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498)
제 444화
138화. 백야의 탑지기(5)
* * *
메리가 사춘기호와 함대를 이끌고 티칸을 찾아온 날, 요나는 딱히 갈 곳이 없어 곧장 무명의 도시 사밀로 돌아갔었다.
막내와 제대로 산책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쉽고 속상해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던 그녀는 임무 목록을 살펴보았다.
일이라도 하면서 잡념을 지우기 위해서였다. 어렵고 복잡한 일일수록 효과가 좋을 테니 최고 등급으로 분류되었거나 거절하기로 결정한 의뢰만을 살펴보았다.
그중 하나가 킨젤로의 의뢰였다.
지플의 2마탑에서 한 가지 물건을 탈취해달라는 그 의뢰서를 오울은 그냥 찢어버리려고 했었다.
“히, 오울 님. 그건 왜 안 받아요?”
“새우 등 터지기에 딱 좋은 일이기 때문이지.”
“왜요?”
최근 거대 세력들 사이의 심상치 않은 기류와 국제 정세, 복잡하게 얽힌 이익 관계와 이런 흐름 속에서 사밀이 취해야 마땅한 입장 등.
“……그래서 받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알겠느냐?”
“그런 짜증나는 이야기는 들어도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냥 하기 싫다는 거잖아요?”
“그렇게 들렸단 말이지. 그래도 듣기는 했으니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다가 갑자기 사라지던 시절보다는 훨씬 낫구나.”
“히히, 어쨌거나 아주 중요한 일 같은데. 우리 가문은 날 왜 안 찾을까요?”
아마 너는 이보다도 더 큰 일에 사용하려고 하는 것일 테지, 시론 경의 명령도 있고.
오울은 그 말을 감추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글쎄, 이유가 무엇이든 안 찾는 게 좋은 것이다. 특히 이런 일에는.”
“이거 킨젤로 단장이 직접 의뢰를 했네요?”
킨젤로의 단장.
혼돈을 통제할 수 있게 된 이후부터 요나는 그에게 다소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가 ‘혼돈’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게 어떻다는 것이냐?”
“한 번 만나보고 싶었는데요.”
“어째서?”
“궁금한 거 몇 개 좀 물어보고 싶어서요.”
어깨를 으쓱이는 오울.
새우 등 운운하기는 했으나 사실, 오울 역시 아예 욕심이 동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2마탑의 물건이라.’
오울은 그 물건이 함선 설계도이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최근 지플이 소타 사막의 비밀 건조장에 대한 정보를 일부러 흘린 건 그도 파악하고 있는 일이었으니까.
설계도는 얻기만 하면 무명의 입장에서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패였다. 거대 세력들 사이에서 주도적으로 협상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의뢰와 관계없이 내가 아니라 요나 혼자 독단으로 나선 것이 되면, 거대 세력들은 우리에게 책임을 묻기가 애매해진다.’
특히 룬칸델은 절대로 책임을 묻지 않을 터였다.
아니, 그걸 넘어 요나가 설계도를 확보해온다면 오히려 무명을 비호하고 감사를 전해야 하는 일이었다.
또한 애초에 요나는 2마탑에 들어선 흔적조차 남기지 않을 터였다. 그녀의 잠입, 암살 능력은 이미 오래전 오울을 뛰어넘은 것이다.
‘어차피 내가 말린다고 들을 녀석도 아니고…… 그냥 한 번 보내보는 것도 썩 나쁘지 않을 것 같기는 한데.’
오울이 더 고민할 필요도 없이 요나는 이미 결정을 끝냈다.
“이 의뢰 제가 할게요.”
“안 된다.”
“말리셔도 갈 거예요, 히히.”
“꼭, 가야겠다면. 몇 가지 조건을 붙여야 한다.”
결국 오울과 합의 아닌 합의를 본 후 요나는 2마탑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 조슈아와 디푸스, 막내도 이번 일에 참전한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요나의 최우선 목표는 의뢰 완수가 아니라 막냇동생의 생사를 확인하는 것이 되었다.
그건 단지 지플의 세력권 한복판에 있는 막내가 물가에 홀로 있는 애처럼 보여서만은 아니었다.
‘와, 드락카도 아니고 2마탑에 저런 게 있어도 되는 거야? 정말?’
