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5)
제 55화
20화. 세상 밖으로(2)
검의 정원을 떠난 예비 기수들이 명성을 쌓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휴페스터 연합국을 떠나는 것이다.
진 일행이 룬칸델이라는 사실을 알아볼 만한 것은 모두 지웠다. 옷 위에 두른 로브엔 룬칸델의 흑검 문양이 없고, 소지품이 든 가방 속에도 가문 패가 없다.
아직 세상에 진의 외모가 알려지지 않았으니 변장할 필요까진 없지만, 외모도 조금이나마 손을 보았다.
어깨까지 내려오던 흑발을 짧게 다듬은 것이다. 오히려 세인들 사이에서 더 유명한 건 유모가 되기 전의 ‘무인 길리 맥로란’이지만, 다행히 그녀의 전성기는 짧다.
두 사람의 신분증과 통행증에 적힌 이름 역시 가명이다.
진 그레이, 길리 피텐. 물론 가짜라 할지라도 비먼트의 수도조차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을 만큼 정교한 물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페스터 연합국에선 누구나 이들이 룬칸델의 예비 기수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휴페스터 연합국은 룬칸델의 본거지나 다름이 없는 땅이니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그들은 바다 건너 룬칸델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땅으로 떠나야했다.
“루나 아가씨께서 섭섭하시겠어요. 도련님의 파벌 생도들도 그렇고요. 정말 인사 없이 떠나도 괜찮으시겠어요?”
“그냥. 루나 누님이야 본인도 자유분방한 분이고, 생도들은 좀 낯간지러워서.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잖아.”
그러나 검의 정원 대문을 막 지나치려는 순간, 진은 아홉 명의 생도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뭐야, 훈련 시간 아니야? 제드 숙부께서 한탄을 하시겠군.”
“무사히 잘 다녀오십시오!”
“무사히 잘 다녀오십시오!”
생도들이 일제히 검례를 올렸다. 진은 잠시 그들을 바라보다 미소를 지었다.
“돌아왔을 때, 다들 내 기대보다 강해져 있길 바란다. 한 사람도 죽거나 낙오되는 일 없도록 해라. 훈련 빼먹고 내 배웅을 나온 건에 대한 징계도 잘 버티고.”
한 사람씩 가볍게 주먹을 부딪치고, 진 일행은 선착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기분 묘하네, 그때랑은 완전 딴판이군.’
전생엔 스물다섯에 성을 박탈당하고 이곳에서 쫓겨났다. 그러나 지금은 열다섯에 예비 기수가 되어 떠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설레는 기분이었다.
다시 태어나고 무려 15년.
5년이라는 자유를 얻기까지 걸린 시간. 참 길었다. 한 살 때부터 정신이 멀쩡했으니 더더욱 그렇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본래 시론은 예비 기수에게 5년이나 되는 긴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짧으면 6개월, 길어야 2년 내로 명성을 쌓고 다시 가문으로 돌아오는 게 정석이었다.
‘아버지께서 내게 굳이 5년이나 주신 이유는 단 하나다. 영기의 극의를 찾고 돌아오라는 것.’
물론 진은 아버지 말씀만 잘 듣는 착한 아들이 아니다. 영기와 더불어 마법까지 수련을 끝내는 게 그의 목표였다.
한편, 시론은 영묘에 혼자 남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막내. 그 아이가 과연 지플로부터 룬칸델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힘을 얻게 될지… 기대가 되는군.’
자신은 오로지 검 한 자루로 반신의 경지에 오르고도, 선조들이 지플과 맺은 맹약을 파기하지 못했다.
오직 솔더렛의 계약자인 막내만이 룬칸델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아직은 바람 앞의 촛불이나 다름없는 희망이지만 말이다.
* * *
하루가 지나, 세 사람은 한적한 숲길을 걷고 있었다.
룬칸델의 예비 기수들은 대부분 명성을 드높이기 위한 첫 목적지로 마미트 무법 지대를 고른다. 맘 편히 때려죽일 수 있는 악당 거두들이 바퀴벌레처럼 우글대는 곳이기 때문이다.
진도 마미트행을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거두를 때려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쩌면 지금쯤 마미트에 ‘히스터’라는 이름을 쓰는 자신의 옛 마법 스승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전생의 스승이 그립다는 이유로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다.
‘어차피 지금의 나를 알아볼 리도 없고.’
혼자만의 재회는 나중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
진이 마미트 무법 지대 대신 택한 첫 여정은 ‘아킨 왕국’이다.
‘전생에서 내가 죽음을 맞이한 땅.’
그곳에서 9성 기사 셋의 습격에 휘말려 자다가 그대로 사망했다. 이후 새로운 삶을 얻게 되었고.
