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59)
제 66화
21화. 테싱 지하 경매(3)
“백.”
금화 백 개.
진이 입찰한 가격이었다. 고대 마법서의 첫 입찰가로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금액이다. 그럼에도 경매에 참가하고 있는 다른 마법사들은 속으로 진을 미친 사람 취급했다.
‘저걸 백 개나 주고 산다고?’
순수하게 호기심을 갖는 마법사들도 있었다. 지난 일주일간 한 번도 입찰하지 않은 남자가 처음으로 구입하는 마법서니까 말이다.
“백오십.”
“백오십 나왔습니다아!”
누군가 값을 올려 목소리를 냈다. 진지한 태도는 아니었다. 그는 얼굴에 잔뜩 웃음기를 머금은 채 진 쪽을 쳐다보고 있다.
놀리는 것이다. 정체불명의 마법서를 구입해, 한몫 쥐어 보거나 큰 성취를 얻으려는 어리석은 마음을. 마법서 경매장에선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진은 놈을 가볍게 무시하고 다음 가격을 불렀다.
“백칠십.”
아마 첫 번째 인생이었다면 천, 이천을 불러 돈 자랑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함부로 도발하는 놈의 자존심도 뭉개 줄 겸.
하지만 지금은 이럴 때 눈길을 끌어 좋을 게 없다는 걸 잘 아는, 노회한 인간이다.
“더 없으신가요? 5, 4, 3, 2, 1. 낙찰되었습니다.”
첸미의 마법서가 진에게 전달되었다.
무라칸은 담담한 얼굴로 마법서를 한 번 펼쳐 보곤, 의자 아래로 진의 손을 꽈악 붙잡았다.
‘꼬마, 역사적인 횡재다.’
이 위대한 흑룡은 결코 영기밖에 모르는 바보가 아니다. 그 역시 다른 용들처럼 수많은 마법을 구사할 수 있고, 전성기 때의 마법수준은 9성 이상이었다.
그런 무라칸이 잔뜩 흥분할 정도라면? 오 헨서크의 유산 부럽지 않은 마법이 틀림없었다.
심지어 진 일행의 행운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에, 스물다섯 번째 상품입니다. ‘슈지엘 히스터’라는 마법사가 남긴 것이군요. 입찰 시작하십시오!”
히스터.
진이 마미트의 선술집을 처음 찾았을 때, 주인장을 상대로 알아본 이름. 그 성을 듣자마자 진은 자신의 두 귀를 의심했다.
히스터는, 그의 마법 스승이 속한 가문의 이름이다. 공식적으로는 수백 년 전에 완전히 멸문된 가문이지만 말이다.
“이백.”
이번에도 진이 가격을 부르자, 마법사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진이 뭔가 있는 놈인 줄 알았는데, 똥만 고르는 멍청이라는 생각이었다.
“이백, 더 없으십니까?”
슈지엘 히스터의 마법서는 곧바로 낙찰되었다.
“저건 왜? 꼬마. 이번에도 감이냐?”
“그냥, 한 권만 사면 이상하게 볼 놈도 있을까 봐. 감이 좋기도 하고.”
마법서가 손에 들어오자마자 확인한 무라칸이 1분도 지나지 않아 고개를 젓는다. 그러나 옆에서 함께 살펴본 진은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키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요상하고 조잡한 암호 체계로 구성되어 있을 뿐, 별 볼 일 없는 마법서 같은데.”
무라칸이 몰라보는 게 당연하다.
그 요상하고 조잡한 암호 체계는, 진이 알기로 세상에 아는 사람이 딱 둘. 그와 스승밖에 없었다. 진은 스승에게 배운 것이니, 이 ‘슈지엘 히스터’라는 인물은 스승의 조상이리라.
익숙한 암호들을 마주하자 그리움에 가슴이 콱 막혔다. 용케 표정을 관리한 진은 이후 경매를 참을성 있게 지켜보았다. 살 만한 물건은 더 나오지 않았다.
테싱의 밤이 끝났다. 경매가 끝나면 참가자들은 남아서 여흥을 즐기거나, 곧장 돌아가는 두 부류로 나뉜다.
진은 늘 후자였지만 오늘은 경매장에 남을 필요가 있다.
“제트.”
“예, 나리.”
