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50)
제 555화
145화. 전조(20)
* * *
하늘은 두 거인의 힘이 격돌하는 굉음에 금방이라도 우그러질 것 같았다.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폭발과 충격은, 하이란의 영지를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고 있었다.
짐승과 미물들은 저 멀리 거의 지평선까지 퍼진 불길과 부서진 검기의 여파를 피해 도망치며 울부짖었고, 건물은 녹아내렸고 숲은 재가 되었으며 수맥은 끓어올라 증발했다.
이것이 한 인간이 세계제일가를 상대로 하는 싸움이라고,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그 와중에도 검황성은 아직.
‘성’이라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높고 두터운 성벽은 아직 제 기능을 완전히 잃지 않았고, 적들은 부서져 열린 성문을 보고도 감히 그 안으로 쳐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심지어 내성은 론이 처음 의식을 차리고 성벽으로 올랐을 때와 거의 똑같은 상태를 유지하는 모습이었다.
그곳만큼은.
손자가 홀로 외로이 하얀 돌과 사투하고 있는 그곳만큼은 절대로 부서지게 할 수 없다고. 그 아이가 돌을 이겨내고 처음 보는 것이 부서진 검황성이어서는 안 된다고.
론은 그런 의지로 내성을 지켜내고 있었다.
입가에는 마른 핏자국이 가득했고 머리칼은 폐인처럼 산발이 되었다.
야윈 상체엔 그의 삶을 증명하는 수많은 흉터와 더불어 새로 얻은 상처가 가득했고 숨소리는 거칠었다.
그럼에도 적을 노려보는 두 눈동자는 한 치의 떨림이 없이 안광을 번뜩였으며 그의 애검, 라시드는 끊임없이 광휘를 뿜으며 하늘 전체에 진동을 일으켰다.
하이란을 지키는 수호신.
그것이 검황이었다.
“켈리악 지플, 자네. 패색이 짙은데 말이야…… 협상 운운하거나 도망치지 않는 걸 보니 수가 있는 모양인데, 어서 꺼내는 게 좋지 않겠나?”
낮은 음성인데도 전장의 모두가 들을 수 있었다.
검황성의 성벽은 더 낮건만 지플의 마법사와 용들은 꼭 그 목소리가 하늘 더 높은 곳에서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론이 한 걸음을 나서며 횡으로 검을 휘두르자, 무형검풍이 퍼지며 켈리악의 대마법들을 흩어놓았다.
그 사이로 제왕검 비기 천공일섬이 펼쳐졌다. 짙푸른 검기가 함대 중앙을 갈랐고, 켈리악은 흐로티를 휘둘러 대부분을 상쇄해냈다.
하지만 버거운 기색이었다. 컥, 핏덩이를 토했고 지팡이를 쥔 손은 떨리고 있었다.
여전히 처음과 같은, 아니. 그보다도 더 거대한 마력을 운용하고 있으나.
론은 그와 함대의 공격에 무너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지플의 대열에선 함대와 용이 하나씩 추락하는 모습이었다.
‘예상치 못한 결과는 아니나…… 참혹한 기분이로군.’
격차가 이리도 크다는 말인가…….
목구멍으로 치솟는 쓴 덩어리를 삼키며 켈리악이 생각했다. 론의 경지는 그가 직접 닿아본 영역이 아니기에 결과는 그저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
론이 검황성을 지키며 싸운 것처럼, 켈리악 역시 마신석에 충격이 전해지지 않도록 보호하며 싸우느라 제 실력을 다 못 내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켈리악은 자신의 완패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마신석은 아직 개방이 다 이루어지지 않았다.
마력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켈리악은 강해진 론을 상대하느라 여력이 없고, 옥타비아와 망령대는 하얀 돌을 확보하러 검황성으로 침투했으니 마신석 개방엔 남은 마법사와 용들의 마력만이 사용되고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그의 계산을 벗어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제 마신석의 개방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론도 그 사실을 직감하고 있었다.
