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01)
제 555화
139화. 협박(1)
산맥을 뒤집어놓은 듯 보이는 거대한 먹구름이 소타 사막의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킨젤로의 함선, 그르닐이 형성한 먹구름이었다.
먹구름은 쉴 새 없이 시퍼렇게 빛나는 우레를 토해냈다. 하늘에 해일이 펼쳐진 듯 보였다.
그 속에서 불 꺼진 지플의 양산함들은 그저 부서지고 깨져 지상으로 추락할 뿐이었다.
벌써 스무 척에 달하는 양산함이 격침되었다.
백오십에 달하는 용, 천오백이 넘는 마법사, 기함 코젝.
드락카의 지원군은 대부분 초조한 마음으로 그르닐로 향했다.
룬칸델을 제외하면 그 어떤 세력도 지플에 위해를 가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건만.
성국 사건 이전까지 3류 테러 단체에 불과했던 킨젤로가 루테로 마법 연방의 영공을 더럽히고 있는 것이다.
물론 검황성 테러 이후 킨젤로가 3대 세력에 부족함이 없다는 사실이 일반에도 알려지긴 했으나.
그르닐은 검황성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보다 더 강해진 것 같았다.
선체 곳곳에 솟은 돌기가 내뿜는 마력은 주위 공간을 일그러뜨렸고, 떨어지는 양산함의 파편에 온 소타 사막이 진동하고 있었다.
뇌기 섞인 모래바람이 곳곳에 사나운 회오리를 일으켰고, 양산함들은 서서히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수밖에 없었다…….’
옥타비아 지플.
그녀는 코젝 함장실에 서서 무표정한 눈으로 사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옥타비아를 비롯한, 전부터 킨젤로의 힘을 알고 있던 일부 최고위 마법사들은 새삼 놀랄 것 없다는 기색이었다.
물론 속이 쓰리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킨젤로를 과소평가하던 일원들보다도 더 분노하고 있었다.
킨젤로가 소타 사막을 침공한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 이면에 숨은 근거가 무엇인지를 읽어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분명 놈들의 단장은 검황성 테러 이후 아직 회복하지 못하고 있을 터. 그런데도 전면전을 불사할 것처럼 이렇게 날뛰는 건.’
룬칸델.
그들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킨젤로는 자신들이 아무리 날뛰어도 룬칸델이 버티고 있는 한, 지플이 함부로 전면전을 펼치지 못한다는 걸 이용하고 있었다.
지금 당장은.
두 세력을 한꺼번에 감당할 수가 없다. 아니, 가능하기는 할 테지만 전쟁 이후 지플도 패망에 가까운 괴멸적인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세계의 패권은 지난 천 년간 전쟁의 긴장 속에서 살아온 이들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거저 거머쥘 것이다.
수백 척의 비행 함대를 갖고도, 근원석을 재현하고도, 불사의 생체 골렘을 완성 직전까지 개발하고도.
긴 악몽처럼 이어져 온 줄다리기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 민낯을 적들이 이용하고 있다는 현실이 소름 끼치도록 진한 증오를 일으키고 있었다.
‘우리도 더 강해져야 한다. 잃어버린 가문의 마법과 권능을 하루라도 더 빨리 되찾아야 한다.’
그래서 시론의 시간이 끝나기 전에, 킨젤로 단장의 몸이 완성되기 전에, 확신하고 싶었다. 자신들이야말로 지상의 주인이 되리라는 사실을.
용들과 마법사, 함대가 그르닐을 포위하고 있었다.
어쩌면 포위라는 말은 적합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애초에 그르닐은 그 모두가 몰려오는 걸 보고도 도주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옥타비아가 함장실을 빠져나와 코젝의 선두 위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곤 빛나는 지팡이를 하늘로 치켜들었다.
“비슈켈 이블리아노!”
마력으로 증폭된 옥타비아의 웅혼한 목소리가 창공을 울렸다. 그르닐의 함장실엔 비슈켈이 탑승해 있었다.
