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65)
제 444화
131화. 감이 좋은 사람들, 감이 좋지 않은 사람들(10)
하늘에서부터 시작된 검은 해일이 지상을 덮치고 있다.
황급히 보호막을 치는 4대 세력의 시점에선 딱 그랬다. 무자비한 검은 해일이 섬 전체를 초토화시킬 것 같았다.
청화에 깃든 중압의 속성 때문에 태산이 짓누르는 듯한 무게감도 있었다.
쩌적, 쩍!
업화가 닿기도 전에 섬 곳곳에 거대한 균열들이 생기니 지상의 인간들로서는 세상의 종말을 마주한다면 이런 풍경일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4대 세력의 보호막이 버티지 못한다면, 무라칸이 내던진 업화는 섬을 통째로 지워버리고도 남을 힘을 품고 있었다.
일종의 상승효과가 발생한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진이 펼친 업화에 무라칸의(막 5할 힘을 되찾은) 영기가 더해졌다.
업화와 영기는 서로를 잠식하고 상쇄시키는 대신, 마치 처음부터 노린 것처럼 합해져 더욱 강력한 위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진 혼자 펼친 업화조차 당시 검의 정원에 있던 수호기사들을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위력을 품었었다. 룬티아가 막아내지 못했다면 말이다.
하물며 무라칸의 힘까지 더해진 업화는 말할 것도 없었다.
물론 전성기의 사라가 직접 펼친 것에는 아직 비할 바가 아니지만, 그에 버금가는 수준은 되었다.
즉, 군도를 찾아온 4대 세력 중엔 단신으로 이 업화를 막아낼 수 있는 인물이 아무도 없었다.
화르륵, 쿠라라락-!
업화가 지상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검은 해일의 끄트머리가 보호막들을 휩쓸기 시작하자마자, 지상의 인간들은 공포와 충격에 푸르르 몸을 떨어야만 했다.
무려 수십 겹을, 최고까지는 아니더라도 4대 세력의 1군들이 사력을 다해 쳐놓은 보호막들이, 바짝 마른 낙엽처럼 너무나 손쉽게 부서지고 있었다.
바가각, 바각, 퍼걱!
부서진 보호막의 파편들이 튀어 빛을 난반사했다. 시커먼 업화가 빛을 다 가려 어둠이 찾아오기까진 1초도 필요하지 않았지만.
“으아아악!”
“커허억!”
동시다발적으로 비명이 쏟아졌다.
업화는 닿는 모든 것을 재로 만들고 있었다. 손가락 끄트머리만 닿아도 온몸이 침식되었으며, 중압의 기운 때문에 도망칠 수조차 없었다. 도망칠 수 있다 할지라도 달리 의미를 갖기는 힘들지만 말이다.
검은 해일 아래의 인간들은 자신들이 꼭 지옥의 한 풍경에 서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지옥에 신이 있다면, 그건 바로 저 끔찍한 흑룡, 불살라지는 인간들을 지켜보며(실제로는 아무 곳에나 시선을 두고 있었지만) 미친 듯이 웃고 있는 무라칸이라는 생각도 함께였다.
[크하하하, 크하학, 카핫핫하하학!]그 웃음소리는 그저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표현하는 것이지만, 지상의 인간들로서는 도저히 그렇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4대 세력의 1군 따윈 개미 짓밟듯 학살할 수 있는 섬뜩한 존재…….
“까르륵! 서자야, 너 정말 저런 거랑 싸워야겠어? 저 흑룡, 잘못 건들면 진짜 큰일 나겠는데. 뮤론 오라버니처럼 되고 싶다면 얼마든지 다른 방법을 추천해줄 수 있어.”
산드라가 빙결계 마법을 펼쳐 업화를 밀어내며 소리쳤다. 검은 불길을 밀어내는 그녀의 얼굴에 비 오듯 땀이 흘러내렸다.
“매일, 저자들을…… 죽이는 상상을 했습니다. 뮤론 형님의 원수인 저들을……!”
미도르는 공간 폭발과 화염계 마법을 이용해 자신과 근처에 있는 마법사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래? 뮤론 오라버니의 원수라, 너처럼 웃긴 녀석도 찾기 어려울 거야. 꼭 형제라도 죽은 것처럼 이야기하네!”
