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63)
제 66화
22화. 첸미의 마법(1)
좁은 방 안에 인상이 험한 두 남자.
그들은 벌써 제트와 몇 시간이나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제트 씨. 그러니까 당신은… 단지 아킨의 안녕과 양민들의 평화를 위해 이 투서를 작성했고.”
“그저 테싱의 하부 정보상에 불과했던 당신이 그들을 배신하기로 결심한 것은, 우연히 놈들의 경매장에서 노예 보관실을 목도한 후 크나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거지?”
“그뿐만이 아니라 목숨 걸고 훔친 온갖 문서 중엔, 마법서 거래 내역이 적힌 장부도 있어서. 테싱을 완전히 무너뜨릴 기회라고 생각해 지플에 넘겼고.”
“그 많고 많은 아킨의 소식지 중에 유독 테싱에 저항하는 곳 하나를 콕 짚어 보낸 것도, 당신이 평소 아킨의 정치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고…….”
“마지막으로. 당신은 그저 선량한 고발자일 뿐이니. 행여 테싱의 잔당이나 여타 외부 세력으로부터 살해 위협을 당하지 않도록, 우리더러 보호를 해 달라… 이 말인가?”
듣고 있던 제트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하십니다! 하이고, 다 같이 잘 살아 보자고 좋은 맘먹고 한 일인데. 어찌 이렇게 살벌한 대접을 계속 받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그만 풀어 주십시오. 아들이 걱정됩니다.”
한동안 제트를 노려보던 두 남자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비먼트의 수사관이었다. 그리고 투서를 확인한 상부의 명령을 받아, 선착장에서 제트를 잡아 조사하는 중이었다.
제트는 진의 판단대로 생존 본능이 강한 인간이었다.
그는 수사관들이 말하는 걸 듣고 곧장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진술이 무엇일지를 생각해 냈다.
베라딘 사칭범에게 속았다는 말은 하등 도움 될 게 없었다. 무조건 선의로 행한 일이라 포장해야 증인 보호를 요청할 수 있는 것이다.
수사관들은 난감했다.
‘아무리 봐도 공익을 위한 투사와는 거리가 먼 양아치 놈인데. 투서에 제트라는 이름만 있을 뿐, 절대로 이놈이 쓴 게 아니야.’
‘투서는 이놈이 아니라 테싱을 괴멸시켰다는 정체불명의 괴한들 작품이 분명해. 다만, 우리가 애써 그 괴한들을 찾아 헤맬 필요가 없다는 거지.’
투서의 진짜 주인을 찾는 것보다, 눈앞의 양아치를 정의의 투사로 둔갑시켜 발표하는 게 여러모로 편하고 쉬운 길이다.
게다가 투서와는 다르지만, 노예 명부에 사용된 필체는 이 제트라는 양아치와 일치했다. 적어도 노예 명부를 직접 작성해 비먼트가 자국 백성을 구할 수 있도록 단서를 제공한 사실은 확실한 셈.
수사관들이 어깨를 으쓱했다.
“좋아, 제트 씨. 사실 당신은 내가 보기에 그저 그런 밑바닥일 뿐이지만. 어쨌거나 우리 비먼트의 억울한 백성들을 다수 구한 공로를 인정해 사소한 거짓말 정도는 넘어가 주지.”
“하지만 이미 지플 측에서도 당신의 신병을 넘기라고 공문을 요청한 상태라, 어쩔 수 없이 협조할 수밖에 없어.”
“지플에서 날 찾는다고…? 아니, 아니, 안 됩니다. 거기 가면 난 죽습니다.”
“우리한테 했던 것처럼만 하면 그럴 일 없어. 진술을 번복하지 않는 이상, 비먼트 수사대는 당신을 증인으로서 보호해 줄 것이니까. 가서도 일관된 진술을 하란 말이야.”
“그쪽이랑 우리랑 앞뒤가 안 맞아서 괜히 피곤해지는 건 싫거든. 지플 측 조사실로 가기 전에 어린 아들 놈 얼굴 잠깐 보고, 밥이나 먹어. 아직 시간이 좀 있으니.”
한 시간 후, 지플의 조사실로 이동한 제트는 수사관들의 말을 충실히 이행했다.
제트는 끝내 ‘베라딘 사칭범’의 존재를 발설하지 않았고, 지플의 조사관들은 거짓 진술인 줄 알면서도 그를 죽이지 못했다.
“그렇다고 네놈을 영웅으로 만들어 줄 순 없지. 이번 테싱 괴멸은 모두 지플의 주관 하에 이루어진 처단 행위로 발표하겠다.”
