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72)
제 555화
148화. 검황(5)
단테가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의 검은 피가 진의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렸다.
진은 그 피가 혼돈에 물들어 시커먼 것을 확인하며 이를 악물었다.
등에 닿은 단테의 몸이 차갑고 딱딱했다.
분명 론과 자신이 그를 구한 직후에는 맥은 약하나 체온은 거의 돌아온 상태였었다.
분명, 단테는 죽어가고 있었다.
대체 단테를 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련이 있었단 말인가.
그 모든 것을 극복해내고 마침내 구한 친구를 이렇게 허무하게 잃을 수는 없다는 마음에, 진은 글리엑을 향한 분노조차 느낄 겨를이 없었다.
머릿속엔 그저 단테를 살려야 한다는 일념만이 가득했다.
진은, 글리엑의 심연을 빠져나오기 전 론이 했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자신이 글리엑과 마지막 전투를 치르는 동안 어떻게든 단테를 데리고 빠져나가라고 했던 말을.
‘후방 전장으로 가서 탈라리스 님을 찾아야 한다!’
탈라리스에게 단테의 죽음을 유예할 수 있는 봉인 수단이 있는지 물어야 했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로사와 켈리악에게도 단테를 살릴 수단이 있는지 확인하고 얻어내야 할 것이다. 누메루스의 유산을 보유하고 있다면, 단테에게 사용하라고 말해야 했다.
원래라면 그들은 이런 상황에 결코 단테를 살리기 위해 그런 신물을 사용하지 않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론이 창성에 올랐으니 그의 진노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거대 가문들 또한 단테를 살려야 하는 것이다.
‘룬칸델과 지플이 누메루스의 유산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있었다 할지라도 상황이 이 지경이면 이미 사용했겠지. 그래도, 일단은 그쪽으로 가야……!’
다급히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어느 쪽을 보아도 글리엑의 혼돈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진은 론의 검이 남기는 궤적을 따라 조금이라도 틈이 생길 만한 곳으로 쉴 새 없이 보법을 밟았다.
무형검기가 계속 혼돈의 기운을 소멸시키고 있었으나 탈출할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생길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론이 길을 열기 위해 검을 휘두르는 사이, 어쩔 수 없이 진의 안전에는 약간의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혼돈의 검은 손아귀가 그 틈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다행히 아직 피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으나 계속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론이 자신을 보호하던 기운 일부를 분리해 진과 단테에게 덧씌웠다.
진은 엄밀히 말하면 글리엑과 전투를 펼치는 중이 아닌 데다, 창성에 오른 론과 달리 놈의 공격 흐름을 정확히 읽지 못했다.
따라서 진은 시야 밖에 있는 혼돈의 기운들도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뒤에서 날아든 한 줄기의 검은 송곳이 보호막을 찌른 다음에서야 알 수 있었다.
“진, 피하거나 막지 말고 그대로 나아가거라!”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론은 송곳이 진을 감싼 보호막에 균열을 일으킬 때마다 자신의 기운을 보내주었다.
운명을 거스르는 힘을 가졌다고 하여, 반드시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글리엑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인간들은 론이 창성에 닿은 덕에 싸움에서 이길 가능성을 얻었을 뿐, 승리를 보장받지는 못했다.
전력.
지금의 글리엑은 문자 그대로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흑해의 왕이 전력을 다한다는 것은 전투의 여파가 단지 이곳, 검황성의 영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콰아아아……!
별안간 시작된 굉음에 론을 제외한 전장의 모든 이들은 반사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혼돈에 검게 물든 하늘이, 열리고 있었다.
마신석에 의해 하늘이 변화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균열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소용돌이치는 혼돈 사이로 시커먼 번개가 내리쳤다.
무자비하게 내리치는 검은 번개에 겨우 버티고 있던 기사와 마법사들이 끝내 목숨을 잃었고, 번개가 닿은 땅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덩이가 파였다.
그 속에서도 용암처럼 혼돈이 분출되었다. 한층 거세진 재앙에, 룬칸델과 지플의 최정예들이 맥없이 스러져가고 있었다.
이조차 검황성의 영지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일에 불과했다.
하늘에 펼쳐진 소용돌이를 타고 혼돈이 흐르는 모습도 보였다.
전장 외부로 나아가는 그 혼돈은, 제국으로. 제국을 넘어 또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룬칸델과 지플의 영토로 나아갔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인세 전체를 공격할 셈인가!’
진에게 룬칸델만 살아남는다면 세계 전체가 멸망해도 상관없다 말하던 로사조차, 혼돈이 인세로 나아가는 걸 보며 경악하고 있었다. 삶에서 이보다 더 충격적인 경우를 마주한 적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각 세력의 최정예들조차 버텨내지 못한 혼돈이다.
그런 게 세상에 마구잡이로 풀려버리면, 평범한 인간들은 절대로 감당해낼 수 없다.
세계 멸망은 예견된 순서인 것이다.
‘예언자가 무언가 대책을 마련하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그 대가로 무엇을 요구할지 알 수 없건만.’
켈리악도 로사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제국이 멸망하는 것은 물론…… 지플도 위험하다.’
두 가문은 이미 심대한 타격을 받은 상태였다. 룬칸델에선 흑기사들 중에서도 전사자가 나오기 시작했고, 지플은 함대를 거의 잃었으며 용과 마법사들은 몇이나 죽었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함대는 다시 생산하면 되며, 용은 활동을 멈추고 있는 존재들을 찾아 귀속시키면 된다.
그러나 지플의 전사자들은 마신석으로 되살린다 할지라도, 아직 그 권능이 완전하지 않기에 한 번 죽었던 이상 결코 본래대로 돌아올 수 없었다.