“도련님, 왜 하필 아킨 왕국인가요?”
“길리는 아킨에 가 봤어?”
“아뇨.”
“콜론 유적지로 임무를 나갔을 때, 그곳 마법사들이 하는 이야기를 좀 엿들었거든. 최근 아킨 왕국에서 미등록 마법사들이 꽤 설치고 있다나 봐.”
“미등록 마법사요?”
미등록 마법사는 이름 그대로 마법사 협회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이들을 뜻했고, 대부분 범죄자나 악질 용병으로 살아갔다.
“그래. 무인 용병들과 팀으로 움직여서 아킨 사람들을 꽤나 괴롭게 만드는 모양이야. 그것들을 먼저 족쳐볼까 해.”
물론 진은 그런 이야길 엿들은 적이 없다. 전생의 정보일 뿐. 아킨 왕국에서 미등록 마법사와 용병들이 설쳐 대는 건, 그곳을 한 번이라도 가 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아는 내용이었다.
아킨에서 한 가닥 하는 미등록 마법사와 용병들은 모두 ‘테싱’이라는 암흑가의 하수인들이다.
진이 진짜 볼일이 있는 쪽은 바로 그 암흑가였다. 테싱이 주최하는 지하 경매장엔, 아직 세간에 진가가 알려지지 않은 물건들이 가득할 터.
‘꼭 사들여야 할 건 마법서 몇 권과, 반지 하나.’
고어와 암호로만 이루어진 옛 마법서에 서술된 마법들은 대부분 개량된 최신 마법에 밀리지만, 간혹 시대를 뛰어넘은 명마법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진은 좋은 스승을 뒀던 덕에 옥석을 가리는 정확한 방법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앞으로 오륙 년쯤 뒤면 진가가 밝혀져 정식 명칭을 갖게 될 투구 아티팩트. 반지 형태로 제작된 그 투구 아티팩트는, 그의 전생에서 모든 무인들의 꿈과 같은 물건이었다.
“좋은 생각입니다, 도련님. 나쁜 놈들 잡는 일은 현역 때 저도 무척 좋아했었죠. 왠지 벌써 신나는데요!”
길리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평생을 쌓아 온 7성 무력이 바로 어제 봉인되었지만, 그녀는 진, 무라칸과 함께 세상 곳곳을 돌아다닐 일이 마냥 설레기만 했다.
하지만 크나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도련님. 그런데 아킨 왕국으로 갈 때 이동 관문은 사용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아마 제일 싼 배편을 구해야…….”
그들은 돈이 없었다.
검의 정원에선 돈 걱정 따윌 할 필요가 없지만, 그들의 주머니에 든 돈은 고작 금화 열 닢이 전부다.
이 돈으론 이동 관문은커녕 특급 선박 표 한 장조차 살 수 없다. 오늘 금화 삼천을 쓰면, 내일은 오천을 써도 괜찮은 검술명가 막내아들의 부유한 삶은 이제 안녕인 것이다.
펑!
바구니에 들어 있던 무라칸이 인간으로 변신해 길가에 섰다.
“딸기파이여! 내 그럴 줄 알고 한정 컬렉션을 몇 권 몰래 챙겨 왔느니라. 후후, 이거 한 권만 내다 팔아도 특급 선박 표 따윈.”
“무라칸 님. 그건 대체 또 언제. 음… 팔 때 좀 창피하지 않을까요?”
“넣어 둬, 무라칸. 네 보물까지 팔아야 할 만큼 야박한 사람이 아니라고, 우린.”
“도련님. 꾹 참고 도시 행상들에게 갖다 주면, 금화 백 개 정도는 건질 수 있을 것 같긴 해요.”
“백 개라니! 이천을 주고 산 것이다. 그 가격엔 못 판다.”
잠시 무라칸과 길리가 춘화집 가격을 놓고 옥신각신했다. 진은 그들이 참 귀엽다고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둘 다 그만. 돈은 내가 생각해 둔 게 있어. 아킨에 가기 전에, 오늘 밤 우선 쟌 왕국에 들르자고. 거기 내가 좀 뜯어먹어도 괜찮은 녀석이 있거든.”
“쟌 왕국이요? 거기까진 또 무슨 돈으로 가요?”
“무라칸 타고 가면 되지. 뭐 해? 변신해.”
검의 정원을 떠나고 하루가 지났지만, 아직 백주 대낮이다. 전설의 흑룡이 함부로 변신해서 돌아다니기엔 적절하지 않은 시간이라는 의미.
“오, 꼬마. 정말 그래도 되냐?”
“무, 무슨! 도련님. 안 됩니다! 누가 알아보면 어떻게 해요? 아직 룬칸델의 땅을 벗어나지도 않았습니다.”
