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76)
제 444화
133화. 선택의 시간들(4)
‘저게 혼돈의 실체라고?’
요나의 혼돈은 아직 허기가 진다는 듯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난데없이 등장한 혼돈의 실체들과 상황 때문에 당황스러운 와중, 진은 요나의 혼돈이 그림자와 같은 형태를 띠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얼핏 보기에 영기와 비슷하긴 하군.’
가이파 군도에서 아멜라가 사용하는 탁기를 보고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요나의 혼돈은 그보다도 영기와 흡사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게다가, 이 실체화는…… 꼭 화신의 한 형태처럼 보이지 않나.’
일부 신은 계약자를 통해 화신할 수 있다.
청새 군도에서는 율리안이 페이텔의 화신체가 되었고, 피콘 민체와 올망고 역시 진 앞에서 화신한 적이 있었다.
요나와 아멜라의 혼돈이 실체화된 것도 신의 화신과 비슷한 현상인 듯 보였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화신체가 된 계약자들과 아멜라는 자아를 잃고 기절했지만 요나는 혼돈을 통제하는 모습이라는 사실이었다.
쿨럭, 쿨럭!
아멜라의 혼돈이 검은 피처럼 보이는 것을 토했다.
[그 말을 지켜야 할 거야. 넌 앞으로 나보다 내 하나뿐인 막냇동생을 더 어려워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반드시……!]스르르르…….
고개 숙인 아멜라의 혼돈이 옅어지며 사라지고 있었다.
다시 아멜라의 깊은 내면에 숨기 위해 사라진 것이다.
재생 불가한 심한 부상 때문에 실체화를 유지할 수 없기도 했다.
허공에 떠올랐던 요나는 바닥으로 착지하며 혼돈의 기운을 갈무리하기 시작했는데, 혼돈은 그녀의 뜻을 따르기 싫은 분위기였다.
요나의 눈빛을 피해 머리를 웅크리고, 억제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낑낑거렸다.
하지만 점점 더 강한 기운으로 짓누르자 더는 버틸 수 없는 듯, 혼돈의 형체는 다시 요나의 그림자로 돌아가고 있었다.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
요나의 혼돈은 이런 말을 남겼다.
[도망쳐라……!] [죽이거나!]그 순간 진은 마지막으로 발악하는 혼돈과 눈이 마주쳤다는 기분이 들었다.
혼돈이 지칭하는 대상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직감도 함께였다.
-앞으로 절대, 그 힘은 내 앞에서 꺼내면 안 돼. 자세한 건 아무것도 묻지 말아줘.
-나는 영기를 보면 이성을 잃어. 내가 설명하지 않았으니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히, 난 막내가 그 힘을 적어도 기수가 될 때까진 나한테 숨길 줄 알았거든…….
불현듯 부바르의 조각 공방을 염탐한 후 요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당시 진은 요나를 신뢰한다는 의미에서 영기를 꺼냈으나, 그녀는 영기를 보자마자 소스라치며 미친 듯이 괴로워했었다.
요나의 혼돈은 영기를 두려워했다.
그렇기에 요나의 혼돈은 매일.
요나가 진을 만날 때마다 그를 죽이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아니. 성장하고 단련해 극한의 의지를 깨우친 사람조차도 견디기 어려운 달콤한 목소리로.
혹은 그만큼 두려운 목소리로.
그 모든 유혹과 겁박을 요나는 홀로 이겨내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말이다.
그에 대한 대가를 바라지도 않았다.
사랑하는 동생을 지키는 일을, 요나는 그저 당연한 일이라고만 이해하고 있었다.
“응, 너나 죽어. 히히.”
이내 혼돈이 완전히 사그라져 요나의 그림자가 본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폭풍이 지나가고 날씨가 갠 듯 어두워진 실내가 밝아졌고, 부서져서 바람과 함께 휘몰아치던 사물들도 모두 바닥으로 떨어졌다.
“켁, 켕! 머, 머징!”
잠시 정적이 흐르려는 찰나, 쓰러졌던 아멜라가 벌떡 일어서며 기침을 토했다.