그는 옥타비아의 등장에도 특유의 차가운 표정을 잃지 않았다.
“전부터 킨젤로의 단장이 그대를 특별히 아끼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었지. 오늘 그대의 능력을 엿볼 수 있는 것인가?”
비슈켈은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에겐 아직 딱히 특별한 능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부단장으로서 매사에 치밀한 편이고 늘 냉철한 이성을 유지한다는 덕목이 있을 뿐이었다.
대체로 다혈질이거나 다소 성격이 모난 킨젤로의 다른 간부들과 비교해보면 그 또한 능력이라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어째서인지 인외의 존재에게 쉽게 호감을 사는 편이라는 것도.
어쨌거나 대답 없이 가만히 서 있는 비슈켈의 모습은 옥타비아의 묘한 기대감을 증폭시키고 말았다.
“그대의 힘을 엿보는 게, 부디 이 치욕에 걸맞은 가치가 있기를 바라지.”
화아아앗-!
옥타비아의 지팡이에서 마력이 뿜어지자, 일대를 두들기고 있던 그르닐의 우레가 잠시 잦아들었다.
잠깐이지만 그르닐의 동력보다 큰 마력을 운용한 것이다.
그 마력은 곧 거대한 그물로 변해 그르닐을 휘감았고, 추락하는 양산함의 파편들을 받아내기도 했다.
피비비, 치이이잉!
그르닐의 선내에 충격을 알리는 경고음이 울렸다.
론의 무형검조차 견뎌낸 보호막은 아직 작은 균열도 일지 않았으나, 그물의 힘에 선체가 기우뚱거리고 있었다.
‘옥타비아 지플, 과연 세계제일가의 2인자로군.’
비슈켈의 이마에 한 줄기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과연 이번에 새로 영입한 인물이 저들을 상대로 얼마나 시간을 벌어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하아암-!
비슈켈의 뒤에 있던 한 여인은 입이 찢어질 기세로 하품을 했다.
그녀는 전투에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드레스 차림이었고, 등에는 손바닥 정도 크기의 앙증맞은 한 쌍의 날개가 솟아 있었다.
“시간이 된 것 같군! 이봐, 부단장. 그분께서 룬칸델 놈들을 발견하기 전까지만 저것들이랑 싸우면 되는 거지?”
“……아이나스. 조금 더 진중한 자세로 사태에 임하는 게 좋겠군.”
아이나스 칼리고, 그게 여인의 이름이었다.
“흥! 위대한 칼리고가의 2공녀가 하등한 인간들을 상대로 진지해지라는 말인가? 아, 용들도 있긴 하군.”
아이나스의 이런 오만하고 가벼운 태도는 사막에 오기 전부터 비슈켈을 계속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아아,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알았다고, 알았어. 제대로 하면 되잖아?”
아이나스가 옆에 놓인 대검을 가볍게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일어서서 붕붕 휘두르는 모양새가 상당히 여유롭게 보였다.
“가능하면 시간만 버는 게 아니라, 다 쓸어버려도 되나? 흐흐.”
“농담을 할 때가 아니다.”
“농담인지 아닌지 지켜봐. 부단장은 따뜻한 차라도 한 잔 마시면서 느긋하게 기다려, 식기 전에 저것들을 모두 도륙하고 올 테니…….”
그르닐의 선두로 올라선 아이나스를 보며 옥타비아는 미간을 좁혔다.
“마족이라…… 설마, 문을 연 것인가? 이것이 그대의 능력이었군, 비슈켈 이블리아노!”
옥타비아가 안광을 번뜩이며 재차 마력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아이나스는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치고는 냅다 허공으로 옥타비아를 향해 몸을 던졌다.
“시끄러운 인간 할망구로구…… 깩!”
그러나 옥타비아에게 닿기는커녕, 아이나스는 다른 마법사들이 펼친 연환 마법에 요격을 당해 지상으로 추락하는 모습.