“괜찮아, 뭐 어때. 한 번쯤은 일탈도 해 봐야지. 빨리 변신해, 갈 길이 멀다.”
길리가 더 말릴 새도 없었다.
고오오오! 무라칸이 이미 흑룡의 본모습을 드러내며 두 사람을 손아귀에 쥔 것이다.
[꽉 붙잡아라. 쟌 왕국까진 밤까지 부지런히 날아야 하니까.]세 사람은 그대로 휴페스터 상공을 가로질러, 쟌 왕국으로 향했다.
이후 휴페스터 연합국 중부에선 한동안 ‘용을 보았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그 실체를 파악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딱 한 사람, 진의 큰누님을 빼면.
“하여간 대담한 녀석이야, 예비 기수가 되자마자 용을 타고 날아가?”
루나는 마침 자신의 별장 발코니에 걸터앉아 야속하게 떠난 막내를 생각하며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녀는 무라칸이 날아가는 모습은 물론, 그 뒤에 탄 두 사람의 뒷모습까지 보았다.
“정 없는 동생을 위해 건배다, 흥.”
* * *
“우으으… 우윽.”
안타깝게도 길리는 고소 공포증이 심했다. 그녀는 쟌 왕국 수도 인근의 야산에 착륙하자마자 한동안 온몸을 떨며 겁에 질린 모습을 보였다.
“따, 딸기파이여. 괜찮은가? 야! 꼬마! 네놈 때문에 딸기파이가 무서워하잖아!”
“그게 왜 나 때문이냐? 네가 비행을 이상하게 해서 그런 거지.”
“네가 날 타고 가자고 했으니까! 아앗, 딸기파이여. 그래, 천천히 숨을 쉬어라, 천천히. 옳지.”
한동안 진과 무라칸이 딸기파이, 아니, 길리를 다독여 주었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오들오들 떠는 그녀.
무라칸은 그 기회를 틈타 그녀를 꼭 끌어안는 기염을 토했고, 길리는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를 밀어내지 않았다.
“안 되겠군. 딸기파이는 내가 챙길 테니 네놈은 얼른 돈을 가져와라, 꼬마.”
미친. 이게, 대체 뭐지?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진은 그냥 무라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진이 두 시간 동안 산길과 대로를 달려 도착한 곳은, 빌가의 대저택이었다.
과연 쟌 왕국 최대 상인 가문의 저택답게 쟌 수도 어디에서도 보이는 대저택이다. 진이 대문에 다가서자 문지기들이 가로막았다.
“뭐야? 물러가라, 꼬마야.”
크!
그 진부한 대사를 듣자마자 진은 왠지 모르게 정겨운 마음이 일었다. 전생에서 폐인처럼 도시 곳곳을 구르던 시절, 참 숱하게 들어 본 대사였다.
장시간의 비행으로 인해 머리는 산발이 되었고, 입고 있는 여행복엔 흑검의 문양이 없다. 경비들 입장에선 야밤에 나타난 소년이 귀찮을 수밖에.
“셈버 빌, 그 친구가 안에 있나?”
진이 대뜸 빌가의 장손 이름을 대자 경비들이 눈짓을 주고받았다. 게다가 하대가 익숙한 태도까지.
“예, 계십니다.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진 룬칸델이다.
혹은, 오랜 친구다. 지나가는 길에 우연히 들렀으니, 셈버에게 나오라고 전해라.
둘 다 썩 좋지 않은 방법이다. 전자는 예비 기수가 지켜야 할 룰에 어긋나고, 후자를 택하면 경비들은 끝내 절차를 따지며 아침까지 기다리게 만들 것이다.
“고맙군. 그리고 미안하네.”
파박!
진이 부지불식간에 손날로 두 사람의 뒷목을 쳐 기절시켰다. 그리고 전 재산인 금화 열 닢을 꺼내 그들의 배 위에 고이 올려 둔 다음, 대문을 열고 빌가로 들어섰다.
마침 적절하게도 셈버는 저택 호수 한가운데 앉아 청승을 떨고 있었다. 덕분에 진이 저택 내부의 다른 경비들까지 기절시키는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셈버.”
“누구, 읍, 읍!”
“소리 지르지 마, 나다. 진. 킨젤로로부터 네 목숨을 구한 사람.”
“푸하! 아니, 진 님. 여긴 어떻게.”
“네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 말하라고 했던 거, 기억하지?”
“물론입니다. 제가 어찌 진 님의 은혜를 잊겠습니까? 진 님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저는.”
“훌륭해. 그럼 여기서 기다릴 테니, 들어가서 금붙이랑 돈 좀 갖고 다시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