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85)
제 555화
152화. 콰울 가네스토(1)
진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비록 다짜고짜 중포부터 쏘아대기는 했으나, 그래도 콰울이 대화가 아예 불가능한 인간은 아니라는 게 밝혀진 순간이었다.
게다가 질문에 대답하고, 상대가 원하는 조건을 맞추는 건 진의 전문 분야가 아니던가.
“질문부터 들어보도록 하지.”
“내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아냈지?”
“탈라리스 경께 들었다.”
“탈라리스……?”
팅겐은 그녀의 이름을 듣자 고개를 갸웃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치 처음 듣는 이름인 것처럼 말이다.
일순 진과 시리스는 콰울이 탈라리스가 말한 팅겐과 다른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잠시 후 그는 화들짝 놀라며 이렇게 말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 탈라리스. 그래, 탈라리스 켄도르마!”
“엔도르마가 아니고?”
“엔도르마였던가? 맞아…… 그런 여자가 있었지…….”
진은 물론이고, 시리스도 옛 추억을 떠올리며 눈빛이 깊어지는 콰울의 반응에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다.
특히 시리스는 불쾌함을 넘어 일종의 신선한 충격마저 느끼고 있었다.
원한 적은 없으나, 시리스는 탈라리스의 애인이었던 수많은 인간들 중 꽤 많은 이들을 직접 보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어머니에게 애처로울 정도로 매달렸다. 심한 경우엔 만나주지 않으면 목숨을 끊겠다며 까불기도 했는데, 물론 탈라리스는 단 한 번도 그런 전 애인들에게 손을 내밀어주지 않았다.
시리스는 심지어 그중 심각한 경우, 가령 탈라리스에 대한 지나친 헛소문을 퍼뜨리거나 비궁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려고 작정한 작자들을 직접 처리한 적도 있었다.
진이 중급반 생도 시절 마미트에 있던 탈라리스의 307번째 남자친구, 알카로 첸더러도 시리스가 제거하러 갔던 것이다.
진과 시리스는 그곳에서 처음 만났었고.
‘어머니를…… 기억조차 못 하고 있었다고? 뭐 이런 인간이. 아니, 그게 가능하기는 한 일인가?’
굳이 애인 사이가 아니었더라도 탈라리스는 한 번 보면 어지간해서는 잊기 어려운 인물이다.
애초에 일반인은 그녀를 볼 일도 없을뿐더러, 엔도르마 혈족 특유의 새하얀 은발과 분위기는 다른 누구에게서도 느낄 수 없는 신비로움을 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콰울은 정말로 그녀를 까마득히 잊은 모양이었다. 아무리 봐도 단지 잊은 척을 하는 그림이 아니었다.
“……아니, 이미 알고 있던 게 아니었나? 방금까지 당신의 포탄들을 막던 건 만빙의 기운이었다고.”
만빙의 기운은 평범한 빙결계 마법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풍겼다. 그런데 콰울은 그마저도 방금 떠올린 듯 손뼉을 쳤다. 거기에 눈두꺼비 모트까지 있었고.
“맞아, 그러고 보니 저 친구는 탈라리스 켄도르마와 같은 힘을 사용하는군!”
“엔도르마라고!”
시리스가 버럭 소리쳤다.
콰울은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 애잔한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시리스로서는 화도 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오, 모트. 저 친구도 오랜만이군. 그렇다면 자네는 그녀의 딸이겠어. 만나서 반갑네. 팅겐 바우어일세.”
“꺼져.”
“그리고 너는 그녀의 사위, 혹은 예비 사위쯤 되겠군. 그러고 보면 룬칸델의 12기수와 비궁의 영애 사이에 혼담이 오가네 마네 하는 걸 들은 것도 같아. 탈라리스는 잘 지내고 있나?”
진이 무어라 대답할지 고르는 찰나, 콰울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흥! 됐어. 난 지나간 사랑 따위 궁금하지 않아.”
“하, 별 미친.”