‘함대의 공격이 예상보다 거세지 않다. 마신석, 아마 진이 말한 그 물건을 사용하기 위해 전투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일 테지.’
여유로운 듯 말했지만 론은 사실 마신석의 힘을 염려하고 있었다.
켈리악과 지플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으나 론 역시 지쳐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랜 투병과 내면에서 이어진 싸움은 분명 그의 몸을 상하게 만들었다. 초월적인 무위와 격의 차이가 그 사실을 적들로부터 감춰주고 있을 뿐이었다.
론 스스로가 뼈저리도록 절감하고 있었다.
‘내게 한 달, 아니. 보름만 더 시간이 있었어도…….’
만전 상태로 싸울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상태로 켈리악이 비장의 수를 꺼내면, 과연 감당해낼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 못하다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 것인가?
론은 그 답답한 자문에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켈리악이 론의 경지에 닿아본 적 없는 것처럼, 마신석은 그에게도 전혀 알 수 없는 영역이었다.
다만 론은 손자를 생각했다.
‘이런 몸으로 싸워보니, 그간 네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를 더욱 절실히 알겠구나…… 손자야, 이 할아비는 이제야 네가 걸어온 길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손자가 그렇게 해왔듯이, 지금도 그러고 있듯이. 그저 자신도 묵묵히 싸우면 될 일이었다.
그우우우우……!
코젝의 주포가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포는 천공일섬이 남긴 궤적을 그대로 따라 쏘아졌다.
종으로 떨어진 라시드가 포의 정중앙을 베어냈다. 포와 검기의 파편은 지상을 강타하지 못하고 공중에서 분해되어 사라지는 모습이었다.
그토록 거대한 힘과 힘이 벌써 몇 차례나 맞부딪쳤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마신석을 개방하느라 평소의 절반 이하 화력을 내고 있다지만, 그 속에서 켈리악을 제외한 다른 마법사들과 용들의 공격은 잘 보이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오직 론과 켈리악의 검과 마법이 천지를 뒤덮고 있는 와중.
돌연 한 가지 새로운 힘이 전장 가운데로 솟구치는 형상이 도드라졌다.
대해 한가운데 거대한 소용돌이가 펼쳐진 듯, 또 다른 힘이 거인들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지상에서 시작된 힘이라고?’
‘이건, 설마.’
켈리악과 론도 일순 그 힘에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옥타비아와 망령대가 쉴 새 없이 대마법을 펼치는 동안에도, 그들의 힘이 하늘까지 뻗은 적은 없었다.
게다가 거인들에게 보이는 힘은 빛이나 자연 속성계 마법이 아니라, 특별한 진파랑의 불과 암흑의 기운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진과 미샤의 업화.
거인들을 놀라게 만든 것은 바로 그 마검이었다.
“허허.”
론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내뱉었다. 창성 직전에 다다른 그조차 놀랄 만큼 대단한 힘이, 설마 지상에서부터 올라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것이다.
반면 켈리악은 웃지 못했다.
안 그래도 론을 상대하느라 조금도 여유가 없건만, 하늘까지 뻗은 진과 미샤의 업화는 지플의 함대에까지 시커먼 마수를 뻗치고 있었다.
영기로 다시 쓰인 사라의 룬 문자가 함대의 진형 곳곳에 종양처럼 검은빛을 남기기 시작했다.
“회피하라!”
켈리악은 그것을 막지 말고 피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명령이 떨어지기 전에도 불길한 직감을 느낀 이들은 즉시 회피 기동을 하였으나, 론의 공격에 여력이 없던 이들은 그 작은 룬 문자들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켈리악이 급히 그들을 향해 보호막을 펼쳤으나, 이미 흑과 청으로 이루어진 업화의 화염이 미친 듯이 용솟음을 치고 있었다.
