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95)
제 444화
138화. 백야의 탑지기(2)
* * *
“2마탑에도 룬칸델과 킨젤로가 침입을 했다. 그게 전부인가?”
다급하게 이동 관문을 넘어온 보고자들의 말에 백발의 노인은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이 시대 최강의 대마법사이자 세계제일가의 수장, 켈리악 지플이었다.
건조장이 습격당한 시점에, 그는 베라딘의 별장이 있던 서해의 무인도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탈라리스와 미샤, 옥타비아와 망령대가 펼친 ‘서해 전투’ 당시 그 무인도는 완전히 가루가 되어 사라졌었으나, 지금은 섬과 더불어 별장과 베라딘이 사용하던 모든 물건들까지 완벽하게 복원이 된 모습이었다.
“게다가 산드라 아가씨께서 2마탑의 모든 병력을 내보낸 상황입니다. 명령을 내려주신다면, 돌아가서 즉시 드락카의 마법사들을 2마탑으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차륵, 차르륵…….
켈리악은 한동안 말없이 책장만 넘겼다. 그러다 어딘가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한 듯 손가락에 마력을 일으켜 밑줄을 긋고는 미소를 짓는 모습.
“필연에 너무 놀라지 말라.”
켈리악이 입을 열기까지 보고자들은 속이 바싹바싹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한시가 급한 것이다.
그러나 켈리악은 외부 세력이 건조장과 더불어 2마탑도 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예견하고 있었다.
다만 따로 대비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헤도.’
백야의 탑엔 그 사내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번 일은 그를 한 번 새로 시험할 기회가 되기도 하겠지.’
헤도가 지플의 사람이 된 후부터, 켈리악은 줄곧 그를 시험하고 싶었다.
과연 헤도가 지플에 전심으로 충성을 바칠 인물인지, 그조차 쉽사리 가늠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지원 병력은 건조장에만 보내도록. 또한 이미 외부 세력들의 능력은 확인된 셈이니, 더 이상의 자원 손실은 의미가 없다. 가능한 최대한의 자원을 사수하라.”
“존명!”
일제히 고개를 숙인 보고자들이 뒷걸음질을 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켈리악은 오래전, 헤도를 처음 만난 순간을 회상하며 가만히 저 바다 너머에 시선을 두었다.
* * *
크윽……!
돌연 무라칸이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참기 어려운 두통이 밀려오는 듯 허리가 꺾이기도 했다.
진과 룬칸델들이 재빠르게 무라칸을 둘러싸며 보호막을 펼쳤다. 헤도가 등장한 순간부터 예견은 했으나, 실제로 검을 받은 다음의 긴장감은 전투가 시작되기 이전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헤도 같은 초월적인 무인을 앞에 두고 이런 빈틈을 보이는 건 말할 것도 없이 치명적인 일이다.
다행히 그는 무라칸의 허점을 찌르지 않았다.
못한 것이 아니었다. 내색하지는 않았으나, 방금 무라칸이 한 말에 헤도도 조금은 흥미를 느낀 것이다.
‘베일을 아는 듯 말하는 자는 처음 보는군. 시론 경과 가주도 이 검의 정체를 전혀 모르는 기색이었건만.’
베일.
헤도가 오래전 우연히 얻은 특별한 장검의 검신엔 작은 글씨로 그런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게 검의 이름인지, 검을 만든 대장장이의 이름인지, 그 검을 사용하던 사람의 이름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한창 무武의 파도에 맞서 검의 극지를 찾던 젊은 시절엔 장검의 정체가 궁금했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헤도는 정체를 알아도 그다지 의미가 없을 듯해 베일은 검의 이름이리라 결론을 내렸다.
헤도가 무라칸의 자세가 무너진 틈을 노리지 않은 건, 그가 베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록 기다려준 것일 뿐이었다.
또한 자신감이기도 했다.
이 정도 여유를 부리더라도 결과가 달라질 일은 없으리라는. 지플이 2마탑에 지원군을 보내지 않는다고 말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었다. 켈리악은 이곳에 자신이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 분명 그럴 것이었다.