“거미손 알루를 만나야겠다.”
늘 알았다고만 대답하던 제트의 낯빛에 곧장 먹구름이 끼었다.
“어… 나리. 그건 어렵습니다. 제 손님이어도 알루는 무리예요. 살카를 소개시켜 드리는 정도가 제 한계입니다만. 그래도 꼭 만나야 한다면, 며칠 말미를 주셔야 가능합니다.”
“알루에게 전해. 베라딘 지플이 낯짝 좀 보자 했다고.”
제트의 두 눈동자가 튀어나올 듯 불거졌다.
베, 베라딘 지플이라굽쇼? 진이 그렇게 되물으려는 제트의 입을 틀어막았다.
“알겠나?”
눈을 끔뻑여 대답을 대신하는 제트.
‘아이, 미친! 이분들, 비먼트 특임대가 아니라… 지플의 일원들이었다고!?’
순식간에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비먼트 특임대의 악명이 아무리 드높아도, 루테로 마법 연방에선 지플에 비빌 바가 아니었다.
만일 다른 사람이 자신을 베라딘 지플이라 소개했다면, 제트는 코웃음을 치며 쌍욕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상대다. 제트의 눈에 진 일행은 비범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또한 루테로 마법 연방에서 오래 지낸 이들은 감히 ‘지플을 사칭한다’는 일 따윈 생각조차 못 하는 게 보통이었다.
제트의 머리가 미친 듯이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내가 착각했다. 크게 착각했어. 비먼트 특임대가 아니라, 순혈 지플이었을 줄이야! 내 생에 두 번은 오지 않을 기회다.’
세 사람을 특임대로 가정한 5분 전까지는, 이들의 정보원이 되는 게 제트의 최대 목표였다. 그러면 목숨도 부지할 수 있고, 계속 충성을 보이면 테싱보다 더 많은 콩고물을 얻게 될 테니까.
지플의 끄나풀이 될 기회와 비교한다면?
루테로 마법 연방의 평민들에게, 지플의 수족이 되는 것보다 더한 출세는 없다. 진이 손을 떼자, 제트가 굳은 눈빛으로 자리를 떴다.
순식간에 간부 몇을 거쳐 경매장 한쪽 문으로 들어서는 제트.
“아아, 난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무라칸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하지만 내용과 달리 은근히 싸움이 벌어지길 기대하는 눈치였다. 길리는 이마를 짚은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룬칸델이 지플을 사칭하다니.
거미손 알루에게 통하건, 통하지 않건. 길리가 생각하기에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혹, 이게 훗날 가문 사람들의 귀에. 그것도 가주님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도련님은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
가문 천 년의 역사에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그뿐일까. 지플 역시 사칭범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될 게 분명했다. 거짓말이란 언젠가는 반드시 들통 나기 마련이니까. 잡힌 후의 일은 물론 말할 것도 없다.
한편으론 이런 대단한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벌이는 막내 도련님이 신기하기도 했다.
어울리지도 않는 바이올린 선율만이 하릴없이 흘렀다.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느낌이 점점 강해질 무렵, 제트 대신 다른 조직원이 세 사람을 찾았다.
“당신이, 베라딘이라고?”
짜악!
누가 말릴 새도 없이, 진이 다짜고짜 그의 뺨을 후려갈겼다. 순식간에 남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네놈이 알루냐?”
알루가 아니다. 놈의 얼굴을 아는데도 굳이 물어보았다. 뺨을 맞은 조직원은 난감한 얼굴이지만, 함부로 맞서 싸우지 못했다.
혹 이 싸가지 없는 꼬마가 진짜로 베라딘 지플이면, 테싱 따윈 하루아침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닙니다. 보스께서 세 분을 모셔 오라고 해서.”
짝! 한 번 더 따귀를 올려붙이는 진. 방금까지 애매한 태도를 취하던 조직원이 대번에 허리를 깍듯이 숙였다.
여기까지는 계획대로다.
“그놈더러 직접 오라고 해. 내 이름을 밝혔건만, 감히 사람을 보내?”
화르륵!
진의 오른손에 시뻘건 화염 구체가 형성되었다. 진의 가면이 화염 구체에 비춰져 시커멓게 번들거렸다.
한눈에 보기에도 5성 이상의 마력이다.
