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53)
제 555화
145화. 전조(23)
론의 오러가 잿빛으로 물들었다.
어두운 힘에 온몸이 잠식되는 불쾌한 감각이 시작되며 시야가 캄캄해졌다.
평생, 단 한 번의 사도私道 없이 단련해온 위대한 육신은 이제 탁하고 불길한 기운을 내뿜었다.
무형검도 특유의 투명한 색을 잃고 탁한 회색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다는 특수성을 잃게 되었으나, 애초에 그 힘은 너무 거대했던 탓에 약점이 되지는 않았다.
지플의 마법사들은 패왕검으로 인해 무형검이 형상을 띠고 나서야 자신들을 압박하던 힘이 얼마나 광대했는지를 다시 깨달을 수 있었다.
온 하늘과 땅이 회색의 검기로 가득 차 있었다. 게다가 패왕검이 개방되자마자 그 힘은 더욱 커져서, 어디에 시선을 두더라도 회색의 칼날이 가득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지플의 마법사들은 그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개방된 마신석의 힘은 켈리악 지플뿐만이 아니라 지플의 다른 마법사들과 함대를 모두 강화시키고 있었다.
용들은 쉴 새 없이 포효를 내질렀다. 마신석의 기운에 이성을 잃었기 때문이나 아군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잘 훈련된 투견처럼 명령을 기다릴 뿐이었다. 적을 물어뜯으라는 명령을.
가아아아아-!
켈리악을 제외하면 단연 가장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주는 것은 벨롯이었다.
마신석의 기운에 따라 벨롯은 검은 불을 토해냈는데,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한 열기가 근처의 회색 검기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후우…….
론은 천천히 호흡을 고르며 자세를 다잡았다. 새로이 새겨진 패왕검의 문양이 그의 야윈 몸을 조금 가려주었다.
몸 상태가 멀쩡하지 않다. 그렇기에 그의 패왕검은 검성들보다 오래 지속될 수 없으나, 그건 중요치 않았다.
싸움은 아마 그리 길어지지 않을 터였다.
문득, 론 하이란은.
끊임없이 키에엑, 케엑, 끔찍한 소리를 질러대는 저 마신석과 ‘하얀 돌’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고 느꼈다.
하얀 돌, 하이란 가주의 최대 숙적.
불길한 자갈, 끝을 가리키는 쐐기, 하이란의 역대 가주들은 그렇게 여러 이름으로 하얀 돌을 지칭해왔다. 누구도 그 돌의 진짜 이름을 알지 못했으며, 누구도 그 돌을 베지 못했다.
가주에서 가주에게로만 전해지는 그 돌의 존재 의의는 바로 ‘베는’ 것에 있었다. 그것을 벨 수 있는 경지에 이르러야만, 하이란의 역사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설 수 있다.
그리고 아직 돌을 벤 하이란의 가주는 아무도 없다.
끝내 그 돌은 하이란을 위기로 몰아넣었으며, 지금도 단테를 가둬둔 채 멸망의 언어를 속삭이고 있었다.
마신석 또한 그러했다.
하얀 돌도, 마신석도. 베지 못하면 오늘로 하이란은 세상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오라, 부끄러움을 모르는 괴물들아.”
스아아악-!
론이 라시드를 추켜세우자 별안간 검황성 앞에 잿빛의 태산이 솟아난 듯했다. 무너지고 깨진 성벽을 대신해 검기가 방벽을 이루었다.
또다시 흐로티에서 검은 섬광이 쏘아지고 있었다. 그 시커먼 힘은 이번에도 겹겹이 솟은 잿빛의 방벽을 거침없이 뚫고 나아갔다.
다만 켈리악은 검은 섬광이 론에게 닿는 걸 확인하기도 전에, 잿빛 방벽의 깨진 틈으로 날아드는 날카로운 검기를 마주해야 했다.
하지만 검기는 켈리악의 얼굴에 닿기 전에 급격히 소멸해버리고 말았다. 마치 먼지가 불에 닿기도 전에 사라지는 것처럼.
마신석의 힘이 그렇게 켈리악과 함대를 보호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연달아 쏘아진 백여 줄기의 검기도 같은 방식으로 소멸되었다.
켈리악이 사라진 검기가 남긴 잔상으로 천천히 손을 뻗었다. 마신석의 힘이 검기를 상쇄시켜 발생된 미약한 열기만이 만져졌다.
