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75)
제 444화
133화. 선택의 시간들(3)
* * *
티칸은 여전히 흑왕단의 장비를 옮기고 설치하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흑왕단이 합류하며 시작된 공사는 진과 동료들의 방위와 거주민들의 안전을 위한 일이자, ‘국가 승격’의 마지막 단추였다. 길고 신중한 공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내려, 내려!”
“거기, 함포 각도 조금만 틀어! 왼쪽으로, 왼쪽…… 그렇지! 멈춰!”
세계 최고 용병대조차 밤이면 혀를 내두를 강도의 노동이 연일 이어지고 있건만, 어쩐지 단원들의 목소리가 밝고 경쾌했다.
아멜라 때문이었다.
내심 다들 걱정했던 것이다. 전설의 대용병이 혹시 진과 무라칸을 상대로 자신들보다 더 나은 성과를 보이거나, 끝내 항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발카스가 고른 새 주군에 대한 충심이 변할 일은 없지만 아멜라가 ‘잘 버티면’ 왠지 모르게 자신들이 지는 기분이 들 것 같았다.
다행히도 아멜라는 극히 짧은 시간만 기세등등했다. 진이 제대로 힘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곧장 싹싹 빌어 투항한 것이다.
“흐흐, 하여간 단장님이 사람을 잘 봤다니까. 대용병 때문에 우리나 주군이나 체면 구기는 거 아닌가 조금 걱정이 되긴 했다고. 단장님하고 서열 문제도 있고.”
“대용병이라는 칭호에 거품이 좀 있던 건가? 무라칸 님 말씀하시는 걸 얼핏 들어보니 그냥 냅다 항복했다던데.”
“거품? 답답한 소리 하고 앉았네. 그럼 직접 그 양반이랑 전장에서 마주쳤던 간부들이 하나같이 허풍쟁이였게?”
“그런데 대용병은 그냥 항복한 것도 아니고, 자신이 사망으로 처리되는 것까지 감수했거든. 이게 무슨 의미겠냐? 단장님이 고른 우리 주군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뜻이지.”
어쨌거나 흑왕단원들은 주군의 가이파 군도행이 흡족한 결과로 끝났다는 생각이었다. 파견을 나와 함께 일하는 귀신대원들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반면.
티칸의 저택에 있는 한 남매는 그렇지 못했다.
“큭, 꺼져……!”
“후, 짜증 난다고!”
귀신대의 라타와 페이, 프로치 남매.
그들도 아멜라를 통해 진의 세력이 한층 더 불어났다는 사실은 더할 나위 없다고 여기나, 도저히 이 상황을 마냥 좋게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우리 귀염둥이들, 벌써 지쳤어? 나랑 더 놀아줘! 놀자아!”
아멜라는 통통한 덤불 위장복 바깥으로 손을 뻗어 흔들었고, 프로치 남매는 질색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남매는 주군에게 심려를 끼치는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어느 정도는 장단을 맞춰주고 있었다. 원래라면 당장 칼부림을 할 텐데 욕설만 내뱉거나 도망가는 정도로 말이다.
‘라타 경과 페이가 의외로 아멜라와 정말 잘 어울리는군…… 그렇게까지 진심으로 싫어한 건 아니었나?’
그들의 모습을 본 진은 그렇게 오해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투다다닥, 저택 곳곳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세 사람은 숨바꼭질을 하는 듯 보였다.
“잘들 논다, 쯧. 야! 정신 사나우니까 그만 뛰어. 아주 종일 뛰기만 할래? 어?”
무라칸이 소리치자마자 아멜라는 우뚝 걸음을 멈췄다.
“죄송합니당.”
넙죽, 무라칸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아멜라. 통통한 덤불 위장복에서 잔가지와 잎사귀가 떨어졌다. 프로치 남매는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훔치며 담배를 찾았다. 인생 쓴 맛이 난다는 얼굴로.
진이 물끄러미 아멜라를 쳐다보았다.
“진한테도 죄송합니당.”
“아, 저거 말투는 또 왜 저렇게 변했어. 군도에서 처음엔 아주 자신만만하더니.”
“그때는 제가 잠깐 정신이 나가성…….”
