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71)
제 555화
148화. 검황(4)
진과 론이 아공간으로 사라졌던 이후, 바깥의 전장은 순식간에 패색이 짙어진 상태였다.
놈이 비궁의 마성 봉인기에 묶이기 전보다 강대한 힘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놈은 인간들이 기대할 수 있는 모든 변수가 막혔다고 판단했었다.
하루가 지나도록 계속된 전투에서, 거인들은 글리엑에게 어떤 피해도 주지 못했다.
애초에 초반처럼 공격 시도조차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근본적인 충격을 주지 못하는 데다 놈의 기운이 거세졌으니 아군을 지키는 것조차 급급할 지경이었다.
놈은 아무리 베어도 결국 본모습을 되찾는 바다와 같았다.
지치게 만들 수도 없고, 다시 마성 봉인기를 펼쳐 묶어둘 수도 없으니 전황은 암울하게만 흘러갔다.
론과 진, 단테가 돌아오기 전까지. 글리엑이 공격을 멈춘 순간은 론이 놈의 심연에 남은 하얀 돌의 형상을 베고 있던 때가 전부였다.
지플과 룬칸델, 비궁의 거인들이 전사하는 것도 시간문제에 가까웠다.
켈리악은 후퇴를 생각하고 있었으나, 하루 동안 진행된 흑해화 때문에 사실 그조차 가능성이 희박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 론이 창성의 힘을 얻고 다시 전장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것도 진, 단테와 함께.
대체 론이 그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 창성에 들어설 수 있었는지, 진과 함께 사라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거인들은 알 수 없으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제부터의 싸움은, 결코 지금까지 이어진 것처럼 부조리하지 않으리라고.
글리엑이 타격받고 있는 것이다.
선풍처럼 번지는 찬란한 검기가 방벽처럼 진과 단테를 보호하고 있었다.
혼돈의 기운은 마치 불을 앞에 둔 짐승들처럼 쉽사리 보호막으로 다가서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어떻게…… 무슨 짓을 한 거냐. 론 하이란.]글리엑의 음울한 목소리는 여전히 그 자체만으로도 인간을 공포에 휩싸이게 만드는 기운을 품고 있다.
하지만 거인들은, 아니. 아직 초월의 영역에 닿지 못한 전장의 다른 이들마저 느끼고 있었다.
놈의 목소리에 두려움이 묻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론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글리엑이 주춤하고 있었다.
글리엑의 몸뚱어리는 부서지기 전의 검황성에 빗댈 지경이건만, 사람들은 그 앞에 선 론이 오히려 더 거대하게 보였다.
“그건 내가 물을 일이다. 네놈은 지금까지 무슨 짓을 해왔느냐, 나의 하이란에.”
우우웅-!
라시드가 강렬한 공명음을 일으켰다.
무형검, 검황 론 하이란을 상징하는 깨달음.
그 검은 검황성전이 시작된 이후 계속 본연의 순수한 형태를 잃어갔다.
전세가 버거워질수록 투명한 색을 잃고 잿빛이 되었었으며, 심마에 빠졌을 때엔 혼돈에 검게 물들어 친인을 찌르기까지 했었다.
지금, 라시드로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론의 검기는 다시 무형이었다.
그러나 그의 검기가 보이지 않는 것은, 단지 이전처럼 그의 검이 기술적으로 위대하기 때문이 아니다.
창성에 오르지 못한 자는 창성의 빛을 인지할 수 없듯, 론의 새로운 무형검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지금의 무형검은 절대다수의 인간들에겐 그저 보이지 않는 검기일 뿐이나.
시론 룬칸델 같은 인물에게는 그보다 더 찬란할 수 없이 빛나는 검으로 보일 것이며…… 글리엑 또한 그렇게 보고 있었다.
밝다 못해 눈이 멀어버릴 듯한 섬광에 글리엑은 움츠러들고 있었다.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찢겨 어디론가 사라질 것만 같았다.
“대답하라.”
론이 글리엑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그러자 그의 의지를 따라 창성의 검기들이 놈의 육체로 쇄도했다.
[카아아아악……!]글리엑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토했다. 무형검기는 놈을 형성하고 있는 혼돈을 입자로 분해하고 있었다.
고요한 폭풍.
론의 무형검을 아는 이들은 그런 이상한 표현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하해처럼 광대한 힘이 놈을 찢어발기고 있건만, 도무지 그 힘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거인들조차 무형검기가 어떻게 흐르고 있는 것인지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다.
“말할 생각이 없는 것 같군. 그렇다면 내가 읊어주마.”
스걱-!
론이 직접 휘두른 검에 글리엑이 반사적으로 뻗은 대여섯 개의 팔들이 잘려나갔다.
“하얀 돌, 글리엑. 네놈은 하이란의 영토를 파괴했고, 다시는 이 땅에 사람이 살 수 없게 만들었으며, 하이란의 소가주를 살해하려고 하였다. 검황성주로서, 그 죄를 묻고 형을 집행하도록 하겠다.”
형벌은, 소멸이다.
뒷말을 이은 론의 눈동자가 형형하게 빛났다.
그리고 글리엑의 비명 속에는, 웃음이 섞였다. 천지를 뒤흔드는 비명과 스산한 바람 같은 조소가 동시에 울리고 있었다.
[푸흐흐……! 대단하기는 하구나. 너는 내가 만난 그 어떤 인간보다도 특별한 존재임이 분명하다. 찬사를 보내주마.]말하기 시작한 글리엑의 몸집이 빠르게 작아져 갔다. 론은 놈의 여유로운 모습에 달리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운명을 거스를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하여…… 반드시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휘이이…… 글리엑의 몸뚱어리가 흩어지기 시작했다.