말과 달리 산드라는 전혀 빈정거리지 않았고 오히려 묘한 발랄함이 묻어나는 말투를 구사하고 있었다.
“뭐, 마음대로 해! 네 실력으론 죽었다 깨어나도 안 될 것 같지만. 나도 진 룬칸델은 한 번 꼭 만나보고 싶었거…… 으아악!”
돌연 전조도 없이 업화가 한층 더 강해지자 산드라가 소리를 내질렀다.
그녀의 근처에 있던,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원로급 마법사들은 모두 영기에 잠겨 사라지는 모습.
단 한 번의 증폭으로 인해 지플 측은 절반 가까이 되는 마법사들을 잃었다.
그런데도 산드라는 씨익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햐, 하마터면 나도 갈 뻔했네. 매력적이야, 아주!”
킨젤로 쪽은 상황이 더 좋지 않았다.
백랑족들과 달리 적호족들은 상황 대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있었다.
아니, 그 정도를 넘어 마구잡이로 몸부림을 치다 백랑들까지 물귀신처럼 죽음으로 끌어들이는 적호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 미친 적호 놈들! 놔! 놓으라고!”
“사, 살려줘! 잘못했어! 앞으로 안 그럴게!”
“뭘 안 그런다고!”
“나도 살려, 크억!”
“네놈들 때문에 동족들이 다 죽고 있단 말이다……!”
결국 백랑족 최고 전사와 상급 전사들은 앞길을 가로막거나 걸리적거리는 적호들의 머리를 망치로 내리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전멸은 확정이었다. 간혹 왕호쯤 되는 이들은 반격을 하기도 했으나, 이성을 잃은 채 휘두르는 손톱은 백랑족들에게 그리 위협이 되지 않았다.
두 종족은 대체로 사이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백랑들은 적호들을 죽이며 ‘아깝다’는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젠장! 대업을 위한 병사들이 이렇게 허무하게 죽다니……!’
적호족 일반 전사는 몰라도, 왕호들을 이토록 어이없이 잃는 건 특히 뼈아픈 손실이었다. 왕호는 백랑들의 ‘최고 전사’와 대등한 전투력을 지닌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칭호인 것이다.
적호들의 머리와 몸통이 사방으로 날아가 검은 불길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비교적 전투력이 떨어지는 백랑들도 계속 죽어나가는 중이고.
킨젤로가 아수라장 속의 아수라장을 헤매고 있는 사이, 비먼트의 대원들도 끔찍한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아멜라와 내내 전투를 치른 것도 어처구니가 없었는데, 이번엔 흑룡 무라칸이라고……!’
특임대 3조장 라츠가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다른 세력들과 마찬가지로, 비먼트의 대원들 또한 가이파 군도를 찾을 때 이런 상황이 벌어지리라고는 상상을 하지 못했다.
아멜라가 설마 4대 세력 전부와 전투를 펼치리라고 누가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그것도 저주까지 걸면서.
4대 세력끼리 사소한 알력다툼 정도는 있어도 본격적인 전투는 할 일이 없다고도 생각했다.
모두 눈치를 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많은 인원을 보내 위세를 부리는 것까진 괜찮으나, 실제 전투로 이어지는 건 모두에게 너무나 큰 손실이었다. 아멜라를 누가 얻게 되든, 차라리 협상을 하면 협상을 했지.
그런데 이렇게 냅다 광역 공격을 내지르는 경우가 있을 줄이야.
심지어 공격은 이제 시작된 것에 불과한데, 무라칸은 그것만으로도 4대 세력을 압도하고 있었다.
라츠와 조장들은 쉴 새 없이 죽는 대원들을 보며 뒷골이 아찔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한둘이 아니었다. 저만한 숫자의 특임대원을 보충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예산이 들어갈지 가늠조차 되질 않았다. 여기서 살아남아 제국으로 복귀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지플, 킨젤로, 비먼트.
그 3세력은 당연히 업화가 무라칸의 기술이라 생각하고 있으나, 룬칸델은 다른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이건 무라칸 님의 힘이 아니야…… 막내의 힘이다!’
뷔고가 업화를 베어내며 마른침을 삼켰다.