가이파 군도에서부터 지켜본 바.
아멜라는 사고뭉치에 다소 쾌활한 짐승 같은 느낌의 ‘애’였다. 그녀는 전혀 사회화가 되지 않았고, 각종 상식이나 시대 감각에도 상당히 떨어지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가이파 군도에서 보였던 것처럼 살인귀 같은 면모는 보이지 않았다.
-아주 가끔 운 좋게 살아서 돌아온 놈들은 넋이 나가 아멜라의 아만 나와도 공포에 질린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군요. 저흴 장난감이나 놀이 상대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고 해야 할까요. 말은 심심하다고 하면서 손은 칼을 휘두르고 있다던가.
또한 프로치 남매가 설명했던 것과도.
-즉, 아멜라는 반드시 주군의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오. 단지 의뢰자가 달라 일시적으로 싸우는 것과, 명백한 적이 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거든. 개인적으로 적이 될 것 같다면, 죽이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아멜라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게 최우선 과제로군요. 특별히 알고 계시는 바가 있습니까?
-탐험.
-탐험?
-아멜라는 평생 세상을 유랑하고 탐험하고 있소. 전투가 끝난 후, 같이 밥을 먹을 때 넌지시 물어보니 굉장한 열망으로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 같던데…… 정확히 뭔지는 알려주지 않더군.
발카스가 표현했던 모습과도 다소 다른 느낌이었다.
티칸에 온 아멜라는 프로치 남매에게 장난을 칠 때 그만큼 과격하지 않았고, 발카스의 말처럼 ‘무언가를 찾고 탐험하는 일’에 엄청난 열망이 있는 듯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아멜라는 노는 걸 좋아하고(특히 프로치 남매와), 인사성이 밝고, 무서운 사람이 조금(특히 무라칸과 진이) 있는 애와 하나도 다를 게 없는 것이다.
“아멜라 누나!”
“아멜라 언니!”
그래서인지 다른 애들과도 무척 잘 어울렸다. 코우와 핀테, 유리아는 물론이고, 다른 애들과 마찬가지로 엔야를 무척 따르는 모습까지 보였다.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위험하기도 하고.’
당장은 항복 후 순식간에 아군이 되어 티칸에 녹아든 듯 보이지만, 진은 사실 아멜라를 아직 신뢰할 수가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아멜라가 지닌 불안정한 요소들이 언제 어떻게 작용할지 알 수 없으니까. 티칸의 동료들과 그녀 사이에 벌써 유대감이 생겼을 리도 없고 말이다.
-[뭐든 말해! 난 이제 부바르와 킨젤로의 친구가 아니라 네 친구가 될게.]
킨젤로를 너무 쉽게 배반했다는 점도 있었다. 혼돈에 관한 단서를 제공한다면 티칸도 그렇게 배신할 수 있는 문제였다.
신뢰할 수도, 마냥 배척할 수도 없는 인물. 진은 아멜라를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다.
“아멜라 경.”
“넹.”
“경에게 들어야 할 이야기가 꽤 됩니다. 가이파 군도의 일, 부바르의 영혼을 이용해 혼돈의 힘을 증폭시킨 일, 지금껏 경이 찾아온 혼돈에 대한 정보들 등.”
“뭐든 물어봥, 다 대답할 수 있성.”
“하지만 지금은 경이 하는 말을 믿을 수가 없죠.”
“착한 아멜라는 거짓말 안 행.”
“그래서 경을 꿰뚫어 볼 수 있을 것 같은 한 사람을 모셔봤습니다.”
아멜라가 고개를 갸웃하며 진과 눈을 맞췄다. 덤불 위장복에 가려진 얼굴 위로 물음표가 떠 있는 것 같았다.
“날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이라궁? 아, 유리아인가?”
“아쉽게도 난 아냐, 아멜라.”
유리아는 아멜라를 언니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녀가 아멜라를 대하는 법은 동생을 대하는 태도에 가까웠다.
유리아가 지닌 진실의 힘으로도 아멜라의 말을 가리는 건 물론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티칸의 동료들은 혼돈 때문에 되도록 유리아의 힘은 아멜라에게 사용하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다. 혼돈의 힘은 아직 밝혀진 바가 극히 적은 만큼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몰랐다.