“저야 살려만 주신다면 뭐든 상관없습니다.”
“네놈에게 듣지 못한 내용은 살아남은 테싱 조직원들을 족쳐 알아내면 돼. 가 봐. 그리고 비먼트의 증인 보호가 완벽할 거라는 기대는 버리는 게 좋을 거다.”
* * *
테싱을 괴멸시켰다.
그토록 큰 사건을 일으켰는데, 세 사람에겐 작은 수배령조차 내려지지 않았다.
지플로서는 필요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테싱에 뒷돈을 받아먹던 말단들에겐 아쉬운 일이지만, 지플이 테싱을 해체했다고 공표하면 자연스레 아킨 백성들의 지지도가 오른다.
이 작은 나라 양민들의 지지를 얻어 봐야, 지플 입장에선 개미 한 마리가 힘을 보태 주는 것이나 다름이 없지만 말이다.
“이를테면 명분은 지플과 비먼트가 나눠 챙겼고, 실리는 네놈이 챙긴 셈이로군.”
“그렇지. 뮬타의 룬, 첸미의 마법서, 그리고 슈지엘 히스터의 마법서를 얻었으니까. 7성 기사와 실전 승부도 치렀고.”
“7성이라고 다 같은 7성은 아닙니다, 도련님. 앞으로는 신중하실 필요가 있어요. 마법 투구에, 마법에, 영기에, 검술에… 도련님이 대단하긴 하지만. 매번 이렇게 줄타기하듯 위태로운 상황을 만들 순 없습니다.”
“물론. 지금의 내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길리 같은 진짜배기들한테는 안 되겠지. 나도 잘 알아. 좀 더 조심할게.”
세 사람은 며칠간 아킨의 한 시골 마을에서 사태의 흐름을 지켜보고 있었다. 모든 게 진의 예상대로 흘러가는 걸 보니 무라칸과 길리로서는 신기한 기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지플도 당분간은 우릴 찾을 생각이 없는 것 같으니. 마음 놓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해도 되겠어.”
“다음 목적지가 어딘데?”
물론 진은 이미 생각해 둔 곳이 있다.
“자유 도시 티칸.”
“티칸?”
세 사람과 아킨을 한번 겪어 보니, 정보상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길리와 무라칸 앞에서 회귀 전의 기억을 기반으로 움직일 때, 명분을 제공할 집단이 필요했다.
그뿐만 아니라 비슈켈 이블리아노와 부바르, 킨젤로, 알루의 본명, 콜론 유적지의 금지 마법 등.
알아보고 싶은 문제가 산더미였다. 세 사람이 마냥 오순도순 여행한다고 자연스레 알 수 있는 영역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 도시 티칸이 안성맞춤이었다.
‘거기 가서 귀검 카시미르와 연을 만들어야겠어.’
귀검 카시미르는 현시대에도 모르는 이가 드물 만큼 유명한 검객이다. 룬칸델 측에서도 여러 차례 초급 생도 검술 선생이 되길 권유했지만 매번 거절한 인물.
그가 모든 검객들의 꿈인 룬칸델 선생직을 거절한 이유는, 자신의 거대 정보상 ‘칠색조’ 때문이었다.
룬칸델과 지플, 비먼트의 정보기관을 제외하면 칠색조가 으뜸이라는 말이 있다. 룬칸델의 기수가 되기 전까진 가장 유용하게 써먹을 단체라는 뜻.
그만큼 뛰어난 정보상이지만, 그 수장이 카시미르라는 사실은 아직 아는 사람이 극히 드물었다.
카시미르가 비먼트의 ‘폐황자’라는 사실 역시 마찬가지. 회귀자의 입장에선 대단할 것도 없는 비밀이지만, 처음 그의 신분이 밝혀졌을 땐 세상이 왈칵 뒤집혔었다.
‘칠색조를 이루게 된 일곱 정보상은 모두 비먼트의 옛 충신 가문 출신이다. 카시미르를 포함해 비먼트 황가에서 버려진 자들이 모여 만든 집단이나 다름이 없지.’
진 또한 그 사연을 모두 알진 못하나, 칠색조 전원이 아주 유능한 인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들은 지금부터 10여 년 후, 마침내 폐황자 카시미르를 ‘자유국 티칸’의 초대 왕으로 추대하기에 이르니까.
수십 년 동안 칠색조가 쌓은 각종 ‘정보’를 이용한 협상 덕분에 비먼트와 룬칸델, 지플로부터 통치권과 주권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보통 뛰어난 인간들이 아니었다.