통통한 덤불 위장복이 부르르 떨렸고, 후드 너머 눈동자는 좌우를 불안하게 살폈다.
“윽!”
그러다 요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다시 의식을 잃고 쓰러져 버렸다.
“어어, 저거 죽은 거 아니야? 야, 덤불. 덤불! 일어…… 하, 그냥 잠든 거잖아!”
다가가자 규칙적으로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들렸다.
무라칸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젓다가 아멜라를 침대로 던져 주었다.
“꽤 오랫동안 푹 잘걸, 히히. 안녕, 무라칸! 인사하는 건 처음이네?”
“어, 반갑다. 꼬마가 네 얘길 많이 했다.”
“그래? 정말로?”
“정말로.”
“정말 많이 했어?”
“그렇다니까. 근데 너 왜 반말이냐? 난 삼천 살이 넘은 흑룡이고 너희 가문의 수호신인데.”
“진이도 반말하니까?”
“그렇군.”
무라칸은 의외로 개념이 없다거나 싹퉁머리가 부족하다는 둥 상소리를 하지 않고 순순히 요나와 악수하는 모습이었다.
“누님.”
진이 다가오자 요나가 반짝 눈을 빛냈다.
반면 진은 그녀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요나의 얼굴이 너무나 창백하기 때문이었다.
지금껏 진이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힘겨워 보이는 얼굴이었다.
“보고 싶었다, 막내야!”
“괜찮으십니까? 얼굴이 새하얗습니다.”
“안 괜찮아. 나 이제 곧 죽을걸.”
“그런 말은 농담으로라도 하지 마십시오.”
진이 손수건을 꺼내 요나의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 주었다.
요나는 그런 동생이 대견하고 뿌듯한 마음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가 급격히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진의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
쾅-!
일반인이었다면 목이 뽑혀 날아갔을 것이다.
물론 진은 왕밤 같은 혹이 나는 정도로 끝났다.
‘아니…… 이게 요나 누님의 완력이라고? 루나 누님이 아니라?’
갑자기 맞아서 억울하거나 아프다는 생각보다는, 진의 기준에서도 ‘어마어마한’ 완력이 일단 당황스러웠다.
“으, 역시 그놈은 불렀다 하면 힘이 너무 세진다니까. 미안, 막내! 이렇게까지 세게 때리려고 한 건 아니었어. 히, 근데 좀 맞아도 괜찮지? 아니, 맞아야지. 고작 이런 이유로 날 불러!? 너 그러다 큰일 나!”
진은 요나가 말하는 큰일이 시론의 명령이라고 생각했다.
시론은 오래전부터 가문의 그 누구도 요나를 이용하지 말라는 엄명을 내린 상태니까.
“누님, 아버지 이야기라면.”
“아니, 그게 아니라! 이 누나는 말이야, 웬일로 네 연락이 와서 너무너무 기분이 좋았다, 이 말이지. 히히. 당연히 나는 나랑 놀자고 할 줄 알았고. 그런데 다른 목적이 있을 줄은 몰랐네? 히, 히히히, 히히히히.”
오싹, 소름이 돋았다.
또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요나의 말대로 충분히 서운할 수 있는 문제였다.
“미안합니다, 누님.”
그때, 소란을 감지한 카시미르와 발카스, 제트가 일행이 있는 방을 찾았다.
“공자! 무슨…….”
“주군, 괜찮…….”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려던 카시미르와 발카스는 요나를 확인하곤 말을 멈췄다.
‘요나 룬칸델 님인가!’
‘요나 룬칸델?’
제트는 그녀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다.
“또 그러면 네 소중한 친구들이 하나하나씩 죽는 수가 있어. 알지?”
그래서 요나가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을 때.
“허! 이 아가씨가 무슨 겁대가리 없는 소릴 지껄이는 거야? 나으리! 아주 묵사발을 내 버리십쇼!”
눈치 없이 이렇게 소리를 치고야 말았다.
요나는 그런 제트가 무척 흥미롭다는 듯 또 한 번 눈을 반짝였다.