“짜잔!”
“꺄아아악!”
별안간 누군가 아멜라의 귀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아멜라는 깜짝 놀라 활처럼 몸을 튕겼고, 곁에 있던 다른 이들도 식겁하며 눈동자를 크게 떴다.
요나였다. 진이 아멜라를 살펴보기 위해 부른 사람은.
그녀는 언제나처럼 유령 같은 잠입술로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은 채 진을 찾아온 것이다.
“히.”
아멜라를 쳐다보며 씨익 웃는 요나. 그녀가 내뱉은 첫마디는 바로 이것이었다.
“죽을래?”
“저, 저요?”
“그래, 너.”
요나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아멜라는 뒷걸음질을 쳤다. 그렇게 몇 걸음을 걷기도 전에, 아멜라는 오들오들 떨면서 요나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으아아…… 사, 살려.”
“히, 쉿.”
“흑!”
이내 벽에 다다른 아멜라가 몸을 웅크렸고, 요나는 특유의 살의가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왜 저러는지는 몰라도, 말리면 오히려 더욱 큰일이 나겠다.
모두 그런 직감에 휩싸여 있었다. 무라칸조차 요나의 행동에 토를 달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누님은 예비 기수 시절 부바르의 조각을 처음 봤을 때도 매서운 기운을 뿜었었지.’
같은 부류.
당시 쿠라노 공국에 있던 부바르의 조각들을 보며, 요나는 그가 자신과 같은 부류라 말했었다. 그때는 그게 혼돈을 뜻하는 이야기인 줄 몰랐으나 이제는 알 수 있었다.
휘이이잉-!
크득, 크드득!
난데없이 요나의 근처에서부터 광풍이 불기 시작했다.
마법등이 마구잡이로 깨졌고, 벽에는 균열이 일었으며 천장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흔들리기까지 했다.
진이 눈짓하자 프로치 남매가 재빠르게 애들을 데리고 방을 떠났고, 동시에 요나가 뿜는 기운이 한층 강해졌다.
[나와.]바닥에서 한 뼘쯤 떠오른 요나의 목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어두워진 가운데 유독 커진 요나의 그림자가 웅크린 아멜라를 가렸다.
‘그림자가 요나 누님의 모습과 다르다……!’
거대한 그림자는 요나가 아닌 다른 형상을 그리고 있었다. 마치 어떤 괴물의 입과 송곳니를 그리는 것 같았다.
진과 동료들은 본능적으로 그것이 요나가 가진 혼돈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수으으으……!
아멜라가 혼절한 듯 풀썩 앞으로 엎어지자, 그녀로부터 검은 영혼 같은 것이 빠져나왔다. 그건 아멜라가 가진 혼돈이었다.
그 혼돈은 요나와 달리 형태를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다. 인간과 유사한 형태의 검은 형상에 뿔과 꼬리를 가진 모습이었다.
오롯이 혼자 있었다면 분명 아멜라의 혼돈도 어마어마한 위압감이 풍겼을 것이다. 하지만 요나와 함께 있으니 그녀의 혼돈이 드러내고 있는 송곳니 하나보다도 존재감이 옅게 느껴졌다.
[숨으면 모를 줄 알았어?]요나가 싸늘한 눈으로 아멜라의 혼돈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자, 자비를…….] [처음이자 마지막 경고를 해주마. 내 동생에게 해를 끼치면.]스각! 슥!
[카아악!]검은 덩어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멜라의 혼돈이 가진 팔과 다리가 베여서 떨어진 것이다. 요나는 무기를 휘두르지 않았고, 단지 시선을 움직인 것만으로 그의 사지를 잘라냈다.
그리고 요나의 혼돈은 그 사지를 꿀꺽 삼켜버렸다.
[두 번 다시는 자유를 만끽할 수 없게 될 거야.] [복종하겠습니다, 당신과 당신의 동생을 나의 주인처럼 따르겠습니다!]사지를 잃는 수모를 겪었는데도, 아멜라의 혼돈은 요나에게 그저 고개를 조아리고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