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52)
제 555화
145화. 전조(22)
키에에에에엑-!
전장 사방에 송곳으로 귀를 찌르는 듯한 괴성이 울려 퍼졌다. 1795년 안드레이 지플이 궁지에 몰려 마신석을 꺼냈을 때에도 이런 소리가 났었다.
하지만 그때와 차원이 달랐다. 지금의 마신석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이 높은 완성도를 가진 상태였다.
‘켈리악이 본격적으로 마신석을 사용하기 시작한 건가……!’
2차전이 시작됨과 동시에 진과 동료들은 켈리악이 마신석을 가져온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퀴칸텔이 공포에 질렸고, 지플의 용들은 안전장치를 목에 걸고도 발작을 일으킬 듯 보였으니까.
그런데도 막상 직접 마신석의 힘이 개방되는 걸 느끼니 등허리에 소름이 돋았다.
“저건 본래 룬칸델을 상대하기 위해 숨겨둔 힘일 테지. 너희들의 가주가 결국 론 경을 어쩔 수 없다고 판단을 내린 모양이군.”
차분하게 대답했으나 진은 전세가 뒤집어질 수도 있다는 걸 상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늘의 전장도, 지상의 전장도.
마신석이 개방되자마자 옥타비아의 회복이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가이파 군도에서 산드라 지플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결혼할까요? 비궁의 영애와 혼담이 오간다고 하던데, 나랑은 어때요?
-네가 가진 초재생의 비밀을 알려주면 고려는 해보도록 하지.
-그래요? 별로 어려울 것도 없는 조건이네. 마신석이라고 아시려나? 우리가 그걸로 일부 신들의 권능을 좀 흉내낼 수 있게 되었…….
‘마신석에 의한 초재생인가…….’
옥타비아의 잘려나간 오른손 환부에 남아 있던 업화의 잔불이 사그라지고 있었다. 대신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며 새로운 손을 형성하고 있었다.
1795년에 안드레이, 뷰렛타와 싸울 때에도 똑같은 초재생을 목격했었다. 검은 뼈가 만들어지며 탁하고 기괴한 살갗이 돋아났다.
그렇게 회복되고 있는 것은 옥타비아뿐만이 아니었다.
부상을 당한 망령대원들도 초재생으로 다시 기운을 되찾기 시작했으며…… 이미 죽은 망령대들조차 불쾌하게 비걱대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내 옥타비아가 부러진 지팡이를 빛의 마력으로 다시 합치며 진과 눈을 맞췄다. 여전히 왼눈에서는 시커먼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래. 론 하이란도, 너도. 우리를 너무 많이 충격 받게 만드는구나.”
“눈동자는 왜 회복하지 않았나?”
“오늘을 잊지 않기 위함이다.”
“어차피 잊을 수 없을 텐데, 별 쓸데없는 짓을 다 하는군.”
태연하게 말하기는 했으나 아쉬운 마음을 삼키기가 어려웠다. 옥타비아를 끝장낼 수 있는 기회는, 이제 사라지고 말았다.
그것뿐이라면 이 쓰디쓴 상황을 어떻게든 받아들였을 테지만, 문제는 그들과 달리 아군은 대부분 부상에 빠졌거나 힘이 소진된 상태라는 사실이었다.
룬칸델, 혹은 탈라리스의 참전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주군.”
발카스가 진의 옆에 서며 말했다.
“이제 물러서야 하오.”
그렇게 말하는 발카스의 목소리가 낮고 어두웠다.
그는 2차전이 시작되기 전에 카시미르와 나눈 대화를 떠올리고 있었다.
-……이번 전쟁은 단지 검황성뿐만이 아니라, 세계의 운명을 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도 마찬가지일세.
-단테 경이 깨어나고, 우리 전부가 검황성을 탈출한다 할지라도 결국 사태를 유예하는 것에 불과하겠군요. 전면전, 협상.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일어날 일입니다. 하얀 돌이 파괴되지 않는 한.
-우린 어떤 상황에서도 주군을 뒤받치는 것에 집중하면 되네. 주군은 친구를 끝내 포기하지 않겠지만, 혹여 그 때문에 주군이 추락할 위기에 놓이면…… 우린 주군의 마음을 짓밟더라도 주군이 떨어지지 않도록 만들어야 하네.
발카스가 느끼기에 지금이 바로 그랬다.
이제 물러서지 않으면 진과 바멀 연합, 그리고 검성들이 맞이할 수 있는 미래는 죽음이 전부일 것 같았다.
당연하게도, 발카스에게 진의 생존은 단테의 목숨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바멀 연합의 모두가 그랬다.
특히 이런 희망 없는 싸움에서 진이 죽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마신석이 옥타비아와 망령대를 회복시키지 않았다면 모를까, 지금은 정말로 답이 없었다.
아쉽기는 발카스도 미칠 지경이지만 이럴수록 현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했다.
“주군은…… 충분히 하였소.”
검을 쥔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고 턱이 부서질 듯이 이가 갈렸다.
진도 발카스의 말이 옳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결국 진은 선택을 내렸다.
“후퇴하겠습니다.”
물론 진은 단테를 절대로 포기할 생각이 없었으나…….
계속 싸우는 건 스스로는 물론이고 자신을 따르는 이들마저 죽음으로 몰아넣는 일밖에 되지 않을 터.
‘진 룬칸델’이라는 이름과 그가 가진 영향력은 더 이상 온전히 개인의 것이 아니다. 수많은 동료들의 목숨이 그의 손에 달려 있었다.
어쩌면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을지도 모르는 친구를 위해서 그들 모두를 저버리는 건, 배신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들의 주군이자 동료로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선택이었다.
“단…… 내성을, 한 번은 봐야겠습니다.”