“무라칸.”
낮은 목소리로 부르며, 진이 무라칸의 상태를 살폈다. 무척 괴롭고 혼란스러워 보였다.
‘옛 오테리엄에서 킨젤로의 단장을 처음 만났을 때, 놈이 테마르에 대해 이야기하던 날과 비슷하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으나, 헤도의 검이 무라칸의 혼잡한 기억을 자극하고 있는 건가……!’
무라칸의 기억이 불완전하고, 그로 인해 어떤 충돌이 일어나면 이런 문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진과 달리.
다른 룬칸델들은 영문을 모르고 있었다. 절체절명의 상황에 가문의 수호신이 갑자기 공황에 빠진 사실이 당혹스럽기만 한 것이다.
“크으으!”
재차 신음을 토해내는 무라칸.
1초, 2초, 3초…….
룬칸델로서는, 매초가 지날 때마다 위기감이 곱절로 증폭되는 걸 느끼고 있었다.
무라칸이 제대로 싸우지 못한다면, 룬칸델은 높은 확률로 사로잡히거나 몰살당하는 결말을 맞이할 터.
진은 결단을 내렸다.
‘그때처럼 이게 통해야 할 텐데. 킨젤로의 단장을 처음 만난 날, 놈이 헛소리를 지껄였을 때 그랬던 것처럼!’
쩌엉, 빠가악-!
별안간 고요한 장내에 고막이 울리는 맹렬한 타격음이 터졌다.
진이 문자 그대로 있는 힘껏, 최대한 빠른 속도로 주먹을 내질러서 무라칸의 뒤통수를 후려친 것이다.
진은 경험에 의거한 행동이었으나, 다른 이들은 사정을 모르기에 진이 미친 것인가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토록 강하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무라칸은 한동안 고목처럼 우뚝 서 있기만 했다. 그대로 굳어 석상이 된 것 같았다.
다만 고개는 진이 주먹으로 후려친 방향으로 다소 꺾인 상태였다.
“막내. 이 무슨.”
디푸스가 간신히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설마 무라칸 님이 죽어버린 건 아닐까, 일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그럴 리야 없겠지만, 선 채로 죽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미동이 없는 것이다.
목이 꺾인 방향이 조금 애매하기도 하고…… 전력이 담긴 진의 일격을 무방비 상태로 맞는 건 그만큼 위험한 일이기도 했다.
“커윽…… 씨. 더럽게 아프네.”
다행히도 룬칸델들로서는 영원처럼 긴 몇 초가 지난 후, 마침내 무라칸이 짜증스런 목소리를 내었다.
“정신이 들었냐.”
“아무래도 내가, 음…… 지병? 그래, 지병이 잠깐 도졌나 보군. 꼬마 놈, 아무리 그래도 이 몸을 이렇게 막 후려쳐 버리면 어떻게 하냐?”
뚜둑! 뚝! 무라칸은 고개를 돌려 목 관절을 풀며 뒷말을 이었다.
“보는 눈이 몇 갠데, 어! 모양이 빠지잖냐. 모양이! 어? 어…….”
호기롭게 말하던 무라칸이 휘청, 중심을 잃었다.
정신은 돌아왔으나, 진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옛 오테리엄에서 똑같은 충격요법을 사용했을 땐 진이 기진맥진한 상태였다는 것이고, 지금은 팔팔하다는 것이다.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강해지기도 했고.
‘아이, 미친. 힘 조절 좀 해서 때리지, 꼬마 놈! 골이 울려 세상이 핑핑 도는군. 그런데 저놈의 검은 대체 뭐지? 분명 나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는 한 것 같은데. 기억하려고 하면 머리가 터질 것 같다.’
궁금해 미칠 지경이지만.
일단 이제라도 싸움에 집중해야만 했다. 계약자를 살리기 위해서는 말이다.
‘저 육체미가 거짓말을 지껄이거나 얕은수를 쓸 만큼 자세가 안 나오는 놈은 아닌 것 같은데. 분명 지원군은 오지 않는다고 했으렷다.’