바닥에 처박히기도 전에 날아든 용들의 숨결과 마법 포격에 뒤덮인 아이나스는, 결국 이렇게 소리치고 있었다.
“부, 부단장! 도와줘! 도움! 빨리!”
비슈켈은 이마를 짚으며 깊은 한숨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더욱 안타까운 건, 비슈켈의 절망은 거기서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수아아아악……!
돌연 지상에서부터 검기의 해일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그 검기는 옥타비아의 그물과 달리, 그르닐의 보호막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고 있었다.
헤도의 검이었다.
우지끈!
그르닐의 선체 하부에 균열이 일었고, 비슈켈은 어째서 저 마족 여자 부바르 같은 인물이 자신과 함께하고 있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검황의 검을 견뎌냈다더니, 과연 단단한 함선이로군.’
이어 도약한 헤도가 재차 검기를 뿌리며 코젝의 선두로 올라섰다.
옥타비아는 중상을 입은 그의 모습에 흠칫하며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킨젤로에서 아주 단단히 마음을 먹은 모양입니다. 지원 요청이 왔을 때부터 놀랐습니다만, 경이 그 정도 상처를 입다니? 게다가 오는 길에 보니 2마탑은 완전히 파괴되었더군요.”
비슈켈과 마찬가지로, 헤도 역시 옥타비아에게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되려 윽박을 지르기로 했다.
“앞으로는 부하 간수를 잘 하시면 좋겠군요, 망령대장.”
“부하 간수?”
“산드라 아가씨의 명령을 생각 없이 그대로 실행하더군. 덕분에 이 사달이 났소.”
아주 틀리지는 않았으나 진실이라고 할 수는 없는 말이었다.
다만 옥타비아로서는 지금 헤도와 다툴 때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내 부하들이 당신에게 미움을 산 모양이로군요. 자세한 건 나중에 듣도록 하죠. 우선 경에게 중상을 입힌 자들부터 찾아야겠습니다. 어떤 작자들이고, 어느 쪽으로 도주했습니까?”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공격을 피해 허겁지겁 버동거리고 있는 아이나스의 모습이 헤도의 시선에 들어왔다.
“으아아아아, 부단장, 뭐하냐고!”
마족.
적당한 핑계가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마족인 것 같더군. 쿠타 숲 방면으로 도주했으나, 그 이후 경로는 확실치 않소.”
“혹시 룬칸델들도 같이 있었습니까?”
“기수들과 흑기사, 흑룡 무라칸이 함께 있었지.”
그것까지 속일 수는 없었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분명 진상이 밝혀지기는 할 테니, 룬칸델을 만난 적 없다고 하면 그건 단순 기만을 넘어선 배신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산드라가 위험해진다.
‘무라칸’이라는 말에 옥타비아의 눈동자가 한 번 더 커졌다.
“흑룡이 왔다는 건, 12기수도 소타 사막에 있다는 뜻이로군요. 경이 고전한 이유도 더 납득이 됩니다.”
“어서 가지 않으면 놓칠 것이오.”
옥타비아가 창공에 지팡이로 긴 호선을 그었다.
그러자 마력으로 이루어진 빛이 움직이며 룬 문자로 하늘에 명령문을 형성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쿠타 숲 방면을 중심으로, 전 망령대는 도망자들을 수색하라.
진 룬칸델을 생포하라!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열 마리의 용이 대열을 이탈하며 쿠타 숲 쪽으로 전속 비행을 시작했다.
이미 눈앞에서 진을 놓친 굴욕을 몇 번 겪은 바가 있기에, 망령대들은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그를 사로잡겠다는 일념을 불태웠다.
안타깝게도 헤도가 말한 쿠타 숲 방면은, 진 일행과 산드라가 도망친 방향과 정반대이지만 말이다.
헤도는 흠흠 헛기침을 하며 다시 그르닐로 검기를 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