2마탑에서 열쇠를 훔치고 다시 돌려놓던 중, 형제들이 결코 감당할 수 없는 한 괴물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 * *
이것이 요나가 2마탑에 온 배경이었다.
그녀는 진과 무라칸이 처음 지하 건조장에 들어선 순간부터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적절한 순간을 모색하고 있었다. 수정구의 감시망과 헤도의 감각, 킨젤로의 눈을 모두 피하며 막내에게 접근할 수 있는 순간을.
결국 그건 성공하지 못했다. 요나라 할지라도 모든 게 가능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지금 등장한 것은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차선책이었다. 헤도라는 괴물을 암살할 수 있을 만큼 최적의 순간은 결코 아니지만, 지금이라도 나서지 않으면 정말로 막내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스겅!
씨익-!
요나의 검 ‘죽음’과 장검 베일이 예리한 궤적을 남기며 교차되었다.
암살 대상인 헤도 한 사람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요나가 나타난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헤도가 가진 무력의 초월성이 한 번 더 도드라지는 순간이었다.
‘요나 누님?’
‘요나!?’
룬칸델들은 모두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갑자기 요나가 등장한 것도 충격적이나,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요나가 단 일검으로 헤도의 가슴팍에 길고 깊은 절상을 남겼다는 사실이었다.
츠아아악-!
헤도의 육중한 몸에서 시뻘건 선혈이 솟구쳤다. 지금껏 일행이 목숨 걸고 수많은 결전기와 비기를 퍼부은 것보다 훨씬 악독한 상처가 남은 것이다.
반면 헤도의 반격은 요나의 머리카락 밑단 끝을 조금 잘라내는 정도에 그쳤고, 그녀는 어느새 한 번 더 헤도의 측면으로 파고들어 옆구리에 칼날을 밀어 넣었다.
“웁……!”
죽음은 헤도의 옆구리를 한 뼘이나 파고들었다가 빠져나왔다.
명백한 중상이다. 보통이라면 이 기회에 끝장을 내야 하지만, 요나는 더 이상 공격을 이어가지 않고 거리를 벌렸다.
과거 진이 무명에 준 ‘은룡의 발톱’을 이용해서 얻은 극히 한정적인 우위가 끝났기 때문이었다.
무명의 살수들은 옛날부터 은룡의 발톱을 신물로 여겼다. 특유의 방식으로 가공하면, 그 어떤 대상이라 할지라도 눈 한 번 깜짝할 정도의 시간을 멈추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요나가 헤도의 육체를 이토록 쉽게 베고 찌를 수 있던 건 바로 무명의 신물 덕이었다. 그녀의 암살검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뛰어나기도 하지만 말이다.
“막내, 으윽!”
“누님!”
헤도와 거리를 벌려 진 쪽으로 향하던 요나의 두 다리가 돌연 휘청거렸다. 입술 사이로는 한 줄기 피가 흘렀다.
죽음으로 베고 찌를 때, 장검 베일이 직접 닿지는 않았으나 헤도가 순간적으로 폭발시킨 기운에 요나도 내상을 입은 것이다. 얼마 전 혼돈을 불러낸 후유증이 아직 다 가시지 않은 탓이었다.
“……너였군!”
설계도를 훔친 놈이!
헤도가 안광을 빛내며 포탄처럼 요나에게 쇄도하고 있었다.
무라칸이 숨결과 송곳으로 진로를 막았고, 그다음엔 형제들과 제인이 헤도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토록 부상을 입고도 헤도의 괴력은 여전했다. 상처 입은 맹수가 더욱 사나워지듯이. 영기 송곳과 숨결을 직격으로 맞으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드는 모습에 일행은 기가 질릴 지경이었다.
그러나 헤도는 사람이다.
10성, 그중에서도 분명 최강에 가까운 반열일 테지만 창성은 아니었다. 그는 누적된 충격을 의지로 견디고 있었다.
룬칸델들은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요나 누님과 함께 탈출해야 한다!’
헤도를 따돌릴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일 터.
일행은 모두 진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설계도는 요나가 챙겼을 테니, 이대로 무사히 도주하기만 하면 이번 사태는 룬칸델의 승리였다.
태산이 추락하는 것 같은 위압감으로, 장검 베일이 모여든 형제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크아아아-!