그렇다면.
전력을 쏟아야 할 때였다.
“꼬마.”
“어.”
“본모습으로 변신한다. 만약에라도 저 육체미가 하찮은 거짓말쟁이라 지원군이 온다면, 날 두고 탈출해. 알았냐?”
진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로 무라칸을 두고 도망칠 생각은 없지만, 일단은 알겠다고 하는 게 나은 상황이었다. 어차피 지원군이 오든, 오지 않든 무라칸이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답이 없고 말이다.
“……조금 이해가 안 가는 대목들이 있으나, 작전 시간이 필요했었다고 납득하도록 하죠. 혹시 더 기다려드려야 합니까?”
무라칸이 자신의 검에 대해 이야기하길 기대하던 헤도는, 더 인내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닿았다.
“헹, 네놈은 분명 이 시대에 내가 직접 본 놈 중 단연코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나는, 무라칸이다. 천 년의 세월과 네 주인 가문의 오랜 간계에 위엄이 옅어졌지만, 무라칸은 무라칸이란 말이지.”
후우우웅……!
말을 끝마친 무라칸의 그림자가 거대해지고 있었다.
곧 검은 연기로 흩어진 그는 흑룡의 본모습으로 변해 한 쌍의 날개를 어둡게 펄럭였다.
카아아아!
이어진 날카롭고 음울한 포효에 헤도는 점잖은 손짓으로 안경을 고쳐 썼다.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난데없이 펼쳐진 검은 장막이 천장을 검게 물들였다. 그 속에서 사납게 회전하는 영기의 소용돌이들은 꼭 거인들의 눈동자처럼 보였는데, 단 하나도 빠짐없이 헤도를 향하고 있었다.
영기에 휘감긴 브라다만테에도 시퍼런 불꽃이 맺혔고, 조슈아와 디푸스, 제인의 검에서도 눈부신 오러가 치솟았다.
망령대원들도 마력을 끌어올렸고, 헤도는 한 차례 깊게 호흡을 모았다.
증폭되기 시작한 초인들의 기운에 허공이 찢어질 듯 일렁였고, 탑 전체가 불안하고 불쾌하게 진동을 해댔다.
격돌 직전의 팽창.
그 위태로운 현상을 먼저 깨뜨린 것은 헤도였다.
“흠!”
절제된 기합을 내지른 헤도의 장검 베일이 영기와 오러, 마력이 뒤섞인 혼란한 풍경 속으로 쇄도하고 있었다.
단순한 찌르기였다.
또한 완벽한 찌르기이기도 했다. 그의 장검이 그린 궤적이 어지럽게 얽힌 기운들의 중심을 사선으로 관통했다.
목표는 무라칸이었다.
용 특유의 거대한 몸으로는 결코 피할 수 없는 속도와 거리였다. 비슷한, 혹은 보다 강한 힘으로 상쇄하거나 치명상만 면하며 반격을 하는 것이 용이 보통 선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처였다.
그러나 그 순간, 무라칸은 다시 한 번 검은 연기가 되어 몸을 흩어 헤도의 검기를 피할 수 있었다.
동시에 수십 개의 영기 소용돌이로 반격까지 해내는 모습.
‘큭!’
아예 피해를 입지 않은 건 아니었다. 헤도가 이룬 경지, 검도는 연기로 흩어진 무라칸의 입자들을 휩쓸어 타격을 입히고 있었다.
헤도 역시 이번에는 공격을 그냥 육체로 받아내는 대신 보법을 밟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무라칸의 송곳만 떨어지는 게 아니라, 룬칸델들의 독기 어린 일격도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무라칸이 헤도의 찌르기를 피한 결과.
예정된 방어와 저항에 가로막히지 않은 헤도의 절륜한 검기는, 룬칸델의 뒤에 자리를 잡고 있던 망령대들을 덮치고 있었다.
따라서 망령대들로서는, 그야말로 속이 터지고 억울해서 미쳐버릴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