그런 것치고는 눈빛이 너무 깊지 않나…… 진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시리스의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있었다.
“흠흠, 어쨌거나 탈라리스가 여길 알려줬다면 말이 되긴 하는군. 이곳을 기억하고 있었단 말이지.”
콰울은 아무래도 탈라리스에 대해 궁금한 게 많은 것 같았으나 꾹 참는 모습을 보였다.
시리스는 콰울을 더 지켜보다간 칼을 뽑을 것 같아 자리를 비켰다.
진은 잠시 콰울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었다.
몇 분쯤 뒤 콰울의 눈동자가 다시 경계심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처음보다는 훨씬 옅었다.
“다음 질문이다. 이 통나무집과 팅겐 바우어라는 가명을 알아낸 건 설명이 되었어. 그런데, 내 본명은 어떻게 알았지?”
“내 정보원들이 알아냈다.”
“미리 말해두는데. 장난을 치거나 거짓말을 하면 그 순간부터 대화는 끝이다.”
“깐깐하게 구는군.”
“룬칸델의 정보력이 지플보다 우위일 것이라 생각하나? 심지어 아직 12기수일 뿐이니, 네 정보력은 룬칸델이 아니라 바멀 연합의 능력이지. 내 진짜 이름을 그 정도로 알아냈다는 건 납득할 수가 없군.”
콰울의 말에는 한 가지 정보가 내포되어 있었다.
‘지플도 팅겐 바우어의 본명인 콰울 가네스토를 모르고 있었다?’
지플조차 알지 못하는 걸 네가 어찌 아느냐, 콰울은 그걸 묻는 중이었다.
“당신의 본명을 알아낸 건 내 정보원이 맞아. 가문은 당신의 존재도, 내가 찾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해.”
발레리아를 단순 정보원으로 분류할 수는 없지만 넓게 보면 그녀 또한 바멀 연합의 정보원으로도 분류할 수 있을 테니, 거짓말은 아니었다.
콰울은 한동안 진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이 없었다.
“흠, 거짓말은 아닌 것 같군.”
그 긴 눈맞춤은 거짓 간파를 위한 콰울 나름대로의 방식이었다. 근거는 따로 없는 듯 보였으나 일단 넘어갔으니 진으로서는 나쁠 게 없었다.
“나도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내 질문이 끝난 다음에 해라.”
“왜 지플의 공학자, 그것도 순간 이동 장치와 양산함 설계도 개발의 주축이나 되는 인물이 이런 오지에 박혀 있는 것이지? 심지어 이 지경이 되도록 당신을 호위하러 나오는 마법사조차 하나도 보이지 않는군.”
콰울은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 질문을 던진 진의 행동이 그리 싫지 않았다.
자신의 눈치나 살살 살피며 비굴한 모습을 보이곤 했던 지플의 권력자들보다 차라리 이쪽이 낫다는 생각이었다.
어쩌면 그 작은 호의는 잊고 있던 옛사랑을 진이 기억하게 해준 대가일지도 모르나, 콰울은 그 사실을 격렬히 부정할 뿐이었다.
“심지어 당신이 만든 것으로 보이는 저 막대, 저것들은 무인의 오러 집중을 방해하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더군.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 같은 수준의 공학자가 이런 곳에 방치되어 있는 건 이상한 일이야.”
“방치? 방치라고 했나? 흥! 이 몸을 잘 모르는군. 누구도 나를 구속할 수 없다.”
어쩐지 그 대목에서 진은 자신이 잘 아는 한 흑룡이 떠올랐다.
‘무라칸이 떠오르는군…….’
좋게 말하면 단순하고 독특한, 나쁘게 말하면 다소 멍청하고 오만한 이런 부류들은 간혹 뭔가 하나에 꽂히면 사족을 못 쓰는 모습을 보였다.
진은 부디 콰울에게도 그런 요소가 있기를 바랐다.
“지플이 당신을 풀어줬다, 이 말인가?”