심지어 글리엑이 전력을 다하기 시작하자, 마신석도 다시 영향을 받고 있었다.
이전까지는 두려움에 떨기만 했으나 지금은 금방이라도 폭주할 것처럼 불안정한 상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베라딘, 처음부터 그 녀석의 폭주를 제한하지 않았어야 했던 건가. 카둔과 헤도가 나 없이도 제대로 결단을 내리기를 기대할 수밖에.’
킨젤로가 처음 예견했던 것처럼, 룬칸델과 지플에 최후의 수단이 남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두 가문 다 절대적으로 배제하고 싶은 수단이었다. 처음부터 글리엑의 존재를 알았다면 모를까, 이제 와서 꺼내들기에는 늦은 감도 있었다.
‘딸이 살아가야 할 땅이…… 저걸 대체 어찌 막아야.’
주저앉아 숨을 고르고 있던 탈라리스도 고개를 들어 망연자실한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 세계로 증식하기 시작한 혼돈을, 거인들로서는 막을 수단을 갖고 있지 않았다. 글리엑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으나, 놈의 승리감이 뼛속까지 파고드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들의 좌절은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다음 순간, 인간들이 살면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거대한 수호벽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빛으로 형성된 거대한 반구 형태의 수호벽이, 전장 전체를 아우르고 저 너머의 해안 밖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수호, 론이 이룬 창성의 특성. 그 힘이, 아니. ‘권능’이 혼돈에 반응하며 세상으로 풀려나는 혼돈을 가로막기 시작했다.
글리엑의 혼돈이 퍼지는 것보다 수호벽의 영역이 커지는 속도가 빨랐다.
도저히 한 인간이 만들었으리라고는 믿을 수 없이 대단한 힘이, 세계 전체를 지키기 시작한 것이다.
신들조차 해낼 수 없는 일이다.
오직 론 하이란만이 가능한 수호였다.
“네놈을 이기려면 지킬 것이 없어야 한다고 하였지.”
론이 그렇게 말하며 앞으로 검을 뻗었다. 그러자 흩어진 글리엑의 혼돈이 론의 손을 따라 그의 앞에 인간과 비슷한 모습을 형성했다.
글리엑이 만든 것이 아니라, 론이 강제로 혼돈을 끌어온 것이었다. 베어 없애기에 적당한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스걱-!
라시드가 그 형상을 베어내자 혼돈이 잠식한 공간 전체가 흔들렸다.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는 혼돈의 증식도 일순 멎었고, 론은 그 형상이 흩어지자마자 한 번 더 억지로 놈의 기운을 붙잡았다.
“그게 없었다면 지금까지 오지도 못했어…….”
론은 그렇게 글리엑을 계속 베어나갔다.
만일 글리엑이 시론을 상대하고 있었다면, 인류 전체를 인질로 잡는 건 훌륭한 판단이었을 것이다. 시론은 그를 론보다 빨리 죽일 수는 있어도, 인세가 타격받는 걸 막을 수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론을 상대로는 명백한 실책이었다. 차라리 글리엑은 전력을 론 하이란 한 사람에게 집중했어야 했다.
글리엑이 아무런 계산이 없이 한 행동은 아니다. 놈은 단테가 죽고, 세계가 멸망할 위기에 놓이면 그의 심마가 가속화되리라 기대했었다.
론에게 여전히 괴물이 될 위협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론이 얻은 수호의 창성은, 글리엑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위대한 영역에 닿아 있었다.
론의 수호벽이 전장 바깥으로 나아가는 혼돈 전체를 완벽하게 막아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 정도로 빠져나가는 수준이라면, 바깥에 남은 이들이 감당해낼 수 있었다.
피해가 없지는 않을 테지만 세계 멸망은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 것이다.
“네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나는 결코 너 같은 괴물이 되지 않는다. 설령 단테, 그토록 힘겹게 구해낸 나의 손자가 결국 네놈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절대로.”
[그건 두고 볼 일이지.]그 말에 론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볼 수 있을 것 같나?”
글리엑은 대답하지 않았다.
욱!
진의 등에 업힌 단테가 또다시 검은 핏덩이를 내뱉었다.
경련은 완전히 잦아든 상태였으나, 진은 그의 맥이 뛰는 걸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론의 보호막 덕분에 진은 론과 글리엑의 격전지를 상당히 벗어난 상태였으나, 아직 탈라리스와 로사, 켈리악에게 닿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도무지 그 안에 단테가 계속 생존해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단테의 생존과 별개로, 론은 확연히 승기를 잡았다.
글리엑은 힘을 분산시킨 탓에 론이 강제로 놈의 육체를 형성해 베는 걸 막지 못하고 있었다.
론이 글리엑을 벨 때마다 전장의 진동은 점점 거세졌고, 수호벽을 빠져나가는 혼돈의 양도 줄어들어 갔다.
처음으로, 글리엑이 수세에 몰린 것이다. 론은 물고 있는 목덜미를 놓치지 않는 맹수처럼 글리엑을 성공적으로 압박하고 있었다.
드디어 외부에서 싸우고 있던 이들에게도 여유가 생겼다. 로사와 켈리악은 빠르게 가장 혼돈이 적은 수호벽 쪽으로 부상자들을 옮기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글리엑은 단테를 그저 진에게만 맡긴 채……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있는 론을 보며, 문득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분명 론의 목표는 단테를 살리는 것이다.
글리엑은 그렇다면, 론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을 공격하는 게 아니라 그가 가진 창성의 기운을 단테와 나누는 것이라 생각했다.
[아.]무언가 확신을 얻은 듯, 글리엑이 목소리를 냈다. 놈이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