가주 선언 당시 펼친 것과 다소 다르기는 하지만, 뷔고는 업화가 마검 비기라는 것을 똑똑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때 룬티아 누님이 막아낸 것보다 더 거대한 힘을 갖고 있으나, 분명해. 이건 무라칸 님이 아니라 막내의 검이다!’
시린 칼끝이 등허리를 훑은 듯 소름이 돋았다.
또한 묘한 열패감과 동경, 부끄러움, 자괴감, 투지 같은 감정들이 어지러이 뒤섞여 형용하기 어려운 마음이 되기도 했다.
업화의 검은 해일이 룬칸델 쪽엔 유독 약하게 퍼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건 무라칸이 조절한 것이지만, 뷔고는 진이 자신과 가문을 배려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룬칸델은 다른 세력들과 달리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나오지 않았다.
바꿔 말하면, 룬칸델 기사들이 생각하기에 자신들의 목숨은 진에게 달려 있었다. 진이 죽이고자 하면 죽을 것이고, 살리고자 한다면 사는 것이니까.
[그래, 느껴라! 하찮은 놈들아. 위대한 흑룡의 힘을 실감하고 죽어라, 그것이 너희 보잘것없는 삶 최고의 순간이 될 것이다.]무라칸이 잠시 웃음을 멈추며 그렇게 말했다.
상당히 흐뭇한 얼굴로 업화가 난자하고 있는 지상을 바라보기도 했다. 강화된 자신의 힘을 감상하는 것이다.
짜릿하고 절로 웃음이 나왔다. 헤 벌어진 입이 귀에 걸린 모양새는 아무리 봐도 위엄이 없었으나, 다행히 업화를 막느라 아무도 그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딱 한 사람, 진은 그를 올려다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는 했다.
‘저 녀석, 갑자기 엄청나게 강해진 것 같은데. 뭐지? 꼭 어떤 제한 같은 게 사라진 느낌이란 말이지.’
이유가 무엇이든, 고민할 것도 없이 잘된 일이었다.
아멜라를 살렸고, 무라칸은 강해졌으며, 뜻하지 않게 4대 세력을 압도하는 그림까지 만들어진 것이다.
어떻게 해야 가장 많은 이득을 챙길 수 있을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리 많이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아멜라 경.”
[네, 아니. 응. 사, 살려줘서 고마워.]“인사와 자세한 이야기는 상황이 종료된 다음에 듣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지금부터 내가 당신에게 제안을 한 가지 할 겁니다.”
[뭐든 말해! 난 이제 부바르와 킨젤로의 친구가 아니라 네 친구가 될게.]“그건 지켜봐야 하는 문제입니다. 내가 당신을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중요하고. 어쨌든, 몸을 숨겨요.”
화아악!
[먀!]적옥에서 슈리가 소환되었다. 아멜라는 슈리를 보자마자 프로치 남매를 볼 때처럼 눈동자를 심히 반짝였다.
“이 녀석이 도와줄 겁니다. 어수선한 상황이 지나가기 전에, 최대한 빠르게 몸을 숨기는 겁니다. 군도와 너무 멀지 않은 곳에, 내가 나와도 좋다고 할 때까지.”
진은 아멜라를 ‘죽은 사람’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이미 아멜라는 4대 세력을 등졌으니 차라리 사망으로 처리하되, 남들 몰래 자신의 세력에 소속시키면 좋으리라고 판단을 내린 것이다.
물론 그건 아멜라를 믿을 수 있게 된 다음의 이야기지만, 업화가 끝난 다음엔 아멜라가 숨을 기회가 없을 터였다.
[얘랑 같이? 정말? 귀염둥이들도 데려가도 돼?]“안 됩니다. 그리고 만약 날 기만하거나 도망친다면, 그때는 당신이 어디에 있어도, 누구의 보호를 받고 있어도 반드시 찾아서 죽…….”
[그럴 일 없어! 그럼 이따가 봐.] [먀먀!]아멜라가 슈리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자, 진은 프로치 남매와 함께 묶여 있던 부바르의 영혼이 빠른 속도로 옅어지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저것에 대해선 차차 아멜라에게 직접 듣기로 하고…… 이제, 여길 마저 정리해볼까.’
진과 무라칸의 눈동자가 마주쳤다.
그리고 진은 입모양을 통해 무라칸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
‘3번 멘트 준비해, 무라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