단지 ‘내가 지플이다’라고 떠드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애티가 나는 소년이 이만한 마법을 부리며 지플이라 떠드는 건, 진짜가 아니라면 어려운 일.
“죄송합니다, 보스께 바로 알리겠습니다.”
분위기를 읽은 다른 조직원들이 빠르게 남은 손님들을 내보내고 있었다. 따귀를 맞은 자도 후다닥 뛰기 시작했는데, 진은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건방진 네 보스에게 반드시 기어서 오라고 전해라. 처음 기회를 줬을 때 놓쳤으니, 그 정도 벌은 받아야지.”
마력을 꺼뜨린 진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벌써 손님들이 모두 정리되었고, 남은 조직원들은 그저 난처한 기색이었다.
모두 진이 한 말을 똑똑히 들은 것이다. 보스가 정말로 기어서 등장한다면 그들 역시 즉시 바닥을 기어야 했다.
5분쯤 지났을까.
거미손 알루는 정말로 기어서 진을 찾아오고 있었다. 꽤나 육중한 몸을 한 중년 남성이 바닥을 기는 건 썩 유쾌한 광경이 아니다. 알루 역시 만감이 교차하는 눈빛이었다.
한 무리의 부하들도 함께였고 그들 사이엔 제트도 끼어 있었다.
제트는 ‘베라딘 지플’이란 이름을 꺼냈다가 헛소리 취급을 받고 두들겨 맞은 모양인지, 얼굴 곳곳이 뭉개진 모습이다.
어색하게 서 있던 다른 조직원들도 급히 몸을 바닥에 밀착시켰다.
‘지플이란 이름이 무섭긴 무섭나 보군. 얼핏 느껴지는 오러가 7성은 될 것 같은데, 확인도 안 해 보고 진짜 기어 와?’
이렇게 흘러간다면 뒷일은 식은 죽 먹기다. 대충 알루를 갈구다가, 창고를 검사하겠다며 투구를 슬쩍 챙기면 된다.
하지만 알루도 마냥 만만한 인간은 아니다. 혹 이야길 나누다 빈틈이 보이면 즉시 살인 병기가 되어 세 사람을 칠 것이다.
진은 알루가 자신의 발아래까지 오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이런 고압적인 태도가 몸에 밴 사람처럼. 실제로 룬칸델에 있을 때 몸에 배기도 했지만 말이다.
“일어나라.”
“테싱을 운영하는…… 알루입니다. 감히 이 땅의 하늘에 계신 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일어선 알루는 2미터를 훌쩍 넘어, 꼭 벽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시선을 한없이 아래로 내리깔아 진과 눈조차 마주치지 못했다.
그간 지플의 하수인들이나 상대하다가, 순혈을 만났다고 생각하는 중이니 당연한 반응이다.
“쓸데없는 소린 집어치우고, 이걸 봐.”
진이 첸미와 슈지엘의 마법서를 알루에게 집어 던졌다.
“그게 뭐 같나?”
마법서를 펼쳐 본 알루는 곧바로 사색이 되었다.
“마법서입니다. 죄송합니다, 지플의 허락 없이 고대의 마법서들을 거래했습니다.”
“오늘 내가 여기서 구매한 이 두 권의 마법서는, 우리 가문에서도 극히 귀하게 취급하는 것들이다. 그간 이런 식으로 얼마나 많은 마법서가 유실되었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군.”
“베라딘 님. 변명이지만, 저는 무인입니다. 무식한지라 마법서의 가치를 몰라보고 지플에 누를 끼쳤습니다. 지금부터 최선을 다해 이미 거래된 마법서를 회수하겠습니다. 기회를 주십시오.”
“네놈들이 회수하는 게 빠를까, 우리 마법사들이 나서는 게 빠를까? 헛소리 그만하고 당장 장부와 고객 명부를 가져와라. 내일부터 가문에서 직접 수색할 것이다.”
진이 능숙하게 거짓을 늘어놓는 사이, 알루는 답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지플이 직접 수색을 시작하면 그날부로 테싱은 공중분해였다.
그래서 알루는 이런 고민을 했다.
‘베라딘 지플… 이자가 여기 온 것을, 과연 본가도 알고 있을까?’
없다면.
차라리 제거하는 쪽이 나을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