 눈을 껌뻑일 수밖에 없었다.
묵직한 둔기에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나더러 네놈들을 존중해달라고? 룬칸델을 모독하지 말라고 하였나?”
이번엔 진의 표정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눈에는 형형하고 진한 살기가 가득하건만, 입은 웃고 있어 악귀가 깃든 것 같은 얼굴이었다.
“룬칸델을, 이 빛나는 투쟁의 이름을 모독하고 있는 것은 네놈들이다! 그저 늙음이라는 자리에 앉아 삭은 권력이나 삼키고 있는 네놈들과 내가, 같은 이름을 쓴다는 게 역겨워 미칠 지경이란 말이다.”
“12기수!”
“닥쳐라, 그 목도 탁자 위에 함께 올리기 전에. 네놈들은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야 할 것이다.”
원로들은 당장이라도 검을 뽑을 기세였으나, 호법회장 린 밀카노가 손을 들어 원로들을 제지했다.
그나마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지만, 린 역시 미세하게 손을 떨고 있었다.
분노와 전율에서 비롯된 떨림이었다.
그녀는 진의 ‘가주 선언’ 당시, 그가 보여준 위용을 가장 앞에서 본 사람 중 하나였다.
“본질을 잊지 마라. 내가 원로들을 죽여 이리 능욕하는 것은, 그들이 나와의 싸움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분하다면 네놈들도 날 꺾고 짓밟아라. 어떤 방식으로든!”
서열전쟁.
진은 자신과 원로들의 싸움을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기수와 기수로서가 아니라, 룬칸델과 룬칸델로서의 싸움이라고 말이다.
또 한 번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진이 토하는 거친 숨소리가 도드라지고 있었다.
눈동자에 선 핏발이 잦아들자 호흡도 다듬어졌고, 진은 평소와 같이 무덤덤한 표정이 되었다.
“부디…… 앞으로는. 내가 맞서 싸워도 부끄럽지 않을 만한 모습이길 바라겠습니다, 원로님들.”
그렇게 말을 끝맺은 진은 원로들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회의장을 빠져나가는 모습이었다.
원로들은 진이 사라진 자리를 노려보며 말이 없었는데, 모두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었다.
열패감, 치욕, 분노와 같은 감정이었다.
“하아, 지난번 난동 이후 원로장께서 12기수는 당분간 가문을 위해 할 일이 많다고는 하셨으나…… 도를 지나쳐도 너무 지나쳤소. 대책이 시급합니다, 언제까지 저렇게 날뛰게 놔둘 수는 없습니다.”
“12기수는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것이오! 우선 죽은 원로들의 장례를 준비하고, 그 다음 원로장과 가주 대행께 이 소식을 전해야겠습니다. 엄벌이 필요한 사안입…….”
또각, 또각!
별안간 복도에서부터 구둣발 소리가 들려왔다.
흑표범 로사 룬칸델, 그녀의 발소리였다.
“원로들은 내게 따로 소식을 전할 필요 없습니다. 이미 다 직접 듣고, 보았으니.”
로사가 회의장으로 들어서자 원로들이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으나, 원로들은 그녀에게서 풍기는 위험한 분위기를 놓치지 않았다.
‘방금 나간 12기수와 분명 마주쳤을 텐데, 가주 대행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인가?’
‘가주 대행과 12기수가 손을 잡은 것은 절대로 아닐 텐데…… 느낌이 좋지 않다.’
원로들의 생각처럼 진은 들어오는 길에 로사와 마주쳤었으나 모자는 한마디 말도, 눈짓도 주고받지 않았다.
마치 불리한 시기의 싸움을 피하는 맹수처럼.
탁자 위의 목들을 내려다보는 로사.
이내 그 손아귀에 태양처럼 새하얗게 빛나는 오러가 형성되었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오러로 죽은 원로의 수급들을 없애버리는 모습이었다.
피도, 뼈와 살도, 뇌수도 튀지 않았다.
수급들은 그녀의 손에서 뻗어진 열기에 깔끔하게 증발한 것이다.
그 광경에 원로들은 또 한 번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가주 대행은 아직 내상에서 회복하지 못했을 터인데, 이게 무슨 경지란 말인가?’
‘새로이 깨달음을 얻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마치 가주의 검을 보는 것 같군.’
사물을 완전히 소멸시키는 경지.
로사가 방금 보인 것은 분명 시론이 닿은 그 경지와 닮아있으나, 결코 같다고는 할 수 없었다.
로사 자신이 그 사실을 가장 뼈저리게 느꼈다.
‘막내가 그날 내지른 혼신의 일격을 받아낸 이후…… 참으로 오랜만에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군. 하나 아직도 당신이 다다른 땅은 한없이 멀기만 하군요, 가주.’
진의 검에 당해 중상에 빠진 후, 로사는 한 겹의 벽을 허물 수 있었다.
위력의 고하를 떠나, 그날 진이 휘두른 검은 그간 겪은 어떤 검보다도 그녀를 충격에 빠지게 만들었었다.
오늘 그 결과를 처음으로 원로들에게 보여준 것이다.
“축하드리오, 가주 대행! 새로운 영역에 닿으셨구려.”
“가문이 어지러운 가운데, 이런 경사가…… 아직 완벽하게 회복하지 못했을 터인데, 엄청난 힘이오.”
원로들이 축하를 전하기 시작하자마자 로사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원로들은 그 싸늘한 시선에 오장육부가 다 얼어붙는 감각을 느껴야만 했다.
“내게 12기수의 행동거지를 알려 무얼 어쩌고 싶었던 겁니까, 원로들께서는.”
그 말에 웃으며 축하를 전하던 원로들의 표정이 싹 굳었다.
“내가 원로회를 대신하여 12기수를 벌해주기라도 바랐습니까?”
“가주 대행, 그건.”
“아니면, 12기수가 더 이상 원로회를 해치지 못하도록 방패막이가 되어주기를 바란 겁니까?”
차마.
아니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부끄러움을 견디기 어려운 듯, 원로들의 주름진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
“호법회장께서 대답해보십시오.”
로사가 지목하자 린이 한 차례 호흡을 골랐다.
“가주 대행의 말에 단 한 점도 틀림이 없어 이 노인은 그저 부끄럽기만 하군요.”
“오늘 이후.”
로사가 원로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원로회는 존재의의와 그 가치를 새로이 증명해야 할 것입니다. 내게 한 번만 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간, 가주가 돌아올 때까지 원로회를 잠정폐쇄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가, 가주 대행! 그 무슨 말이오?”
“원로회를 잠정폐쇄하겠다니, 그건 지나친.”
이야기지 않소.
그렇게 말하려던 원로는 뒷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스걱-! 어느새 로사의 손바닥에서 뻗어진 검기가 그를 반으로 갈라버렸기 때문이었다.
프스스…….
절단면에선 피 대신 오러에 물든 새하얀 입자가 흘러 공기를 물들였다.
이윽고 흐르는 입자가 멈추었을 때, 죽은 원로의 시신은 불타다 만 것처럼 기묘한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그저 공짜로 얻은 세월이, 나의 말에 거역할 힘을 준다고 믿는 분들이 더 계시지는 않으리라 믿습니다.”
린 밀카노가 한쪽 무릎을 꿇자, 나머지 원로들이 일제히 그녀를 따라 몸을 낮췄다.
로사는 그들을 내려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끈질기게 싸우거나, 버러지처럼 살거나.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나는 원로들께, 그리고 그 피붙이들에게. 한없이 자비로워질 수도, 잔인해질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하십시오.”
로사의 마지막 말에 원로들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