검을 부딪친 무인들이 괴성을 질러댔다.
헤도의 일격을 막아낸 룬칸델들의 발목이 바닥에 처박혔고, 결국 그 격전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던 견고한 공간이 통째로 무너지고 말았다.
천장도 함께 완파되었다. 장검을 받아치기 위해 룬칸델들이 휘두른 검과 치솟은 무라칸의 송곳이 일으킨 충격파 때문이었다.
그렇게 탑 전체가 부서지고 있었다. 룬칸델들과 헤도는 추락하면서도 파편을 밟아 뛰며 공중에서 공방을 펼쳤다.
매초마다 수십 줄기의 검기가 치열하게 얽히며 허공을 잠식했다.
‘상처가 깊다. 꽤나 대단한 극독도 스며들었고, 움직일 때마다 벌어지기까지 하는군.’
끄득, 이를 악무는 헤도.
요나 룬칸델이라는 변수까지는 헤도도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녀의 존재를 알았다면, 진의 말대로 ‘안일한’ 싸움은 결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진짜로 본대에 지원을 요청해야 하는 상황이로군.’
룬칸델들이 계속 싸워주기만 한다면, 헤도는 지금도 그들을 모두 꺾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룬칸델들이 그런 바보일 리는 없었다. 도주는 당연한 수순인 것이다.
따라서 더 이상은 헤도도 묵인할 수 없었다.
쿵!
추락하던 이들 중 헤도가 가장 먼저 지상에 도달했다.
동시에 그의 검지에 끼워져 있던 굵은 금반지가 기묘한 룬 문자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의 반지는 아티팩트로, 각 탑주들의 지팡이에 새겨진 것과 유사한 종류의 신호 마법이었다.
신호는 즉시 드락카, 지플의 본산으로 전해졌다. 반지가 빛을 발하고 채 3초가 지나기도 전에 저 멀리에서부터 대대적인 경보 마법이 발동되고 있었다.
‘미안합니다, 아가씨. 12기수가 부디 소문보다 더 대단한 천운의 소유자이길 바라는 수밖에 없겠군요. 드락카 본대의 추적으로부터도 살아남을 수 있을 만큼.’
헤도는 여전히 진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이렇게까지 된 판국에 룬칸델들을 그냥 보내면, 자신이 의심을 사는 건 물론이고 자칫 산드라까지 불이익을 당할 수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제 헤도가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진을 살려주겠다고 말한 자신의 모습을 본 ‘목격자’들을 제거하는 것.
어차피 옥타비아에게 경고를 하는 차원에서라도 죽도록 내버려두거나, 직접 처리하려던 예정이었다.
망령대들은 기진맥진한 채 아직 추락하고 있거나, 부서진 탑의 틈새에 끼인 채 숨을 헐떡이는 상태였다.
그들의 위치를 확인하고 검기를 쏘기 위해 고개를 든 헤도는, 일순 탑의 천장이 뻥 뚫려있다는 사실에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옥상은 무너지지 않았었는데? 왜 뻥 뚫려 있는 것이지?’
싸우는 내내, 헤도는 탑 내부가 송두리째 파괴되더라도 옥상만큼은 피해가 가지 않도록 기운을 조절했었다.
즉, 누군가 뚫은 것이다.
그리고 헤도는 그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아, 지끈지끈한 두통에 이마를 짚을 수밖에 없었다.
헤도오오오오옷-!
믿을 수 없이 우렁차면서도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이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산드라 지플이었다.
그녀는 내내 헤도가 진을 데려오길 기다리다가, 지원 신호가 발동된 것을 인지하고 바닥을 뚫어 전장으로 몸을 내던지는 중이었다.
“이 멍청하고 쓸모없는 근육 돼지 같으니! 미쳤어!? 미쳤냐고! 본대를 불러!? 우리 진 씨를 죽일 셈이냐아아아!”
표독하게 소리치던 산드라는, 잠시 후 막 지상에 착지한 진과 눈을 마주치고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자기! 기다리고 있었어요, 날 두고 어딜 가는 거예요? 같이 가요, 같이!”
그토록 급박한 와중에도, 산드라의 대사를 듣자 진은 뒷목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본능적으로.
그녀가 어쩌면 이곳을 탈출하는 일에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그런 직감을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