단테가 있는 내성까지 물러선 다음에도 정말 희망이 없다면, 도저히 그를 살릴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때는 무조건 물러서겠다. 진은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주군, 내성에선 후퇴가 더 어려워질 수 있소.”
“아뇨, 오히려 내성으로 가야 모두의 생존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가문이 내성까지 관찰할 수는 없을 테니, 반드시 사람을 보낼 겁니다.”
실제로 로사는 이미 흑기사대장 스탐에게 반드시 진을 살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룬칸델의 사람들은 진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목숨에 관심이 없을 테지만, 그들이 옥타비아와 전투를 치르면 필연적으로 일행의 도주는 쉬워질 수밖에 없었다.
아직 중립을 지키고 있는 또 다른 거인, 비궁주 탈라리스 엔도르마 역시 어쩌면 내성에 있을지도 몰랐다.
무엇보다도.
진은 옛 기억 하나를 떠올리고 있었다. 바로 자신의 첫째 누이, 루나 룬칸델이 마신석을 베어버린 그날을. 지금의 론이 세상에 베지 못할 것은 없을 것 같으니 말이다.
룬칸델과 탈라리스와 론. 셋 중 룬칸델의 개입은 확정적인 만큼 내성을 확인해보지 않을 이유가 없었고, 발카스는 수긍했다.
그때쯤 옥타비아는 회복을 끝마쳤다. 다시 형형한 빛의 마력과 연환 마법이 일행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쩌엉-!
발카스가 진에게 떨어진 광선을 쳐내며 앞으로 나섰다.
“내가 검성들과 뒤를 지키며 물러서겠소. 주군은 나머지 인원과 함께 최대한 빨리 내성으로 향하시오.”
* * *
눈동자는 텅 비어 있고, 곳곳이 기괴하게 일그러진 검은 얼굴이 하늘을 대신하고 있었다.
마신석에서 튀어나온 얼굴이었다. 키엑, 키에에엑-! 그것은 세상 밖에 얼굴을 드러낸 것이 몹시 괴롭다는 듯 쉴 새 없이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어쩌면 비명이 아니라 적들을 위협하는 포효일지도 모르고, 그저 의미 없이 질러대는 괴성일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그 음울하고 끔찍한 목소리가 검황성의 모두를 압도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론 하이란조차, 마신석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온몸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살면서 그보다 더 끔찍한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단지 흉측한 형상에서 비롯된 느낌이 아니라,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깊고 어두운 기운이 전장을 물들이고 있었다.
‘저런 것을…… 정녕 지플이, 인간이 만들었다는 말인가.’
지금껏 켈리악과 지플의 함대를 홀로 마주하면서도 한 치도 흔들리지 않은 그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도저히…….
벨 수 없을 것 같았다. 세상에 저걸 벨 수 있는 인간이 존재한다면, 그건 자신이 아니라 시론일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벨 수 없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건 창성이라는 영역에 가장 가까운 무인이기에 가질 수 있는 확신이었다.
‘단테, 내 손자야.’
단테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아이를 지켜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마음과 더불어, 그렇다면 손자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단 하나밖에 없었다.
‘내 너를 지키지 못하게 된다면, 그 녀석만큼은 반드시 살아서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겠다.’
라시드를 다잡았다.
마음을 다잡았고, 의지를 다잡았다. 패배라는 확신을 밀어내기 위해서. 그 확신을 밀어내지 못한 채 싸운다면, 결코 이변은 없을 것이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론은 다시 평소와 같은 눈매로 마신석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론 하이란. 설마 자네를 상대로 이 힘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네.”
마신석의 얼굴 앞으로 켈리악이 떠오르며 말했다.
그는 방금까지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백발의 노인이 아니라 앳된 소년처럼 보였다.
그리고 론은 그것이 켈리악과 마신석이 동화함으로써 벌어진 현상이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경의를 표하는 바야.”
“어찌 괴물이 인간에게 경의를 표할 수 있겠나, 켈리악 지플. 너는 더 이상 내가 알던 적, 인간이 아니야. 한때 내가 네놈과 인간 대 인간으로서 경쟁을 했었다는 사실조차 역겨워질 지경이다.”
그 말에 켈리악은 씁쓸한 듯 미소를 지었다.
“이해하네.”
흐로티가 검게 물들었다. 영기에 물들었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짙고 깊은 검은 빛깔이었다.
“내가 자네를 위해 할 수 있는 배려는 어서 안식에 들도록 만들어주는 것밖에는 없군.”
흐로티에서 검은 섬광이 뻗어졌다. 그 검은 섬광은 소리도 없고 기척도 없다. 마치 극의에 달한 영검처럼.
동시에 론도 라시드를 휘둘렀다.
하지만 론은 ‘동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1초, 그보다도 한참 낮은 단위의 시간만큼 자신의 반응이 늦었다고 인식했다.
검은 섬광은 그들 사이에 펼쳐져 있던 거대한 무형검기를 너무나 쉽게 돌파하며 론에게 닿고 있었다.
무형검기가 극히 조금이나마 진행을 늦춰준 덕에, 론은 시간 차이를 극복하고 완벽하게 검은 섬광을 쳐낼 수 있었다.
스그극-!
라시드와 검은 섬광이 부딪힌 순간 기묘한 소리가 났다.
그리고 론은, 분명 쳐냈다고 생각한 검은 섬광이 자신의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걸 느껴야만 했다.
그의 경지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다.
키아아, 키에에엑!
마신석의 괴성은 마치 그런 론을 비웃는 듯 들렸고.
굳은 표정으로 뺨에 흐르는 피를 닦아내는 론의 손등 위로 룬 문자처럼 잿빛의 문양이 돋아나고 있었다.
패왕검을 개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