“응, 제트. 난 요나야. 너도 오랜만에 보네.”
“하! 언제 봤다고 날 아는 척까지…… 가만, 요나. 요나…… 요오오나……? 호, 혹시. 요나…… 룬칸델…… 님이십니까?”
‘오랜만에 본다’는 말에 머리털이 쭈뼛 서는 제트였다.
제트는 인지하지 못했으나, 요나는 그를 종종 보아 왔던 것이다.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살려만 주시면 뭐든 하겠습니다. 뭔가 보여 드리겠습니다! 아이고, 나으리, 저 좀 도와주십시오……!”
실제로 발카스와 카시미르는 감각을 곤두세운 채 제트를 보호하고 있었다.
“주군의 충신일세. 살려주는 게 어떻겠나, 요나 룬칸델.”
발카스는 과거 요나를 겪어 본 적이 있으므로, 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세상에 죽일 수 없는 사람은 거의 존재치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생명을 깃털보다 가볍게 여긴다는 사실도.
“히.”
요나가 어깨를 으쓱였다.
“막내야.”
“예, 누님.”
“이제 보통 사람들이 날 왜 이렇게 불편해하거나 무서워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 아주 조금이지만.”
요나가 진을 지키려는 마음을 통해 혼돈의 일부를 통제할 수 있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었다.
그녀는 혼돈을 통제하게 됨으로써 더욱 강해졌고, 더욱 보편에 가까워졌다.
혼돈이 망쳐 놓고 있던 감정 일부가 회복된 것이다.
말하자면 요나는 이제 처음 진을 만난 시점만큼 생명을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
물론 ‘일부’만 통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니 감정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생명을 공기처럼 여기던 것에서, 이제 사물 정도 취급은 하는 수준이었다.
더 설명하지 않았으나, 진은 막냇누이가 하는 말이 무슨 의미들을 담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막내에게 소중한 사람은 내게도 소중한 사람이지. 농담 좀 한 거예요, 흑왕단장. 긴장 푸세요. 제트도 고개 들어, 히히.”
“감사합니다! 요나 님!”
요나가 돌아서서 다시 진과 눈을 맞췄다.
혈색이 돌아오고 있었다.
“아무튼, 다음부터는 놀자고 부르는 거야. 가주 선언할 때 어땠는지도 엄청 듣고 싶거든! 나는 맨날 기사로만 보고, 남들 입으로만 듣고!”
한 마디 한 마디 모두 가슴이 뜨끔해지는 진이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나랑 산책하고 놀면서 밀린 이야기들 좀 해. 히!”
사실 진은 요나가 오면 일단 도움만 받고, 한 가지 문제를 더 해결한 후 사밀을 찾아가려고 했었다.
요나의 말대로 단지 그녀와 회포를 풀기 위해서.
진이 그토록 급박하게 움직이려던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대용병 아멜라보다 큰 건.
아직 진은 그 건수의 단서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멜라의 처분을 정리하는 즉시 검의 정원으로 가 뷔고를 만날 계획이었다.
뷔고는 조슈아를 대신해 가이파 군도를 찾은 만큼, 분명 자신보다는 많은 정보를 쥐고 있을 테니, 가이파 군도의 빚을 빌미로 알아내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요나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상황이 급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단지 미안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진에게 요나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소중한 가족이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가족의 마음이 우선이어야 할 순간이 있다.
바로 지금 같은 상황이었다.
“누님에게 드릴 말씀도, 들을 이야기도 너무 많군요. 용서해 줘서 고맙습니다, 누님. 가시죠, 산책.”
“히히, 좋아, 좋아.”
쨍그랑!
요나가 창문을 깨며 바깥으로 뛰어내리자 진도 따라 뛰었다.
그리고 정원에 착지한 순간.
‘저 배는 뭐야?’
진은 저쪽 바다에서부터 한 척의 배가 티칸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배는 소속을 밝히는 표식이 아무것도 없어 유독 더 눈에 띄었다.
“어.”
반면 요나는 그 배가 누구의 것인지를 안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히? 저건 메리 언니의 배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