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39)
제 444화
127화. 흑왕단으로(1)
추방자의 죽음 이후, 함부로 그 사실을 입 밖으로 내는 이들은 없으나.
가문의 권속들 사이에선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추방자의 죽음에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추방자의 말들이 사실일 것 같나?”
“무슨 말이야?”
막 근무가 끝나고 휴식을 시작한 수호기사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가주 대행께서 2기수를 걱정해 당시 집행기사들을 숙청했다는 대목.”
그 말에 듣던 수호기사가 흠칫하며 괜히 주위를 살폈다. 2기수의 좋지 않은 면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자칫하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조심스럽게 좀 말하게!”
“이 시간 이쪽 뒤뜰에는 아무도 없어. 알면서 놀라기는. 검의 정원에서 가장 숨통 트이는 공간이잖나.”
“그렇긴 하지만, 어쨌든 추방자는 이미 죽어버렸으니 그 말의 진위는 알 수 없게 되었지.”
“충분히 대대적인 진상조사가 시작될 법한 사태였는데, 아무래도 2기수의 즉결 처형이 이상하게 느껴진단 말이지.”
조슈아의 즉결 처형은 분명 사건을 빠르게 덮기 위한 행동처럼 보였다.
“흑검회장의 행동도 마찬가지야. 정말 자신이 추방자를 살린 게 아니라면, 어떻게든 그를 살려서 결백을 증명하는 게 더 나았을 것 같군.”
잠시 대화를 끊은 수호기사들은 머릿속이 복잡한 듯 보였다.
“……추방자의 말대로라면. 가문에 오래도록 헌신한 대가가 참 잔인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가주 대행께서도 아직 이렇다 저렇다 말씀이 없으시고.”
“언젠가 우리라고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 또한 없지.”
“거참, 찝찝한 연말이로군…….”
덜컥!
별안간 땅바닥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수호기사들은 화들짝 놀라며 경계 태세를 취했다.
흙에 가려져 있던 문을 열고 나온 것은 토나 형제였다. 수호기사들은 순식간에 사색이 될 수밖에 없었다.
“충!”
“충!”
경례하는 수호기사들을 보며 토나 형제는 헛기침을 했다.
“목숨이 아깝지 않은 모양이로군, 이토록 위험한 이야기를 나불거리는 걸 보니.”
“야, 야. 너희 이제 2년 차도 안 된 녀석들이잖아. 죽고 싶어 환장했어?”
“죄송합니다!”
수호기사들이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물론이고, 지금껏 이쪽 뒤뜰에서 휴식을 취하던 모든 기사들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이곳은 토나 형제에게도 정원 내 가장 편안한 공간이었다.
뮤와 앤의 압박과 탄압에 지친 형제는 언젠가 이 뒤뜰에 자신들만의 쉼터를 만들었다.
굴을 파고 문만 대충 댄 단순한 지하 공간이지만, 토나 형제는 이곳에서 생각보다 많은 수확을 올리고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이 뒤뜰을 찾는 권속들의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던 것이다.
토나 형제가 몸에 묻은 흙을 털어내려고 시늉하자 수호기사들이 잽싸게, 그리고 조심스레 달라붙었다. 말과 다르게 어쩐지 형제가 자신들을 그리 나쁘게 생각지 않았다는 느낌이 왔다.
“그게 거짓이라면, 굳이 목숨을 버려가며 검의 정원을 찾아올 일은 없지 않겠나? 얼마나 억울하면 그랬겠어?”
“예?”
데이토나의 말에 수호기사들의 눈동자가 커졌다.
“추방자의 유언들 말이다. 우린 그게 거짓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거든.”
“맞아, 맞아.”
토나 형제는 지금까지 한 번도 서열 전쟁에 참여한 적이 없었다. 생도 시절 진과 잠깐 다투었던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수호기사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지금 토나 형제는 대놓고 2기수에 반하는 말을 하고 있었다.
수호기사들이 차마 대답하지 못하는 사이, 형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진상조사를 안 하는 이유는 큰형님이나 원로장이나 켕기는 게 있기 때문이지.”
“게다가 시체는 개들이 먹게 내버려두라니. 막내가 아니었다면 정말 그렇게 될 분위기였어. 막내만이 큰형님의 심기를 거스를 각오로 시신을 수습해주었다고.”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해?”
데이토나의 물음에 수호기사들은 죽을 맛이었다.
아직 그 수호기사들은 ‘어느 편’에 서야 할지를 결정하지 못한 신출내기들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저희는…….”
“아니, 됐다. 우리가 괜히 너흴 난처하게 만든 것 같군.”
“아닙니다!”
“막내가 그러는데 말이야.”
“큰형님과 원로장은 그를 살려뒀어야 한다고 하더라.”
“어째서 그런 건지 궁금하지?”
수호기사들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여야만 했다.
“그건, 아직 검의 정원을 찾지 않은 추방자가 한 사람 더 있기 때문이래.”
“차라리 큰형님이나 원로장이 이번에 온 추방자를 죽이지 않고 어떻게든 포섭하거나, 세뇌시켰다면. 차후 살아남은 추방자가 왔을 때 그의 말을 부정할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었을 거라더라. 이름이, 루턴 페르만이었나? 당시 집행기사 1진의 조장이었다던데.”
내내 가시방석에 앉은 듯했으나, 결국 수호기사들은 그 대목에서 진심으로 강렬한 호기심을 느꼈다.
“그 이야기가 정말입니까? 한 사람이 더 있…….”
“쉿!”
헤이토나가 검지로 자신과 수호기사들의 입을 가렸다. 그리곤 씨익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거였다.”
“막내야말로 충성의 가치를 잘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지. 그렇기에 우리 또한 본격적으로 막내와 함께 서열 전쟁에 참여하려는 것이고.”