불필요할 만큼 거대한 형태가 사라지자 무형검기에 손실되는 혼돈이 줄어들었다.
놈은 이제 검은 바람이 되어 전장 사방에 산재했다.
거인들은 아직 혼돈을 뚫고 론이 있는 곳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중이었다.
론이 놈에게 본질적인 타격을 주고 있음에도, 여전히 그들조차 버거울 만큼의 혼돈이 가득한 것이다.
그래도 거인들은 조금씩 평정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어차피 내가 직접 진 룬칸델을 보호하는 것보다, 론 하이란이 맡는 게 더 안전할 테지만…… 과연, 그가 끝까지 진을 지킬 것인지가 문제로군.’
‘막내를 억지로 확보하는 건 오히려 녀석을 위험하게 만드는 일이다. 혼돈의 왕에게 뭔가 다른 수단이 남은 기색이니, 차라리 그것에 대비해야 한다. 론 하이란이 막내를 포기하는 경우는 걱정해봐야 바꿀 수 없는 요소이니.’
켈리악과 로사가 생각했다.
그들은 글리엑의 발악과, 론이 ‘진을 포기하는’ 경우를 염려하고 있었다.
후자는 걱정할 필요가 없는 문제처럼 보이지만, 그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 건 다름이 아니었다.
비록 그들은 창성에 닿지 못했으나 창성에 오른 이들이 어떻게 인간성을 잃어가는지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창성에 닿은 자들은, 그 이후에도 평생을 괴물이 될 위험에 놓이게 된다.
특히 로사는 시론이 창성에 닿은 직후 어떤 상태가 되었었는지를 직접 보았었다.
그때의 시론은 살인귀나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시론이 지금처럼 안정적이고 무감한 상태를 유지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후였다.
론 또한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실제로 로사와 켈리악의 걱정처럼, 론은 아직도 자신을 잠식하려는 심마와 내면의 투쟁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특히 지금의 너처럼, 아직 필멸자의 감정이 강하게 남아 있는 상태라면 더더욱…….]혼돈의 흑풍 속에 글리엑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자신의 계산에 착오가 있었고, 그 결과 론 하이란이 창성에 오르도록 방관한 꼴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놈은 여전히 론이 자신과 동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놓지 않았다.
어쩌면 론이 창성에 오른 것조차 그 전조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예감과 함께.
또한 론이 끝내 인간의 감정을 유지할 수 있다 할지라도 전투력은 자신이 앞선다고 확신했으며, 론이 이룬 창성의 속성이 ‘수호’에 특화되었다는 사실도 인지하고 있었다.
후우우웅-!
흩어진 글리엑의 혼돈이 전장 한가운데 소용돌이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지상을 물들이고 있던 혼돈의 기운들이 용솟음치고 있었다.
사방에서 검은 해일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에 론을 제외한 전장의 모든 인간들은 일순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도 충분히 벅찼다.
그런데 지금, 글리엑이 드러내기 시작한 기운은 인간들이 겪어온 힘을 한참 상회하고 있었다.
글리엑의 혼돈이 만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건 곧 놈이 본연의 힘으로 싸우기 위해 필요한 만큼의 흑해화가 완전히 이루어졌다는 의미였다.
지금까지는 진을 흡수하느라, 또 심연으로 들어선 그들을 막느라 그 힘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
근원석은 모든 신들의 진기를 합쳐 만든 물건이며, 전성기의 명왕족조차 그 힘에 대항하다 멸망이라는 결과를 맞이했다.
그리고 그 힘을 다섯 조각으로 나누어 가진 게 바로 흑해의 왕들이었다.
지금까지 드러낸 게 전부일 리가 없는 것이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 시간은 단 한 번도 인간들의 편에 선 적이 없었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흡……!”
다가서던 거인들이 돌진을 멈추며 호흡을 골랐다. 땅에서 치솟는 혼돈의 독기가 그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그들을 제외한 모든 인간들은 아예 숨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했다. 흑기사와 망령대조차 몸으로 침투하는 혼돈에 피를 토했고, 그 이하의 기사와 마법사들은 빠르게 의식을 잃어갔다.
탈라리스의 상태도 좋지 않았다. 엘로나의 봉인을 풀지 않았으니, 그녀는 자신을 지킬 힘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탈라리스가 당장 쓰러지지 않는 것은, 로사가 빠르게 판단을 내리며 그녀가 있는 쪽으로 되돌아갔기 때문이었다.
“비궁주, 내게 붙으시오.”
로사는 진이 사라지기 전, 탈라리스가 켈리악에게 마지막 수가 남아 있는 것처럼 말하려던 걸 떠올리고 있었다.
로사와 켈리악의 예상대로 진과 단테는 지상에서 올라오는 혼돈의 독기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론의 힘이 그들을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그건 론이 계속 그들을 지키며 글리엑과 전투를 치러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진은, 글리엑의 발악이 시작되자마자 등 뒤의 단테에게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단테의 몸이…… 혼돈에 다시 잠식되고 있다……!’
자신의 목에 감긴 단테의 손이 조금씩 검어지는 모습이 보인 것이다.
론도 그 사실을 의식하며 분노하고 있으나, 진이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내색하지는 않았다.
다만, 글리엑은 정확히 알아보고 있었다. 론이 분노에 빠지고 있는 사실을. 그 분노는 곧 증오가 되어 다시금 론을 유혹하리라는 것도.
[론 하이란, 나를 이기고 싶다면, 지킬 것이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