“기껏 마음에 들려고 했는데, 자꾸 자존심을 긁는 얘길 하는군. 지플? 그놈들은 내 능력이 탐나서 잠시 날 모시고 있었을 뿐. 난 놈들의 소속이었던 적이 없다.”
대충 알 것 같았다.
‘지플이 이 괴팍한 인간을 함부로 어쩌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군. 조금이라도 심기를 거스르면 절대로 협조하지 않을 듯한 인간이니, 어쩔 수 없이 뜻을 따라주고 있을 테지.’
팅겐 바우어, 이 거만한 천재 공학자에 대해선 세상에 알려진 바가 전혀 없었다.
진도 소타 사막에서 기계 장치와 함선 설계도 일부를 얻지 못했다면, 그리고 발레리아가 없었다면, 그리고 그가 탈라리스와 관련이 없었다면. 아마 이곳을 찾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찾아오더라도 지금보다 훨씬 늦은 시점일 거고.
또한 콰울은 어지간한 이들을 상대로는 충분히 제 몸을 건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으며, 지플은 검황성전 이후 극심한 전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콰울 가네스토가 마냥 방치되어 있는 건 설명이 부족해. 가네스토라는 성이 아직 지플에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도 있긴 하겠군.’
정신 조작.
문득 진의 뇌리에 지플의 사술 한 가지가 떠올랐다. 적어도 지금까지 보기에는 콰울은 정신 조작에 당하지 않은 것 같았다.
‘놈들의 정신 조작은 아직 완벽한 수준이 아니니 그걸 배제하면 얼추 정리가 되기는 하는군. 그리고, 애초에 콰울이 지플과 일을 하고 있던 이유는 무엇이지?’
비록 아카데미 출신도 아니고 명성이 알려지지도 않았으나 콰울 가네스토가 차원이 다른 천재 공학자임은 분명하다.
그러니 능력을 발휘하다 우연한 기회에 지플의 눈에 띄어서 포섭된 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그냥 포섭될 인물은 아니다. 그저 첨단 공학 장비나 자원 지원이 필요했다면, 애초에 아카데미를 먼저 이용했을 가능성이 높아.’
지플은 무언가 콰울에게 매력적인 제안을 했다.
구속이라면 치를 떠는 그가 잠시 지플에 적을 둘 정도로.
진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혹시, 지플과 일하고 있던 건 당신의 구미를 당기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었나? 순간 이동 장치나 양산함 개발 같은 것에 대해 순수한 학자로서의 욕구가 작동했다던가.”
“그 부분은 마음대로 생각해라.”
그렇다는 뜻 같았다.
본래라면 콰울의 대답을 듣고, 진은 약간 길이 막힌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룬칸델과 바멀 연합엔 순간 이동 장치와 양산함을 뛰어넘을 만한 사업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마력흡입분사형 전천후 마력파쇄포, 아멜라가 고대 유물의 마스터피스라고 확언한 물건이 있으며, 함선 설계도 일부와 순간 이동 장치의 부품 또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부품과 설계도는, 콰울에게도 역작 중의 역작임이 분명한 물건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콰울 가네스토. 내가 만약 당신에게 지플만큼이나 매력적인 제안을 할 수 있다면, 나와 함께 일해줄 수 있겠나?”
“그런 게 가능할 리 없어.”
“이야기나 들어보지? 애초에 질문에 답하고, 조건에 부합하면 오두막을 떠나는 걸 고민해보겠다며?”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사실 기대는 전혀 안 돼. 뭐 고문이나 그런 걸 통해 날 움직일 생각이라면, 얼마든지 해봐. 그렇게 하면 네놈들은 이 세상의 발전을 수백 년은 뒤처지게 만드는 천하의 죄인이 되겠지만.”
진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품속에서 그냥 기계 장치를 꺼내 콰울에게 내밀어 보였다.
“이 물건을 완성시키고 싶을 줄 알았는데, 내가 잘못 생각한 모양이군.”
그러자 콰울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뭐, 뭐야! 그걸 왜 네가 가지고 있는 거냐!?”
진은 또 한 번 회심의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