본격적으로 방어를 하고자, 혹은 피하고자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켈리악은 그저 피격되지 않겠다는 약간의 의지만 보였을 뿐인데도 론의 검기를 완벽히 가로막은 것이다.
‘……시론, 그는 자신에게 대적하는 이들을 볼 때 늘 이런 기분을 느껴온 것인가.’
켈리악이 다시 흐로티를 휘두르며 생각했다.
론이 패왕검까지 개방하며 펼친 잿빛 검기들이 그가 흐로티를 뻗을 때마다 무참히 찢기고 있었다.
무형검기에 계속 가로막히기만 하던 마법사와 용, 함대의 공격은 전보다 훨씬 유효하게 작용했다.
마신석이 개방되기 전까지 론은 그들의 공격을 단 한 번도 피하지 않았다.
모두 자신에게 다가오기 전에 무형검풍으로 소멸시키거나, 제자리에 선 채로 막아냈었다.
그러나 지금 론은 성벽과 자신이 형성한 잿빛 검기의 허공 속을 오가며 진땀을 쏟고 있었다.
론은 그 사실에 괘념치 않았다.
그저 묵묵히 검을 쥐고, 전황을 살피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반격을 해냈다.
초가 지날 때마다 그의 몸에 새겨진 패왕검의 문양 위로 잔상처가 늘어가고 있었다.
[기아아악!]해일처럼 벨롯의 검은 화염이 검황성으로 들이닥쳤다. 잿빛 방벽이 터지며 왼편 성벽의 3할이 완전히 파괴되었고, 론은 벨롯이 그 틈으로 들어서지 못하도록 앞을 가로막았다.
벨롯이 돌진하자 공간이 일그러지며 충격파와 굉음이 일었다. 정면으로 맞서 휘두른 론의 라시드가 벨롯의 머리를 내리찍었으나 베이지 않았다. 마치 검과 검이 닿아 힘겨루기를 하는 것 같은 형상이었다.
격돌이 끝났을 때, 먼저 물러난 쪽은 벨롯이었으나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은 론이었다. 한 움큼 덥고 뜨거운 피가 목구멍으로 역류하고 있었다.
“카학……!”
피를 뱉어냈고, 그 피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검은 화염과 섬광이 론을 덮쳤다. 화염은 가슴팍을, 섬광은 어깨를 찔렀다.
때문에 그가 잠시 몸을 추스르는 찰나엔 함대와 용들의 폭격이 이어졌다. 검황이라는 이름을 얻은 후, 이렇게까지 일방적인 공격에 당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키이이이……!
마신석은 계속 론을 비웃는 듯했다. 지플의 마법사들과 용, 벨롯은 그렇게 느꼈다. 그들은 이미 승리와 광기에 취해 있었다.
하지만 켈리악은 다르게 생각했다.
‘마신석이…… 불안해하고 있다. 론이 그래도 위협적이라고 판단한 것인가?’
켈리악으로서는 얼른 그 이유를 알아볼 수 없었다.
전투는 그야말로 압도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론에게 아직 저력이 남았다 할지언정, 켈리악 또한 아직 마신석의 힘을 일부밖에 사용하고 있지 않았다.
다만 이해가 안 된다 할지라도 의심할 여지는 없었다. 마신석엔 현재 서른이 넘는 신이 깃들었고, 그 의지의 총합이 내놓는 결론은 절대적이었다.
켈리악의 시선이 지상에 닿았다. 전투의 여파를 피해 막 성내로 들어선 진 일행과, 그들을 추격하는 옥타비아와 망령대의 모습이 보였다.
론은 그곳까지 충격이 닿지 않도록 막느라 온전히 제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면, 진 룬칸델에게 깃든 그림자의 권능 때문일지도 모르겠군.’
안드레이가 갖고 있던 것에 비해 월등할 뿐, 마신석은 아직 완전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림자.
솔더렛의 힘을 손에 넣지 않는 한 마신석은 결코 완성될 수 없었다. 그를 제외한 모든 신과 이미 죽었거나 소멸한 신들의 힘을 모두 합쳐 깃들게 하더라도.
“어딜 보는 것이냐, 켈리악!”
론의 검기가 포격을 뚫어내며 켈리악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아까처럼 가벼운 의지만으로 소멸시킬 수는 없는 검기였다. 흐로티를 휘둘러 검기를 지우자 손목이 뻐근했다.