모두가 생전 처음 보는 형태의 불이었다.
그 불의 이름이 지플의 업을 벌하기 위한 단죄라는 사실 또한 아무도 알지 못했다. 알 수 있는 것은 이뿐이었다.
결코 쉽사리 꺼지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이 불은 바로 지상에 있는 룬칸델 12기수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
영기와 진짜배기 청화가 진의 상징이 된 것은 이제 오래된 일이었다.
하나 함대의 마법사들은 하나하나가 지플의 최정예들이다. 그들은 당황하는 대신 어떻게든 업화를 밀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었고, 때문에 불의 진행이 아주 빠르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위력은 옥타비아와 망령대를 향했을 터인데, 여파만으로 이 정도란 말인가.’
켈리악이 진을 높게 평가하는 것은 사실이나, 이건 결코 그 혼자서 펼칠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무라칸, 혹은 미샤. 둘 중 하나가 전력을 펼쳐 진을 보조한 결과일 것이다. 진 룬칸델 또한 대부분의 힘을 사용했을 터.’
지상의 싸움은 이미 끝이 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옥타비아와 망령대가 막아냈다면 지플의 승리로, 그렇지 않다면 검황성 진영의 승리로 결과가 나올 것이다.
어느 쪽인지 켈리악은 확신하지 못했다. 영기라는 힘의 특수성은 그 같은 마법사조차 정확히 가늠할 수 없었다.
게다가 켈리악이 우선 신경 써야 할 문제는 따로 있었다.
[이건…… 사라…… 룬칸델의……!]풍룡 살리온.
그는 2차전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에도 무의식적으로 ‘십대기사’를 운운하며 이야기의 힘이 약해지고 있음을 증명한 용이었다.
이제 그는 무의식을 넘어 그 시절의 악몽을 선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이 지독한 업화의 불이, 얼마나 많은 동족과 마법사들을 죽였는지…… 똑똑히 기억이 났다.
그 괴물 같던 염제炎帝, 사라 룬칸델의 모습이.
살리온이 동요하자 다른 용들도 발작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전투의 여파, 목걸이로 억누른 마신석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 살리온의 목소리 등이 그들로부터 잊힌 이야기를 깨우고 있는 것이다.
[도망, 도망쳐야. 크아아악!]켈리악이 그의 등에 흐로티를 찔렀다. 그가 이야기의 힘이 훼손되는 걸 가속시키지 못하도록, 차라리 기절시키는 게 낫기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부족한 전력은 더욱 줄어들 테지만 이야기의 힘이 더 훼손되었을 때의 뒷감당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어차피 조금만 더 버티면, 마신석의 개방이 완료된다.’
앞으로 30분 이내.
켈리악이 한 번 더 마력을 끌어올렸다. 앞은, 온통 론의 검으로 가득했다.
* * *
피이이이-!
옥타비아는 제 귓속에서 울리는 날카로운 이명을 듣고 있었다. 누군가 머릿속을 다 찢고 헤집는 것 같았다.
‘대체…… 어떻게 된…….’
팔다리에 감각이 없었다.
베인 것은 아니었다. 단지 업화의 극단적인 충격에 몸이 말을 듣지 않았고, 잠시간 옥타비아는 그 흑청의 화염이 자신을 덮친 순간을 떠올렸다.
‘막아낸 건가? 놈들은 어떻게 됐지? 빌어먹을, 기억이.’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이내 겨우 손을 움직여 반사적으로 제 얼굴을 만졌을 때, 옥타비아는 자신의 왼눈이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그건 빛의 마법으로 회복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내가…… 졌다는 말인가?’
망연자실할 틈도 없이, 쓰러진 그녀의 옆쪽으로 누군가 날아들었다. 회색 로브, 망령대 중 한 사람이었고 그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그제야 옥타비아는 망령대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자신은 이 자리에서 죽어 한쪽 남은 눈마저 뜨지 못했으리라는 사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