‘티칸에 가는 건 간단한 일이지만, 문제는 카시미르와 어떻게 가까워지느냐다.’
잠시 고민하던 진이 씨익 웃음을 흘렸다.
‘소국에 필요한 건 국력이다. 카시미르가 절실하게 원하는 걸 미끼로 접근해야겠어.’
국력을 키우는 가장 빠르고 안정적인 방법은, 우선 군사력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그래야 외세의 침략에도 맞설 수 있고, 튼튼하게 기반을 갖춰 갈 수 있다.
하지만 도시에서 국가가 된 이후에도 한동안 티칸은 그저 코딱지만 한 소국일 뿐이었다.
인구가 적으므로 군인도 적고, 인재도 적다. 엄청난 자원이 있는 것도 아니므로, 나라를 발전시킬 동력 자체가 한없이 미약했다. 오로지 ‘정보력’에만 의존하는 국가의 한계였다.
‘괜찮은 인물로 판단된다면, 콜론 유적지의 거울 아티팩트에 대해 운을 떼 봐도 괜찮겠어.’
물론 아직 얻지도 못한 거울 아티팩트를 그의 면전에 보여 줄 수도 없고, 그 효능을 증명할 길도 없다.
따라서 카시미르가 가진 군사력에 대한 열망의 크기가 관건이었다. 열망이 클수록 사람은 믿고 싶은 걸 믿을 수밖에 없게 되니 말이다.
‘거울 아티팩트를 얻는다고 해서 그걸 카시미르에게 그대로 넘길 생각은 없지만. 효능을 나누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 마스터피스인 뮬타의 룬을 보여 주며 약을 살살 팔아 볼까. 세상엔 그런 아티팩트도 존재한다고.’
뮬타의 룬뿐만이 아니라 카시미르를 만나면 예비 기수의 불문율도 어길 계획이었다. 룬칸델이라는 신분도 밝혀야 카시미르가 들어주는 척이라도 할 테니까.
어쩐지 룬칸델의 룰을 하나씩 어길 때마다 즐거운 기분이었다.
“뭘 그렇게 웃고 있냐, 꼬마. 티칸이 뭐하는 동네냐니까? 내 시대 때는 들어보지 못한 지명인데.”
“아마 정보상 때문일 거예요, 무라칸 님. 티칸엔 칠색조라는 거대 정보상이 있는데…….”
길리가 대신 설명해 주자 무라칸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서 제트를 이용했던 것처럼 죽일 놈만 쏙쏙 고르겠다는 뜻이군. 나쁘진 않은데, 그게 그렇게 신난 거냐?”
“웃은 건 마법서 때문이었어. 내일쯤엔 첸미의 마법서를 전부 해독하는 것 아니야? 이제 배우기 시작할 생각에 기대가 되는 거지.”
“그래, 첸미 녀석이 남긴 마법이 대체 뭔지 이제 거의 윤곽이 잡혔다. 빛 계열 마법인 것 같더군…….”
“뭐?”
“빛 계열 마법이라고.”
“고대 이후 빛 계열 마법은 모두 유실된 걸로 아는… 아.”
반사적으로 말하던 진이 고개를 저었다. 첸미가 무라칸 시대의 마법사였다는 건 이미 몇 번 들은 이야기였다.
빛 마법.
그건 현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마법사들의 꿈과 같은 것이었다.
“대체 어떻게 돼먹은 세상인지. 첸미의 마법서가 잡배들이 운영하는 지하 경매장을 굴러다닌다니… 내가 첸미라면 무덤을 박차고 나오겠어.”
“그 첸미라는 마법사는 대체 어떤 사람인데?”
무라칸이 미소를 지으며 진을 빤히 쳐다보았다.
“1500년쯤 전에 지플의 마법사들이 첸미를 죽이겠다고 원정대를 꾸린 적이 있다. 정예 마법사 오백이었지. 그리고 실패했다. 네놈을 포함한 세상 사람들이 첸미를 모르는 이유겠지.”
룬칸델이 마검사였던 기록을 완전히 말소시켰듯.
지플은 대마법사 첸미의 존재 역시 역사 속에서 완전히 지워 버린 상태였다.
“그놈들 특기야. 자신들을 위협했던 대상은 역사에서 지워 버리는 것. 네놈이 영기의 극의를 깨우치지 못하면, 머잖아 지금의 룬칸델도 그런 신세가 될 거다.”