“그러니까 너희도.”
“앞으로 생각을 잘 하는 게 좋을 거야. 빛나는 헌신의 대가를 제대로 받고 싶다면. 이만 가봐.”
“어디서든 입조심하고!”
수호기사들은 눈동자를 끔뻑이며 뒤뜰을 떠났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까? 헤이토나.”
“그러자. 다들 입이 어찌나 무거운지, 소문이 정말 잘 안 퍼지기는 하네.”
토나 형제는 의도적으로 뒤뜰을 찾는 수호기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굴 안에서 이야기를 잘 듣고 있다가 최근 사태에 의문을 갖는 듯 말하는 이들에게만 접촉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막내가 그랬잖아. 다들 훈련이 잘 되어서 소문이 돌기까진 시간이 좀 필요할 거라고. 찬찬히 기다려보자. 분명 성과가 나올 거야. 막내가 하는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 * *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 가문의 권속들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 2기수의 기사들과 원로회의 세력 일부가 늘 무언가를 찾고 있는지에 대한.”
비궁, 진이 말하자 시선이 모여들었다. 얼음 침대에 누운 채 금설족의 안마를 받고 있는 탈라리스, 그 옆에 앉은 루턴과 맞은편에 있는 무라칸과 시리스의 시선이었다.
“그 움직임이 가문의 대소사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또 한 번 구린내를 감추려는 의도였다는 게 밝혀지면. 그때는 정말로 둘 다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죠.”
진은 추방자의 죽음을 단지 가문에 ‘뒤숭숭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으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2기수와 원로회의 입지와 근간을 송두리째 흔들고 싶었다.
“흐응. 루턴이 돌아가는 날이, 룬칸델 사상 최악의 추문이 터지는 날이겠군.”
-12기수의 말이 옳지만, 한 사람은 살아남아야 합니다. 조장. 조장이 그자들의 최후를 목도해주십시오. 그리고 12기수가 허락해준다면, 언젠가 룬칸델이 그의 것이 되었을 때. 죽은 우리의 몫까지 대신 살아가주십시오.
루턴은 진이 가져온, 죽은 추방자의 검을 매만지며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때 루턴은 차라리 자신이 죽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차마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모든 걸 잃은 사람이 증오만으로 삶을 이어가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살아남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렵고 무거운 일이었다. 루턴은, 조원인 그가 아니라 자신이 더 많은 책임을 지기 위해 살아남은 것이었다.
“……나는 이제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루턴이 말했다.
“우선 몸을 회복하십시오.”
추방자가 죽은 후 진과 루턴은 서로에게 경어를 사용했다.
진은 티칸을 공격한 일을 용서했으니, 이제는 집행기사로서 그들을 대우해주는 게 옳다는 마음, 루턴은 이제 그의 검이 되기로 했으니 그에 걸맞은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그래. 너무 약해지긴 했더라. 여전히 9성쯤은 되는 것 같다만, 나한테 그렇게 빨리 제압당할 정도는 아니었잖아?”
원로회가 얼굴과 몸뚱어리 곳곳을 짓이긴 이후, 루턴은 무위를 상당히 잃은 상태였다.
여전히 9성이긴 하나, 그는 본래 집행기사 ‘1진’의 조장이었던 만큼 흑기사와 가장 가까운 인물이었다.
그것도 ‘사상 최강’이라 평가받는 전대 흑기사들, 말하자면 시론의 흑기사들과 말이다.
비극이 벌어지지만 않았다면, 루턴은 충분히 흑기사가 될 수 있는 인물이었다.
“나도 회복이 필요하다곤 생각하나, 달리 방법이 없군요.”
“성왕에게 가서 치료를 받으셔야 합니다.”
“……성왕?”
“누메루스의 유산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그녀로서도 한계가 있을 겁니다. 다만 성왕보다 뛰어난 치료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편지를 써드릴 테니, 올해가 가기 전에 가보십시오.”
“미클란이 성왕이던 시절엔 가주조차 그를 쉽게 사용하지 못하셨건만. 대단하시군.”
“아무에게도 노출되지 않게 다녀오셔야 합니다.”
“물론, 그 정도는 어렵지 않습니다.”
“으응, 성왕의 치료라면 어느 정도는 분명 나아지겠군. 다시 옛 실력을 되찾아서 우리 사위를 잘 보필하도록 하자고, 루턴.”
“치료를 받은 이후엔?”
“제 기사들의 스승이 되셔야겠습니다.”
막내 사단.
진은 루턴에게 그들의 교육을 맡길 계획이었다.
“집행기사 식으로, 자비 없이 훈련을 시켜주십시오.”
막내 사단은 앞으로 진에게 모일 기사들의 구심점이 되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하고 말이다.
지금의 막내 사단은 벨롭과 메사, 스컷을 제외한 나머지는 겨우 수호기사 평균에 달하는 실력을 갖고 있으니 빠르게 성장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하면 죽을 수도 있을 겁니다. 게다가 옛부터 막 수호기사가 된 이들은, 일단 누리기를 원하지 새로운 훈련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수호기사가 되기까지 끔찍한 과정을 거쳐 왔으니, 한동안은 보상을 받고자 하는 게 인간의 당연한 마음이었다.
“싫은 내색을 보이는 이들이 있다면 내게 보고 없이 그냥 쳐내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내일 당장 성왕에게 갈 테니, 주군께서도 신입들을 즉시 보내주십시오. 바로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그나저나, 진.”
“예, 탈라리스 님.”
“흑왕단 본채는 언제 찾아갈 계획이냐?”
“내일 곧장 갈까 합니다. 아무래도 하루라도 빨리 티칸을 보호할 세력을 구하는 게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