마신석과 동화되었음에도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오래전 신들에게 대항하다 사라진 한 종족도 이런 식으로 신들의 화를 돋우었으리라, 그런 생각이 들었다.
“걱정 말게. 우선 자네를 죽이는 게 순서이니.”
크우우우……!
종양처럼, 하늘에 검은 화염의 구체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켈리악이 변형하고, 마신석이 강화한 다섯 개의 멸살화염옥이 론을 향해 조준되고 있었다. 단순 위력으로는 리올의 유산 2형보다도 우위였다.
론은 그걸 보고도 지상 방어에 사용되는 힘을 거두지 않았다. 켈리악은 그게 못마땅한 듯 눈썹을 좁혔다.
“내 말이 거짓처럼 들렸던가?”
켈리악의 지팡이를 따라 먼저 하나의 검은 화염옥이 검황성으로 낙하했다. 벨롯은 론이 검은 화염옥을 피하지 못하도록 계속 론을 압박하는 모습.
그러나 론은 애초에 그것을 피할 생각이 없었다.
시이이이……!
잿빛의 라시드가 낮은 공명음을 울렸고, 론의 몸에 새겨진 패왕검의 문양이 한층 짙어졌다. 벨롯과 검은 화염옥을 올려다보는 론의 회색 눈동자는 단단하고 흔들림이 없었다.
패왕검 제1결전기
라시드가 잿빛 광휘를 내뿜었다.
마신석으로 강화된 벨롯조차 반사적으로 물러날 만큼 거대한 기운이 사방에 깔린 흑화를 집어삼켰다.
검신을 타고 끝없이 분출되는 잿빛이 그 자리를 대신하며 패왕의 위엄을 드러냈고, 그 순간 불길한 달처럼 떠 있는 마신석의 표정이 이지러졌다.
‘이 검은 흡사…….’
켈리악은 그 모습으로부터 오래전 자신이 마주한 한 검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패왕검은, 본래 룬칸델과의 결전을 위해, 룬칸델의 검을 본떠 만든 검이다.
그렇기에 패왕검의 모든 검은 룬칸델을 닮아 있으나, 그저 축복받지 못한 육신으로 펼치는 어설픈 모방에 불과하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패왕검은, 룬칸델을 꺾기 위해 만들어졌다.
유성부수기
룬칸델 제3결전기 유성우.
켈리악이 떠올린 검은 바로 시론이 직접 펼친 룬칸델의 제3결전기였고, 패왕검의 제1결전기는.
바로 그것을 이겨내고자 빚어진 검이다. 룬칸델의 유성우를.
라시드의 궤적이 나아간 방향을 따라 사방에서 허공이 반으로 갈렸다. 그 틈에서 솟구치는 잿빛의 검기가 검은 화염이 잠식한 공간을 빼앗고, 다시 장악하고 있었다.
카아아, 아아아!
마신석의 목소리에 아까보다 짙은 불안과 분노가 묻어났다. 감히 인간이 이런 힘을 가져도 된다고 생각하느냐, 꼭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벨롯이 몸을 빼내며 괴성을 질렀다. 용솟음치는 유성부수기의 잿빛 오러를 막아낼 수가 없는 것이다.
켈리악은 벨롯이 회피하자마자 나머지 네 개의 검은 화염옥을 한꺼번에 떨어뜨렸으나, 반발력 때문에 속도가 나오지 않았다.
그 정도가 아니라 성벽에 닿기도 전에 흩어지고 있었다. 다섯 개의 화염옥은 이미 구球라고 부를 수 없는 난잡한 형태가 되어 힘을 잃어갔다.
“설마 나를 상대로 마신석의 힘을 사용하게 될 줄 몰랐다. 조금 전에 네놈은 분명 그렇게 말했었지…… 나 또한 마찬가지다.”
“단지 숨겨둔 저력이 아니야…… 자네, 설마 내게 맞서며 더 강해지고 있는 것인가?”
켈리악은 그렇게 확신하며 눈을 가늘게 떴고, 론은 부서져 흩날리는 한 줌의 검은 화염을 붙잡아 주먹을 쥐어 꺼뜨렸다.
“오늘 이 싸움이 어떻게 끝나든…… 너와 나는 많은 것을 잃을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승자는 네놈도 나도 아닌. 아이들이 될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